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없는 도시는 사람 살 곳이 못된다

최성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6/27 [15:57]
"식물은 재배함으로 자라고 인간은 교육함으로 사람이 된다". 장 자크 루소의 말이다. 인간이 사람이 될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어땠을까.
 
호메로스 이전의 그리스에는 사실상 교육이 없었다. 교육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교육을 언급하는 최초의 글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제9권에 나온다.
 
“말을 모는 펠레우스 노인께서 그대를 프티아에서 아가멤논에게 보내시던 날 나를 보내 그대와 동행하게 하셨소. 그때 그대는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만인에게 공통된 전쟁이나 남자들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회의에 관해서는 아직 알지 못했소. 그래서 그분께서 나를 보내 그대에게 이 모든 것을 가르치게 했소. 그대가 말도 잘하고 일도 잘 처리하는 인물이 되도록 말이오”.
 
스파르타의 교육은 남자를 무쇠 같은 몸과 투철한 애국심을 갖춘 시민으로 만드는데 집중했다.  
 
<태양의 후예> 중 Y대위나, S상사 같은 위대한 전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는 말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살릴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결정했다. 7세부터는 국가가 관리하는 병사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며 훈련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훈련의 강도가 세졌고 17세부터는 실제무기를 사용하였다.
 
이렇게 군사훈련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읽기 쓰기 셈하기는 경시되었다. 몸을 앞세우는 시대에 이 교육은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두뇌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자 이 교육은 치명적이었다.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이길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테네에서는 아름다운 몸과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조화로운 인간의 양육에 교육목표를 두었다. 한 몸에 영웅과 현자를 함께 담고자 했던 것이다. 몸은 체조학교에서 마음은 음악학교에서 다듬었다. 달리기 던지기 헤엄치기와 읽기 쓰기 셈하기 노래하기를 나란히 배웠다. 교육도 국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자발적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연히 교육비 부담도 부모 몫이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후 아테네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교육도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신체단련을 위한 체육이 후퇴하고 학과교육이 중요시되었다. 자연히 체육교사나 음악교사보다는 읽기 쓰기 셈하기 등 학과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문법교사가 더 대접을 받았다.
 
아울러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확대되면서 자신의 탁월함을 증명할 실용적인 학문이 중요시되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터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지성들은 인간과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 철학교육에 집중하였다. 당연히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에는 형이상학, 윤리학, 논리학 등이 주요 과목이었다.
 
철학을 중시하는 흐름 저편에 또 다른 흐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수사학교를 세운 이소크라테스(Isocrates)이다. 소크라테스와는 이름이 철자 하나 다를 뿐이지만 생각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크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변화무쌍한 현실을 넘어 영원불변한 본질을 추구하는 순수학문파였다면 이소크라테스는 그런 관념적인 지식을 거부하고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쓰임새 있는 지혜를 추구하는 실사구시파였다.
 
그는 “변하지 않는 본질은 없고 그것의 참모습에 대한 지식은(episteme) 공허한 망상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 듣고 합의할 수 있는 견해야(doxa) 말로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참된 지혜란 영원불변하는 본질을 아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하며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는 삶 속에서 시의적절한 견해를 제시할 수 있는 분별력이라고 보았다. 그는 신지식을 가르쳐 지혜로운 견해를 구성하는 법과 그것을 설득력 있게 말하는 법을 키워주려 하였다.
 
자연히 그의 수사학교는 신지식과 웅변술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되었다. 대중의 요구와 맞아 떨어진 그의 학교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전파에 힘 입어 곳곳에 많은 분교를 세우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본질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고 이소크라테스는 실생활에 유익한 견해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지식도 아니고 견해도 아닌 믿음을(fistis) 강조하였다. 교육의 강조점을 지식과 견해와 믿음 중 어디에 둘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