다시 부흥을 꿈꾸며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글|송기태, 사진|권순형•윤기룡 | 입력 : 2016/02/29 [10:56]
▲ 조용기 목사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국 기독교가 온 세계로 나가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한국을 알리는데 앞장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크리스찬리뷰


“부흥의 역사를 연구해보라. 하나님은 항상 가장 어두운 시대에 부흥을 주신다. 오! 강력하고 광범위한 부흥을 오늘 우리에게!” - 아드리안 로저스
 
70, 80년대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없는 부흥을 경험한 한국 교회! 이제 그 부흥의 열매를 추수하여 굵고 속이 찬 종자를 세계선교로 뿌려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한여름의 폭풍에 떨어진 설익은 열매처럼 한국교회 부흥의 열매는 ‘종자’도 되지 못한 채 땅에 떨어져 썩어가고 있는 듯하다. 싹을 내지 못하는 종자는 그냥 썩어질 뿐이다. 한국교회의 최근 진단이 이 모습이 아닐까 한다.
 
한국 교회부흥의 정체, 마이너스 성장을 탄식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정작 그렇게 ‘외치는 자의 소리’는 소리 나는 꽹과리처럼 요란하지만, 그 요란한 만큼 진지함과 겸손한 성찰, 무릎 꿇음, 복음전파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각종 이벤트성 행사만이 부흥의 첩경처럼 교회마다 각종 플래카드로 도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때, 한국교회 부흥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을 만나 육성을 듣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부흥의 시대에 부흥의 한복판에서 세계 최대의 교회를 설립하여 부흥과 성장을 갈망하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조용기 목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필자는 ‘80세계복음화대성회’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대학생 집회에서 조 목사의 설교 가운데 ‘생산적, 적극적, 창조적, 긍정적, 건설적 신앙’의 강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즈음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막힌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가는 설교를 듣고 전율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그토록 강하고 깊은 인상을 심어준 그를 30년만에 시드니에서 직접 만나니 “청춘을 붙잡는 장사가 없고, 백발을 물리치는 영웅이 없느니라”는 한국 초대교회 길선주 목사의 말이 떠올랐다.
 
건강이 썩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옥스포드 훨스(Oxford Falls)에 소재한 C3교회 집회 인도 차 시드니를 방문한 조 목사를 숙소에서 만났다(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 2월 25일 저녁, C3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한 조용기 목사.     ©크리스찬리뷰

희망과 용기를 주는 목회

- 하나님께서 조 목사님을 한 시대에 가장 큰 부흥을 주도하게 하신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산공업고등학교 2학년 때, 폐병 3기로 걸려서 죽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치료도 할 수 없고, 죽는 날만 기다리는 처지에 있을 때, 예수 믿는 친구가 ‘하나님께 기도해봐라, 하나님이 살려준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안내로 대청동 선교회관에 나가서 말씀을 듣고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집안이 모두 불교 신자고 예수 믿는 사람이 없었는데, 선교사님이 나를 서울로 보내 순복음신학교를 마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저를 통한 부흥? 하나님의 뜻이니 모르지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선교를 하고, 충성을 다했을 따름이지 제가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 훌륭한 교회를 세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에 충성을 다했을 따름입니다.
 
한 가지 목적은 저는 언제나 한국사회의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한 목회를 했습니다. 물론 저는 돈이 있고 훌륭한 가정에 들어갈 수 있는 신분이 되지 못했지요. 주로 제가 목회할 때 우리 교인은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에서 온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목회할 땐 그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목회에 치중했습니다. 그분들이 주를 믿고 용기와 희망을 갖고서 사업도 잘되고, 정치적으로도 출세한 사람들도 생기고, 자연적으로 교회가 유명하게 되었지요.”
 
- 하나님이 목사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귀하게 보실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불쌍한 사람들 하고 같이 산 것을 제일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분들의 자녀들이 학교 갈 때 제가 있는 힘을 다해서 돈을 마련하고 해서 장학금을 주기도 했습니다.
 
병들었으면 기도도 하고,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심장병 환자로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5천여 명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다 살아나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러 올 때 저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 최고의 부흥을 경험하신 목사님께서 이 부흥의 회복을 위해 부탁과 제언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한국교회가 우리 한국사회에 고통을 함께 걸머지어야 하겠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고생을 하고 사회적으로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을 한국교회가 무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부자가 되고 너무 교만하게 되어 그 결과로 교회가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교회가 없으면 못살았습니다.
 
우리 시골에서 목회할 때는 장사하는 사람들은 밤새도록 기도하고, 생선장사 하는 사람들은 생선을 전부 교회 갖다 놓고 교회에서 자고 생선을 이고 장사하러 나갔습니다. 교회와 사회가 하나 되어야 하는데, 오늘의 문제는 사회와 하나가 안되고 사회와 분리된 독립적인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 만일 목사님께서 지금 다시 목회를 시작하신다면 어떤 목회를 하시겠습니까?
 
