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의 도구로 살겠다

멜번국제농아인선교 국제본부

박영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8/29 [11:27]
▲ 멜번 농아학교를 방문한 필자 박영주 집사.     © 박영주


국제농아인선교회 국제본부로 향하다

호주에서 3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아직도 젊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벌써 퇴직이라니 믿기 어렵다.
 
그동안 국제농아인선교회 (Deaf Ministries International/DMI) 홍보대사로 임명을 받았지만 많은 일을 하지 못해 늘 아쉬웠는데, 마침 7월 말 대대적인 모금 행사에 초청받아 멜번 본부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아침 일찍 시드니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출발 게이트로 걸어가는 통로 양쪽 벽에 눈길이 갔는데 호주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사진들이 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나고 연이어 실시한 장애인 올림픽 때 봉사자로 선임되어 세계 각국에서 온 장애인 선수들을 섬겼던 행복한 시간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즐거운 미소가 나왔다. 오늘은 비행하기에 참 좋은 날씨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좋은 겨울 날씨이다.
 
비행기 창가를 통해 드넓은 시드니 시내와 아름다운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 세계적인 3대 미항답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멜번에서 계획된 일들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넓은 호주도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드니에서 멜번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면 새벽부터 밤까지 운전하는 상당히 먼 거리인데 비행기로 1시간 약간 넘게 도착하니 말이다.
 
멜번공항에 도착해 핸드폰를 확인하니 오세황 목사님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멜번공항 주차장에 기다리고 있으니 안전하게 나오라는 메시지다. 오세황 목사님은 한국에서 25년 동안 농아인교회 사역을 마치고 호주 본부에서 한국 담당 코디네이터로 8년 전부터 일하고 있다.
 
나는 어렵지 않게 공항 밖에서 기다리는 오세황 목사님을 만나 멜번 선교본부로 향했다. 고속도로로 1시간 넘게 달려간 곳은 멜번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페이큰험(Parkenham)이었다. 그곳에 15평 규모의 작은 사무실에 있었다. 사무실 입구에는 아프리카의 농아학교 어린이들이 한데 모여 행복하게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유리 문에 썬팅되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여러 직원들이 열심히 행사준비를 하고 있는 가운데 나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선교회 설립자이자 총재인 네빌 뮤어 목사님(73, Neville Muir), 부이사장 수쟌 샤논(Susan Shannon) , 메니져 브렌다(Brenda), 코디네이터 제니(Jenny), 회계담당 매튜 (Mathew) 등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다.
 
2014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있었던 국제농아인선교회 국제컨퍼런스 때 많은 교제를 했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나의 인사가 길어지는 관계로 행사 준비가 지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 네빌 목사 가족과 함께 한 저녁 식사.     © 박영주


네빌 목사님 자택을 숙소로
 
나는 여기 저기 쌓여 있는 인쇄물들을 분리하는 일을 돕기로 했는데 어느덧 퇴근시간이 되었다. 직원들과 행사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네빌 목사님과 함께 나흘 동안 묵을 네빌 목사님 댁으로 향했다. 사무실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자택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릴 뮤어(Lill Muir) 사모님과 막내 아들 이안(Ian)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릴 사모님은 노르웨이 출신 선교사였는데 일본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던 중 1976년 네빌 목사님을 만나 결혼하여 한국농아선교 사명을 받고 한국에 입국하여 1978년부터 1992년까지 14년 동안 국제농아선교회를 통해 20여 개의 농아인교회를 한국에 세우고 40여 년이 된 오늘까지 22개 국가로 확장하여 200여 개의 농아인교회와  6개의 농아인학교를 설립하여 지원하고 있다.
 
네빌 목사님과 릴 사모님은 4형제를 두었다. 큰 아들은 일본에서 낳고 나머지 세 아들은 한국에서 낳았다. 현재 3명은 멜번 모나쉬대학교 전산실에서 근무하고 있고 막내 이안은 다운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건강하고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장애인 작업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농아선교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나는 이안의 특이한 인사에 호감이 갔다. “안녕하세요!”불편한 발음과 한국 수어(수화)로 인사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고향은 한국 서울에 있는 백병원이다.”라고 어렵게 설명하는 것을 아버지 네빌 목사님이 따뜻한 수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릴 사모님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내가 지낼 방과 시설을 안내받고 거실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고 놀랬다. 집안 곳곳에 일본과 한국적인 사진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결혼사진과 네빌 목사님의 환갑잔치 사진이었다. 결혼사진을 보니 30년 전 처음 시드니에서 만났던 네빌 목사님과 릴 사모님의 아름다운 젊은 모습이다.
 
