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향기 가득했던 시드니의 가을 밤

이화여고 개교 130주년 기념 음악회

글|김환기, 사진|권순형 | 입력 : 2016/05/30 [12:13]
▲ 이화여고 개교 130주년 기념 음악회가 체스우드 콩코스 콘서트 홀에서 지난 5월 19일 열렸다.     © 크리스찬리뷰


'배꽃 피는 거 보면 벚꽃 구경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다.  배꽃을 한자로 이화(梨花)라고 한다. 130년 전 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이화학당'의 이름은 배꽃에서 유래되었다.
 
고종 황제로부터 ‘정동 일대에 가득 핀 배꽃처럼 희어서 맑고 깨끗하라’는 뜻으로 ‘이화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 받고, 당시 가부장적 인습에 억눌려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근대 교육의 새장을 열었다. 2016년 5월 19일 시드니의 가을이 깊어가는 밤, 개교 130주년 기념 음악회가 '체스우드'(Chatswood)에서 열렸다.
 
▲ 이화여고 개교 130주년 기념 음악회에 특별출연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     © 크리스찬리뷰


조선 신교육의 태동

1876년, 개항 후 서양의 근대문화에 접하게 된 조선 정부는 전통적 유교교육을 청산하고 서구의 신문화를 섭취하기 위한 신교육을 실시했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민간 유지들에 의해서도 일종의 민중교육 운동이 추진되었고 조선에 진출한 선교단체들에 의해 학교가 세워졌다.
 
1883년 최초의 근대적 사립학교인 '원산학사'를 세워서 외국어, 자연과학 등 근대 학문과 무술을 가르쳤다. 1886년 정부는 최초의 관립학교인 '육영공원'을 세우고 미국인 교사를 초빙하여 상류층 자제들에게 영어, 수학, 지리학, 정치학 등의 근대 학문을 교육하였다. 1894년에 폐교될 때까지 양반 고관 자제들을 수용해 근대교육을 실시해 인재를 키웠다.
 
개신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1885년 배재학당을 세웠다. 아펜젤러는 “통역관을 양성하거나 우리 학교의 일꾼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내보내려는 것이다”고 설립목적을 밝혔다.
 
'배재학당'의 현판은 고종 황제가 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듬해 1886년 5월 31일에는 조선 최초의 여성학교인 '이화학당'이 그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 이화 예멜합창단의 오페라 카르멘 공연     © 크리스찬리뷰


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이화 학당

이화학당의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 (Mary Scranton, 1832년~1909년)은 미국의 교육자이자 기독교 감리교회 선교사이다. 메리 스크랜턴은 의사이자 목사였던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 부부와 함께 1885년 6월 입국해 여성과 소외계층을 돌봤다.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창설하자, 자극을 받고 '이화학당'을 설립하였다. 학교는 시작했지만 학생모집이 쉽지 않았다. 선교사들은 파란 눈을 가진 양귀자(洋鬼子) 곧 서양 귀신이라는 인상이 일반 대중에게 있었다.
 
이화학당의 설립자 스크랜튼 부인은 1886년 5월 31일 밤 드디어 한 사람의 여학생으로 맞이했다. 그가 근 일년 동안 기다리던 첫 학생이었다. 그것도 학생의 어머니에게 학생의 신변을 보증한다는 서약서까지 주고 입학시킨 것이다. 서약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미국인 야소교 선교사 스크랜튼은 조선인 박씨와 다음과 같이 계약하고 이 계약을 위반하는 때는 어떠한 벌이든지 어떠한 요구든지 받기로 함. 나는 당신의 딸 복순이를 맡아 기르며 공부시키되 당신의 허락이 없이는 서방은 물론 조선 안에서라도 단 십 리라도 데리고 나가지 않기를 서약함”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이화학당은 점차 학제를 정비하여 1904년에는 중등과를, 1908년에는 보통과와 고등과를 신설함으로써 마침내 보통,중등,고등과정의 일관된 학제를 마련하였다. 이화학당은 1908년 6월 5명의 제1회 중등과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10년에는 4년제의 대학과를 설치하여 1914년 4월 신마실라, 이화숙, 김애식 등 한국 최초의 여대생을 배출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이화는 대한민국 대학 사상 최초로 종합대학교의 꿈을 실현하였으며, 이화는 해방 직후 문교부 1호로 종합대학교 인가를 받아 냈다. 2016년 개교 130년을 맞이하여, 뉴욕과 서울의 배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항구 도시인 시드니에서 '개교 130주년 기념음악회'를 열었다.
 
▲ 오페라 아리아 부르는 소프라노 양승미와 테너 김승직     © 크리스찬리뷰


개교 130주년 기념 음악회

음악회가 시드니에서 열리기까지 산파 역할을 감당한 대뉴욕동창회 김수자 회장은  "새로운 사건이 언제나 순간순간 펼쳐지는 신비로운 삶 속에서, 2016년은 대한민국 근대여성 신교육의 13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이 행사를 이곳 시드니에서 여러분과 함께 역사의 증인이 되어서 진행하게 된 것, 무한히 감격스러우며 길이길이 간직하겠습니다." 라고 음악회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시드니 동창회 권영규 회장은  "한국 여성 교육의 선구자 스크랜턴 여사가 세운 이화는 한국여성의 신교육의 발상지이며 지난 13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해오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멀리서 오셔서 모교 창립을 음악으로 자축하는 이화의 동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음악회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5월 19일 저녁 7시에 시작한 음악회는 10시가 돼서야 끝났다. 독창, 합창,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의 향연'이었다. 관객들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음악에 몰하였다. 옆 좌석에 앉아 관람하는 밥 킹(Bob King)씨는 곡이 끝날 때마다 힘찬 박수와 함께 원더플(Wonderful)을 외쳤다.
 
