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신이 된다’고 오용된 성구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1)- 요 10:34

장운철 | 입력 : 2010/02/07 [06:13]
                                                                                              
이단들이 자주 언급하는 몇몇 성경구절들이 있다. 그들은 그 성경구절들을 곡해하여 자신들의 영혼을 어두움에 방치하고 있으며 또한 기성교회 성도들을 미혹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성경을 문맥을 따라 잘 읽기만 해도 어느 정도 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단들은 한 단어 또는 한 문장에만 집착한다. 그렇게 오용되어 사용되는 성경구절들을 정리해 보았다. <편집자 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우리가 ‘신(神)’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곳이 있다.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그 논리가 교주나 특정인에게만 해당된다는 곳과 모든 신도들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는 곳이다. 전자는 교주의 신격화 놀음에 잘 활용된다. 자신만이 성경을 통달한 자, 이긴 자, 철장권세를 가진 자 심지어 또 다른 보혜사나 재림예수라고까지 주장한다. 특정 성경구절이 그러한 교주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후자는 신도들로 하여금 착각의 삶을 살게 한다. 질서를 뛰어넘어 헌신하게 하고, 또 헌금을 하게 한다.

‘인간이 신이 된다’고 오용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10:34이다. 또한 잘 알려진 갈라디아서 2:20도 종종 오해 받기도 한다. 먼저 요한복음 10:34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개역개정 요 10:34).

이 구절을 보면, 언뜻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신이라 하셨다’는 것처럼 보인다. 이단자들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그래서 자신도 속고 남도 속이게 된다.

   

인간이 신이 된다면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13권의 성경을 쓴(히브리서까지 포함할 때) 사도 바울은 신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위의 논리대로라면 적어도 반쯤은 신의 경지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가 과거형으로 말했을까. 아니다. 현재형이다. 그가 사역 초기에 아직 복음을 잘 몰랐을 때 한 말일까. 아니다. 그의 사역 최후반부에 한 말이다. 이것이 오직 사도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 그것도 아니다. 구약의 위대한 왕인 다윗에게서도 발견된다. 또한 솔로몬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위의 성경구절(요 10:34)의 본 뜻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읽을 때는 이단자들의 주장이 옳은 것처럼 보이는데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가 보자. 먼저 다른 번역서들 살펴보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요 10:34, 표준새번역).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선언하는데, 너희는 다 신이다]라는 말이 너희 율법에 쓰여 있지 않느냐?’ ”(요 10:34, 쉬운성경)
“Jesus answered, ‘Is it not written in your law, I said, you are gods’?”(요 10:34, NRSV)

위의 다른 번역본들을 볼 때, 우선적으로 요 10:34의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는 인용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구약성경 중 시 82:6의 한 구절을 사용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본 뜻이 잘 살아나게끔 하신 것이다.

요 10:34의 바로 직전 본문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신 본 뜻을 잘 설명해 준다. 배경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라고 말씀을 선포했다. 이에 유대인들은 깜짝 놀란다. 이는 ‘예수=하나님’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주장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신성모독이라며 화를 냈다. 흥분했다. 주변의 돌을 들어 예수님을 향해 던지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자칫 예수님께서 돌에 맞는 봉변을 당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예수님은 도망가지 않았다. 유대인들을 향해 정면 승부를 걸었다. 마치 내가 말한 것을 증명하겠다며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며 반문을 했다. 그런 후 그들도 잘 알고 있는 시편 82:6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이 ‘움찔’했다. 당장 돌을 던져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은 것이다. 그 인용된 말씀이 무엇인가?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시82:6~7).

시편 82편에는 ‘신’을 뜻하는 ‘엘로힘’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1절과 6절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것을 1절에서는 ‘재판장들’이라고 번역을 했고, 6절에서는 ‘신들’이라고 번역을 해 놓았다. 당시 재판장들의 권한은 망각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명령하면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을 ‘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정우 교수(총신대)는 그의 책 <시편강해Ⅲ>(도서출판 엠마오, 1998)에서, 시 82편의 본 뜻은 재판장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막대한 신적인 권력을 가지고 가난한 자와 고아들을 돌보는데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사리사욕에 눈이 먼 것에 대해 ‘심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시 82편은 신이라고 불리울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들이 그 권한을 의로운 데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고와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의도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신’이라고 주변사람들로부터 부름을 받는데 어찌하여 내가 아버지와 하나라고 한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질책을 하시는 장면이다(F.F. Bruce, The Gospel of John, 서문강 역, <요한복음>, 도서출판 로고스, 1996, p.411). 하나님의 아들로 온 예수님을 왜 못 알아보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요 10:36).

시 82편은 ‘신들’(gods)로 불린 당시의 재판장들도 결국은 보통 인간과 같이 죽고 말았음을 고발하고 있다. 신과 같은 일을 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도 더 못했음을 지적하기도 한 것이다. 이는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한 두로왕의 운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에스겔 28:2).

결국 요 10:34의 본 뜻은 ‘우리가 신이다’는 말이나, ‘신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의 구절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신들’이라고 불린 이들의 참혹한 결말을 구약성경(시 82편)을 들어 고발하고 있으며 또한 지금도 ‘신들’이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이 어찌 ‘참신’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느냐고 하는 예수님의 꾸중의 말씀이다. ‘신이라면 신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의 부정직함을 꼬집고 예수님 자신의 어떠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이것을 감지한 유대인들이 돌을 든 손을 잠시 멈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무지한 그들이 예수님을 다시 잡으려 했고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빠져나갔다.

갈라디아서 2:20도 많이 오용된다. ‘사람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기도 한다. 마치 극도로 경건한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또한 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모순이 많다. 위와 같은 주장을 흔히 ‘신화사상’이라고 부른다. 신이 된다는 의미에서 위에 언급한 요 10:34과 맥을 같이 한다. 성경구절은 아래와 같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개역성경 갈 2:20)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구절을 오용한 것이다. 마치 자신의 인격과 자아는 죽어 완전히 없어지고 그리스도만이 계셔서, 내 자신이 그리스도가 된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내가 죽었다’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의미는 인간의 인격이나 자아가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내 죽음이 포함됐다는 것을 뜻한다(박윤선).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후크마).

종종 성도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사람은 ‘신’다워지는가 아니면 ‘사람’다워지는가?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출처/장운철(교회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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