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초기 역사와 생생한 서민 생활 체험 현장

글|김환기,사진|권순형 | 입력 : 2016/03/28 [16:21]
▲ 호주 주막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1900년대 초 유아 침실.     ©크리스찬리뷰
 
역사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을 역사라고 한다. 과거의 사건은 그대로 있지만 사관은 다르다. 따라서 역사란 과거의 사건이 아닌 오늘의 기록이다. 호주는 짧은 역사에 비하여 지역마다 많은 역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네피안 지역 역사회
(The Nepean District Historical Society)

 
1924년  '네피안 지역 역사회'가 태동하는 첫 모임이 있었다.‘펜리스’(Penrith)의 '아서 저지’(Arthur Judge)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역사회를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모임에서 '네피안 지역 역사회’를 결성하기로 결의했다. 다음 모임에서 책임자를 선출하였으나 그 이후의 기록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1947년 8월 12일 '네피안 지역 역사회'가 공식적으로 재출범하게 되었다. 1971년까지는 개인 집에서 활동하다가 당시 버려진 '호주 주막 박물관'(Australia Inn Museum)의 건물 사용을 허락받았다. 5년 동안 열심히 박물관 건물을 개보수한 후 역사회 본부를 박물관으로 옮겼다.
 
▲ 기도 상자     © 크리스찬리뷰

네피안 지역 역사회는 펜리스과 네피안 지역의 역사적인 정보, 사진, 물품 등을 모아 이곳에 전시하였다. 이 지역 사람들은 물론 호주 역사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네피안 지역 역사회’는 5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월 한 차례 모임을 갖고 있으며 역사 순방, 월간 간행물 발행, 유적지 탐방 등의 활동을 통하여 이 지역 역사를 알리고 있다. 특별히 자신의 뿌리를 잊고 사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한국 마산에 있는 창신고등학교 영어 연수팀이 이곳을 방문하여, 초기 호주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 호주 주막 박물관 전경.     ©크리스찬리뷰
 
호주 주막 박물관  (The Arms of Australia Inn Museum)
 
시드니에서 한 시간여 떨어진 곳에 이뮤 플레인스(Emu Plains)라는 지역이 있다. 블루 마운틴 입구에 위치하여 산을 넘기 전에 오렌지(Orange)나 바서스트(Bathurst) 쪽으로 금광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 하룻밤 쉬고 가야 하는 지역이다. 자연적으로 마차가 다니는 큰 길 옆에는 주막이 발달하게 되어 있다.
 
당시의 Inn은 조선 시대 사극에 등장하는 주막과 같은 형태였다.
 
지난 3월 16일 오전, '호주 주막박물관'을 방문하여 '네피안지역 역사회 임원'들을 만났다. 방문 예약을 담당하는 ‘카멜 헤이우드’(Carmel Heywood), 대표부회장 ‘로즈메리 위버’(Rosemary Weaver)와 공동부회장 ‘밥 필딩’(Bob Fielding)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로 '호주주막박물관'을 관리하고 있다. 크지 않은 지역이지만 호주 초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기 전에 잠시 인터뷰를 했다. 단체 손님이 오면 밥(Bob)이 안내를 한다. 그는 은퇴 후 이곳에서 10년 째 봉사하고 있다.
 
▲ 올드 시드니 타운이 문을 닫게 되어 호주 주막 박물관은 그곳에서 사용하던 마차를 구입해 왔다.     © 크리스찬리뷰

"원래 이 지역은 죄수들을 수용하는 곳이었습니다. 죄수들은 펜리스에 머물면서 다양한 농•축산물을 생산하여 시드니에 공급했습니다. 초기 정착민들은 시드니, 파라마타, 윈저 그리고 펜리스 등에 정착하였습니다. 이곳은 블루 마운틴을 넘기 전의 마지막 마을입니다."
 
밥은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아무런 보수도 없지만 밥은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곳은 블루 마운틴을 넘기 전에 마지막 마을이기 때문에 주막이 발달했습니다. 여행객들은 주막에서 잠도 자고 음식도 먹고 술도 마십니다. 방이 넉넉지 않아서 여자와 아이들은 방에서 자고 남자들은 마차 밑에서 자거나 헛간에서 잤습니다."
 
▲ 지난 1월 호주 주막 박물관을 방문한 창신고등학교(마산) 영어 연수팀. 박물관측은 “아시안 그룹으로는 2번째 방문 팀이었다” 라고 밝혔다.     ©크리스찬리뷰
 
산적 (Bushranger)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멜(Carmel)이 한마디 보태었다.
 
"블루 마운틴에는 산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등불로 산 위의 주막과 산 아래 주막이 서로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산 위에 등불이 커져 있으면 산적이 없다는 뜻이고, 등불이 꺼져 있으면 산적이 있으니 다음 날 출발하라는 뜻입니다."
 
카멜의 이야기를 듣다가 '네드 켈리'(Ned Kelly) 생각이 났다.
 
