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문화-북한’에 필이 꽂힌 열정의 사역자

(사)푸른나무 대표 곽수광 목사

글|송기태, 사진|권순형/박태연 | 입력 : 2017/08/28 [11:04]
▲ 곽수광 목사는 청년-문화-북한에 필이 꽂힌 열정의 사역자이다. 그는 지난 8월 멜본에서 열린 차이스타 집회에 참석하고 시드니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복음주의 영성의 가교

곽수광 목사는 서울 신촌에서 문화공연으로 젊은이들에게 예수를 알리며 그들을 열광시킨 인물이다. 물론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를 소개한다는 것은 여간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의 이름 앞엔 으레 ‘청년 사역’ ‘코스타(KOSTA)' 등이 아호처럼 붙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축복송‘ 등으로 유명한 ’가수 송정미의 남편‘이란 말은 꼬리표처럼 붙는다. 아주 최근엔   ‘시드니 장경순 목사의 초등학교 동기‘란 꼬리표가 하나 더 붙었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 연락되는 친구는 장경순 목사밖에는 없습니다.”
 
장 목사와 함께 만난 식사 자리에서 그가 유쾌하게 웃으며 한 말이다.  
 
그는 옥한흠, 이동원, 홍정길, 하용조 등 4인방 목사의 뒤를 잇는 차세대 리더 중에 한 사람으로 꼽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게 보내는 목회자이다. 그의 영성은 이미 모범적인 목회자상을 보여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아 김준곤 목사와 앞서 말한 4인방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곽우불 목사는 전남 진도에서 8개 교회를 개척하며 복음을 전한, 진도의 사도 바울 같은 분이셨습니다. 평신도 때부터 목사님을 도와 불철주야 교회부흥과 전도에 혼신의 힘을 쏟으셨는데, 항상 새벽 4시에 일어나 형제들을 깨워 가정예배를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자녀들을 훈육하던 아버지셨습니다.“
 
그의 부친은 57세에 신학을 시작해 83세까지 열정적인 목회했다고 한다. 9남매의 여덟째인 그에게 항상 “나는 좀 더 일찍 목사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니 너는 아예 처음부터 목사가 되어라”며 그를 목회자로 준비시켰다.
 
그래서 당연히 목사가 되는 줄 알고 그는 학교에서 조사하는 각종 기록부의 장래 희망 칸에는 늘 ‘목사, 전도자’라고 써냈다고 한다. 기도하느라 굳은살이 박혀있던 아버지의 발등을 보며 ‘기도의 영성’을 형성하며 성장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한국대학생선교회 고등부(HCCC)대 들어가 70~80년대 빌리 그레이엄 집회, 엑스폴로 74, 80세계복음화 대성회, 세계교회기도성회,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성회 등을 주도하며 한국교회 부흥을 이끈 김준곤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고등부 총순장을 맡아서 이런 대형집회 학생대표로 활약했다. 이 시절,  최근 북한에 31개월 동안 억류되었다 풀려난 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를 만난 것도 그의 사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HCCC 대표간사로 있던 임 목사는 캐나다로 유학하다 찬송가 작곡가로 유명한 박재훈 목사가 담임하던 큰빛교회를 담임하여 토론토 최대의 한인교회로 성장시켜 북한 사역을 활발히 하다 (이미 각종 매스컴에 보도된 대로) 무기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았다가 병보석으로 소위 ‘죽음의 강’을 건너왔다.
 
곽 목사가 캐나다 유학시절 큰빛교회 전도사로 사역했으며, 이때(96년) 미국에서 코스타가 열렸다.
 
청년부를 맡고 있던 그는 청년들을 데리고 참석했다. 청년들은 강사들의 강력한 메시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결단했다. 변화될 것 같지 않던 청년들이 며칠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놀랍게 변화되는 모습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는 코스타 조직위원회에 “내년엔 토론토에서도 코스타 수련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97년에 열린 코스타 캐나다 수련회는 대성황을 이뤘다. 
 
