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하돈 스펄전
 
고준학/크리스찬리뷰
성경과 십자가, 회심 및 행동주의라는 네 가지 강조점을 신봉하는 전 세계의 크리스찬들은 자신들의 사회에서 배출된 많은 뛰어난 인물들을 열거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그런 인물들 가운데서도 걸출한 사람이 두 사람 있는데, 한 사람은 영국인이고 또 한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특히 그들이 엄청난 존경을 받았고 광범위한 모방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들의 생애는 그시기의 복음전도의 특징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영국인은 교회나 국가의 기성 집단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어쩌면 결과적으로 국가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다.
 
그는 다재다능하고 재치가 있으며 투쟁적이었는데, 신문에 크게 취급되지 않는 일이 드문 사람이었다. 그가 19세기에 영어권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의 이름은 바로 찰스 하돈 스펄전 (Charles Haddon Spurgeon) 이었다.
 
이 설교자는 그의 잉글랜드 동부 지방 선조들의 개혁 신앙을 유지했다. 그는 1884년 ‘나는 칼빈주의에서 복음주의를 떼어낼 수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가 태버내클 옆에 설립한, 침례교 목회를 위해서 학생들을 훈련하기 위한 대학에서, 그의 교단의 다른 기관들은 칼빈주의 텍스트들을 배제시켰을 때 그 학교의 커리큘럼은 당당하게 칼빈주의의 텍스트들에 의거했다.
 
그는 청교도 성도들의 저작들을 수집했으며, 12,000권이 넘는 개인 장서를 모았다. 그는 교회들에게 목회자들을 위하여 그들 나름의 장서를 수집하도록 권했고, 그의 아내는 기독교 사역자들에게 읽을거리를 공급하기 위해서 책 기금을 조성했으며, 그는 가가호호 신앙서적을 판매하려고 종교서적 보급회를 설립했다. 그는 당연히 유망한 저자였다.
 
그가 때로는 고전을 폄하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대다수의 다른 신학적 동료들과는 달리 스펄전의 학교에서는 그 구성원들에게 그들이 언어들에 거의 재능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라틴어나 헬라어 또는 히브리어를 배우도록 요구하지 않았다.
 
자기 학생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였으며 또한 고전적인 이상들의 옹호자였던 매튜 아놀드가 잉글랜드의 비국교주의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여긴 모든 사람들의 전형으로 스펄전을 꼽은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펄전은 자신이 미국과 공유하는 반엘리트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어느 누구도 빈곤 때문에 배제되지 않도록그의 대학에서 훈련받는 사람들은 등록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그가 자기 학생들이 그들의 강단 스타일을 그들의 청중들에게 적응시키도록 권했을 그는 그들에게 역설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수준으로 올라갔다가 교육 받은 사람의 수준으로 내려오라고 말했다.
 
스펄전은 그로 하여금 보통 사람의 웅호자로 보이게 만든 평등주의에 관한 소견을 털어놓기로 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감리교인들은 괴상한 설교자들에 대해 그리고 즉흥 연설 능력에 대해 그가 밝힌 견해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스펄전이 1884년 자신의 쉰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더블른의 「장로회 교인」 (Presbyterian Churchman) 지는 ‘그는 현대이든 심지어 고대이든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고 조금의 과장된 느낌도 없이 결론지었다.
 
1888년에 스펄전의 2천 번째 주간 설교의 출판을 기념하는 향연에서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톤이 아프리카에서 사망했을 때 그는 스펄전의 이름의 머릿글자가 찍혀있는 설교들 가운데서 하나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또한 러시아 교회 당국은 스펄전의 설교를 배포할 수 있도록 설교 몇 편을 승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세르비아 정부는 특정한 경우들에 사제들이 스펄전의 설교 중 세 편을 전하도록 요구하였다고 했다. 스펄전은 세계를 좌지우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

고준학|시드니유니온교회 담임목사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6/06/27 [15:37]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포토 포토 포토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