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랍비과정을 수료한 변순복 교수

구약이 잘 보인다

글|송기태, 사진|윤기룡 | 입력 : 2017/01/31 [11:27]
▲ 시교협이 개최한 유대인의 부모와 자녀 대화 세미나에서 변순복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길을 낸 개척자


길을 내는 사람엔 두 부류가 있다.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우연’을 가장한 섭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꽉 붙잡거나. 그는 후자에 속한다. 그가 만약 육중한 금수저, 탁월한 외모,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였다면 자신만의 길을 내는 데에 그토록 몰입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한국인 최초의 랍비과정을 수료한 구약학자, 유대인과 탈무드 연구학자, 30여 권의 저술가....  그를 만든 것은 8할이 결핍이다. 부족함이 간절함이 은혜와 긍휼을 만날 때. 기적이 이뤄지는 건 바로 그때다.
 
이름은 부모가 자녀에게 거는 사회적인 기대를 함축하고 있다. 저명한 교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썩 시골스러운’ 그의 이름이 ‘흙수저’ 출신임을 암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강원도 정선군 동면 석곡리 출신으로 태백산의 그늘에 파묻힌 대표적인 산골, 소위 정선 태생이다. 
 
“그래서 ‘촌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정선 중에서도 돌이 많은 계곡이라 석곡리이지요. 시골 학교는 교실 하나에 한 선생님이 두 학년을 담임하며 수업하던 시절에 다녔습니다.” 
 
밥그릇, 숟가락, 신발, 벽지는 말할 것도 없고, 식칼까지도 예외 없이 어디든 ‘복’(福)자를 새겨 넣던 시절, 그는 이름자에도 ‘복 복’자가 얹혀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학교수가 된 그의 이름은 재해석하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지난 1월 17, 18일 시드니한인교역자협의회 신년 세미나 첫머리에 그 이름을 ‘재해석’하며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다.           
 
변순복 - “해변의 순전한 복덩이”(시 1편의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변순복 - “변함없이 순종하면 복 받아요!”
 
이렇듯 그는 문명과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독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제가 많이 아팠습니다. 제가 외아들이었는데 죽을 거라고, 못살 거라고 하니 집에서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동네 어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기왕 안 된다는데 최선의 방법으로 산에 가서 물을 떠다 놓고 경을 읽으라고 했나봅니다. 먼지털이 같은 대를 붙잡고 경을 읽던 사람이 3일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처럼 제가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에다 저를 팔았다고 해요. 제 이름이 절에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 한국인 최초로 랍비 교육 과정을 수료한 변순복 교수.     © 크리스찬리뷰
 
문화충격

 
‘절 에 팔린 그’를 승려가 알아보았는지, 초등학교 5학년 때 강릉에 놀러갈 때는 ‘예언 같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버스에서 제 옆에 스님이 앉아계셨습니다. 그분이 대뜸 ‘야, 너 나중에 크면 유학 가서 큰 절의 주지되겠다’고 해요. 나중에 미국 가서도 ‘그때 그 스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셨는데..’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강릉으로 이사 가서는 ‘산골 소년 수복’은 문화충격을 받기에 이르렀다.
 
“산골에서는 같은 교실에 두 학년이 수업을 받았는데, 전학간 학교에서는 6학년 한 학년이 7반까지 있었어요. 교실을 못찾을 것같이 얼떨떨했습니다. 강릉도 큰 도시는 아니지만 엄청난 간격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서 중3 때 서울로 혼자 유학 갔다. 고등학교 때, 그에게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바로 뒷자리 앉는 친구가 교회 고등부 회장이었습니다. 매일매일 교회가자고 권했어요, 일 년에 몇 번씩 따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워낙 교회가자고 하니 힘들었어요. 그래서 주일에는 새벽에 시내버스가 다니는 4시가 되면, 첫 번째 차를 타고 남산 5원짜리 도서관에 갔습니다. 교회 가자고 친구가 데리러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사랑의 노크 소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결혼할 때였습니다. 한 여성을 만나 사귀고 결혼하려 할 때, 여성의 모친이 세례를 안 받으면 결혼이 안 된다고 하여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세례받고 결혼했습니다..”
 
결혼 이후 학원 강사를 거쳐 대한신학교(현 안양대)를 거쳐 고신 신대원을 거쳐 고신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다. 그가 처음 신학교를 가게 된 동기도 단순했다.
 
