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실론자와의 대화

아름다운세상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3/30 [12:47]

멜본에서 2010 세계 무신론자 컨벤션 열려 

 
지난 3월 12일부터 3일간 멜본에서 2010 세계 무신론자 컨벤션이 (2010 Global Atheist Convention) 개최되었습니다. 국제 무신론 재단 주최로 ‘무신론의 부상(Rise of Atheism)’이라는 주제와 함께 개최된 이 대회는 특히 ‘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는 (There's probably no God.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슬로건으로 영국 버스 광고판 설치를 지지한 ‘만들어진 신’의 작가 ‘리처드 도킨스’가 (Richard Dawkins) 강연을 맡아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캐서린 디버니 (Catherine Deveny), 필립 아담스 (Phillip Adams)등 대표적인 무신론자들이 많이 참여하여 안그래도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nominal Christian) 많은 호주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American Humanist Association)에서 “왜 신을 믿는가? 그냥 선을 위해 선해지십시오”. (Why believe in a god? Just be good for goodness' sake) 라는 광고를 대중교통에 등장시키고 있고 한국에서도 비록 기독교측의 항의로 4일 만에 막을 내렸지만, 반기독교 시민연합에서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반기독교 버스 광고문을 지난 2월에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근래의 무신론 운동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무신론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너무 왜곡되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가 축복을 미끼로 선행을 유도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본성이 선이며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 선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이 기독교가 심판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신앙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여 불행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것도 오해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심판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강조하며 진정한 신앙은 인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에게 대해 말하고 있는 시편 14편을 보면 무신론이 어리석은 것이며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무신론을 가리켜서 어리석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1절) 한 기독교 심리학자는 무신론자에 관해서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안에 각인된 하나님 의식과 더불어 그 의식을 지우기 위해서 일부러 싸우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왜 무신론이 생겼는가?  

그래서 어쩌면 “신은 죽었다”고 했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 니이체가 말년에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신이여, 당신은 살아있다. 나는 죽었다.”라는 메모를 남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신의식과 더불어 한 평생을 싸웠던 불행한 철학자였습니다.

현대 무신론의 원조 역할을 했던 포이에르 바하라는 철학자와 프로이드라는 심리학자는 “왜 종교가 생긴 줄 아는가? 사람들이 마음의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에서 위로받고 싶어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즉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고 사람이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신을 만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현대 수많은 지성인들을 매료시킨 무신론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의 논리도 가능합니다. “왜 무신론이 생긴 줄 아는가? 그것은 신이 없으면 좋겠다는 소원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연히 자기들이 범한 죄나 악 때문에 심판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데 죄인들에게 제일 거추장스러운 것이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들도 똑같은 두려움으로 신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14편에서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무신론자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저들만의 책임은 아닌 것 같아 우리를 반성하게 합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고 싶었습니다. 금번 멜번 대회 핵심 리더였던 캐서린 디버니씨가 지적한 “호주에서 실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9%에 불과하며 그나마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The Age, 2월 19일자) 말한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회복하고 더욱 전도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난 주간과 부활 주일을 맞으면서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가 우리의 삶으로 표현되고 이웃들에게 바르게 전파되는 복음이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기독교 신앙은 삶의 신앙

오래 전 미국에서 구세군 전도팀이 길에서 전도를 하다가 어느 유명한 설교자가 그곳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이 분이 설교를 하고 있는데 어떤 신사가 무엇인가를 적더니 설교가 끝나자 앞으로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곤 명함 뒤에 이번 토요일 오후 4시 아카데미 과학관으로 쓰면서 “기독교와 불가지론의 대결”을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을 받은 목사님은 “예수님과 성경을 부인하고 믿지 않으며 기독교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지성인들의 모임인 불가지론 협회 회장님이시군요. 선생님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오실 때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삶이 변화된 증인을 두 명만 데려와 주십시오. 그 중 한 명은 여성이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타락하고 비참한 삶을 살다가 선생님이 가르치는 성경을 조롱하고 예수를 비방하는 그러한 메시지를 통해 변화되어 놀라운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을 증인으로 데려와 주신다고 약속하신다면 저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증인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목사님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앞에서 열심히 전도하던 10대 후반의 소녀가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그 모임에 제가 증인으로 가도록 허락해 주세요. 제가 얼마 전까지 어떻게 타락한 삶을 살았고 이제 예수님으로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지 신실하게 간증하고 싶어요.”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나도 증인으로 가게 해 달라”는 소리가 빗발쳤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저는 이 자리에서만도 최소한 30명은 증인으로 데리고 갈 수가 있고 나머지 70명도 아주 쉽게 채울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두 증인을 데려와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이에 그 신사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없었던 일로 합시다.”하며 그 자리를 떠나가 버렸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론만이 아닙니다. 삶의 신앙입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여론 조사를 한 뉴스위크지에 따르면 응답자의 91%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으며 신의 존재를 부정한 응답자는 6%에 그쳤습니다. 또 응답자의 87%는 정통 종교를 믿는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82%로 가장 많았고 특히 응답자의 62%는 무신론자 정치인에게는 표를 던지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때마침 한 평생을 철저한 인본주의 문학가로 살다가 3년 전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이어령전문화부장관의 시드니강연이 이번 주간에 개최된다고 합니다. 그는 딸과 손주의 기적적인 치유가 동기가 되기는 했지만 수 년 전부터 지상언어에 한계를 느꼈고외부로부터 스피리츄얼한 체험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어쩌면 그 분이 무신론자들과 대화를 하기에는 가장 적임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류병재|실로암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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