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어땠나요?

김경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10/23 [11:25]
~목사의 질문~

“성도님, 오늘은 제 설교가 어땠나요?”
 
주일 점심식사 테이블 맞은 편에 앉은 김아무개 성도에게 질문을 했는데, 이분은 예전에 다니던 교회를 떠나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두 달 전부터 우리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한 분이었다.
 
“좋았습니다...”
 
그 성도는 약간 계면쩍게 대답하였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저와 같은 평신도가 감히 목사의 설교를 평가할 자격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라는 생각이 요동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분의 계면쩍어 하는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아, 그러셨군요. 설교의 내용 중에 도움되는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설교 내용의 어떤 점들이 좋게 다가왔는지 알고 싶기도 했고, 그분이 설교를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드린 질문이었다.
 
목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역할이라면, 내가 그 책임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또는 그렇지 못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로써, 매주 설교를 듣는 교우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아...예... 특별히 지금 기억나는 것은 없네요...”
 
목사의 갑작스럽고 다소 집요한 질문 때문에 김아무개 성도는 편한 마음으로 점심 식사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기는 하였지만, 교회의 새 식구가 된 분에게 꼭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김아무개 성도님도 한 식구가 되셨으니까,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설교가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었는지, 그리고 보완해야 할 점들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야 교회의 모든 교우님들께 덕이 되지 않겠습니까?”
 
~설교를 평가를 받는다는 것~
 
예전에 어떤 교우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목사님, 설교는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분의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도행전에 소개된 한 가지 사건을 잠시 돌아보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사도행전 18:24-26)
 
이 구절을 접할 때마다 우선 아볼로라는 사람의 겸손함에 놀라게 된다. 그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매우 뛰어난 설교가였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평가를 귀담아 들은 것이 분명하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동역자였지만 (사도행전 18:1-18) 아볼로처럼 대중 앞에서 설교를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볼로는 그들의 ‘평가’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더욱 담대하고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다. 이 세 사람의 ‘경건하고 성숙한’ 모습이 복음 사역에 큰 유익을 가져왔던 것이다.
 
~더 풍성한 말씀의 교제~
 
“목사님, 오늘 하신 말씀 중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요... 오늘 설교의 본문이 과연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조금만 더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우리 함께 본문을 다시 살펴 봅시다...제가 본문을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교우들과 설교자가 이렇게 대화를 풀어 나갈 수 있다면, 온 회중이 더 풍성한 말씀의 교제를 누릴 수 있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김경민|세인트 앤드류스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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