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과 연합은 거룩한 명령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김선규 목사

글|송기태, 사진|권순형 | 입력 : 2017/06/12 [15:21]
▲ 한국교회의 연합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라고 강조하는 합동 총회장 김선규 목사.     © 크리스찬리뷰

거룩한 언덕의 교회

김선규 목사(성현교회 담임)는 바쁘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교단의 총회장으로, 대형교회 담임목사로 한국과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위로와 격려, 그리고 도전으로 잠자는 일깨우며 거대한 세상을 ‘둥글게’ 움직이는 활동가이다.
 
40여년 종횡무진으로 달려온 그의 목회여정은 ‘맨땅에 헤딩하듯, 맨손으로 풀 베듯’ 척박하고 황무한 땅을 개척하고 개간한 농부처럼 하루하루 땀과 눈물로 채워왔다. 그렇다고 무작정 ‘성실’만으로 우직하게 밀고 온 것도 아니었다. 시대의 변화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변화와 혁신’의 리더십으로 없을 만큼 다양하고 구체적이었다. 
 
그는 1979년 목사 안수 받고, 성남에서 개척했다. 태권도 도장이 들어 있던 상가건물을 빌려 장판 하나 깔고 예배를 시작했다. 출범 초기 처가에서 장만해 준 강대상, 선풍기, 의자가 비품의 전부였던 초라한 교회, 가장 보편적인 개척교회의 전형을 따라 개척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 ‘부흥의 시대’였습니다. 개척한 감격, 목회의 기쁨이 어우러져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새신자들이 공부하여 변화받고 하니 개척한지 1년 만에 교회 부지를 마련할 수 있었고, 2년 만에 예배당 지어 입당할 수 있었습니다. 2년 만에 200명 이상 출석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목회의 기쁨, 부흥의 비결은 성경을 충실히 가르친 데 있지 않았나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윤리교사를 4~5년 했는데,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멤버십이 좋았습니다. 순종하는 멤버십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것도 건강한 목회를 이루는데 큰 유익을 이루었습니다.
 
사실 순탄하게 교회가 커갔습니다. 교회가 커가면서 30대 후반에 부흥사로 부름받았습니다. 30여 년 동안 3천여 교회 정도 집회 다니면서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면서 목회했습니다. 부흥회 철학은 저의 개인 인기나 기술이 아닌, 즉  부흥사 중심의 부흥회가 아닌, 담임목회자를 돕는 쪽으로 인도합니다. 교회 짓지 않은 교회 가서 교회 짓게 하고, 선교 안하는 교회 선교하도록 했습니다. ‘그 교회는 흥하고 부흥사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맘으로 말입니다.”
 
언뜻 들으면 ‘그저 쉽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홍시를 입 안으로 쏙 받은 ‘목회 행운아’같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 그도 누구 못지않게 치열하게 목회해 왔다. 교회를 개척하기 전 목회철학과 목회 방향을 놓고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다. 특히 육사 출신인 부친은 조국을 위하여 순국했으니 자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순교하겠다는 마음으로 목회를 첫 장을 열었다.
 
“한국교회가 과거 선교사들의 피와 헌신으로 세워졌고, 이 민족이 살았음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선교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을 ‘선교교회’로 하려다가 성현(聖峴)이라는 ‘거룩한 언덕’의 뜻을 가진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개척 당시 성남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은 열악했습니다. 청계천 철거민 등 삶이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즈음 사회분위기나 시대상황에 발맞춰 교회도 덩달아 기복신앙이 주를 이루고, 신비주의 내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척부터 차분하게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에 대해 교육을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는 예배당이 있으면 성장도 뒤따랐던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라는 확신 속에 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열정을 쏟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교회 성도가 늘어나면서 선교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들이 시작됐습니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위치한 성현교회 전경.     © 성현교회

세상을 향한 두 날개
 
그는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전도하기 위해, ‘복지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던 그 시절 교회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교회에서 솔선하여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3등분하여 선교사역을 분류했다.
 
