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대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7/25 [14:27]

브렉시트와 국민투표

세계인의 이목을 주목시켰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Britain+exit)가 지난 6월 23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찬성으로 가결되면서 일단 결말이 났다.
 
일단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브렉시트가 세계경제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기사를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고 있는 세계 언론의 동향을 보면 브렉시트는 국면만 바뀌었을 뿐 아직도 진행 중인 ‘미래형’ 사건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라는 시대에 걸맞게 브렉시트에 관한 정보 역시 언론과 인터넷에 넘치고 있어서 이 글에서는 그러한 정보들을 반복하는 대신에 브렉시트의 원인과 의미에 대해서, 즉 브렉시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그전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브렉시트가 영국에서 국민투표로 결정되는 과정을 먼저 간략하게 복기해 보자.
 
브렉시트가 논란의 대상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2013년 영국 수상 캐머런이 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서부터이다.
 
당시는 다른 정당들의 반대로 구체적인 진전이 없었지만, 2015년 총선에서 캐머런 수상과 보수당이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승리하면서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럽연합은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서 2016년 초에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영국에 상당한 혜택, 예를 들면 유럽연합 회원국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법 조항의 유보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특권을 부여하였다. 또한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각국의 언론들과 지도자들의 메시지와 호소가 줄을 이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브렉시트를 우려하고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국민투표 캠페인 기간 동안 브렉시트를 반대하던 노동당 의원이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해서 브렉시트 찬성이 우세였던 상황이 반대로 기우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51.9%의 찬성으로 결국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런 결정으로 영국이 곧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탈퇴까지 약 2년에 걸쳐서 유럽연합과 협상을 거쳐야 한다.

브렉시트=이민문제=실업과 테러 문제 해결
 
영국인들은 왜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는가? 어느 언론의 표현대로 “브렉시트라고 쓰고 이민자 문제라고 읽는다”는 진단이 우선 표면적으로 정확하다. 최근에 급증한 이민자들은 영국인들에게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다른 한편으로는 테러집단과 연계되어서 자국을 테러에 노출시킬 수 있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따라서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는 유럽연합에서 탈퇴해서 이민을 통제해야 된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인식이다.
 
즉, 영국인들이 겪고 있는 큰 고통인 실업과 테러로부터의 위협의 주요 원인을 이민자들에게 돌리는 “브렉시트=이민문제 해결=실업과 테러 문제 해결”라는 단순한 프레임이 이번 국민투표에서 영국인들에게 가장 호소력을 가진 주장이었다.
 
브렉시트 찬성의 또 다른 주장은 영국의 경제침체가 유럽연합 탓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각종 규제 때문에 영국이 국제적인 경쟁을 상실해서 경제가 침체되고, 특히 영국이 강점을 가지는 금융부문에서의 규제는 영국의 금융산업을 위축시키지만 자국에 유리한 경제정책을 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국은 유럽연합에 상당한 기여금을 내고 있는데 이것 역시 영국인들의 불만이었다. 유럽연합에 대한 이러한 불만을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사실에 기초하고 있기보다는 정치가들이 부풀린 측면이 크다.
 
왜냐하면 정치가들은 자국의 경기침체나 정책실패를 종종 유럽연합 탓으로 돌리면서 책임을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이율배반적으로 유럽의 통합이 유지되거나 강화되기도 한다. 국민투표 캠페인 기간 동안에도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마치 유럽연합이 영국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근원인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브렉시트에서 드러난 원인들은 모두 자국의 정책을 자국민의 의사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고 이것은 주권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유럽연합이 강화될수록 회원국들의 주권은 제약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회원국들의 정책이 자국민의 의사대로만 결정될 수 없다. 이러한 점이 표면적으로는 유럽연합에 대한 불만으로 드러나지만 근본적으로는 주권의 제약에 대한 위기 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짚어봐야 할 점은, 앞에서 거론한 사항들은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연합 회원국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데 다른 국가와는 달리 왜 영국인들은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는가라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유럽이라고 할 때는 흔히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을 지칭할 정도로 우리의 지리적인 상식과는 달리 자국이 유럽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지리적 위치에 따른 역사적 경험의 결과이다.
 