“신학교에 가게 된 것은 법은 어디서 오게 된 것인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일반 법률 서적을 보니 법은 자연발생설이었습니다, 혼자 살 때는 법이 필요 없었는데, ‘법은 왜 필요한가?’ 그걸 생각하다 교회 다니면서 성경을 대하고, 법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데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걸 더 깊이 알고 싶었지요”
 
이렇게 시작한 작은 출발의 모든 스토리는 ‘다음’이 아름다워야 처음이 빛나는 법이다. 그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그의 산골출신, 시골스런 이름, 새벽 4시 5원짜리 도서관, 결혼을 위한 교회출석, 성경과 법 등등의 인생의 한 귀퉁이에 놓일 법한 ‘삽화 같은 이야기’도 지금처럼 빛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쉼 없이 다음을 모색하였다. 새로운 꿈을 키우며 끊임없이 도전했다. 미국 유학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 시드니한인연합교회 본당에서 열린 유대인의 부모와 자녀 대화 세미나.     © 크리스찬리뷰
 
법의 정신은 사랑 

처음에는 일반 개신교 신학교(베다니 신학교, 서던 캘리포니아 바이블칼리지 앤 세미너리)로 진학했다. 그러나 그가 처음 신학 공부한 동기도 ‘법의 근원’에 있었듯이, 성경의 법을 좀 정확하게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율법적’이라고 하는 성경의 법을 더 알아보고 싶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유대인의 법, 성경의 법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오경을 공부하다 보니, 법의 정신은 다른 사람들을 얽어매는 올무가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법이 필요한 것이지 옭아매는 것이 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어디에서도 일반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법의 정신을 사랑에 놓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법은 이 세상의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법신수설, 즉 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법을 주신 사실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교통 신호등도 사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같지만, 궁극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아닙니까? 이처럼 법이 있는 자체가 바로 사랑이지, 법 자체는 누구를 법의 올무를 통해 묶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구약의 율법, 신약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실 율법의 기본 정신도 사랑입니다. 구약에 ‘원수를 갚지 말며,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등의 말씀에서 보듯이 토라의 율법 자체가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 지켜야 할 의무사항으로 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그는 “사랑이라는 뿌리에서 사랑이라는 열매가 맺히지, 율법의 뿌리에서 사랑이 맺히지 않는다. 신구약은 일관성있는 것이지 흑백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자, 유대인의 정수인 랍비학교(유대교 랍비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 변순복 교수는 ‘성경이 성경되게, 하나님이 하나님되게’ 이것이 그의 필생의 과제이자 교육하는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 크리스찬리뷰
 
랍비학교와의 만남

 
“랍비학교로 옮겨갈 때 원서를 다 접수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그냥 개신교 학교로 다니려고 하는데, 개학 이틀 전, 학교로 오라고 해요. 그것도 오후 5시 반에 오라고 하더군요, 제 거주지에서 랍비학교 가는 거리가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제가 다른 주에 있다가 캘리포니아로 간지 한 달 반밖에 얼마 안되어 거리 측정이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출석하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심방 가는데 구경시켜준다고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그 목사님과 함께 아주 경치 좋은 데를 다니다 보니 4시가 되었습니다. 5시 반에 가야된다고 하니, 교통체증에 큰일났다고 해요.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곳까지 2시간 반이 되어도 못간다고 하시면서 출발했습니다.
 
사모님께서 자동차 안에서 하나님 우리 길 열어주세요 하시며 소위 ‘자동차 기도원’을 오픈하셨습니다. 중간에 두 갈래길이 나오면 어느 길이 안 막힙니까? 하며 그렇게 자동차 기도원에서 부흥회‘를 하면서 갔지만 7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이 나중에는 하나님 우리가 엄청 늦을 건데, 약속한 그분이 미안하다고 하는 경우가 생기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시는 거에요.”
 
학교에서 도착하니 7시 반에 수업 끝난다고 기다리라고 하였다. 놀랍게도 그 교수가 수업 끝나고 나오면서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하면서 연구실로 인도했다. 사실은 5시 반에 수업 들어가면서 7시 반에 오라고 했는데, 비서가 착오로 5시 반에 오라고 연락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교수가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자동차 부흥회’에서 드린 약간 엉뚱한 그런 기도도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그 교수님이 입학허가서를 아예 수강신청 용지를 가져와 이 과목 저 과목 표시해 주고 돈 내라고 하시더군요, 학비로 자그만치 2만 4천 몇 불을 내라고 해요. 돈은 하나도 없는데, 돈 내고 오라고 하니 얼마나 당황스렀던지요, 그래서 ‘교수님이 언제 돈 가져오라고 한 것 아니지 않습니까? 학교에 대해 알아보려고 온 것입니다’ 했더니 교수님이 다시 비서에게 뭘 가져오라고 해요.
 
어디를 가셔서 한참만에 오시더니 다시 무슨 종이를 주셨어요. 돈 내는데 가져가니 430불 내라고 해요. 2만 불에서, 다른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주고, 이건 한 학기 주차요금인데, 이것은 내라는 겁니다. 사실은 그때 그 돈도 없었습니다.  같이 가신 담임 목사님의 체크 수표로 430불을 끊어서 돈 내고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랍비학교 학생이 된 것입니다.”
 