▲ 곽수광 목사의 부인 송정미 사모는 영혼 속에 깊은 울림을 던지는 한국 최정상의 CCM가수이다. 사진은 지난 2012년 8월 시티주안교회 목요찬양 콘서트에서 열창하는 송정미.     © 크리스찬리뷰

섭리적 만남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부친의 뜻대로 장신대로 진학했다. 신대원까지 마친 그는 중화권 선교를 꿈꾸며 대만에 가서 대북한인교회 전도사로 있다가 중국어를 배웠다. 이때(88년) 그에게 ‘특별한 만남’이 섭리처럼 다가왔다. 바로 지금의 아내이자 동역자인 송정미 사모를 만난 것이다.
 
그가 대만에서 중국어 배우고 있을 때 연대 성악가 학생들로 이루어진 ‘나눔선교중창단’이 대만에 공연을 왔다. 그 팀 중에 생기발랄하고 튀는 대학 2년생 송정미가 있었다.
 
“제가 그 팀 가이드하면서 대만 가이드 하다 인생 가이드가 되었지요. 허허”
 
이 한 마디 뒤에는 적지 않은 사연이 숨어 있었다. 송정미의 인상은 좋았지만 옷차림이 화려하고 너무 튀는 스타일이라 별 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2년 뒤에 한국에서 박종호, 최인혁 콘서트에서 초청가수로 나온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있을까?’할 정도로 풍성하고 윤기나는 음색에 반하고 말았다.
 
그후 그는 1990년에 캐나다에서 유학하면서 그곳에서 열린 복음성가 경연대회에 게스트 겸 심사위원으로 그녀를 초대하는 등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했다. 서로 애매한 친밀감을 느끼면서 6년이 지난 후 토론토 예수전도단의 DTS훈련이 막 끝난 그녀에게 마음먹고 청혼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송정미는 ‘잘 나가던’ 복음송 가수였다. 대학 시절에 이미 극동방송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오직 주만이’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고, 1991년 1집 앨범‘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를 발표한 이후 어린 시절의 꿈처럼 유럽, 아시아, 북미 등 국내외 공연으로 활발하게 선교와 찬양사역을 펼치던 중이었다.
 
목회자의 아내가 되면, 다른 사모들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조해야 하는 게 부담이었다. ‘사모 송정미가 아니라 배우자 송정미로 프러포즈 하는 것’이라는 곽 목사의 오랜 설득에 마음을 열었다.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뒤 1993년 6월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이후 그는 토론토 낙스대학에서 설교학 박사과정을 밟았고 목사안수까지 받아 캐나다에서 신혼을 보냈다. 그러나 결혼생활에서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남편은 진도에서 3남 6녀 중 여덟째로 자유분방한 환경에서 자랐고, 아내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촌에서 1남 1녀의 예의바른 막내로 자라서 사고방식이나 습관이 서로 달랐다.
 
성격차이, 문화 차이로 신혼부터 자주 부딪쳤다. 첫 부부싸움은 신혼 여행지에서부터다. 신혼여행인데도 단둘이 있기보다는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고 심지어 사이판에 살던 선배와 운동을 하러 가서 늦게까지 오지 않는 바람에 화가 난 아내의 투정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해서 싸웠다.
 
그는 형제들과 자취하면서 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어울리다보니 가족중심의 환경에서 자랐고,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내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 사역자여서 꼭 필요한 조언이지만 직설적인 표현으로 서로 자존심을 건드리고 상처도 주게 되었다. 그렇게 신혼부터 위기를 느끼며 성숙해져갔다. 
 