"혹시 네드 켈리를 아세요?"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네드 켈리는 아일랜드 출신인데 저도 아일랜드 출신이거든요. 원래 그는 산적이 아니었어요. 가난한 평민인데 모함 당하여 산적의 길을 걷게 되었던 거죠"
 
▲  호주 주막 박물관 입구   © 크리스찬리뷰

네드 켈리는 한국의 임꺽정과 같은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아일랜드 이주민의 아들로 태어나 10대 초반부터 가족을 부양하다가 강제노역에 불만을 품고 목장주를 폭행하는 등 10대 중반까지 감옥만 세 차례 들락날락했다. 출옥 후 동생, 친구와 함께 켈리 갱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산적의 길로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농부들의 담보 채권을 불태웠고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가족이 당했던 부당한 사회적 처우, 호주를 통치하는 영국 경찰이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교도에 대한 탄압 등을 알리면서 가난한 자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결국 그는 경찰에 쫓기던 중 추종자의 배신으로 1880년 체포돼 같은 해 11월 처형됐다. 이때 그의 나이 26세였다. 체포 당시 쇠로 만든 투구와 갑옷을 입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철가면’으로 불리기도 했다.
 
▲ 박물관 임원들. 왼쪽부터 밥, 로즈메리, 카멜 그리고 본지 김환기 영문편집위원.     ©크리스찬리뷰
 
호주 해병대 (Marines in Australia)
 
1788년 영국 해병대 4개 중대가 도착했다. 16명의 사관과 12명의 하사관, 12명의 상병 그리고 8명의 드럼과 백파이프 그리고 160명의 이등병으로 구성되어 주로 죄수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이들은 잘 훈련되어 있어 죄수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으나, 폭력이나 무력은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해병대는 초기 정착지를 넓히는데도 많은 기여를 했다. 산업혁명 전에는 무역을 했던 사람으로서 건물을 짓거나 학교 선생, 경찰, 선박 건조 등의 다양한 일에 도움을 주었다. 이들 중에서는 시드니에서 근무하는 동안 여죄수와 결혼하거나 동거한 사람들도 있다.
 
해병대의 유니폼은 전통적인 붉은 코트에 하얀 바지 그리고 검은 장화와 모자이다. 그리고 하얀 벨트를 양 어깨에 두른다. 지금도 NSW 해병대는 한 달에 한 번씩 이곳 박물관에서 모임을 갖으며, 초기 해병대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다.
 
인터뷰 중 Bob은 해병대 모형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설명할 때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는데 막상 모형을 보니 당시의 해병대 복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NSW '해병대'(Marines)는 '네이피안지역 박물관’은 우리들의 고향'이라고 일컫고 있다.
 
▲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생활용품들-1     ©크리스찬리뷰
 
박물관 투어 (Museum Tour) 
 
특별한 형식 없이 오래된 물품이 관람객들이 보기 좋게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었다.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사용했던 타이프 라이터도 있고, 교환원이 직접 전화 연결을 했던 전화 교환대도 있었다. 카멜은 작은 여행용 다리미를 보여 주었다. 작지만 무거웠다.
 
"이 다리는 여행 중 소매나 옷 깃 같은 곳을 다릴 때 사용했는데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갖고 다녔습니다."
 
"저기 있는 TV와 라디오는 내가 어릴 때 있었던 것입니다. 흑백 TV인데 지금은 나오지 않습니다."
 
▲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생활용품들-2     ©크리스찬리뷰
 
박물관 중간 방에 '넨킨스 가족'(Nenkins Family)이 기증한 '기도 박스'(Prayer Box)가 있다. 카멜은 조금은 흥분된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 상자에서 기도제목을 뽑아, 묵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책장에서 당시에 사용했던 성경 한 권을 꺼내 펼쳐 보여 주기도 했다.
 
내 시선을 끈 것은 이동할 때 물품을 보관했던 나무상자였다. 밥이 나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작은 상자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물품에 따라 구분하여 넣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상자는 뚜껑이 뽈록 튀어 나왔습니다. 뚜껑이 평평한 것은 다른 상자를 그 위에 올려놓을 수 있지만, 뚜껑이 뽈록 튀어 나온 것은 중요한 물건이 있으니 올려놓지 말라는 표시입니다."
 
▲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생활용품들-3     ©크리스찬리뷰
 
중간 전시실 벽 위에는 역사박물관의 1840년부터 1970년까지의 발자취가 사진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특이한 사실은 박물관의 입구가 매우 낮았고, 지붕도 기와가 아니라 나무 널빤지로 지붕을 만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지금도 나무 널빤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구가 낮은 것은 당시 사람들은 키가 작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입문도 낮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밥이 내 궁금증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박물관 반대쪽의 건물에 마차가 보였다.  올드 시드니 타운(Old Sydney Town)이 문을 닫으면서 그곳에서 사온 마차이다. 시드니에서 약 한 시간 떨어진 '고스포드'(Gosford)에 '올드 시드니 타운'이 있었다. 초기 시드니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관광지로 개발한 후 1975년 문을 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3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 영국 전통 해병대 복장을 한 NSW 해병대원들.     ©크리스찬리뷰
 
'올드 시드니 타운' 만큼 크지는 않지만 초기 시드니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시드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윌버포스(Wilberforce)에 있는 '호주인개척자마을'(Australiana Pioneer Village)이다.
 
헤어지기 전에 대표부회장인 로즈마리에게  '네피안지역 역사회'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앵글로색슨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주는 이제 다민족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앵글로색슨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자신들의 현재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있는 많은 물건들은 제가 어릴 때 어머니, 할머니가 사용했던 것입니다. 역사적인 물건을 잘 보존하면 다음 세대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과거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됩니다.
 
▲ 과거에 사용했던 전화 교환대와 전화기들.     ©크리스찬리뷰
 
역사 전시회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유물을 잘 수집하고 전시하여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힘을 쓰겠습니다. 오늘 방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홈페이지: www.nepeanhistoricalsociety.org.au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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