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 곳은 거룩한 땅입니다!

커•버•스•토•리 2010 시드니성시화대회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3/08 [09:42]

우리가 복음으로 이 땅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시드니성시화운동’은 어떤 면에서 혁명 중에 가장 큰 혁명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복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혁명하는 ‘거룩한 혁명가’입니다.

시드니 구성원의 사고방식, 종교문제, 교회문제, 경제구조, 사회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혁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부분이 없다 할 정도로 시드니성시화운동은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한 운동입니다.

우리가 일으키는 이 성시화운동은 미지근한 운동이 아닙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산을 태우듯이, 작은 원자핵이 한 도시를 폭파하듯, 처음 미세하게 출발한 쓰나미가 전국토를 꿈틀거리게 하듯, 시드니를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작은 불씨, 원자핵, 쓰나미같은 역할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 지난 해 홈부쉬 체육관에서 열린 성시화대회 장면, 금년에는 시내 타운홀에서 개최된다.     © 크리스찬리뷰

우리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오늘 우리는 이토록 위대한 일을 위하여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당연히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명 가운데 특별히 위대한 소명을 꼽으라면 민족의 운명과 역사의 물결을 바꾸어놓은 불붙는 가시떨기에서 '모세를 부르신 사건'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우리는 이 위대한 부르심을 목도하며 특히 '거룩한 땅'이란 말에 주목합니다. ‘거룩’은 구별됐다는 말이며,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거룩한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사람이 바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시드니 성시화운동은 시드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는 운동입니다. 그럴 때 시드니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그 옛날 모세를 불러주셨듯이,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거룩한 소명자’로 이 땅 시드니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운명과. 시드니 역사의 물결을 바꿔놓을 책임있는 자리로 불러주셨음을 재천명합니다.

이미 우리가 선땅은 거룩한 땅으로 하나님께서는 구별시켜 주셨습니다. 이 거룩한 땅을 날마다 확장시켜가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도박과 마약, 음란으로 광란의 땅이 되고 있는 이 땅을 우리는 시드니성시화운동을 통해 밟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땅으로 선포합시다.

역사는 흘러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대에 이르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라고,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결국 이 땅의 주인도, 시드니 성시화를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선한 도구임을 고백합니다.

마디그라 행진으로 더러워진 땅을 다시 우리의 발바닥으로 밟으며 거룩을 회복하는 이 일에 모두가 참여하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 시드니성시화찬양팀의 찬양     © 크리스찬리뷰

우리의 발에서 신발을 벗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면서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하셨습니다. 신을 벗으면 발이 깨끗해질까요? 먼지 묻은 발, 땀과 오물로 범벅된 그 발, 그러나 깨끗해지기 위해선 네 신발을 벗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네가 갖고 있는 너의 과거로부터 탈출하라!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 하나님께서 동행한다고 하는 것은 네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너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라! 네가 가졌던 너의 가치관으로부터 탈출하라! 너를 묶어놓았던 열등감에서부터 벗어나라! 지금까지 게을러 터졌던 너의 삶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라! 네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모세에게 그가 지금까지 신고 있었던 신발을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불붙은 떨기나무에 하나님이 계셨으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응답하는 모세와 ‘더불어 함께’ 계시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고 계십니다.

과거와 끊어지면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과거를 끊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과거에 묻히게 됩니다. 과거에 연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과거를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서 교육받았던 것, 실패했던 것도 모두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의지, 애굽적인 생활도 완전히 끊으라는 것입니다. 실패와 비겁함과 체념과 실의, 불신앙을 다 끊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벗어야 할 신은 없으십니까? 과거의 흉허물, 한국에서의 찬란한 ‘완장들’ 다 내려놓으십시다. 과거의 학력, 경력, 가문, 성공과 실패, 쓴뿌리, 마음의 상처까지 이제는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성시화 운동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시드니 성시화 운동의 혁명군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사명이 주어집니다. 승리의 길을 바르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신발을 벗어라! 이 신발은 또한 경건을 말합니다. 맨발, 그것은 완전한 헌신과 순종을 말합니다. 신발을 벗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세는 황급하게 신을 벗습니다. 그가 신발을 벗은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현입니다. 네 발의 신을 벗으라는 말은, 네 과거, 네 미래, 네 신분, 네 자존심 다 벗어버리라는 말입니다. 네 발의 신을 벗어라! 우리의 시드니 성시화 운동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 지난 해 김동호 목사(높은뜻 숭의교회)를 주강사로 홈부쉬 스테이트 스포츠센타에서 2009 시드니성시화대회가 열렸다.     © 크리스찬리뷰

새로운 꿈과 희망을!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뒤로 일생일대의 대 변혁을 경험합니다. 미디안 광야 망명 이후 평범하다 못해 이력서에 아무런 내용을 기록할 것도 없는 그런 목자가 대 출애굽의 지도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미디안 광야에서 양이나 치다가 사라질 존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의 구원자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이 전환된 것이고 삶의 목적에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불을 만난 때와 장소를 보십시오.

80세부터 120세까지 남자만 60만 명(적어도 2백만 명)이 되는 그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40년의 그 어려운 세월을 출중하게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을 때가 어디 소망을 걸만한 때와 장소였습니까? 모세의 나이 80세가 되었던 때입니다. 80세면 인생에 무슨 소망을 갖겠습니까? 그저 살다가 주께서 부르시면 갈 나이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미디안 광야 사막, 있는 것이라고는 가시떨기 나무밖에 없는 그곳에 무슨 인생이 변할 일이 있으며 무슨 소망가질 일이 있겠으며 무슨 능력 받을 일이 있겠으며 무슨 비전을 가질 일이 있겠습니까?