▲ 한국에 유학중인 중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하고 있는 차이스타 집회 포스터와 집회 장면들.     © 곽수광

문화선교, 열린예배의 개척 부부
  
앞서 말한 대로 곽 목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96년 코스타 캐나다가 성황리에 끝났다. 순수 자원봉사로 이뤄지던 코스타가 외연확대를 위해 풀타임 사역자가 필요하게 되자 그는 박사학위 논문 마무리도 미룬 채 2000년 국제본부 총무로 아내의 뒤를 이어 귀국했다. 이에 앞서 송 사모는 98년부터 숭실대 음악원 교회음악과 교수로 활동하기 위해 귀국, 가스펠을 한 차원 격상시키며 새롭게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한 이들 부부는 온누리교회에서 색다른 ‘열린예배’를 기획,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들은 불신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처음 예배에 참석한 이들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치유와 임재를 경험하는 열린예배의 새로운 컨셉을 시도했다. 
 
특히 청년들이 열광했다. 여기서 이들은 ‘부부 공동사역’의 새로운 모델을 찾았다. 특히 부인은 찬양사역자에 머물지 않고 예배사역자로서 함께 열린예배를 기도로 준비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그가 모국의 사역으로 부름받은 코스타 역시 새로운 일을 시도했다.
 
“코스타 코리아를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13년까지 3회를 했습니다. 70여 명의 강사들이 헌신적으로 참석했습니다. 정말 잔치였습니다. 한번에 2천여 명의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매번 그렇게, 정말 세 번하니 그 안에서 각 영역별로 강사들과 청년들이 네트워킹이 형성되었습니다. 각 영역별로 새로운 부흥운동이 일어나려는 조짐이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코스타가 한국에서 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국교계를 생각하여 코스타 이사회에서 중단결정을 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결정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청년사역들이 이름과 상관없이 청년들을 위한 부흥운동이 반드시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년부터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코스타 코리아 혹은 새로운 조직으로 하게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 지난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멜본에서 열린 차이스타 집회에 곽수광 목사가 강사로 참석했다.     © 크리스찬리뷰

코스타의 외연확대, 차이스타

그의 코스타 사역 중에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이 있다. 바로 ‘차이스타-중국유학생수련회(CHISTA)’의 시작이다.
 
“12년 전 한국에서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중국유학생들 집회입니다. 처음에 코스타 집회 강사들이 도와주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인 강사들이 많이 도와줍니다. 화교 중에 최고의 강사들이 와서 섬겨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추석 때마다 차이스타 집회를 하는데 지금 1,200명씩 모입니다. 중국 선교사들이 와보고 감동합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는 한두 명씩 숨어서 전도하고 제자훈련하는 형편인데 차이스타에서 너무 감동을 받습니다.
 
한국에 중국 유학생이 7만 명이 있습니다. 정말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입니다. 한국에 와있던 중국인 신학 유학생들이 지금은 중국교회 쟁쟁한 목회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코스타 소문을 듣고 우리도 그런 집회 해달라고 하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이 지금은 차이스트의 중심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이면에서는 정착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사연을 겪어야 했다.
 
“차이스타 몇 해 하다가 자기들끼리 노선의 갈등이 생겼습니다. 한쪽에서는 ‘한국에 있는 안믿는 중국인들 위해 전도집회’여야 한다는 노선이었고, 한쪽에서는 ‘잘 믿는 학생들을 리더로 키워야 한다’는 노선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갈등하다 아예 차이스타 집회를 하지 않는 거예요.
 
중단된 차이스타의 불씨를 살려보고자 소망교회,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새문안교회 등 중국사역자들 모여 둘 다 포괄하는 집회로 하자고 하여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처음엔 2백여명 모이다 지금 1천200명까지 모이게 되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엔 길이 있기 마련이고, 헌신자가 출현하기 마련이다. 

“대만인으로 중국 나이키 부사장인 진근유 씨가 차이스타 강사로 초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이 와서 보고 여기에 푹 빠졌습니다. ‘전 세계 중국 유학생이 나가 있는 곳마다 차이스타를 만들겠다! 차이스타야말로 20년 후 중국을 변화시킬 일이다’라는 비전을 받은 거예요. 지금은 나이키에서 나와 중국계 패션기업 CEO로 있는데, 그가 비즈니스로 만나는 사람마다 차이스타를 소개하고 도전합니다. 캐나다 몬트리올, 토론트, 프랑스 영국, 밀라노, 태국, 싱가폴, 멜본, 네덜란드 9곳에 차이스타가 일어났는데, 전세계적인 무브먼트가 될 것같습니다.”
 
