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하나됨으로 통일을 준비하라
예수원 대표 벤 토레이(대영복) 신부
 
글|김석원, 사진|권순형
▲   크리스찬리뷰 3월호/2017  © 크리스찬리뷰

심수령에서 북으로 흐르는 생명의 강

교회가 불편해 지기 시작한 적이 있었다. 하나님이 교회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라면서도, 삶의 다른 영역을 희생시켜가며 교회 활동에 더 몰두하라고 설교 속에 담긴 모순을 눈치챘던 탓일까? 독재자조차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로 복종하라면서도, 교회의 불법건축조차 마다 않는 위선이 눈에 띄인 탓일까?
 
이때 나에게 신앙의 빛은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교회 테두리를 넘어 신앙을 삶에 적용하려는 여러 사람들의 고민에 대한 답변모음이었다.
 
저자는 태백시 주변에서 ‘예수원’이라는 개신교 수도원을 이끌고 있던 아처 토레이 (대천덕 신부). 그가 19세기 말 호주를 포함한 영어권을 뒤흔든 대부흥사 아처 토레이의 손자고, 극우파의 눈에는 공산당과 다를 바가 없는 헨리 조지의 토지개혁운동 추종자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 책을 접할 당시는 노동참여를 통해 생각에서만 머무는 신앙을 벗어나도록 도전하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도전하는 메시지 만으로도 내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다는 예수원에 꼭 한번 가보리라 마음만 먹다가 결국 호주행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방법이 ‘기독교 세계관운동’임을 알게 된 뒤에는, 지금까지도 내 사역의 중심축이 되었다. 나에게는 삶을 바꾼 은사였던 셈이다.
 
지난주 북한 선교 관련 집회에 대한 취재를 앞두고 고민이 시작됐다. 기존의 북한 선교나 잘하지 뭘 더 새롭게 한다는 것인가?
 
호주 TV에서 떠드는 북한 관련 보도 속에서 한반도의 아픔에 대한 공감보다는 호기심으로 모여든 투견장의 구경군 분위기가 더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에 내 수저를 더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집회 강사 명단에 나오는 이름 ‘벤 토레이’,  2002년에 소천한 대천덕 신부의 뒤를 이어 예수원 대표가 된 그의 아들 이름이다. 예수원이 북한 선교를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뭔가 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예수원의 기독교 세계관과 북한 사역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을까? 나는 ‘산골짜기에서 새로운 편지’를 기대하며 그를 만나 보았다.


▲ 북한 선교의 비전을 심어 주고 있는 벤 토레이 신부. 그는 예수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대천덕 신부의 장남으로 7세 때 한국으로 와서 아버지의 사역을 지켜보았다.     © 크리스찬리뷰
 
중보기도·코이노니아·사회참여의 실험장으로서 예수원

- 예수원은 오랫동안 삶과 신앙의 일치를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교회는 이원론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대가를 최근 많은 교회비판의 대상이 되어 톡톡히 치루고 있다. 예수원의 영감이 다시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은데, 예수원 사역을 소개해 줄 수 있는가?
 
“우리 가족은 1957년 한국으로 왔다. 아버지는 원래 성공회신학교 재건을 위해 오셔서 1964년까지 그 일을 하셨다. 그러나 처음부터 아버지는 성직자나 기존 교회가 아닌 평신도와 삶 속에서의 세 가지 신앙 실험을 원했다. (실험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적용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 지를 직접 확인해보는 자리를 의미 : 편집자 주)
 
첫 번째는 중보기도의 실험으로,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삶을 실천해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코이노니아의 실험으로, 성경말씀대로 사랑으로 같이 사는 것을 실천해 보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실험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상태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계신 분이기에, 우리도 그것을 표현하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토지문제, 경제문제, 사회정의를 강조했다. 그런데 실험에 들어가보니 우리 힘만으로 할 수 없음이 더 분명해 졌고, 자연스럽게 성경의 인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갔다.”

 ▲  고 대천덕 신부(Reuben A. Torrey)                            © 예수원
 
- 본인 소개의 글을 보면 예수원 사역에 자신도 설립자라고 나온다. 예수원 설립

당시에는 청소년이었을 텐데 직접 관여했는가? 그리고 미국에서 돌아간 뒤에는 지역봉사시설, 문화센타의 연극감독, 컴퓨터회사에서 일한 것으로 나오는데 영적 방황을 거쳤다는 뜻인가?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나를 신뢰했고 사역자로 취급하셨다. 내가 원했으면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 옆에 남아서 예수원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보통 서구인들이 그런 것처럼 나는 아버지의 일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 길을 찾아 미국으로 돌아가 여러 가지 시도를 했을 뿐이다.”
 
실제로 벤은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의 여러 지역 복지관과 지역문화센타의 사무장 겸 연극팀 연출가로 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가 아람어(고대 중근동 언어)를 공부하는 중 한 유대계 기독교인 교수를 만났다. 그의 초대로 여자친구(지금의 부인 리즈)와 함께 시리아 정교회 계열의 작은 기도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교회로 자라난 그 모임의 목회자로 안수까지 받게 된다.
 
