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선교 37년 발자취를 찾아서

박영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12/26 [11:24]
▲ 강화임마누엘농아교회 예배 후 성도들과 함께.      © 박영주

지난 7월말 멜번에 있는 국제농아인선교회 본부(DMI)를 방문하고 ‘크리스찬리뷰’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한 이후 한국 DMI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10월 14일 한국을 찾았다.
 
2014년 가을, 한국의 아름드리 단풍든 나무들의 환영 속에 DMI 국제 캠프에 참석하고 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  강화 임마누엘농아교회에서 찬양하는 필자  © 박영주
 
강화 임마누엘 농아인교회
 
첫 방문교회는 강화도에 있는 임마누엘 농아인교회였다. 강화도는 서울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멀지 않은 곳으로 역사가 많이 담긴 섬이다. 이제는 교통이 너무 좋아져서 섬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곳이다.
 
임마누엘 농아인교회가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일이다. 호주 멜번이 고향인 네빌 뮤어 선교사가 한국 농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979년에 입국하여 인천과 춘천에 농아교회를 개척하고 난 이후 세 번째로 개척한 곳이 임마누엘 농아교회다.
 
현재 담임은 이두형 목사다. 이 목사와 네빌 선교사는 아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45년 전  이 목사가 인천 부평에 있는 농아학교를 다녔는데, 그 시절 한국의 경제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서 특수학교들은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운영이 어려웠다. 당시 호주 멜번에서 농아학교 특수 교사로 근무하던 네빌 뮤어는 월드비전을 통해 한 명의 농아 학생을 추천받아 후원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이두형 목사의 어린 시절이었다.
 
네빌 뮤어 목사의 각별한 기도와 후원으로 이두형 학생은 중·고등학교와 신학을 마치고 강화 임마누엘 농아교회를 맡아 목회를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두형 목사에게 아주 특별한 현숙한 아내를 보내 주었다. 바로 나가사와 구미꼬 선교사다.
 
그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건청인 사모였다. 네빌 뮤어목사의 말에 따르면 일본 지인 선교사의 요청으로 구미꼬 선교사가 한국에서 농아선교를 하고 싶다하여 강화농아교회에 이두형 목사를 도와 선교하도록 추천을 했고 그후 강화 농아 선교지에서 연인으로 발전되어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하여 3남을 두고 지금까지 30년 동안 강화에서 농아 성도들을 섬기며 행복한 농아교회 목회를 하고 있다.
 
우리가 강화농아교회를 방문했을 때 20여 명의 농아인 성도들과 이두형 목사와 구미꼬 선교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고 예배는 특별했다. 온 성도들이 조용한 수화를 통해 찬양과 기도와 성경을 봉독했고 설교 또한 수화로 모든 예배 순서가 진행 되었다.
 
호주 멜번에서 한국 코디네이터로 사역하고 있는 오세황 목사가 수화와 온 몸으로 열정을 쏟아 설교를 하였고 농아 성도들은 수화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보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호주 수화찬양 ‘나같은 죄인 살리신’ (어메이징 그레이스)을 특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예배 후 식사를 같이 하며 구미꼬 선교사와 많은 교제를 나누었다. 구미꼬 선교사는 일본인이면서 한국어와 수화는 기본이고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또한 피아노와 찬양 등 정말로 다재다능함에 놀랐다.
 
이두형 목사는 멀리서 왔으니 강화를 돌아보자며 우리를 강화도 여기저기로 안내했는데 북한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평화전망대를 돌아 본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남쪽에는 나무들이 단풍을 자랑하며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데 비해 북한 지역에는 나무나 풀도 보기 어려웠다. 민둥산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안내원의 말로는 북한에는 땔감이 부족하여 산과 들에 있는 나무를 군인들과 주민들이 거의 베었다고 한다.
 
▲  DMI국제본부 오세황 목사 부부와 강화 임마누엘 농아교회 이두형 목사와 구미코 사모, 그리고 필자(오른쪽 2번째)   ©박영주

영등포농아교회
 
우리가 두 번째로 방문한 교회는 서울 영등포역 앞에 위치한 영등포농아교회였다. 마침 교회 창립 17주년 예배가 있었는데 교회 형편이 어려워 초청한 외부 손님 없이 자체 교인들만 모여 축하 예배를 드렸다. 오후에는 함께 방문한 오세황 목사가 수화 설교를 하고 나는 평소대로 준비한 호주 수화찬양으로 특송을 하였다.
 
모든 예배를 마치고 교제하는 가운데 성도들은 호주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묻고 나는 대답을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낯익은 자매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호주로 이민가기 전에 서울 마포 구화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선배였다. 40년 만에 구화학교 선배와의 만남으로 나는 기쁨의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3년 전에도 명성교회 농아부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광고시간에 사회자의 소개가 있은 후 젊은 청년 자매들이 찾아와 “선배님 안녕하세요. 교장선생님께서 호주로 이민간 박영주 선배님 자랑을 많이 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서 너무나 감사했다. 
▲  셔우드 홀 묘지   © 박영주

선교의 역사 현장, 양화진 외국인 공원 묘지
 
선교를 하려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 외국인 공원묘지이다. 오세황 목사의 추천과 안내로 합정동 성지를 방문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마포에서 산 적이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마침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이름만 들어도 잘 알고 있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를 비롯하여 105명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다.
 