그는 차이스타와 더불어 한국에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 전국 대학 크리스찬 교수들이 대학 내 국제교회 세우는 일이라고 하였다. 
 
“교수들이 중심되어 전 세계에서 한국으로 오는 유학생들 위해 영어로 하는 다민족교회입니다. 전국 대학 15곳에 국제교회 세워졌습니다. 지난 주 송도 연세대 캠퍼스에서 연합수련회를 했는데,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선교운동입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세계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세계에서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는 유학생들,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미 우리에게 오고 있는 선교자원들을 효과적으로 잘 섬기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합니다.
 
▲ 2016 리우 장애인 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푸른나무가 지원했다.     © 크리스찬리뷰

문화선교로 청년들과 소통
 
“복음에 미친 사람”이 되어 청년들과 더불어 보내온 울고 웃으며 보내온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특히 신촌에서 문화공연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전도하려고 했던 팀들이 자연스럽게 교회가 되었다.
 
압구정동 MCM 가방회사 본사에서 예배 드리는 푸른나무교회가 바로 그 교회이다. 12년째 접어드는 교회는 젊은이들이 많이모이는 것이 특징이고, 청년 예배 컨서트홀에서 오후에 드린다고 했다. 
 
오전 찬양예배는 송정미 사모가, 찬양 사역계 최고의 연주자들이 밴드로 몰려와 찬양에 기름부음이 있다고 한다. 오후 청년예배는 플라리슨라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소속의 연예인들과 연주자들이 함께 예배를 섬긴다고 했다. 예배는 찬양이 특징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복음설교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했다.
 
“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문화예술적인 색깔이 강하고, ‘청년, 전도, 문화’ 이 3가지 단어가 키워드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DNA 안에는 ‘청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장년들도 청년같고, 청년은 당연히 청년이지요, 청년같은 장년들이 모입니다. 전도지향적인 교회입니다. 타종교를 믿던 회의주의자들이 와서 신앙에 입문하는 경우 많습니다. 교회 사이즈에 비해 세례 주는 비율이 높습니다.
 
현재 320여 명 모이는데, 한해 30여명에게 세례를 줍니다. 저희에게 또 문화예술의 DNA도 흐릅니다. 교회창립 7주년 되었을 때 로랭 커닝햄 목사님이 오셔서 7주년 감사예배 설교를 하시면서 ‘이 교회는 문화예술의 엔터테이먼트 DNA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성도들의 예술적 재능을 통해 문화예술 선교에 예언의 말씀 주신 것입니다.”
 
선교와 문화예술을 접목하고자 교회 스탭 가운데 가장 탁월한 목사를 동숭동에 문화선교사로 파송했다.
 
“그분이 12년 동안 동숭동 문화예술인들을 전도하고, 제자훈련시키고, 선교사 훈련까지 시켜서 지금 40여명의 종신문화선교사들이 헌신하여 함께 공동체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매년 한편의 창작 뮤지컬을 발표하고 전도 111프로젝트로 전도 페스티벌을 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그 중에 한 작품인 더 북(THE BOOK)이란 작품을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으로 동숭동에서 대학로에서 공연하고 있습니다.
 
1월 2일부터 이미 3만 5천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는데, 연말까지 6만 명 정도 관람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대학로 전체 공연 중에서 예매율 좌석 점유율 1위입니다. 티켓이 1월에 1만 원이었는데 매달 2천 원씩 올라가 지금은 2만4000원입니다.
 