랍비대학원은 즉 유대교 회당의 랍비와 교사가 되는 과정을 개설한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랍비가 되는 과정과 유대교 관련과목인 성경, 탈무드, 미쉬나, 미드라쉬, 히브리어 언어와 문학, 철학, 유대교 교육과정을 마쳤다. 그런데 학업 도중 소위 ‘쌍권총(F)’을 둘 찼다고 하였다.
 
“시험문제와 답안지가 노트 10여 페이지가 됩니다. 한 번은 앞면을 딱 보니 ‘0’점이라고 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안에 줄을 쳐놓았더군요. 히브리어로 수업하는 곳인데 ‘예수’와 ‘메시아’라는 말을 썼다고, 그 말 때문에 F를 받은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예수 때문에 핍박당해본 적 있느냐? 손해 본 것이 있었나? 나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F를 두 번 받았다. 쌍권총을 찼다’고 합니다.”

 
스승의 조건

 
랍비학교에서 그는 유대인의 교육법을 경험했다. 

 
“입학 후 두 달 쯤 지났을 때 교수님이 당신 방으로 저를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저와 의논하지도 않고 선배를 한 사람 불러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선배냐고 물었더니, 교수님은 제가 수업을 못따라 가는 것처럼 보이니, 그 선배를 튜터로 불렀다고 미안해 하셔요.
 
‘미안한데 이 학생하고 공부를 좀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겁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고, 몇시에서 몇시까지 공부하고 로그북에 이름 적고 사인하면 학교에서 그 선배에게 시간당 25불씩 지불하는 것입니다. 교수님도 5-6주만에 안해도 되겠다, 괜찮다.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때 그는 스승이 되는 자격 조건은 ‘인내와 사랑’이라고 배웠다고 했다. 스승이 존재하는 목적은 ‘학생으로 하여금 알게 해주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학생이 알도록 해주기 위해, ‘800번이나 물어봐도 봐주라, 인내하라, 학생을 사라, 인내를 가지고 가르쳐 주라’는 것이 스승의 도리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인내와 학생사랑, 평가하기 위해서 시험치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알고 모르는가. 그 기간 통해 분명하게 알기 위해 모르는 것은 깨닫도록 하는 것이 유대 교수들의 특징이었고, 유대인의 교육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공부를 한 과목씩 오래 했다, 졸업할 때까지 주차비만 내고 공부했다. 랍비학교 시절  또 다른 보람도 있었다.
 
“랍비 과정에 다닐 때, 흑인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4년쯤 되었을 때 랍비대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학교 교육대학원으로 옮겨가는 거예요. 예수님 믿고 일반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전학하려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 놀러오곤 할 때, 전도했는데 그가 그렇게 변화된 것입니다. 4년 정도 걸려서 된 일이었습니다.”
 
공부를 마친 그는 린다비스타 신학교와 유니온, 베데스다 등 미국 신학교에서 성경원어와 구약을 가르치다 97년도에 백석대 구약학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랍비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오경, 히브리어를 중심으로 아낌없이 남김없이 쏟아내었다.

 
부흥사만큼 바쁜 삶

 
성경과 탈무드, 그리고 유대인의 교육 가치관 등을 소개하기 위해 ‘탈무드에듀아카데미’란 개인 연구소를 차렸다.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강의와 집필에 집중했다. 자연히 그의 활동은 캠퍼스를 벗어나 한국교계와 선교지로도 확장되었다. CBS TV에서 ‘변순복의 탈무드 여행’ 일주일에 2회씩 212회나 진행하기도 했다.
 
극동방송에서 라디오 탈무드, 유대인 가정을 진행했다. CGNTV에서도 유대인 신학, 기독교신학 강좌를 열었다. 이 강좌를 통해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과정까지 가는 유대인의 일생을 보도록 했다. 
 
“유대인은 죽으면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영혼의 좌소’가 있다는 겁니다. 영혼의 좌소에서 영혼이 거룩한 것이 상처를 입었던 것이 채워지고 나중에 메시아가 오면 다시 부활하여 영과 육이 다시 합쳐진다고 합니다.”
 
무수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성경 속으로 탈무드 속으로’ 등을 비롯하여 유대인의 교육법을 전파했다. 두란노 바이블 칼리지, 한국 이스라엘 키위, CBMC 서울지회, 여의도 지회 등에서 오랫동안 성경을 가르쳤다. 한국의 여러 공중파 방송에서도 유대인 관련 프로에서는 그가 단골로 출연했다.
 
유대교와 그들의 사상 가운데 한국교회에 거부감이 들 것은 철저히 여과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요’ 정도로 소개하며, 부딪혀 논쟁할 정도로 유대사상을 일방적으로 펼쳐가지 않으며, 지혜롭게 소개하니 그의 강의는 늘 인기 만점이었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부지런히 다니니 3년마다 차를 바꿔야 했다.
 