모세가 무슨 비전이 있겠습니까? 모세는 소망이 없는 때, 소망이 없는 장소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하나님의 불이 임하고 그곳에서 모세가 여호와를 만나게 되자 모세의 인생은 획기적인 변화를 하게 된 것이고 평범한 인물이었던 모세가 비범한 인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은 모세에게 소망을 주었고, 모세에게 사명을 주었고 모세에게 능력을 주었고, 모세에게 꿈과 희망을 준 것입니다.

시드니성시화를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런 하나님의 불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시드니성시화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불입니다. 하나님의 불을 우리가 체험해야 합니다.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맙시다.

기도최우선전략으로 10시간의 전략회의보다 한 시간의 기도시간이 절박한 때입니다. 자다가도 깨어서 이 땅의 성시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은사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에 성령의 열매를 주저리주저리 맺어가는 시드니 성시화운동이 되도록 기도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기도에 진력을 다하시기를 촉구합니다.

 
▲ 2010홍보전단     © 크리스찬리뷰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모세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하는 순간에 우리의 과거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과 훈련도 별것이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 하나님의 사건을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깨닫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장소가 바로 거룩한 자리입니다. 그 어느 곳에 거룩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 지정된 거룩한 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때 “예, 제가 여기에 있나이다”라고 응답하는 그 자리가 바로 거룩한 자리이고, 응답하는 그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전공과 주특기가 무엇이든, 가정이 있든 없든, 직장이 있든 없든, 우리가 시드니 사회 속에 어떤 일을 담당하든 우리를 부르실 때,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그 자리가 거룩한 땅으로 변화되고 우리의 언어와 그 행동이 나타나는 바로 그 사건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일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용하신 방법은 천지개벽이 아닙니다. 큰 기적이 아닙니다. 사실은 조용하게 한 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모세입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특별하게 훈련시키시고 부르셨습니다.

벌써 80년 전부터 나일강에서 건져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공부하게 하시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지도자의 지도력을 훈련시킨 것입니다. 80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르신 것입니다. “옛날 생활을 잊으라. 하나님만 의지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듯이, 오늘 ‘나 한 사람’을 통하여 시드니 성시화를 이루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이날까지 이 모습 저 모습으로 훈련시키시고, 이곳까지 이민 오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며 시드니 성시화 운동을 알게 하신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요? 우리에겐 시드니 성시화를 위하여 불러야 할 노래가 있고, 흔들어야 할 깃발이 있고, 목숨 바치고 외쳐야 할 신조가 있습니다.

 
▲ 지난 해 시드니 시내 중심가에서 펼쳐진 성시화행진 선두그룹이 마틴 플레이스로 들어서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구하자!

이제 우리는 시드니성시화를 위하여 더 이상 핑계대지 맙시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모세는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운 과거, 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하나님을 만난 그 순간, 잃어버렸던 과거가 이제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처음에 모세는 너무나 두렵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다섯 번이나 거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말씀하십니다. “다 알고 있다, 사람의 입을 지은 자가 누구뇨? 가라면 가지. 다 알고, 너의 과거도 알고 너의 미래도 알고 너의 현재의 부족함도 다 알고 내가 가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명령을 하십니다.

세 가지 명령입니다. “발의 신을 벗어라. 나를 믿으라. 그리고 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첫째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둘째는 너의 지팡이와 함께 하리라. 셋째는 가나안 땅을 반드시 들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해주십니다. 이 약속은 출애굽 여정에서 하나도 어김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의 초대 기독교는 나라와 민족과 국토를 사랑하는, 참으로 애국하는 스케일이 크고 역사의식이 투철했습니다. 그 많은 사례 가운데 특별히 3월이면 생각나는 3.1 운동도 교회와 성도들은 이 독립운동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이 독립운동으로 감옥에서 옥고를 치룬 사람의 수가 가장 많은 종교가 기독교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천주교인, 불교인, 천도교인을 다 합해도 기독교인 수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누군가 백지도 둘을 가지고, 한 백지도에는 당시 교회가 있었던 곳에 점을 찍고, 다른 한 백지도에는 당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에 점을 찍은 후 두 백지도를 겹쳐 보면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당시 우리 기독교인들은 반 만 년의 어두운 역사의 고리를 끊고 민족 복음화(성시화)운동을 일으키며 한국의 개화와 신교육을 펼쳐갔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의 수는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 몇 퍼센트도 되지 않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는 큰일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한국교회 성도들은 모두 모세와 같았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 이민 교회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이와 같은 의식을 찾아보기는 참 어렵습니다. 신앙이 참 이기적이 되었습니다. 부자 되고, 건강하고,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축복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커도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교회는 별로 없습니다. 개 교회의 부흥과 확장이 관심의 전부인 것 같아 보입니다.

초대교회는 그 수가 적었어도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부흥과 성장의 엔진이 되어 오늘날 이와 같은 기적 같이 큰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수가 많아진 요즘 우리들의 교회는 존경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존경은 고사하고 ‘개독교’라는 천부당만부당한 새 저주스런 이름으로 덧칠되어 조롱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은 결국 정체와 퇴보의 엔진이 되어 우리의 교회를 급격하게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드니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시드니를 위하여 이 땅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들을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시드니성시화운동입니다. 이땅이 복음으로 구원받고, 능력으로 치유되며, 이땅을 걸어다니는 모든사람들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하늘나라의 홍보대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글/송기태 (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시드니성시화운동 전도훈련팀 지도목사)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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