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외면한 법비 (法匪)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08/28 [10:49]
사법시험의 3차 면접 시험장에서다. 범인이 따로 존재하는 걸 변호 중 알았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가 변호사 윤리문제로 제시됐다. 참과 거짓이 자리를 바꾸었는데도 직무상기밀이니까 침묵하자는 대답도 많았다. 법만 암기했지 진실에는 둔감했다.
 
이런 사건이 있었다. 인기 높은 성공한 기업인의 강간사건이었다. 그는 수많은 팬들의 우상이었다. 음모가 진행됐다. 변호사들이 고용되어 제1안, 제2안 하는 식으로 계획을 짜서 피해자를 꽃뱀으로 변신시키는 작업에 성공했다.
 
증인들이 매수되고 판사도 속였다. 무죄를 선고받은 그 인기 기업인은 거짓눈물을 흘리면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훗날 뒤에서 대법원판례 하나 조작하는데 25억 원이면 되더라고 빈정댔다. 돈만 보고 돈 되는 길만 쫓던 담당 변호사들은 비행기 일등석에 앉아 와인 잔을 부딪쳤다.
 
토스토엡스키는 그런 변호사들을 고용된 양심이라고 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재벌급 기업회장의 부인이 판사사위와의 관계를 의심한 여대생을 청부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모님은 살인범을 해외에 도피시켰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50억 원을 줄 테니 총대를 매달라고 부탁했다. 그 정도 거액이면 인간의 영혼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살인범의 담당 변호사가 뒷거래를 우연히 알았다. 법정 주변이 돈으로 썩는 냄새가 났다. 그 변호사는 진실을 알렸다. 사모님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돈의 힘은 무서웠다. 사모님은 대학병원의 유명교수를 매수해서 세상에서 휴식하며 법을 조롱했다. 그리고 진실을 폭로한 변호사는 줄 소송을 당했다.
 
살인범은 그를 직무상 기밀 누설죄로 고소했다. 사모님의 기업은 주가가 떨어졌다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판사 사위는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돈을 청구했다. 변호사의 진실을 공명심으로 오해한 네티즌들은 벌떼처럼 변호사를 공격했다. 그 사건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바른 행동의 끝은 십자가의 길이었다. 변호사는 무엇으로 살까? 미국의 로스쿨생 상당수는 합법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낀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제 그런 사례가 있다. 1998년 이른 봄 교도소에서 한 죄수가 그를 찾아간 변호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변호사는 사회정의를 위해 일한다고 윤리규정 제1조에 나오는데 그 사회정의라는 게 뭐죠?”
 
변호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죄수가 덧붙였다.
 
“우리 같은 죄인이 인권을 얘기하면 헛소리가 됩니다. 세상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죠. 그러나 변호사가 소리쳐 주면 다르죠. 바로 그게 사회정의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죄수는 그가 목격한 사실을 얘기했다. 한밤중에 교도관 중 악독한 몇 명이 재소자를 몰래 때려 죽여 그 시신을 야산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은폐됐다. 의사는 심장마비로 진단을 하고 검사는 평범한 변사자로 처리했다. 그러나 옆방 그 옆방의 죄수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피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 변호사는 차가운 무관심의 방패로 침묵하기에는 양심이 아팠다. 그는 시사 잡지 ‘신동아’에 그 사실을 기고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는 그 사건의 피해자를 의문사 1호의 인물로 판정했다. 기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담장 저 쪽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해 변호사들의 소명이 분명히 있다.
 
국정원 증거 조작도 변호사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은밀한 기업의 내부는 더하다. 그러나 대한변협은 변호사의 기업비리 고발규정을 만들었다가 슬며시 빼버렸다. 여론수렴도 깊은 토의도 없이 관계자의 항의만 받아들인 것 같다.
 
미국 등 선진국은 조직의 변호사라도 비리를 알리게 의무화 했다. 일본변호사 연합회회장을 지낸 우츠노미야 겐지씨는 “기업내부에서 불법을 알고도 입을 다무는 변호사를 법비(法匪)입니다”라고 말했다.
 
도둑이라는 소리다. 변호사가 숨은 구조악의 실체를 직시했으면 불의에 맞서 기꺼이 상처받으며 자신의 상처로 세상을 꽃 피워 가야 한다. 그게 변호사의 길이다.
  
법과 정의가 돈에 농락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심 현장에 있는 변호사들의 윤리와 소명의식이 절대적이다.〠

엄상익 |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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