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문재인 ‘국민 모두의 대통령 될 것’

용광로 같았던 5월 9일 광화문 광장... 환호·눈물 가득

글|김명동, 사진|국민일보 | 입력 : 2017/06/12 [14:23]
▲ 크리스찬리뷰 6월호 표지/2017     © 크리스찬리뷰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취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지난 5월 9일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과 동시에 곧바로 5년 임기를 시작했다. 이로써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이후 대통령 부재라는 국가 리더십 공백 사태가 152일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신교 신자는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후보 순으로 표를 많이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KBS 등 공중파 3사가 대선 당일인 지난 5월 9일 전국주요도시에서 실시한 심층 출구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중 39.3%는 문 후보를 선택했다. 이어 안철수 후보(25.0%)와 홍준표 후보(21.5%) 등의 순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은 46.6%가 문 후보를 찍었고, 안 후보(21.8%) 와 홍 후보(20.1%)가 뒤를 이었다.
 
개신교 신자들은 투표한 후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부패비리를 청산할 수 있어서’(22.2%), ‘경제성장과 발전에 적임자라서’(20.1%) 등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에 대해서는 개신교 신자 2명 중 1명 정도(50.1%)가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 더불어 문재인 대선후보가 대선을 하루 앞둔 5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국민일보
 
5월 9일(화) 밤 서울광화문광장을 가다
 
5월 9일 오후 7시쯤 기자는 서울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대낮같은 조명 아래 지지자들과 국내외 취재진, 그리고 경호 경비를 맡은 경찰 등 일대는 북새통이었다. 광장은 물론 도로 넘어 인도, 맞은편 세종문화회관 계단 끝까지 시민들로 가득 찼다.
 
오후 8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 조사가 발표되자 서울 광화문 광장은 “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손뼉을 치고 자리에서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르는 지지자들도 목격됐다. 시민들은 “문재인! 문재인!”을 외치며 열광했다.
 
문 후보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파란색 우의를 입고 파란 별모양의 문재인 응원봉을 들고 다니는 시민, 파란색 리본을 손목에 묶고 파란 머리띠를 한 시민들도 있었다.
 
시민 4명은 ‘M' 'O' 'O' 'N' 영어글자가 적힌 황금색 풍선을 달고 다니면서 즐거워했다.

▲ 19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이 유력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추미애 당대표, 안희정 충남지사와 손을 잡고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국민일보
 
‘문재인 후보 당선확실시’가 대형 스크린에 뜨는 순간 폭죽이 터지고. 춤판이 벌어졌다. 
 
“이제 됐다”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후보가 문재인 당선인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시민들은 서로 포옹을 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세월호 유가족도 광화문광장 남쪽 세월호 텐트촌에 스크린을 설치해 개표결과를 담담히 지켜봤다.
 
11시가 지나면서 문재인 당선인이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절정을 이뤘다. 11시 45분경, 문재인 당선인이 경찰 오토바이의 경호를 받으며 은회색 차를 타고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먼저 도착해 노란 옷을 입고 두 줄로 서서 자신을 기다리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났다.
 
지지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부여잡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 그는 곧바로 무대에 올라 두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문 대통령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두 개 달려있었다. 왼쪽에는 늘 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 배지가, 오른쪽에는 이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털실로 직접 만들어 달아준 큰 노란 리본이 달렸다.

▲ 어린이들과 포즈취한 19대 대통령 후보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왼쪽부터)     © 국민일보
 
문 당선인은 대국민 인사를 하면서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문 당선인은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을 잊지 않고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를 꼭 만들겠다”고도 말했다.
 
그는 “함께 경쟁했던 후보들께도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그분들과도 함께 손잡고 미래를 위해 같이 전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무대에 함께 오른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최성 경기 고양시장, 추미애 민주당 대표, 김부겸 의원도 당선인에게 축하와 덕담을 건네며 ‘잔칫날’ 분위기를 달궜다.
 
