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누스와 신플라톤주의
 
최성은/크리스찬리뷰
이번 호를 끝으로 그리스 산책을 마치고 다음 호부터는로마를 둘러 보고자 한다. 바울이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했듯이 우리도 로마까지 보아야 비로소 신약을 그리스 로마문화의 빛 아래서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 산책을 마치는 오늘 플로티누스와 신플라톤주의를 소개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신플라톤주의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철학을 한데 묶은 플라톤 철학의 한 형태이다. 이 학파의 중요성은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이 교리와 신학을 정립할 때 이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는 데 있다.

창시자는 알렉산드리아의 부두노동자 출신 암모니오스 사카스이지만 대표자는 그의 제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 205-269)이다.

플라톤이 심오한 종교적 통찰을 가진 철학자였다면 플로티누스는 반대로 철학적 통찰을 가진 종교인이었다. 그는 205년 이집트의 아름다운 도시 리코폴리스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빵보다 지혜를 좋아했던 그는 28세가 되자 지혜를 찾아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여러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으나 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으로 방황하던 어느 날 부두가를 걷다가 마침내 참 스승 암모니오스를 만나게 되었다. 암모니오스의 가르침을 듣고 “찾고자 하던 그분을 이제야 뵈었다”고 고백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암모니오스는 약 10년간 플로티누스에게 플라톤의 철학을 전수해 주었다. 두 사람에게 플라톤은 <신적인 존재>였다.

암모니오스가 죽자 낙심에 빠진 플로티누스는 슬픔도 달래고 동방의 지혜도 맛볼 겸 황제 고르디아누스가 이끄는 원정대를 따라 페르시아로 갔다. 그러나 2년이 못되어 황제는 살해되고 원정대는 해산되었다.

그는 로마로 갔다. 로마에서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플라톤에 정통한 학자였으므로 그의 강의는 곧 로마의 명물이 되었다. 얼마나 대단했던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대의 대가와(플라톤) 너무 가까워 플라톤이 다시 살아난 기분을 자아내는 인물”이라는 평을 남길 정도였다.

그는 플라톤에 정통했지만 동시에 그는 플라톤과 달랐다. 플라톤이 천상세계를 매개로 지상세계를 구원하는 것에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면 플로티누스는 오직 천상세계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플라톤을 자기 취향에 맞게 변형시켰는데 이를 후세의 사람들이 신플라톤주의라 부른다.

플로티누스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편찬한 <엔네아데스>에 잘 보존되어 있다. 플로티노스는 신을 일자(一者/en)라 하였다. 일자는 ‘모든 구분을 초월한 자’이다. 일자는 모든 존재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바탕이다. 일자는 모든 존재를 초월하며 인식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은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에게 영향을 주어 삼위일체 중 성부를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특히 동방교회의 부정신학(Negative Theology)의 바탕이 되었다.

플로티노스에 의하면 세계는 창조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일자에게서 누스(정신)가 유출된다. 일자는 누스로 자기를 드러낸다. 누스 안에는 플라톤이 이데아라고 한 모든 참된 것들이 들어 있다. 누스에서 혼이 유출된다. 혼은 운동의 원리 혹은 현실화의 원리이다. 혼에서 물질이 유출된다. 물질이 곧 세계이다. 일자- 누스- 혼 -물질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커지고 다양화되는 계층구조를 이룬다. 이 계층구조가 카톨릭교회의 제도를 만든 바탕이 되었다.

플로티누스의 구원은 일자와의 신비적 연합이다. 일자에게서 멀어질수록 다양화되고 불완전해진다. 일자와 가까울수록 단일화되고 완전해진다. 구원이란 일자 가까이로 올라가 그와 하나되는 것이다. 구원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도덕적 훈련과 금욕에 의한 순화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며 신의 은총에 의한 황홀경을 경험해야 한다. 

플로티노스는 일자의 섭리가 세계를 질서있게 만든다고 보았다. 섭리의 중심은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자연법칙이나 도덕법칙을 규정하는 원리이며 로고스의 작용에 의해 세계는 질서있고 선하게 조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바울의 섭리사상과 비교해 보면 어떤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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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29 [11:3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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