우선 ‘예루살렘과 온 유대’는 자신의 사역지와 교회 주변 대상 선교, ‘사마리아’는 농어촌선교, ‘땅끝’은 해외선교로 규정하고 이를 위한 사역을 진행해 왔다.
 
먼저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해당하는 지역 내 소외된 자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린이 복지를 위해 유치원, 청소년 복지를 위해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IMF시절 청소년들을 위해 3백40명분 도시락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배달하기도 했다. 어르신 복지를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무료 식사를 제공했다.
 
이렇게 시작된 복지사역으로 인해 성현교회는 2010년 말 성남에서 판교로 이전하게 되었다. 성남에서 성장해오면서 노인종합복지관을 세우기 위해 삼평동에 2천 평 정도의 부지를 사둔 것이 판교가 개발되면서 땅이 수용되어, 현재의 성현교회가 위치한 곳을 종교부지로 받은 것이다.
 
교회를 이전하면서 성현교회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의 신자들과 판교의 신자들의 성향이나 현 시대에 따른 생활환경이 달라진 틈이 생겼다. 이러한 틈을 잘 봉합하기 위해 이전 첫해의 교회 표어를 ‘가정같은 교회, 가족같은 성도’라고 정하고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
 
교회의 이전을 위한 기도회는 이전 후 1000일 기도회로 드렸고, 100 단위로 나누어서 기도를 진행했다. 전 세계에 250여개의 국가를 100일 동안 나누어 ‘전세계 전도여행’이란 주제로 기도회를 진행했다. 이후 2차 100일 동안에는 ‘성경일독’하는 기간으로 정하고 진행하는 등 기도와 말씀으로 갈등을 예방하는 섬세한 그의 목회철학가 노하우를 알 수 있다.
 
새로 옮긴 교회 1층은 카페와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토요일마다 수십 종의 문화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교실은 일 년에 두 번 나누어서 운영하는데 약 200명 가까이 수강생이 등록한 사람 중 거의가 비 기독교인들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발전되어 현재 운영하는 복지계통에만 8개나 된다고 한다.
 
8개 복지기관 종사원만 해도 100명이 넘으니 상당한 규모이다. 그리고 어르신 일자리 창출 위해 카페 3개, 카네이션 하우스를 운영하고, 어린이집 부설기관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소통의 목회’를 해오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 교회가 전체적으로 위치가 좋아 매주 매일 800~900명 이용합니다. 요양 주간 보호센터, 간이병원, 각종 피트니스를 비롯해 극장, 경로식당, 취미교실로 서예, 탁구, 당구 등등 엄청난 프로젝트를 운영하니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교회에 800여명이 나오십니다.
 
합동세례만 준 경우가 1천500명입니다. 센머리 앞에 고개 숙이고, 네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천국에 가까운 분들이니 지극한 정성으로 모십니다.”
 
그 당시 주일에 예배시간이 다가오면 어르신들이 지하철역에서 내려 동일한 곳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궁금해 하던 역장이 따라와 보니 성현교회였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였다.
 
사회봉사와 복지가 전도로 열매 맺는 경우이다. 복지관련 교사들은 당연히 크리스찬으로, 영혼구원에 대한 초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장애우들에게 “이 땅에는 장애가 있어도 그리스도 앞에선 장애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성공적인 복지선교를 위해서는 정부와 협력해 지원을 받으면서도 운영은 교회가 전담해야 한다고 했다.
 
“저의 목회 1기는 교회성장과 교회건축에 보냈고, 2기에는 농어촌 교회 돕는 역할, 3백여 교회 도우며 목회했습니다. 잊지 못하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경기도 어느 벽지의 30대 중반 목회자의 하소연이었습니다. 이 분이 목회지에 노인분들만 대하다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내 십자가가 더 큽니다’하는 거예요. 소통은 안되고... ‘오죽 힘들었으면 저런 말을 할까?’하며 가슴이 쏴했습니다.
 