영국은 도버해협을 가운데 두고 유럽 대륙과 떨어져 있다. 이런 위치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히틀러의 독일처럼 유럽대륙을 지배했던 국가들로부터 영국을 지켜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유로화의 도입과 솅겐조약
 
또한 유럽 대륙에서 분리되어 있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18-19세기에 걸쳐서 세계의 패권국가였던 영국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유럽 대륙의 국가들과는 달리 유럽의 세력균형을 위협하는 국가가 등장하지 않는 한 ‘영광스러운 고립주의’ 정책을 기조로 유럽 대륙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세계 경영에 집중할 수 있었다.
 
1994년 유로터널이 개통되기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도버해협에 해저 터널을 뚫어 영국과 유럽대륙을 연결하려는 계획과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무산된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지리적 이유로 영국인들이 반발해 왔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에의 참여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이 통합의 시동을 건 것은 1951년이었지만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영국은 1973년에야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참여하게 된다. 그나마 2년 후인 1975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에서 탈퇴할 것인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서도 영국은 독특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은 일정한 조건과 기준을 충족시키면 유럽연합의 헌법과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 조약의 내용을 이행해야만 한다. 그런데 영국은 선택적 예외(opt-out)라는 절차를 통해서 이러한 의무에서 여러 방면으로 예외를 인정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유로화의 도입과 솅겐조약이다. 영국은 유로화를 도입해야 하는 조건과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지만 주지하다시피 파운드화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솅겐조약은 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에 세관과 국경 경찰을 없앰으로써 사람과 물자의 완전한 자유이동을 보장하는 조약이다.
 
모순되게도 이민문제가 이번 브렉시트의 최대 화두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 회원국인 아닌 스위스 같은 나라도 가입한 솅겐조약에 영국은 예외를 인정받고 있다. 즉 영국은 유럽연합에 한쪽 발만 담그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브렉시트 찬성한 사람은 사회적 약자들
 
브렉시트의 영향에 대해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서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언론의 속성상 스캔들이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것이 현재로서는 온전한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미래의 일이라면 어느 정도의 부풀림이 있다고 감안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브렉시트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될 것이고, 탈퇴를 위한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될 것이다.
 
게다가 영국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유로존에도 솅겐지역에도 해당되지 않는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격은 예상 밖으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수도 있다.
 
이제 결론 삼아서 브렉시트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성찰해 보자. 우선 브렉시트의 근본적인 원인이 국가 주권의 문제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연합은 일반적인 국제기구와는 전혀 다른 차원과 성격의 조직이고, 독특한 양상이기는 하지만 민족국가를 초월하는 세계화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브렉시트 찬성과 반대는 절대적인 주권을 전제로 한 민족국가를 지지하는 국가주의와 이러한 근대의 민족국가를 초월하려는 초국가주의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대결은 국내의 전통적인 정치세력의 구별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좌우파가 뒤섞여서 찬성과 반대의 편에 섰다.
 
결국 좌우가 합작이 된 전통적인 주류 정치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극우와 극좌의 비주류 정치세력의 호소가 승리했다. 언론에서는 이것을 포퓰리즘의 승리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미국의 대선 후보 경쟁에서 돌풍을 일으킨 샌더스와 트럼프, 이탈리아에서 급부상한 오성운동,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약진하고 있는 극우 정당들과 같은 비주류 정치세력의 부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들의 부상은 기성의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표출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하고, 이번 브렉시트 결정 역시 그런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브렉시트를 찬성한 사람들은 노년층과 저소득층, 저학력층 그리고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이 기성의 정치세력에 대해서 불만과 불신을 가장 많이 품고 있다. 유럽연합으로 대표되는 세계화의 과정에서 커져가는 불평등과 같은 부작용으로 이들이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겪고 있지만 기성의 주류 정치세력들과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부는 이를 완화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세계화를 가속화하면서 이들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사회적 약자들로 하여금 그나마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 주던 주권국가를 향한 과거 회귀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 탈퇴가 전혀 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오히려 어쩌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브렉시트 찬성을 주도한 정치세력들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선동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브렉시트가 사회적 약자들의 항변이라는 점에서 브렉시트라고 쓰고 사회적 약자라고 읽어야 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각별한 관심이 요청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아니었던가.〠 

이대희|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8대학교 박사, 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Macquarie 대학교 교환교수, 시드니 선민교회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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