-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였는데, 당신은 북미 복음주의 사도교회 목사로 안수받았다. 신학교육도 안수 후에나 받은 것으로 나오는 등 특이한 점도 많고, 쉽게 접할 수 없는 교회 이름이다. 왜 아버지와 다른 길을 선택했나?
 
“우리 집안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각 세대마다 다른 교파에 들어가 보자.’ 아버지는 독립적인 신앙을 추구하셨고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러웠다. 북미 복음주의 사도교회 (Evangelical Apostolic Church of North America)의 뿌리는 ‘네스토리안 교회’, ‘경교’로 알려진 ‘동방교회’다. 이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온 족보(혹은 전통)를 강조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도 족보를 중요하게 사용하셨고,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이 강조된다. 또한 이 교회는 하나님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했다. 카톨릭-정교회, 카톨릭-개신교의 분리에 영향을 받기 전의 교회 모습을 지니고 있다.”
 
동방교회? 네스토리안? 평신도들에겐 생소한 이름들이다. 현재 맥콰리대학에서 ‘경교’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형근 목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동방교회 혹은 네스토리안 교회는 고대후기 로마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의 경계지역에서 성장한 ‘동부 시리아 교회’를 가리킨다. 이 교회는 2-3세기부터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선교하기 시작하여 7세기에는 중국 당나라에까지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 교회가 ‘네스토리안 교회’라 불리는 이유는 서방교회가 자신들에게서 갈라져 나간 이 교회를 비하하기 위하여 네스토리우스(Nestorius)—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거부하였다고 하여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인물—의 가르치는 교회라고 딱지를 붙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네스토리우스보다 종교개혁의 성경관과 비슷한 안티오키아 학파의 몹스에스티아의 테오도르(350-428)의 신학을 기초로 삼는다. 그래서 현대에서는 공식적으로 ‘네스토리안 교회’라는 말 대신에 ‘동방교회’ 혹은 ‘동방앗시리안 교회’라고 부른다.”
 
벤은 자기 교회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예수원은 아버지 대천덕 신부 때문에 한국성공회와 관련을 가지긴 했지만, 종속된 단체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의 영적 배경은 예수원이 추구하는 연합사역에 도움이 되며,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이 교단을 더 소개하기 원한다고 했다. 지금도 예수원에서는 성공회와 동방교회 의식을 섞어 예수원식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 예수원 입구     © 예수원
 
북한으로 흐르는 네 번째 생명의 강이 되길 원했다
 
-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예수원 대표로 돌아왔다. 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기독교 학교운동에 투신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다시 돌아왔는가?
 
“2002년 8월 아버님 장례를 치루기 위해 한국에 왔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신의주 출신의 한 어르신이 어머님에게 전할 이야기가 있다며 찾아왔다. 당시 예수원은 삼수령이란 곳에서 청소년 수련원을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삼수령에 있는 삼수점은 한국의 동서남 쪽의 주요 강의 출발점이었다. 그분은 창세기 2장을 묵상하다 보니, 에덴동산에 나오는 네 개의 생명의 강이 있는데, 우리 삼수령에는 왜 세 개의 강밖에 없는지 물으셨다. 네 번째는 북으로 흘러가야 할 생명의 강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북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님께 남의 일처럼 이야기를 전한 뒤, 예수원에 남으라는 요청도 뒤로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북한을 떠올리는 경험과 긍휼함이 내 마음을 계속 찌르는 경험을 했다. 특별한 영적 음성을 들었다기보다는 아내와 기도 속에 자연스런 ‘지식의 은혜’가 나를 인도했고, 결국 예수원의 초청에 응하게 되었다.”
 
-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북한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비전이 있었나?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선교가 막 일어날 때였는데?
 
“하나님은 북한이 곧 개방될 것이라고 깨닫게 하셨다. 그러나 당시 한국교회는 이에 대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남북한이 같은 언어, 같은 문화라는 전제하에 개방만 되면 바로 전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랜 분단을 통해 이미 두 나라는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와 언어적으로 많은 차이가 생겼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당할 구체적인 준비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지만, 재정이나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일단 오전엔 노동학교, 오후에는 북한학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07년쯤부터 분명해 진 것은 통일을 위해서 자라는 청소년들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갈등을 해결할 새로운 통일 세대를 교육하기 위해 작은 규모로 ‘생명의 강 학교’를 열었다.

▲ 벤 토레이 신부와 그의 부인 리즈 토레이 씨.     © 크리스찬리뷰

기성세대는 통일을 위한 세계관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생명의 강 학교는 폐교를 빌려 시작했고, 기숙사 공동체로 운영된다고 했다. 벤은 이 학교가 ‘대안학교의 대안’이라며, 전혀 새로운 가치관 교육의 장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의 구체적 운영은 이미 미국에서 부모 겸 운영이사로 기독교 학교에 참여했던 아내 리즈와 현장 교사들의 몫이었다.
 