농어촌 교역자 사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 눈 감고 ‘죽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까? 하고 물으니 3분의 1이 손을 들었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소위 ‘사마리아 선교’는 농어촌 목회자 섬기기로 나타났다. 약 3백 교회까지 매달 후원했는데, 당시 농어촌 교회의 목회자들은 식생활을 해결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1년에 1억씩 들여 농어촌 교역자 5백 명씩 초청하여 세미나를 해마다 진행했다.
 
 “3박 4일 동안 왕복 교통비와 숙식비 일체는 물론 속옷까지 지원하며 최고 일류로 대우하며 그분들을 섬기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합동 총회에서 농어촌관련 일을 도모하여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어촌목회를 더 잘 돕기 위해 직거래 장터도 마련했습니다.
 
농어촌교회 산지에서 나는 농수산물을 트럭으로 갖다가 도시의 교인들에게 안기며 상생을 도모했습니다. 사실 도시 교회는 농어촌 교회가 못자리판이라 할 정도로 농어촌에서 잘 키워준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시교협 주최 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의하는 김선규 목사.     © 크리스찬리뷰

전 세계 250여 개국 돌며 복음 전파
 
땅 끝 선교, 즉 세계선교 역시 초기 개척 사역부터 시작된 열정에서 펄펄 끓어올랐다. 그 선교 열정이 그를 전 세계로 이끌어냈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동안 250여개국에 가본 것 같다’고 했다. 한국세계선교회(KW MA) 법인이사, 총회세계선교회(GMS) 이사장, 한기총 선교위원장을 등을 역임하면서 교파를 초월하여 선교에 대한 열정을 쏟았다.
 
GMS 이사장을 할 당시에 대해 그는 “선교사들에게 재정에 대한 투명성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100억 단위를 달러로 내보내는데 환율의 차이가 생기는 것까지 선교사들에게 나누어 보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선교사역에 중요한 것은 팀 선교라고 강조했다. 선교사들이 학교선교, 개척선교, 복지선교 등을 나누어서 하면 안식년에도 나누어 분담할 수 있고, 중복되는 일로 인해 소모되는 것도 없어진다고 했다.
 
GMS이사장 당시 전 세계를 16개 지역으로 세분화하여서 정책을 제시하고 선교사들의 고갈되는 영성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 영성집회를 다니며 선교사들을 격려하는 일도 함께 했다.
 
“교회 차원에서는 아프리카 르완다 국제학교, 인도네시아 오아시스 유치원, 교역자들 훈련센터가 있고, 필리핀 바기오에도 교회 하나 있어 현지인과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C국에는 선교사 파송하여 특수선교와 현지 지하교회 교역자 앙성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 교역자 파송하여 한인교회 하고 있고, 우리 교회 파송 일본인 현지 선교사가 동경 가와사키에 6층 건물을 새로 지어 일본인들이 5백 명 모이고, 한인들이 3백여 명 모입니다. 후지산 밑에 수양관을 두 채 사서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목회의 척추처럼, 대들보처럼 의지하며 달려온 그도 이제 1년 있으면 은퇴한다고 한다. 은퇴 이후의 계획도 역시 ‘교회와 성도를 세우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고 했다.
 
“이 일은 은퇴하고도 지속할 수 있는 일이지요, 벌써 2018~2019년도 집회 일정이 짜여 있습니다. 영혼 세우는 계획이지요. 선교지 다니면서 제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면서 선교지 교회를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특히 은퇴 후에는 아프리카 가서 가진 것을 나눠주면서 열린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소망입니다. 구하면 사역의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성장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때가 되면 깨끗이 물러나 다른 제2의 아름다운 선교인생을 살 것입니다. 선교하는 교회, 나누는 교회의 본질을 붙잡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은퇴를 앞둔 그는 최근 한국교계의 ‘뜨거운 감자’인 목회세습에 관하여도 분명하게 말했다.
 