“저는 역시 제가 처음 시작한 대로 우리 한국의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힘이 없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
 
- 현재 시드니에서 목회하시는 목회자들의 절대 다수가 40~50로 목회 중반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40~50대라면 어떤 사역에 가장 집중하시겠습니까?
 
“40대 50대나 젊은이나 교회라는 것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너희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교인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에 가장 힘쓰겠습니다. “
 
- 50년 성역에서 가장 고귀한 경험, 소중한 자산, 남기고 싶은 유산은 무엇이니까? 목회사역 가운데 가장 아쉽고, 해보고 싶으셨는데 못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아쉽거나 못해본 것 없습니다. 제가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해서 우리 한국이 외국 사람에게 인정받는 기독교국가가 되기를 바라고 원했습니다. 제가 독일 베를린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구를 120바퀴나 돌고 70여 개 도시에 나가서 대부흥을 인도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를 이해하게 되고, 한국 사람을 이해하게 된 것을 생각할 때, 기쁘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한국 기독교도 한국 땅에서만 있지 말고, 온 세계로 나가서 선교사역을 하고 그리고 한국을 알리는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사회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제적인 일이 일어나야 할 것인데, 한국교인들 하고 연합이 못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지금도 경제적인 문제가 굉장히 불안한 상황 속에 있습니다. 교회가 기도하고 뛰어 들어가 중재를 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 힘이 없습니다.
 
일반사회가 교회를 믿어주어야 하는데, 교회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와 봐야 ‘너희는 따로 모인 단체이지 너희가 우리에게 뭘 해주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울 때 교인을 한국사회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힘으로 걸머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 시드니 성도들에게 ‘이것만은 꼭 붙잡으라’라고 부탁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제가 그렇게 큰 일을 말할 수 있는 있는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드니에서 만일 제가 목회한다면 시드니 사회에 울고 웃는 문제를 대신 걸머지고 같이 울고 웃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제 마음에 있습니다.
 
제가 50년 목회 했을 때 우리 교회의 헐벗고 굶주리고 어려운 사람들 하고 늘 같이 있으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 결과, 지역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만,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교회에 잘 안 나가는데, 우리 교인들 절대 다수가 호남분들입니다. 저도 전라남북도에 가장 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서로 이해와 긍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해와 공감을 같이 하고, 함께 같이 사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목사님의 건강과 최근 근황은 어떻습니까?
 
“저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치유를 받고 있습니다. 당뇨가 있어서 상당히 시련을 받고 있습니다. 요사이 제가 바라는 것은 저는 설교하다가 강단에서 하나님께 갈 각오를 하고 자리에 누워서 가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옛날에 세계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던 나라들이 다시 오라고 환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힘이 생기는 대로 다시 세계를 돌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고자 생각합니다. 일 주일에 설교는 교회에서 4부 예배에 정기적으로 하고, 그 외 3~4군데 다른 교회 나가서 설교합니다.

▲ 최근 80세 생일(2월 14일)을 맞은 조용기 목사에게 C3교회 필 & 크리스 프링글 목사 부부가 조 목사 부인 김성혜 목사와 함께 케익을 자르며 축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부흥의 발전소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좋아하는 말씀을 암송했고(엡 2:8~9), 좋아하는 찬송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라고 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헨리 블랙커비는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부흥의 통로가 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이 당신과 당신 교회를 부를 때 ‘아닙니다’하며 거부하지 말라”고 했다.
 
조 목사는 인터뷰 첫머리에 이 말을 증언하는 듯했다. 부흥의 신비, 부흥과 하나님의 주권을 그는 삶으로 증명해온 목회자이기도 하다. 부흥은 어떤 방법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임하는 것임을 증언해 주었다. 가까이서 본 그의 모습은 설교할 때 강렬한 모습과는 달리 진솔했고, 진지했고, 엄숙했으며, 또한 온유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소명, 즉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로 새로운 삶을 일깨워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신앙의 새 장으로 부흥의 불길을 타오르게 했다.
 
그는 부흥은 교회가 일상적인 상태에서 간헐적으로 경험하던 일들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너무나 분명하고 강하게 경험한 목회자이기도 하다.
 
빌 하이벨스는 “부흥하는 교회들의 공통점은, 리더십의 영적 은사에 사로잡혀서, 그 은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비결은 조 목사의 리더십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적 은사를 사장시키지 않고 마음껏 사용한 그의 탁월한 능력에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부흥이란 부흥을 통해 변화된 자들의 간증이 날개를 타고 퍼져나가는 것”이리는 말처럼, 그가 목회한 교회는 거의 매일같이 기적이 일상사처럼 일어나는 간증이 날개를 타고 사면팔방으로 번져나가며 부흥의 발전소가 되었다. 21세기 그를 이을 주옥같은 ‘부흥의 후예들’이 불꽃처럼 일어나길 고대한다. 〠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사진/윤기룡|크리스찬리뷰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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