리즈는 교육에 있어서는 남북한 모두가 ‘학력 최고주의’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벤과 리즈의 실험은 한국교육의 현실 앞에서 쉽게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름대로 새로운 교육을 지향하며 자식을 이곳에 보낸 부모들조차 학교의 방향과 갈등했다고 했다.
 
결국 지난해 7명의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원점에서 놓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벤과 리즈는 앞으로의 계획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은 소수지만, 통일세대를 위해 정말 가장 필요한 것에 집중할 것이다. 정보전달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고, 서로를 섬길 수 있는 인격을 키우는 것이다.”
 
생명의 강 학교는 구체적으로 나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법에 초점을 둔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장애자, 타민족,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까지 다양한 이들과 삶을 나누는 훈련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기성세대에게서는 북한 동포를 제대로 포용할 기독교 세계관을 기대하기 힘드니 새로운 세대에게 기대를 건다는 뜻처럼 들렸다.
 
- 그동안 한국교회는 인도적 지원이나 선교에 많은 힘을 써 왔지만, 한반도의 대치상황 때문에 많은 프로그램이 중단되거나 유명무실해 지고 있다. 많은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해 유럽이나 호주까지 흘러오는 실정이다. 오랫 동안 북한선교를 준비해온 당사자로 지금의 한국교회의 북한 선교는 어떤 상태에 있다고 진단하는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조금씩 남북의 차이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많은 전문연구소들도 생겨 정보도 많아졌고, 나진선봉 같은 지역을 통해 북한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는 정도로 늘었다. 그러나 넘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우리끼리 하자’는 분위기다.
 
다들 말은 협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천이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통일을 위해 기도할 때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나라가 통일되기 전에 먼저 교회들이 통일되게 해 달라고.”

▲ 강원도 태백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수원. 벤 토레이 신부가 ‘생명의 강’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위 가운데) 아래 가운데는 1978년 예수원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드리는 벤 토레이 신부와 그의 아버지 대천덕 신부(왼쪽)     © 벤 토레이
 
우리끼리만 하자는 식의 북한 선교는 지향해야
 
컨퍼런스에 참여한 한 미국 선교사는 북한 선교를 위해 한국에서 북한 선교 사역자들을 만나보고 놀랐다고 했다. 다들 거의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서로가 뭘 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어서였다.
 
협력이나 시너지 효과와는 거리가 먼 현실 덕분에 피할 수 있는 실수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들이 활동하는 선교지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 구체적으로 한국교회가 북한 선교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더 많은 사람들이 연합을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고방식과 관점이 우리 안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고, 여기에 순종해야 한다. 나는 한국교회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지금 자기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 청소년들이 통일에 맞는 세계관을 키워주려고 한다. 이들을 통해 보다 창조적인 대안, 더 나은 방법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리즈는 한국교회가 탈북자들을 정말 가족처럼 대하는 것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선교에 관심이 많은 교회조차, 탈북자들은 손님이나 사역의 대상 취급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리즈는 이들이 교회의 진정한 식구가 되도록 우리가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 이들과 더 같이 먹고, 마시고, 삶을 나누고, 더 나가서 이들을 교회의 리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 가방을 메고 예수원 앞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벤 토레이 신부(왼쪽, 1966) 오른쪽 사진은 예수원에서 찍은 가족사진.     © 벤 토레이
 
북한 선교는 서두르며 나서기보다 기도로 표현되어야
 
- 호주에 있는 한국인들은 북한 문제를 위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이 한 나라가 되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서로가 협력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것은 남북한뿐 아니라 온 세계가 하나가 될 때 이뤄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교포들은 한국인들이 갈 수 없는 북한 땅에 들어가 이들과 접촉하고, 또 해외에서 온 세계가 북한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짜투리로 배정된 인터뷰 일정 덕분에 아쉬움을 남기며 대화를 정리해야 했지만, 벤의 결론은 기도, 기독교 세계관, 연합을 강조하던 예수원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북한 사역하면 의료품, 염소, 고아원, 빵공장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한치를 알 수 없는 주변 강대국들의 힘겨루기 속에서 앞으로 나갈 방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채널을 잡았다 싶으면 북한 정부에 이용당하고, 비밀리에라도 좀 하나 싶으면 내 헌금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답답한 현실.

▲ 1965년 아버지와 함께 예수원을 시작한 벤 토레이 신부, 그는 통일은 남북한이 진정으로 서로가 협력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크리스찬리뷰

▲ 찬양하는 벤 토레이 신부. 오른쪽은 부인 리즈.     © 크리스찬리뷰
 
그러나 여전히 문제 해결의 키는 ‘우리 안’에 있고, ‘세계관 변화’에서 가능하고, ‘서로 연합’하며 ‘하나님의 의지함’에 있음을 산골짜기에서 온 새편지는 말하고 있었다. 〠

글/김석원|크리스찬리뷰 편집부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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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27 [10:5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