광장을 떠나는 문 대통령을 뜨겁게 환송하는 순간, 운이 좋게도 아니 세월호 유가족 뒤만 졸졸졸 따라다닌 수고로 기자는 문 대통령과 악수하는 행운을 맛볼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을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는 인파와 취재진,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경호원에 밀려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기자는 악수기념으로 곧장 달려가 파란 별모양의 ‘문재인 응원봉’을 4천 원에 샀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개표방송 특설야외 무대 중 가장 많은 시민이 몰린 JTBC무대 주변은 쩡쩡 울리는 함성으로 시끌벅적했다. 문 대통령을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대다수의 국민은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것이다. 기자는 초심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면서 숙소로 향했다. 간간히 봄비가 휘날리고 있었고.

▲ 문재인 대선 후보가 광화광장 집중유세에서 시민들과 악수하 있다.     © 국민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걸어온 길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
 
정치권 입문 전 ‘노무현의 친구’로 알려졌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발간한 ‘문재인의 운명’에 적은 글이다.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을 이해하려면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53년생인 문재인 대통령은 29세에 부산에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났다.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 때문이다.
 
1972년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입학한 문 대통령은 입학 첫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선언’이라는 정치적 폭탄을 맞았다. 1975년 총학생회에서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하던 그는 구속과 동시에 제적당했다.
 
담당 판사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석방됐지만 강제징집을 당해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특전사에서 근무한 것을 두고두고 자랑스러워했다.

▲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    
 
군 제대 후 바로 복학이 되지 않았다. 그는 복학 전 사법시험을 준비하여 1979년 1차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0. 26사태 이듬해인 1980년 3월 복학했지만 문 대통령은 신군부의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두 번째 구속을 당한다.
 
그러나 유치장에서 뜻밖의 ‘사시 2차 합격’ 소식을 당시 지금의 아내인 김정숙 씨로부터 들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문 대통령은 판사 임용을 희망했지만 두 차례 구속 전력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
 
변호사 개업을 위해 낙향하듯 내려간 부산에서 만난 사람이 변호사 노무현이었다. 두 사람은 곧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의 동업자가 되었다. 이후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권에 들어갈 때까지 인권변호사 활동을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울 여의도 입성 후에도 문 대통령은 부산에서 노동운동 지원 활동을 계속했다. 두 사람은 문 대통령이 2002년 대선 경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재결합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문 대통령은 정치권에 들어서기를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끝내 그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03년 1월 3일 문 대통령을 불러 “달리 맡길 사람이 없으니 민정수석을 맡아 달라”고 짧게 부탁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고심 끝에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걸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 노무현·문재인 변호사가 19 80년대에 함께 일했던 노동법률상담소 홍보물    
 
과중한 업무에 힘겨웠던 문 대통령은 1년여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2004년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노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는 소식에 급거 귀국, 노 전 대통령 대리인단으로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후 그는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고, 이후 민정수석을 다시 역임했다. 민정수석을 마친 후 다시 청와대를 떠났지만,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3월 비서실장으로 청와대에 다시 들어왔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국민이 ‘정치인 문재인’을 알게 된 계기였다. 그의 정치 여정이 시작된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는 ‘문재인의 운명’이란 저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일을 “내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 시신 확인에서부터 서거 발표, 그를 보내기 위한 회의주재까지 나 혼자 있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과의 기억, 청와대 시절, 퇴임, 서거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저서 ‘문재인의 운명’은 ‘정치인 문재인’을 알리는 도구가 됐다.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고, 그해 민주통합당 후보로 제18대 대선을 치렀다. 그는 48% 득표로 선전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53%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14년 12월 당대표 선거에 전격 출마해 당권을 쥐었다.

▲ 1990년 부민동 당시 시절 건물.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을 2명이나 배출한 유일무이한 법무 사무소란 별칭이 있다.    
 
문 대통령 천주교인, 아들은 장로교회 출석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차석, 성공한 인권변호사, 청와대비서실장, 제1야당 대표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지만 유년기는 가난의 연속이었다. 문 대통령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미국 선박을 타고 경남 거제의 피난민수용소에 도착한 실향민이었다.
 
