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문재인 대통령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사

임을 위한 행진곡, 문재인의 눈물…5.18 광주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06/12 [16:02]
▲ 문재인 대통령이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국민일보
대통령과 1만 명이 함께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7주년 기념식이 열린 5.18 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힘차게 울려퍼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국회의원, 정부 요인 및 시민들까지 1만여 명의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고 이 노래를 '제창'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부터 '합창 공연' 형식으로 마지못해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끼워넣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 노래의 작곡자인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가수 전인권 씨 등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이날 기념식에는 5.18 관련 단체뿐 아니라 4.19 혁명 등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리는 단체들도 대거 초청됐다. 전년의 행사 규모가 3000명 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국민의례로 시작해 문 대통령의 헌화·분향, 5.18 단체의 경과보고, 대통령 기념사, 문화예술 기념 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경과 보고를 국가보훈처 관계자가 아니라 5.18 단체가 직접 하게 된 것도 2009년 이후 8년 만이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라며 이날 행사에서 다같이 노래를 제창할 방침임을 강조하자 행사장에 참석한 5.18 유가족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기념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문 대통령을 기립박수로 맞았다.  
 
문 대통령도 기념 공연 1막이었던 5.18 희생자 유가족의 편지 낭독 순서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5.18 당일에 태어난 '5.18둥이' 김소형 씨가 "차라리 제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출산 소식에 광주로 왔던) 아버지는 살아 계실 것"이라고 자책하는 대목에서였다. 문 대통령은 편지 낭독을 마친 김 씨에게 걸어가 그를 포옹하고 위로했다. 
 
가수 권진원 씨와 광주시립합창단 등의 2막 공연에 이어 전인권 씨도 기념 공연 3막을 위해 무대에 섰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당시 TV 광고에 나와 불렀던 '상록수'를 전 씨가 불렀다. 전 씨는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이로 인해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행사 마지막 순서에서 문 대통령과 전 씨가 한목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안 전 후보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안 전 후보는 대선 패배 후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며 공개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서 '정치 재개'라는 말도 나왔으나 안 전 후보 측은 "공식 행사이기에 참석한 것"이라며 "(정치활동 재개는) 전혀 아니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문 대통령과 대선에서 경쟁했던 후보들 가운데 이날 행사에 참석한 것은 안 전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2명이었다.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이날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전날 5.18 묘지를 참배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후보는 방미 중이다. 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과 안철수·심상정 후보 등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세 사람이 받은 표를 합하면 70%에 육박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 대통령과 경쟁했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행사에 참석했다. 박 시장과 안 지사는 각각 자신의 SNS에 5.18을 기리는 취지의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김동철 국민의당 대표 권한대행,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등 각 정당 지도부도 총출동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지도부는 전날 밤 광주 시내에서 열린 전야제에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5.18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국가보훈처장에 군 인권 문제 등에서 목소리를 내 왔던 피우진 처장을 임명했다. 그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막아왔던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후임이었다. <프레시안 전재= 곽재훈 기자>

▲ 5.18 유가족을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 국민일보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맞아, 5.18묘역에 서니 감회가 매우 깊습니다.
 
37년 전 그날의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광주 영령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월 광주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오늘을 살고 계시는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월 광주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께 각별한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슬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5.18때 구속된 일이 있었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습니다.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준 힘이 됐습니다.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정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함성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답게 만들자는 치열한 열정과 하나 된 마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광주 영령들이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성숙한 민주주의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왜곡을 막겠습니다. 전남도청 복원 문제는 광주시와 협의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닦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왼쪽)     © 국민일보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습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해직되고 투옥 당했습니다.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참이 거짓을 이기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광주시민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주십시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유가족인 김소형 씨를 포옹하며 위로하고 있다. 이날 김소형 씨는 '슬픈 생일'이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낭독했다. 김 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고 김재평씨의 딸이다. 김재평 씨는 딸 김소형씨가 태어난 날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 국민일보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숨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제공=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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