이 공동체에서 지난 7월 17일엔 대학로에 기독교 뮤지컬 전용극장 개관했습니다. 여기서는 주말마다 요한계시록이란 뮤지컬을 공연합니다.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앞으로 더 큰 문화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 북한 장애인들에게 물자를 지원한 푸른나무     © 푸른나무

마지막 황금어장 군대와 북한

이 문화 공동체가 지금까지 전 세계 모든 대륙을 방문하여 해외 공연했다고 하면서 아직 방문하지 못한 대륙이 호주라고하면서 내년에 호주와 뉴질랜드 순회공연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또 청년부흥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기도 한다. 

“저희 교회에서 첫 번째 케이스로 푸른나무 청년교회 시작했습니다. 교회 안의 교회로 말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청년교회들이 계속하여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마다 세워지기를 바라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 청년부가 아닌 교회 안의 독립된 교회로서, 재정과 행정을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책임지고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그리고 청년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어필할 수 있는 찬양과 복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아직 큰 성과가 나지는 않지만 한국교회 새로운 청년운동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가 또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는 사역은 ‘청년선교의 마지막 황금어장’인 군대라고 했다.
 
“지금도 논산훈련소에서 1년에 7만 명에게 세례를 줍니다. 10년이면 70만 명이 됩니다. 우리가 좀더 좋은 콘텐츠를 갖고 치밀하게 기획하여 논산훈련소에서 전도집회 하고 그곳에서 예수님 영접한 청년들을 군생활동안 잘 팔로우 업하면 논산훈련소 전도만 해도 다시 청년부흥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말 논산훈련소는 엄청난 곳입니다. 저희 교회가 두달에 한 번 꼴로 논산에 가서 훈련소교회에서 전도집회를 합니다.
 
통상 훈련소 갈 때에는 장병들 초코파이값으로 500만원 정도 들고 갑니다. 그런데 저희는 그렇게 가져갈  돈이 없습니다. 초코파이를 주지 않아도, 저희는 연예인들을 많이 데리고 가니, 어떤 대형교회집회보다 최고입니다. 보통 6천~7천 명 정도 모입니다. 먹을 것 안줘도 옵니다. 교회가 작아 재정적으로는 못 돕지만,  콘텐츠로 많이 쓰임받고 있습니다.
 
논산훈련소 전도집회엔 일용엄마 김수미 씨, 이연희 배우, 한희준 가수, 레이스 걸그룹, 테너 최승원.... 이들이 함께 하니 좋은 집회가 됩니다. 문화예술적인 패턴으로 쓰임받고자 하는데, 몇주 전엔 육사 생도수련회 콘텐츠를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청년집회를 하는 그지만 그의 마음은 어느 곳보다 북한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시대의 아픔에 고민하고 통일에 대한 비전을 키우면서 ‘푸른나무’라는 NGO도 설립했다,
 
“교회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완전 독립된 기관으로 북한의 장애인들과 고아들 돕는 일을 해왔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북한 장애인 선수들 출전에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북한 장애인들이 체육을 하고, 장애인 올림픽 위원회 가입하도록 가이드 해주었습니다.
 
2016년 리오 올림픽에 두 번째로 장애인 선수단을 출전시키는데 크게 후원했습니다.
 
북한이 ‘장애인은 없다’고 하던 나라인데, 이후 북한에서 장애인에 대한 제도와 사회적 인식이 획기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장애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장애인을 자랑하는 인권지표가 향상되었지요, 순안비행장이 문을 열 때 장애인 주차장과 화장실이 생겼습니다.
 
평양 시내에 장애인 전용 택시가 다닙니다. 그 정도로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는데 큰 기여했다는 데 감사한 마음과 자부심을 가집니다.” 
 
 ‘청년 실업’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국의 청년들을 향해 곽 목사는 이렇게 도전했다. 
 
▲ 2014년 9월 인천에서 개최된 장애인 아시안 게임에 참석한 북한 선수단을 후원하고 은원한 푸른나무.                     © 푸른나무


“한국은 이제 선진국처럼 젊은 세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사회가 됐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국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한일합방은 민족의 불행이었지만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힘든 현실 속에서 저는 청년들을 통해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ㅣ 박태연 크리스찬리뷰 사진기자(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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