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신년과 대속죄일
 
정원일/크리스찬리뷰
▲ 유대인의 새해 인사를 전하는 카드.     © 정원일


며칠 전 친한 유대인 친구로부터 기대치 않은 카드를 받았다. 봉투를 열자 유대인의 새해 인사를 전하는 예쁜 카드가 들어있다. 붉고 탐스런 석류와 사과, 푸른 이파리들, 꿀과 작은 은 수저가 흰 카드에 담겼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은 유대인들에게 분주한 시기이다.
호주는 이때 봄을 맞이하지만 유대 월력을 따르는 이스라엘은 신년을 9월에 맞이한다.
 
'로쉬 하샤나'라고 부르는 이 절기는 새해를 맞이하며,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시고, 선민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예배를 올려드리는 날이다. 그리고 그들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통해 알려주신 에덴 동산의 축복과 출애굽을 통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기리는 날이다.
 
우리가 매해 2월경 구정을 새해로 맞이하고, 고향을 가고, 성묘를 함으로 조상의 넋을 기리듯 그들은 우리의 명절처럼 그들의 절기를 지킨다. 종교가 그들의 문화가 되고, 그들의 전통과 명절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화에는 그들의 종교성과 시대적인 관습과 전통이 배어있다. 그리고 그것이 각 나라의 문화의 특징을 결정짖는다. 성경의 절기는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풍습과 문화가 되었다.
 
이것은 서구 문화가 일요일을 지키고, 부활절과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되고 감사절에는 큰 종교적 행사와 더불어 가족과 사회가 축제의 절기로 지키는 것과 같다. 서구 달력의 절기와 휴일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제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로쉬하샤나는 대체로 9월과 10월 사이에 절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창조와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자신들을 돌아보는 절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를 나팔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팔은 이스라엘의 모든 총회가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소통기구이며, 권위를 상징한다.
 
메시야가 오실 때 (레 23:24, 민 29:1)에 나팔이 울려 퍼지는 웅대함을 나타내고, 또한 전쟁에 적군과 원수를 물리치는 승리의 선포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이 절기에, 우리가 설날이 되면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듯 반나절 금식을 하고 목욕을 함으로 정결 의식을 행한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이들이 신년행사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을 돌아 보는 회개의 일이다.  우리가 설날이 되면 떡국과 설빔을 먹듯 이들은, 사과와 석류에 꿀을 찍어먹는 전통이 있다.
 
이는 새해에는 사과 열매처럼 풍성하고, 달콤한 일들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예배에 나아가서 그들은 창조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또한 심판의 하나님을 노래하며 자신의 지난해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나팔을 불며 신년을 맞이하게 된다. 
 
로쉬 하샤나 절기가 지나면 곧 그들이 지내는 절기가 하나씩 반복적으로 펼쳐지는데, 히브리, 티슈리월 10일 째가 다음 절기인 대 속죄일 (욤키푸르-Yom ki Pur)이다.
 
이 절기는 말 그대로 그들의 죄를 속해 달라고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절기이다. 이들은 레위기 23:27-29에 근거하여,  속죄일에는 하루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금식하는 규정을 따른다.
 
속죄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아올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을 회개하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레위기에는 아사셀 염소에 흰 줄을 드리우고 골짜기와 광야를 지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사한 것을 확인하고, 동물을 잡아 피를 흘리는 제사 의식을 행하도록 명령해 놓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전가한 아사셀 염소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인간의 죄가 사해지는 대속의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회당에서, 우리가 드리는 것과 같은 예배를 통해 그들의 죄가 사함 받도록 네 다섯 시간 동안, 기도하고 통회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시편에서 그리고 요나 서의 말씀 대부분을 다시금 읽는다.
 
나는 요나서를 읽는 것이 상당히 궁금해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다. 특별히 요나서가 유대인의 죄나 회개에 대해 어떤 연관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선지자 요나가 이방인들에게 가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고 대신 미운 마음을 풀지 않고 민족적인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이방인들에 대해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들의 마음을 회개하는 것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다소 의외의 대답이었다. 유대인들의 가장 큰 절기인 대 속죄 일에, 이방인들에 대해 선한 마음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 그들의 절기에 회개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통해서, 다른 문화와 이방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유대인들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약간의 팁을 얻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문화 안에는 다른 민족들의 문화 안에서는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세상의 다른 민족들을 축복하며 이방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세계관이 담겨 있다는 것을 비로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유대인들이 폐쇄적이며, 율법적이고 자기중심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것은 그들 모두를 평가하기에는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랍비와 만나고 회당 지도자들과 만나 얘기해 보면,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 진심을 확인하고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경계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 단체들이 다가와서 친하게 지내고 교류하자고 하다가 나중에 개종을 요구하고, 친절을 베풀다 그들이 변화하는 것 같지 않으면, 등을 돌리고 관계를 단절하고, 폄회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럽의 서구의 기독교 국가에서 유대인들에 대해 수 세기에 걸쳐 복음을 전하고 함께 살아가며 역사 속에 종교 재판과 축출과 게토와 근대에 이르러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대부분의 가정 안에 수 세대를 걸쳐 마치 뜨거운 불에 데인 것 같은 쓰라린 기억들을 갖고 산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로부터 또 그 이전부터 세대를 거듭해 들어온, DNA로 각인된 것 같은 내재한 피해의식이 있다.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로 당하는 핍박과 거절이었다. 그런 유대인들이 대 속죄일에 이방에 대해 속죄의 마음을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같이 사는 부부가 싸움을 해도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 봐야 하듯, 우리는 사실 그들의 변명을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사실 유대인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너무도 적다. 현재의 유대인들의 삶,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율법, 그들의 문화와 전통과 세계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그들 편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의 일방적인 생각, 서구의 편견, 타종교나 미디아로부터 전해 들은 왜곡된 시각으로 그들 전부를 판단해 왔다.
 
평소에 회당에 다니지 않던 유대인들도 대속죄일에는 예배에 참석에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유대인들은 신년(로쉬 하샤나) 보다도 대속죄일(욤키푸르)을 가장 큰 명절로 여긴다. 신년을 시작하며 십여 일을 회개하고, 기도하고 하루를 금식하고 그들의 죄가 사해 졌음을 선포한다.
 
양각나팔을 불며, 하나님 앞에 모든 총회가 나아와 선포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자신들의 죄가 사해졌다고 외친다. 그들은 개인의 죄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죄가 사해지는 절기로 대속죄일을 지킨다.
 
그리고 그들은 대속죄일에 타인을 위하여 구제의 헌금을 드린다. 그들의 절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에 대한 회개와 타인에 대한 선행의 결단과 다짐이다.
 
모든 이방이 이방 신을 섬기고, 육체의 쾌락을 탐닉하며 살고 있을 때,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죄 사함을 위해 회개하는 민족으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죄에 대해서 깨닫고 그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죄에 대해 고할 줄 알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는 분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죄가 사해졌다는 것과 죄사함의 기쁨으로 타인을 위해 드리는 구제의 헌금의 의미가 무엇인 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방은 여전히 죄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다. 죄인들을 위한 기도와 선행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혈통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죄에 대해서 무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유대인의 신년과 욤키푸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원일|이스라엘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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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25 [14:0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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