“후임자를 찾고 있는데 아직 못 찾았습니다. 기도하며 후임자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세습을 싫어합니다. 저희 큰 아들은 교수, 둘째 아들은 대기업 연구원입니다. 설령 그 아이들이 신학공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세습에는 반대합니다. 교단 총회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에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습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목회자 자녀가 잘 자라서 교회에서 박수 속에 그 사람을 교역자로 모셔오면 그것은 굳이 세습이라는 단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지만 큰 교회를 나누기 아까워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 시교협 주최 목회자 세미나 전경.     © 크리스찬리뷰

예배에 생명 걸어야
 
인터뷰 시간 내내 그의 목회철학은 3가지가 자연스럽게 툭툭 튀어나왔다. 즉 말씀으로 교역하는 교회, 희생으로 봉사하는 교회, 땅 끝까지 복음전하는 교회였다.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회상이기도 했고 또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 전력 질주해 온 목회여정이었다.
 
 “한국교회를 보니 70-80년대에는 대형집회와 기도로 부흥되었습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성경을 알자’ 하여 바이블 스터디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습니다. 2000년대는 부부가 직장 다니고, 세상에서 워낙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감성터치 열린 예배 중심으로 바뀌더군요. 전에는 성경과 기도 중심으로 뜨겁게 모였는데, 지금은 찬송 중심으로 변했어요.
 
근래엔 교인들이 새벽기도, 수요예배엔 아예 관심조차도 없을 정도로 유명무실해졌으니, 주일 낮예배 한번으로 신앙을 유지하고 신앙생활이라며 만족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유럽과 미국을 따라가는 것인데 주일 하루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주일 예배를 다양화시켰습니다. 주일 1부는 사역자들과 봉사자들을 위해 드리는 예배로 정하여 봉사로 인해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했습니다. 2부 예배는 기성세대를 위한 전통예배로, 3부는 테마예배로 현재는 특히 교회안의 교회라는 개념으로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애우를 위해 각각 독립적인 교회로 접근하여 예배에 대해 모든 세대가 만족할 수 있는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하여 뜨거운 기도가 식어지고, 말씀 가까이 기도하는 것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시대 따라가면서 감성을 충족시키는 것이 은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목회는 자신의 이익과 목적보다 사람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하였다. 
 
▲ 시교협 주최 목회자 세미나 참가자들과 단체사진.     © 크리스찬리뷰

사람을 얻어야
 
“예수님께서 한 영혼을 위해 거라사까지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한 영혼을 세우신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을 얻기 위해 이권을 내려놓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 목회자는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를 못합니다. 저 자신도 건강관리를 위해 피트니스를 다니면서 관리했습니다.
 
부흥회 다니다 보니 안식년도 한 번 못 가졌고, 건강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집회가면 갈 곳이 피트니스에 놓아주면 운동합니다. 그래서 부흥회 다닐 땐 항상 운동화를 갖고 다녔습니다. 총회장 되고나서부터는 저를 위한 관리를 잘못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자기관리이다. ‘목회는 먹회’라 할 만큼 ‘먹는 일’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 많은 부흥회를 다니면 결코 만만치 않은 음식 접대를 감당했을 터인데도 군더더기 없는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나왔다. 이것은 그의 목회자로서 그의 생활신조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목회자란 한마디로 성실성으로 보고 싶습니다. 목회자가 성실하지 못하고 입만 살아있으면 성도들이 존경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한마디로 신뢰입니다. 항상 어떤 삶 속에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신뢰가 없으면 안됩니다. 항상 주님을 신뢰하고 나가는 것이 제일이지요.
 
총신 신대원 개강 집회할 때 한 말이 있습니다. 
 
▲ 부활절연합성회와 목회자 세미나를 위해 시교협 임원들에게 수고했다며 박수치는 김선규 목사.     © 크리스찬리뷰

‘당신들은 목적과 이익을 얻지 말고, 사람을 얻어라’고요. 목회자가 가져야 할 태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이뤄지고, 자기에게 유익이 되어도 사람을 잊어버리면 의미가 없습니다.
 