특별히 특수교육과 농아선교의 선구자는 윌리암 셔우드 가문의 홀 로제타 선교사이다. 나는 홀 로제타 부부 묘지를 발견했다. 로제타 홀은 평양에 최초 농아학교를 설립한 미국 선교사이다. 우리는 묘 앞에서 엄숙히 기도를 드렸고 주위에 있는 여러 선교사들의 비문을 읽어 내려갔다. 영어와 한국어로 새겨 있었다. 130년 전 가난한 조선 땅에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어렵게 전도하다 질병과 사고로 그리운 고국을 찾지 못하고 낯선 땅에 묻혔다. 네빌 뮤어 선교사도 여기에 잠든 선교사들의 각오와 기도로 한국 농아선교 37년을 이끌어 온 것 같았다.
 
▲   DMI 네빌 뮤어 목사(가운데)와 함께. 왼쪽부터 허인영 목사(춘천농아교회) 연복남 목사(대전한민농아학교) 오세황 목사(DMI 국제본부) 이두형 목사(강화임마누엘농아교회) 김용환 목사(인천주안농아교회)  © 박영주

오직 한길 DMI 선교 37년
 
인천 주안에 있는 주안농아교회에서 선교바자회와 함께 DMI선교 37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한 아주 특별한 날에 방문하였다. 주안농아교회는 DMI에서 1979년에 한국 인천에서 처음으로 개척한 농아교회이다. 아직까지 자립하지 못해 매년 바자회를 통해 기금을 마련하여 교회이전을 계획 중이다.
 
일일 바자회 중간에 DMI 37주년 축하와 후원 약정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세황 목사의 사회와 춘천농아교회 허인영 목사의 기도로 시작되었고 네빌 뮤어 선교사의 감사, 환영인사와 37년간의 선교보고가 간략하게 이어졌다. 아울러 농아선교는 농아 성도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뜻을 같이한 농아 성도들의 후원서약이 이어졌고, 37년 동안 함께 한 많은 농아인 교역자와 형제 자매들이 이제는 백발이 된 네빌 뮤어 선교사와 기념사진 촬영을 하며 위안을 나누었다.
 
▲    새문안교회 예배 후 이휘진 전 총영사 부부와 함께(오른쪽 3,4번째) © 박영주

새문안교회 영어예배와 이휘진 전 총영사
 
나는 한국 방문 계획을 하기 전에 이휘진 전 시드니 총영사와 연락을 했다. 한국을 방문한다고 했더니 평소 섬기고 있는 새문안교회 영어예배부에 DMI 방문팀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예정대로 영어예배에 초대되었다. 영어예배 전에 이 총영사 부부는 교회 입구에 미리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영어예배 참석자는 많지 않았지만 영어에 관심을 가진 성도들이 찬양과 기도로 열정적으로 섬기고 있었다. 영어예배 설교는 특별히 DMI 총재 네빌 뮤어 선교사가 맡았다. 성도들은 원어민 선교사의 시편 139편 ‘생명의 귀중함’에 대한 설교와 선교 보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은혜롭게 경청했다. 나 역시 아름다운 수화 찬양을 빼놓지 않고 예배 순서에 함께 했다.
 
영어예배 후 성도들로부터 은혜로웠다는 격려가 이어졌다. 우리 일행은 이 총영사 부부와 교역자들과 함께 교회 가까운 식당에서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이어갔다.
 
▲   새문안교회에서 설교하는 네빌 뮤어 목사  © 박영주

서울유니온교회(외국인교회)
 
11월 첫 주일을 맞이하여 네빌 뮤어, 나가사와 구미꼬 선교사와 오세황 목사 그리고 나는 연세대학교 신학부가 있는 서울유니온교회(외국인교회)를 방문했다. 서울유니온교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1885년에 선교사들이 뜻을 같이하여 설립한 서울 유니온교회는 서울에서 130년 동안 14개 지역을 옮겨 다니며 예배를 드려왔다. 연세대학교 안으로 이전하기 전에 유니온교회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묘지 공원에서 선교사들이 잠든 성지를 관리하며 평온한 시간 속에 22년 동안 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문제로 인해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게 되었다. DMI는 유니온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네빌 뮤어 선교사가 한국에서 농아선교를 할 때 부인과 자녀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큰 위안을 얻은 곳이며 농아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많은 협력을 한 곳이다. 네빌 뮤어 선교사는 한국에서 농아 선교를 하면서 행복한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서울유니온교회라고 자랑했다. 
 