12년 전에 한국에서 전도한 농아들의 초청으로 환갑잔치를 가졌다고 한다. 사진 속에는 30여 명의 농아교회 성도들과 함께 찍은 한복 입은 네빌 목사님과 릴 사모님의 모습이 왠지 천사같이 보였다. 그리고 한국의 농아 화가들이 직접 그린 풍경화와 한국의 사철을 뚜렷하게 수놓은 병풍도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 날 행사장을 방문하여 사전 준비를 했다. 네빌 목사님의 자동차에 바자회 물건을 가득 싣고 우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베릭(Berwick) 교회로 갔다. 베릭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 한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500여 명이 앉을 테이블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는 가져간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진열을 했다. 이 물건들은 중국, 필리핀, 미얀마, 아프리카, 시리아 지역에 있는 농아들이 직접 만든 수제 공예품들이었다. 이번 행사에서 많이 팔아야 물건을 보내온 국가의 농아인들 생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고 있는 네빌 목사.     © 박영주


기차타고 추억 여행
 
행사일은 다음 날 저녁이며, 행사장 준비를 무사히 마쳤다. 오늘 점심은 오랫 동안 교제해 온 강창훈 집사님과 함께 하기로 했다. 베릭에서 기차를 타고 강 집사님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곳 기차는 역을 통과하거나 건널목을 통과 할 때 안전을 위해 반드시 두 번의 짧은 경적을 울린다. 시드니에서는 흔히 들을 수 없는 소리다.
 
스쳐가는 시골 풍경들은 나를 옛 추억으로 인도한다. 어린 시절 방학을 맞아 아버지 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아버지 고향 영주에 자주 갔었는데 기차가 지나가는 다리 밑 개울에서 물장구 칠 때 다리 위를 지나는 기차를 향해 서로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또한 기차에서 강 집사님과 처음 만났던 일들을 더듬어 보았다. 2005년경으로 기억된다. 멜번에서 세계 농아인 올림픽대회가 있었다.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처럼 매년 4년마다 열리는 세계 농아인 선수들의 올림픽이다. 그때 나는 안내원 겸 통역사로 파견을 받아 멜번에 내려 갔다. 강창훈 집사님은 여행사를 경영하면서 멜번 한인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멜번 한인회는 최선을 다해 한국에서 온 농아선수들과 임원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그런 가운데 생각지도 않은 사고가 발생했는데, 한국측 대표선수들과 임원들이 묵은 호텔에서 술 취한 멜번 오지인들에 의한 폭행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 사고를 수습하고 해결하는 가운데 강 집사님을 멜번에서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는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는 심각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었다.
 
어느새 약속장소인 카네기 역에 도착했다. 오세황 목사님이 먼저 마중나와 함께 멜번 여행사 사무실로 갔다. 강 집사님 부부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10년 넘은 재회였다. 서로가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했지만 세월은 10년 전의 젊음을 비껴가지 않았다.
 
우리는 점심을 위해 가까운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내가 기차에서 회상했던 추억들이 화제였고 추억 속에 오르내린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강 집사님은 월말 업무가 바뻐 식사만 잠시하고 다음 재회를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 농아들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가진 네빌 목사의 환갑잔치.     © 네빌 뮤어


빅토리아 농아학교 방문
 
나는 이번 기회에 빅토리아주 St. Kilda 인근에 있는 농아학교(Victorian College of the Deaf)를 오세황 목사님의 도움으로 방문하였는데 수업 중이어서 학생들을 많이 못 만났다. 그러나 학교 안에 농아인 전용 카페가 있어 그곳에서 농아들을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멜번 농아학교는 1860년경에 설립되였는데, 내가 존경하는 네빌 목사님이 이 농아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네빌 목사님이 농아학교로 오게 된 동기가 있는데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 결연을 시작했고 후원 수혜 당사자가 다름 아닌 한국의 어린 농아 학생이었다 한다. 그 어린 학생은 네빌 선생의 후원을 통해 농아학교와 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강화 임마누엘 농아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동기는 학생시절 교회에서 농아학생을 만났는데 무척 외로워 보였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유달리 네빌 학생을 잘 따랐다고 한다. 그 후 농아들을 위한 선생이 되고자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후 멜번 농아학교 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농아학교의 건물들은 낡고 오래 되었다. 이곳에서 네빌 목사님은 1965-1970년까지 5년 동안 농아인들을 가르쳤다. 주일마다 기숙사에 있는 농아학생들이 데리고 교회에 가서 통역해 주며 예배를 드리고 왔다고 네빌 뮤어 목사님이 회상했다.
 
