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에 그린 그림

최성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2/29 [12:01]
제우시스(Zeuxis)와 파라시우스(Parrhasius)의 그림 그리기 시합으로 이번 호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두 사람은 그리스의 독특한 미술장르인 도기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정밀묘사와 박진감 주입에 공이 큰 화가들이다. 
 
제우시스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정밀그림의 대가였다. 사진처럼 그린다고 할 정도였다. 주로 포도를 그렸는데 어찌나 똑같은지 새들이 수도 없이 날아와 쪼려했을 정도였다. 제우시스는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치없게 파라시우스도 만만찮아라고 말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제우시스가 파라시우스에게 대결을 청하였다. 광장에 두 벽을 마주 세우고 각각 돌아 앉아 그림을 그린 후 평가는 사람들이 하기로 했다. 제우시스는 체리 바구니를 든 아이를 그렸다. 그림이 완성되자 어김없이 새가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기가 난 제우시스가 파라시우스에게로 갔다. 그의 그림은 커텐으로 가려져 있었다.  <커텐을 걷고 그림을 보여 주세요>라고 제우시스가 말하자 파라시우스가 대답했다.  <커텐이 제 그림인데요>. 사람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승리는 새의 눈을 속인 제우시스가 아니라 화가의 눈을 속인 파라시우스에게 돌아갔다. 대결에서 패한 제우시스는 교만을 회개하고 정진을 거듭하여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기화는 도기로 만든 물 항아리 포도주 항아리 기름 항아리, 그릇이나 컵, 시체를 담는 옹관 등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유럽의 박물관에서 지천으로 볼 수 있으니 독자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스 문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기에 이미 시작되었고 주전 4세기경에 절정에 이른 그리스의 회화의 보고이다.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 화폭을 대신한 도기화는 신전이나 궁궐, 귀족들의 저택에 그려졌던 벽화들이 모두 유실되고 남아있지 않은 현재 그리스의 그림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주로 그리스 신화와 영웅담을 그렸지만 운동경기나 잔치, 장례식 등의 일상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도 많으므로 당시의 생활을 살펴 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주전 800년경의 초기 작품들은 대상의 단순한 구도나 투박한 묘사에 그쳤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구도가 다양해 지고 묘사의 정밀성과 박진감이 크게 진보하였다.
 
액세키아스(Exekias)의 <주사위 놀이를 하는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를 보면 흑화식 기법에(Black figured vase/ 바탕은 붉은 색 그림은 검은 색) 인물의 옆모습을 그린 것은 이전의 흐름에 대한 답습이나 세밀히 계산된 구도 속에 두 인물이 자리한 것이며 머리카락이나 망토의 묘사가 훨씬 더 정교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액세키아스는 이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어 이 방면의 세계최초 타이틀을 얻었다.
 
액세키아스의 흑화식 기법을 적화식 기법(Red figured vase)으로 발전시킨 이는 안도치데스이다. 적화식 기법이란 흑화식과는 반대로 바탕은 흑색 그림은 붉은 색으로 그린 것이다.                               
 
또 흑화식이 송곳으로 긁어내는 투박한 방식인데 비해 적화식은 붓으로 그리는 것이었으므로 훨씬 더 정밀하고 역동적인 묘사가 가능하였다. 애우프로니오의 <운동을 준비하는 소년들>을 보면 근육을 묘사하는 선의 굵기에 따라 근육의 질감이 훨씬 다르게 느껴짐을 알 수 있다.
 
부자들의 열광적인 구입경쟁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던 도기화는 이탈리아 등 주변 여러 나라에서 요업이 발달하면서 아테네를 포함한 아티카 지역의 도기산업과 함께 사양길에 들어선다. 대형화폭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작은 면적의 도기화 역시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이나 산업이나, 수요를 이길 재간은 누구에게도 없나 보다.
 
도기의 표면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내밀한 스토리를 절제된 붓으로 담아내던 그리스인들, 붉은 바탕에 검은 인간을 그렸건 검은 바탕에 붉은 인간을 그렸건, 송곳으로 파냈건 붓으로 그렸건, 그들의 관심이 오직 올림포스의 신과 그 신을 닮은 영웅과 제의, 운동경기와 잔치에 있었던 것은 <다른 세계>를 알지 못한 무지 때문이므로 무죄일까. 〠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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