목회자로서 저의 삶의 의미와 행복은 성도들이 세워지고, 성도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행복한 것은 부모들을 중매하여 그 자녀들에게 유아세례부터 주어 8명이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오면 12명의 제자는 못 키웠지만, 8명의 주의 사자들이 저의 면류관이지요.”
 
앞서 밝힌 대로 김 목사의 부친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기에, 강원도 농촌에서 홀어머니의 독자로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성장했다. 그만큼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얻는 것을 귀하여 여긴다. 또 그만큼 사람을 믿다가 상처를 입은 적도 적지 않다고 하였다.
 
“순수하게 사람을 믿었는데, 배신 같은 것을 경험할 땐 살면서 참 힘들었습니다. 그 뒤로 사람 믿지 말고, 주님만 믿고 나가자는 믿음이 굳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을 “구세대에서 차세대로 넘어가는 마지막 세대”라고 표현했다. 교계의 리더십이 6·25 전란을 겪은 어른 세대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로 넘어가는 고개에 자신의 세대가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6·25 전란을 거친 세대는 가부장적 사고가 굳어져서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목사의 권위로 누르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진정한 감동으로 통하는 코드는 감성적 호소와 눈물입니다. 명령이 아닙니다. 겸손히 섬기며 부드럽게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사명이 과거와 미래의 목회관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교회를 세우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와 사역자를 끊임없이 양성하고 그들과 소통할 것이라고 했다.
 
오늘의 교계 현실에 대해서도 그는 “교회다운 중소형교회를 키우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들은 60대 후반이 되면 비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대형교회가 힘든 이유는 비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모양이 달라도 본질을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달한다면 똑같은 것이 아닌가요?
 
양을 먹이고 치는 성경공부, 돌봄 사역, 심방, 상담, 관리가 목회의 본질입니다. 교회의 크고 작음이 목사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사의 달란트에 맞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지적했다.
 
▲ 김선규 목사(앞줄 가운데) 시교협 임원들과 기념촬영     © 크리스찬리뷰

또 하나의 ‘연합’이란 선물
 
한국교회 연합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라고 밝히며 이에 대한 소신도 분명했다.
 
“먼저 연합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섬기며 공동체 발전을 위해 일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는 점점 투명해져 가고 있는데 교계가 금권선거로 역행해선 안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지도자가 바로 서면 교회가 건강해집니다. 교계도 지도자들의 문제입니다. 어떤 단체에 나가서도 연합체가 건강히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연합체의 대표를 맡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닌, 사회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크게 보는 시선이 중요합니다. 한국교회의 회복은 지도자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교단의 틀에만 매이지 말고, 서로 연합을 위해, 공동연합체를 위해 서로 마음을 비우고 하나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선교 역시 각 교단, 단체들이 긴밀히 연합하고 협조해 선교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서로 공유해 더욱 효율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먼저 북한선교 연구와 대사회 선교는 한국교회가 연합전선을 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형편상 선교를 어려워하는 교회도 협력과 네트워크를 함께 하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농촌 지역에서는 한 시찰의 교회들이 조금씩 모아서 한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하는데 동참합니다. 이렇듯 형편상 선교에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이 연합하고 힘을 모은다면 더욱 선교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선교사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각 교회 성도들도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긍지와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 질 수 있기 때문에 너무도 중요한 사역입니다. 
 
▲ 예장 합동 101회 총회장에 취임한 김선규 목사가 사모와 함께 축하 화환을 받았다.     © 크리스찬리뷰

또 개교회 차원의 연합도, 교회로 보면 교회의 분쟁이 생겼을 때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개 교회에 어떻게 유익한가입니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고 해도 교회를 위해서는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드니한인교회교역자협의회 부활절 연합예배와 합동과 개혁의 하나되는 일로 시드니를 방문한 그는 시드니 교계에 또 하나의 ‘연합’이란 선물과 메시지를 가슴 가득 안고 있었다.   
 
“시드니 교계도 많이 성숙했으니 우리가 지역에서 공동체와 교회를 연합하고 하나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몰링칼리지 한국신학부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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