농아학교에서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나오는 길에 농아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렀다. 농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재미있게 수화로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농아 학생들에게 목수 기술을 가르치는 실습실이었으나 첨단 전산시대가 되면서 목수 실습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곳을 카페로 만들어 농아인들이 마음 놓고 교제하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카페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일 브런치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메뉴들이 농아인들의 손맛에서 나온다. 사실 시드니에서도 이런 농아인들의 자립 카페가 한 개 정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부러움이 있었다.
 
오늘은 저녁식사 당번으로 자청했기 때문에 일찍 네빌 목사님 집으로 가야했다. 오세황 목사님도 내 요리 맛을 보고 싶다며 다른 계획을 뒤로 미루고 같이 네빌 목사님 댁으로 향했다. 
 
▲ 농아학교 카페에 걸려 있는 수어 메뉴판.     © 박영주


감탄과 칭찬으로 이어진 저녁상
 
퇴근길은 시드니나 멜번이나 차가 막히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일생을 나같은 농아인들에게 헌신하신 네빌 목사님 가족을 위해 무슨 선물이 필요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나는 오늘 저녁을 정성껏 준비하여 식사대접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 TV를 보면 ‘냉장고를 부탁해요’라는 프로가 있다. 나는 그것에서 힌트를 얻어 릴 사모님에게 냉장고를 열어 보여 달라 하고 그 안에 있는 음식 재료들을 모두 꺼내 놓으니 다행스럽게 내가 즐겨 만들 수 있는 요리 재료들이었다. 2시간 동안 정성 다해 요리와 디저트를 만들었다. 릴 사모님이 도와준다고 했지만 그냥 네빌 목사님과 푹 쉬시라고 하고 최선을 다해 저녁상을 준비했다. 두 분 모두 내가 만든 저녁식사에 감탄과 칭찬이 이어졌고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웠다.
 
행사 당일이 되어 마음과 몸이 바빠졌다. 우리 모두는 행사 1시간 전에  베릭교회로 갔다. 벌써부터 봉사자들이 와서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회 본당에는 화려하게 장식을 마련하고 깔끔하게 준비된 원형 테이블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오늘 행사는 모금 행사로써 필리핀에 있는 두 곳의 농아인학교 식당 수리비용 마련을 위함이다. 2만 불의 기금을 모아 두 학교에 나눠 보내는 목적을 두고 있다.
 
오늘 행사에 나이와 상관 없이 400여 명의 가족을 동반한 지원자들이 예약이 되어있다. 3명의 기타 연주자에 의해 흘러 나오는 분위기 있는 음악 속에 많은 참가자들이 물건을 구입하고 다른 곳에서는 가족 단위로 자매결연 및 후원할 농아학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설명하며 동료들 끼리 추천하는데 한창이었다.

▲ 주일예배를 마친 후 시청각장애인과 손 잡고 대화하는 뮤어 목사.     © 박영주


즐거운 자선 경매
 
행사가 시작되면서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눔의 교제가 무르익게 될 무렵 경매가 시작되었다. 이번 경매에는 유명 푸티 선수의 사인이 된 두 장의 티셔츠와 브리즈번 리조트 일 주일 숙박권과 잔디깎는 기계 그리고 여행용 가방 3종 세트 등 참 다양한 물건들이 기증되었다.
 
참석자들은 가격에 관계없이 선한 일 하는 자선이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경매를 즐겼다. 그리고 자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너무도 좋은 시간이었으며 이런 행사를 자주 갖고 어려운 곳에 있는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농아인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목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오늘 모금 행사는 모두에게 큰 만족을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늘 기증받은 기금이 필리핀에 있는 두 곳의 농아인 학교 식당 공사비로 사용되어져 그곳의 농아 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식사를 하고 교육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그들이 원하는 꿈이 이루어지는 것만이 남아있다.
 
33년의 공직을 마친 나에게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던 중 이번 짧은 기간에 멜번에 있는 국제농아인선교회 국제본부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세계 속의 수 많은 농아인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내 마음을 두드렸다.
 
시드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잠시 예수님의 생애 33년과 나의 공직 33년이란  같은 숫자를 큰 은혜로 생각했다.
 
끝으로 한인교회와 단체에서 네빌 뮤어 목사를 초청하여 국제농아인선교회 사역을 나누길 원하면 한국 담당 코디네이터 오세황 목사께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면 된다. <dmi-korea@deafmin.org/0430 031 663> 〠

박영주|시드니새순장로교회 집사, 국제농아인선교회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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