▲ 꿈이 있는교회 예배 후 왼쪽부터 허인영 목사(춘천농아교회), 연복남 목사(대전한민농아교회) , 오세황 목사(DMI 국제본부) 이두형 목사(강화임마누엘농아교회) 김용환 목사(인천주안농아교회)    © 박영주

구화인을 위한 ‘꿈이있는교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교회가 있다. 또한 여러 장애 파트로 나누어 드리는 교회가 있고 그 안에 또 세분화된 예배들이 있다. 우리는 또 하나의 특별한 교회인 구화인들이 모이는 교회를 방문하였다. 농아교회는 설교자와 성도들은 수화로 예배를 진행한다. 그러나 꿈이 있는 교회는 수화도 말도 같이 하는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교회이다. 입 모양과 음성 그리고 수화를 통해 좀 더 완벽한 예배를 드리길 원하는 것이다.
 
예배시 사용되는 악기들은 일반인 교회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청년들이 온갖 악기를 통해 뜨겁게 찬양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구화학교 출신들이었다. 꿈이있는교회 조성만 담임목사도 구화인 이다. 온 성도들이 구화학교 졸업 후 꿈이 있는 교회에서 신앙교육을 잘 받고 사회적응력도 뛰어나 복지관 직원으로 활발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주일에는 교회 봉사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고 극찬했다.
 
나는 같은 구화인 입장에서 하나님은 꿈이있는교회에 예비하신 계획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처지에도 서로 격려와 위로해 주고 후배들에게 따뜻한 용기를 심어주는 몇 마디 말도 잊지 않고 전했다. 그날 오세황 목사는 수화와 말로 이중 언어 설교를 구사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   개항장 사랑방 카페  © 박영주

인천주안중앙교회 금요철야기도 예배
 
130년 전에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나란히 일본에서 배를 타고 인천 월미도 통해 한국에 첫 발을 밟았다. 이곳의  이름이 개항장이다. 이곳에 주안장로교회에서 부설로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센터가 있다. 장애인들에게 재활 작업을 지도하는 10여 명의 교사들과 봉사자와 시설 이용 장애인들을 만났다.
 
이곳은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연인들에게 간단한 음식과 음료, 그리고 안마로 수익사업을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 구면이었다. 1년 전에 주안장로교회 예닮부에서 호주 시드니에 2주간 방문 왔을 때 모든 안내와 통역 봉사를 도맡아 했기에 친밀함이 있었다. 개항장 사랑방 카페에는 시드니 장애복지부 죤 아자카 장관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큼지막하게 확대되어 걸려 있었다.
 
주안중앙장로교회와 이런 끈끈한 인연으로 금요일 철야기도 예배에도 초대되어 오세황 목사는 DMI를 홍보하고 나는 약간의 간증과 수화 찬양을 통해 온 성도들과 함께 은혜의 시간을 가졌다.
 
▲   대전한민농아교회 추수감사예배를 마친 후  © 박영주


대전한민농아교회
 
우리의 교회 방문 일정은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대전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대전에 있는 한민농아교회를 방문한 날은 마침 추수감사절 기념하는 주일이었다. 연복남 담임목사와 오세황 목사는 아주 각별한 사이다. 33년 전에 오세황 목사와 연복남 목사는 서울에 있는 신학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연 목사는 한 강의실에서 통역관이 없이 옆에 있는 동료의 노트를 복사하고 무거운 녹음기를 가져와 강의을 녹음해 집에 가져가 가족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오 목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 연 목사로부터 수화를 직접 배워서 같은 강의 시간에 교수의 강의 내용을 일일이 수화로 통역해 주었다. 그 후 연 목사는 후원자인 네빌 뮤어 선교사에게 오 목사를 소개해 주었다. 오 목사와 네빌 뮤어 선교사의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어 올해까지 33년지기가 되었다.
 
10평 남짓한 작은 예배실에서 20여 명의 농아인들이 모여 직접 농사지은 갖가지 곡식들을 모아 단에 올려놓고 추수감사예배가 드려졌다. 이곳 추수감사 예배순서에도 나는 호주 수화찬양으로 그리고 오세황 목사는 수화와 온 몸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은혜 속에서 열정적으로 전했다.
 
나는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나와 같이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어디를 가나 있고 또 문화와 환경이 달라도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33년 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긴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적이 없었는데, 퇴직 후 나에게 주어진 정말 값진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역사하고 있는 여러 교회를 탐방하여 나를 만나주고 초대해 주고 세워주고 섬겨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약 한 달간의 한국 농아선교지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호주 시드니로 돌아왔다.
 
DMI 농아 선교사역에 관심이 있거나 네빌 뮤어 선교사 초청을 희망하면 멜번에 있는 오세황 목사에게 문의하면 된다. (0430 031-663/seihwang@hanmail.net) 〠
 
박영주|DMI 홍보대사, 시드니새순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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