“전국적으로 교회에 유대인의 성경, 리더십 교육 가정 세미나를 하고 다니니 부흥사 나가는 것만큼 나가야 했습니다. 5년 전에 병이 났습니다. 의사가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6시부터 밤 10까지 강의하고 그날로 중국에서 돌아올 정도로 강행군하다 보니 담낭 쓸개를 떼어냈습니다. 간 기능이 확 나빠졌습니다.”
 
직접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유대인 서적들을 한국말로 번역해서 소개하는 것도 그의 사역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한 권 두 권 집필하고 번역하다 보니 어느새 30여 권이 되었다. 
 
“성경의 뿌리가 어떻게 보면 유대인 신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신학을 한국말로 번역하여 내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 변순복 교수는 기도하는 엄마들(MIPI) 세미나를 마친 후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앞줄 가운데)     © 크리스찬리뷰
 
성경이 성경되게

 
‘성경이 성경되게,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이것이 그의 필생의 과제이자 교육하는 목적이라고 하였다. 
 
 “성경이 성경될 때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머리로 하나님을 만들어 갑니다.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 말 중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해?’하는 것도 어떤 일을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처럼, 자기가 아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자기의 신학, 지식으로 자기의 한계 안에서 만들어놓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무한하신 크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만들어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어떤 지식 어떤 철학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성경이 성경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느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리입니다. 원리는 뿌리인데, 뿌리가 없으면 줄기와 가지가 만들어질 수 없지 않습니까? 그 뿌리를 모르고 다른 것을 연구하려면 기초 없이 건축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 모세에게 주신 선물, 하나님이 바울을 불러 교회를 주신 것은 구약은 신약의 모형론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는 집을 만들어진 것,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교회를 본 것입니다. 바울의 교회론은 구약의 성막론을 모르면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신앙적인 삶의 원리는 오경에 있다. 오경의 원리를 구약 선지자들이 어떻게 가르쳤는지 우리도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성문서의 적용을 배워 이렇게 사는 것을 배워야겠구나, 성경과 함께 신앙생활 하는 것, 구약부터 성경을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학자로서 그는 “성경은 한마디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제한되는 언어, 인간의 언어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필요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보다 크신 것은 당연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성경학자로서 가장 사랑하는 말씀구절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말씀으로 들며 “하나님을 사랑, 실천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오경 전공자로서 그는 “오경은, 토라가 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원리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우리의 삶과 떠난 성경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가 수십 년 천착해온 유대인에 대하여는 “유대인은 사람들이 바리새인, 회칠한 무덤으로 이야기하지만, 유대인은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선민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기독교인이 어디를 가든지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으로 갖고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도 하였다. 

 
공짜도, 인력 낭비도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거저 얻는 게 있다면 그건 가짜일 확률이 높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비록 장학생이었지만 랍비학교에서 땀과 열정의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치른 수업료, 열정과 땀으로 맺힌 성과물에 대해 결코 모른 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준비된 자를 쓰시는 하나님은 결코 인력낭비하지 않으시는 분이란 사실을 목도할 수 있다. 그의 성경관은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애정으로 차있었다. 
 
“학회나 논문으로 연구된 것이 ‘일반 평신도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냐?’로 고민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학자들의 연구가 성경적인 신학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학자들의 연구가 평신도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의 삶을 바꾸어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합니다.
 
연구의 결과물인 책을 독자들이 영향받고, 변화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의사들은 학회를 하면 기술이 발달하는데, 신학은 그런 면이 좀 덜한 것 같습니다. 신학관련 학회들도 하고 나면 그 논문들이 한국교회가 성숙하고, 성도들에게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어졌으면 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겐 ‘나이 듦’도 설렘이다. 환갑을 맞은 그는 머리칼을 제외하고는 눈빛도 목소리도 30대의 그것처럼 영롱하다. 사랑과 열정은 삶의 에너지이자 연료이다. 좋은 도자기를 구우려면 온도를 높이기 위해 불을 계속 때야 하듯, ‘성경 사랑’의 열정으로 ‘원어’와 ‘유대’라는 좋은 연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온도를 높여가고 있다.
 
끌림에 따르는 것에 익숙한 사람! 그런 사람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건 잘못된 속설이다. 끌림은 몰두를 불러오고 몰두는 성공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처음 ‘법’에 끌려 신학을 공부했던 그의 끌림은 신학 동기치고는 의외이다. 하지만 랍비학교까지 찾았던 그의 몰두는 끈질겼다. 그 끈질김은 전혀 다른 인생을 걷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그는 삶으로 증언하고 있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동사목사
사진/윤기룡|크리스찬리뷰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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