부친 문용형 씨는 고향에서 수재 소리를 들으며 명문인 함흥농고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됐다. 말수도 적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피란 이후 호구지책으로 장사를 시작했지만 소질은 없었다. 장사 때문에 한 달씩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아버지 손에는 장남에게 줄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아버지는 문 대통령이 군대 제대 후 구속 전력 때문에 복학하지 못하고 고향에 머무르던 1978년 심장마비로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 문 대통령은 사법시험 준비를 결심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출간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가난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도 없다”며 “어린 눈에 그저 아버지가 딱하고 안타깝게만 보였다”고 회상했다.

▲ 고 노무현 대통령과 생전에 산책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왼쪽)     © 국민일보
 
7세 때 부산으로 이사한 무렵부턴 어머니 강한옥씨(90)가 연탄배달을 하고, 좌판에서 구호물자를 팔며 생계를 꾸렸다.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세상을 요령 있고 억척스럽게 살아갈 만한 분은 아니었다고 한다.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초등학생이던 문 대통령이 성당에 가서 강냉이 가루, 전지 분유 등 구호물품을 얻어왔다.
 
어렵고 힘든 시절, 누나 문재월 씨(68)도 가족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다. 여상을 졸업하고 취직해 문 대통령의 대학생활을 뒷바라지했다. 여동생은 재성(62), 재실(55) 씨가 있다. 남동생 재익 씨(56)는 원양어선 선장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의 끝자락인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교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수업 중 쫓겨나는 일도 허다했고, 용돈을 벌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 낚시용 미끼인 참 갯지렁이를 채집해 낚시가게에 팔기도 했다.
 
가난했지만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부산 명문학교였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저서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경남 양산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풍산개 ‘마루’를 데리고 청와대 관저로 들어갔다.    
 
“이 학교 아이들은 대체로 잘 사는 거예요. 집에 가보면 정말 놀랄만한 저택에, 정원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죠.”
 
그는 이 일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느꼈고,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1954년 서울에서 2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친정 부모가 서울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한복집을 운영했다. 김 여사는 서울 숙명여중·고를 거쳐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경희대 법대를 나온 문 대통령과는 캠퍼스 커플이다.
 
74년 당시 음대 1학년이었던 김 여사는 친구 오빠의 소개로 대학축제에서 72학번 문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7년간의 연애 끝에 81년 결혼했다. 문 대통령이 학생운동으로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나 강제 징집돼 특전사로 입대했을 때에도 뒷바라지를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5일 아침, 청와대 관저에서 거처를 옮긴 후 김정숙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여민관 집무실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 국민일보
 
김 여사와 문 대통령 사이에는 아들 준용(35)씨, 딸 다혜(34)씨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교는 천주교다. 그는 경남 양산 덕계성당에 오랫동안 출석했으며 서울에 있을 때는 종로구에 있는 세검정 성당에 나가곤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개신교와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우선 부산 YMCA 이사를 오랫동안 역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대 대선후보 시절인 2012년 11월 5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방문해 “오랫동안 YMCA활동을 해왔고 부산 YMCA 이사를 청와대 들어간 후에도 유지하다가 중립성 같은 것이 문제가 되어 그만뒀다”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본인은 천주교인이지만 장로교 목사와 사돈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는 지난 2014년 2월 목사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문 대통령의 사돈인 장재도 목사는 예장(통합) 총회 소속의 평범한 소형교회인 하늘빛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현재 아들 문준용 씨는 부인을 따라 장인이 목회하는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밑바닥이 닳고 찢어진 구두를 신고 다녀 훈훈한 화제가 되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는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구두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낡은 구두’에 담긴 사연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가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낡은 구두인데다 생소한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생소한 브랜드의 이 구두는 청각장애인들이 만드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네티즌이 감동했다.
 
지난 5월 9일 한 트위터리안이 지난해 4월 전주를 방문했던 문 대통령의 구두 사진을 공개했다. 이 트위터리안은 뒤엉킨 전기선 옆에 나란히 벗어놓은 낡은 검정 구두 한 켤레를 문재인의 구두라고 소개했다.
 
그는 “2016년 4월 전주는 뜨거웠다.”고 설명한 뒤 “그는 구두를 벗고 작은 연단에 섰다. 구두는 어느 집 가장의 그것처럼 낡았다. 나는 그가 평범한 아버지처럼 성실히 국민의 삶을 살피는 대통령이 되길 빈다”는 바람을 적었다.
 