그는 1부 마지막 곡인 '아리랑'이 끝나자 '"서양과 한국의 아름다운 만남과 같다"라고 평을 했다. 이날 지휘는 이화여고 출신의 윤현주 교수(서울대 음대)가 맡았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강력한 카리스마는 모든 악기와 목소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2부는 '2009 ABC Young Performers Awards'(젊은 음악인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의 바이올린 독주로 막을 열었다. 그녀는 빈국립음대를 최연소로 입학했고, 브람스 국제 콩쿨에 1위 입상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대회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멜번심포니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년이 넘는 바이올린을 통해서 나오는 감미로운 연주는 모든 사람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서 오페라 카르멘(Carman)의 ‘하바네라’를 비롯한 주옥 같은 아리아가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김승직, 예멜합창단에 의해 연주되었다. 특별히 양송미의 열창과 의상 그리고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다.
 
'돈 호세'가 왜 '카르멘'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그녀는 아주 잘 보여주었다.
 
시드니 페스티발 앙상블의 협연으로 한국 가곡과 민요 합창에 이어 2부 마지막 곡은 '할렐루야'였다. 헨델의 메시아 44번 곡이다. 곡이 연주되자 관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곡이 끝나고 지휘자는 들어갔으나, 관객들은 박수와 함께 앙코르를 외쳤다. 그녀는 다시 지휘봉을 높이 들고, 앙코르 곡을 시작했다. 이화여고의 교가였다. 교가가 울려 퍼지자 관람석의 배꽃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이화의 긍지를 갖고, 이화의 향기를 날리며 살 것을 다짐하며 힘차게 교가를 불렀다.
 
▲ 한국 가곡을 합창하는 이화 동문 합창단원들.     © 크리스찬리뷰


개교 130주년 기념 만찬

5월 20일 저녁, '개교 130주년 기념 만찬'이 시드니한인회관에서 김수현 씨의 사회로 열렸는데, 그녀의 엄마는 1974년 이화여고를 졸업했다.
 
시드니 동창회장 권영규씨의 환영사를 통해 "어제 음악회가 끝나고 너무도 많은 좋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성공리에 음악회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뉴욕, 서울, 시드니 그리고 일본에서까지 온 동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격에 찬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했다.
 
이어서 이화여고 강순자 교장의 기도와 인사말이 있었다.
 
"평균화 이후 이화의 명성이 약화되었으나, 7년 전 '자율형사립고'로 지정을 받고 다시 옛 명성을 찾고 있습니다. 7년 전 교장으로 취임한 후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현재 120억 원이 넘는 장학금이 예치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뉴욕동창회 김수자 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뉴욕 앞에 '대'자를 붙인 것은 뉴욕뿐 아니라 뉴저지와 코네티컷 주까지 포함하는 까닭이다. 동창회는 42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미국에는 북미주 총동창회가 있고, 18개 지부가 있다.
 
김 회장은 오래 전부터 시드니 음악회를 꿈꾸고 있었는데, 2014년 권영규 씨를 만나면서 그녀의 꿈을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하려고 하였으나, 대관이 어려웠다. 다른 장소를 물색하던 중 체스우드의 '콘코스 콘서트 홀'(Concourse Concert Hall)을 알게 되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2011년 새롭게 단장하여 시드니 북쪽 지역의 '예술의 전당'으로 자리매김을 한 곳이다.
 
"아름다운 시드니에서 역사적인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5월 7일 뉴욕과 5월 19일 시드니 기념음악회에 이어서 저희는 지금 학원선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화의 이름으로 캄보디아 '깜풍스프'에 제2의 이화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미 7만 불을 보냈고, 계속해서 모금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진 복음의 빚을, 이제는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졸업한지 5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녀는 소녀시절의 꿈과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어서 백승국 한인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백 회장은 어제 음악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어젯밤 감동적인 공연은 시드니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클래식에 대하여 문외한인 저임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공연은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에 배꽃이 만개하여, 그 향기를 만방에 날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시드니한인회관에서 열린 만찬 모임에서 축하케익을 자르는 김수자 회장, 피아니스트 한영혜, 강순자 교장, 권영규 회장, 지휘자 윤현주(오른쪽부터).     © 이화동창회


백 회장은 금번 행사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2부 순서는 송민선 무용단 모듬북, 이지선 씨의 기독교 현대 무용, 김시완 목사의 핸드벨 연주, 시드니 동창 일동의 특순 등이 이어졌다. 마지막 순서로 교가가 울려 퍼지자, 그녀들은 다시 일어났다. 우렁찬 배꽃들의 노래 속에서 이화의 밝은 앞날을 엿볼 수가 있었다.
 
"하나님, 130년 전 조선에 한 알의 씨앗이 떨어져 배꽃으로 피어나게 하시고, 지금까지 여기까지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6만 7천여 명의 배꽃 모두가,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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