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신앙생활 운동
 
고준학/크리스찬리뷰

19세기 후반에 출연한 교회 부흥운동의 새로운 형태는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생활’(The Higher Christian Life) 운동이라고 불리었다.
 
보드만 (William E. Boardman)의 1857년의 저서,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뿌리를 둔 이 운동은 1870년대 초반 영국으로 건너가 스미스 부부의 (Robert and Hannah Pearsall Smith) 사역에 의해서 절정을 이루었다.
 
비록 보드만이 그 운동의 창시자였지만, 1870년대의 주요 지도자들은 본래 퀘이커교도들이었던 스미스 부부였다 . 특히 한나 스미스는 그녀의 전생애 동안 퀘이커주의에 깊이 헌신하였다. 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회의에 빠졌을 때, 플라머스 형제단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형제단이 그들에게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두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우리 대신 그 형벌을 당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진노하신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플리머스 형제단의 가르침들은 스미스 부부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진정한 만족은 주지 못했다. 그들은 칭의 이상의 것을 원했다. 그들은 “우리가 칭의를 얻기 위해서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것처럼, 우리가 성화를 얻기 위해서도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모든 일들이 성취되었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복음사역의 전성기였던 1874-1875년 동안에 장로교인인 보드만과 희중교도인 아사 마한과 동역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평생 동안 장로교인의 신분을 유지하였다.
 
보드만에 전제는 칭의만으론 영적 생활을 위해 충분치 못하며, 그래서 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토플레이디이 찬송가 가사에서 이 운동의 모토를 정했다,
 
죄에 대해선 이중적 치유가 있다
 
진노에서 구원하고, 나를 정결케 하라
 
보드만에 따르면, 최초의 회심 때에 우리는 칭의를 위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진노로부터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구원의 반쪽일 뿐이다. 보드만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성화를 위해서도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우리는 내적으로 정결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제2의 회심 혹은 온전한 구원이라고 불렀다. 비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차적 회심을 하였고, 칭의를 위해 그리스도를 영접했지만, 그들은 승리에 찬 삶을 경험하지 못했고, 그럼으로써 영과 육의 싸움 속으로 떨어질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드만은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제2의 회심, 혹은 고상한 그리스도인 생활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이것은 죄책감 및 영·육 간의 내적 투쟁으로부터의 온전한 구원이다. 보드만은 자신은 칭의를 필요로 하는 ‘회심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사역보다는,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필요로 했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부름 받았다고 생각했다.
 
보드만이 느끼기에, 온전한 구원을 성취하는 방법, 혹은 제2의 회심을 경험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칭의뿐만 아니라 성화를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다.
 
보드만은 “그 질문이 칭의와 관련되든 성화와 관련되든, 그 답은 마찬가지다. 죄로부터 자유의 길은 정죄로부터의 자유의 길과 똑같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씻어내기보다는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이 하고,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필요가 있다.”〠

고준학|시드니유니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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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26 [11:2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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