이후 지난 5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의 팬 카페에는 “문 대통령이 신고 유시민 작가가 모델이었던 구두”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물에는 낡은 구두 한 짝을 찍은 사진이 담겨있다. 이와 함께 ‘유시민 구두 모델 데뷔... 장애인 제작 수제화’라는 제목의 2010년 9월 기사도 담겼다. 구두 안에는 'AGIO'라는 브랜드가 선명하게 박혀있다.
 
AGIO라는 브랜드는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수제화 제조업체 ‘구두 만드는 풍경’의 자체 브랜드다. 게시물에 명시된 것처럼 2010년 유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출연료는 갈색 구두 한 켤레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 청각장애인들이 만는 구두 만드는 풍경 진열대     © 크리스찬리뷰
 
이를 계기로 동영상 사이트 유트브에는 ‘찢어진 구두 신고 묵묵히 뛰어다니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인기를 끌고 있다. 영상 속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8일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참배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중 문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장면이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시 문 대통령이 신고 있던 구두가 낡아 밑바닥이 닳고 찢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대통령의 검소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감동적이다.” “최순실의 프라다 신발과는 상반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악마는 프라다를 신고 천사는 아지오를 싣는다”는 말이 퍼지고 있다.

▲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카퍼레이드를 벌인 후 청와대에 입성했다.     © 국민일보
 
에필로그
 
새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앉았던 의자를 스스로 밀어 넣고, 식판을 스스로 들고, 저고리를 스스로 벗어 걸고, 비서진들과 원탁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그 누구는 연출조차 하지 못했던 장면을 날마다 접하면서 국민들은 희망을 품게 된다. 법도 바뀌지 않았고 사람만 바뀌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바뀌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나갈 것 같아서이다.
 
자신의 권위를 남보다 스스로 높게 여기는 게 권위주의다. 그런다고 권위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스스로 낮춘다고 해서 권위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의 격의 없는 모습에 고관대작이나 권력자, 부자, 선생들의 마음은 좀 불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대통령도 저러는데 ’라며 한마디씩 할까봐. 많은 교통사고가 급커브나 급경사 길에서 과속하다 발생하듯이 비극은 권위주의와 불통, 과욕으로 일어난다. 우리 교회 안에는 이런 위험 요소는 없는가, 목회자들부터 진정한 권위를 잘 세웠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당선되자 몇몇 측근은 “여기까지가 내 역할”이라며 외유를 떠나버렸다. 대통령을 만든 공신들은 떠나줘야 한다. 짐이 아니라 힘이 돼야 진짜 공신이다. 이 모습에서 기자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게 나라냐’는 한탄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이 2022년 이맘 때 ‘이게 나라다’라며 박수를 받고 내려오기를 바란다. 교회는 맹목적 지지를 지양하고 비판적 지지로 정권이 바로 서 가도록 기도하자. 그렇게 하자면 우리도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이게 교회냐’라며 우리를 걱정하고 있다. 이제 ‘이게 교회다’라고 뭔가 보여줘야 할 때다. 우리도 국민들에게 희망이 돼야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마 23:12)

▲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를 마친 후 작성한 방명록. 대선 후보 시절 슬로건을 적었다.     © 국민일보
 
“모든 역사의 주인이 되시며 세계를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조국을 사랑하사 과거 수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보전하시고 세계의 눈길을 모을 수 있는 위대한 경제성장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특별히 이 시간에는 주께서 세우신 문재인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먼저는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재임기간의 모든 치적이 하나님에 의하여 심판되어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귀한 직분이 누구를 위한 직분인지를 알게 하시고, 성실하고 거짓 없이 나라와 백성 앞에 봉사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시대의 상황을 재빨리 판단하는 지혜를 주시고, 복잡한 국제 사회에서 민족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대한 경륜을 주시며, 백성들의 요구와 생각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명철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약한 자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풍성하게 하시고, 공의로 이 나라를 다스리게 하옵소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영도자가 되게 하시며, 격무 중에도 건강을 주시고, 모든 가족들도 안보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 제공=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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