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야 하나

정동섭/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10/23 [12:07]
▲ 정동섭 목사     © 크리스찬리뷰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사랑과 분노

우리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감정은 사랑과 분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가장 많이 표현하는 감정은 사랑과 분노이다.
 
신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일 많이 표현하는 감정은 진노하심이다. 우리는 보통 분노를 나쁜 감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도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를 제자들이 꾸짖자 노하시면서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에게 진노하시면서 상을 엎으시기도 하였다. 분노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데,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모였기 때문에 이것은 가정에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감정은 기쁨과 사랑과 감사와 같은 감정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감정은 수치심, 죄책감, 슬픔, 분노, 두려움, 혐오감과 같은 감정이다.  감정에는 유쾌한 감정이 있고 불쾌한 감정이 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다가가게 하는 감정이고, 분노는 멀어지고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감정이다. 부부가 친밀감을 느끼다가도 한 사람이 버럭 폭발적으로 화를 내면 거리감이 생기고 두 사람 사이에는 냉기가 흐른다.
 
감정에는 도덕이 없다. 모든 감정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이다.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할 수 있고 슬퍼할 때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무시당할 때, 상처받을 때 화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분노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분노는 사랑의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사랑의 표현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분노가 자유로울 때 사랑도 자유롭다.  분노를 억압하다 보면 기쁨과 사랑 같은 긍정적 감정도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우울증 환자는 긍정적 감정도 부정적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행복한 부부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는 분노, 슬픔, 걱정, 근심, 기쁨, 감사 등 감정을 배우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감정대화를 할 수 있는 부부가 행복하다.
 
분노란 무엇인가?
 
분노는 자존심이 상하거나 좌절감을 느꼈을 때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이다. 분노는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비판, 침묵, 잔소리, 우울증, 험담(gossip), 고집, 망각, 게으름과 같은 수동공격적 행동으로 가장하고 나타날 수 있다.
 
분노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죄악된 분노(sinful anger)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분노는 죄악된 분노가 많다.  둘째 의로운 분노(righteous anger)다. 하나님의 공의가 방해를 받을 때,  이단교주의 성폭력과 착취에 대해 의분을 느끼고, 어린이나 여자가 학대를 당할 때 의분을 느끼고, 기본적 인권을 무시할 때 의분을 느낄 수 있다 .
 
분노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있다.  중세시대 로마 교황청이 면죄부로 구원을 사고 파는 것을 보고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의분을 느껴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이다. 셋째 집단적 분노가 있다. 한국의 시민, 학생들의 6.29 시위가 민주화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인도에는 성폭행이 빈발하고 있는데, 법원에서 두 여성을 성폭행한 이단교주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리자 의분을 느낀 시민들이 집단적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이 분노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의문은 1. 분노는 잘못된 것인가? 2. 화내는 것은 죄가 되는가?  3.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분노를 두려워하고 갈등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며 갈등을 창조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분노는 정서적 에너지이다.
 
외폭(explosion)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고 속에서 내폭(implosion)으로 나 자신의 장기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나의 결혼생활 44년 동안 나를 제일 많이 괴롭힌 것은 분노라는 감정이었다.  내가 화를 낼 때마다 아내는 상처를 받았고 이것이 아내의 위장병과 고혈압, 그리고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다.
 
부부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대개 사람은 어디에 사나 비슷한 문제로 싸운다. 재정문제, 성문제, 시댁과의 관계,  짜증나게 하는 습관, 종교문제 등으로 싸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타협할 줄 아는 대화기술이며, 화가 났을 때 감정을 처리하는 기술이다.
 
분노 자체는 죄가 아니며 반드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엡 4: 26절을 보라. 화를 내라. 그러나 죄는 짓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분노가 이차적 감정(secondary emotion)이라는 것이다. 먼저 상처, 좌절감이라는 일차적 감정을 느끼고 분노가 이차적 감정으로 촉발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화가 나는가?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내 뜻대로 안될 때 화가 난다. 어린 아기가 언제 화를 내는가? 잠이 오는데 잠을 못 잘 때, 배가 고플 때, 욕구가 좌절되면 화를 낸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시당할 때, 존중 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될 때 화가 난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화가 난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상처를 받으면 화가 난다.
 
분노는 하나의 정서적 에너지이다.  우리는 이것을 폭발(explosion)할 수도 있고, 속으로 삭힐 수도 있다. 이것을 흔히 억압(repression)이라고 한다. 내폭(implosion)시킨다고도 한다. 분노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보존기제이다. 상처를 입으면 화가 나도록 만드셨다. 상처를 입었을 때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화가 나는 감정은 죄가 아니다.
 
이때 언행으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죄가 된다. 반대로 무의식 속에 억압하는 것도 죄가 된다.  옛날에 노함과 성냄, 분노로 표현하던 것이 현대에 와서는 스트레스(stress)가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현대인들은 열받는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속으로 누적되면 우리 몸의 취약한 부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누적된 분노는 위장병, 심장병, 당뇨, 고혈압,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화가 날 때, 수동공격(passive aggression)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이 쓰는 방어기제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직원이 상사에게 직접 화풀이를 하지 못하니까 간접적으로 보복하는 것이다. 약속을 어기거나 직무를 태만히 해서 능률을 떨어뜨리거나 상사나 가해자에게 간접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폭발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 속으로 삭혀 심신상관질환을 앓게 하는 것, 간접적으로 보복하는 것, 모두가 죄가 되는 행동이다.
 
세 가지 차원의 분노
 
성경은 “분을 내라,  그러나 죄는 짓지 말라”(Be angry, but do not sin)고 한다. 분노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감정적 차원과 인식적 차원, 그리고 행동적 차원이다. 상처받았을 때 분노를 느끼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생각과 행동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죄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형제를 보고 노하여 욕을 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형제를 보고 미워하는 자는 살인한 자라고 하였다. 분노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보복심을 갖고 미워하고 원한 감정(resentment=bitterness)을 가지면 이는 죄가 되는 것이다.
 
죄를 짓지 않고 분노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억제(surpression)하였다가 대화(confession)로 푸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계속하여 노하기를 더디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화가 났을 때 표현하기를 참는 것을 노하기를 더디한다고 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조그만 자극에도 화를 쉽게 낸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잘 25:28).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고 참을 수 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19-20).
 
바람직한 것은 노하기를 더디하고 참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나서 화를 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부의 경우에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해질 때부터 해 뜰 때까지를 하루로 본다.  그러니까 하루를 넘기기 전에 서운했던 감정을 대화로 풀고 잠자리에 들라는 말씀이다.
 
화가 났으면 화가 났다고 솔직하게 당사자에게 말하고 용서를 빌고 화해하라는 것이다. 대화로 풀고 화해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4:15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 진실을 말함으로 자라가라고 권면하고 있다. 사랑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다.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화가 났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해서 화가 났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듣는 사람이 듣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고 서로 화해한 가운데 잠자리에 들라는 것이다.
 
분노를 대화로 풀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다. 분노를 대화로 풀면 부부관계는 더 친밀해진다. 가정 사역자 데이비드 메이스는 분노는 친밀감을 위한 원자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단 잠을 자는 사람이다. 풀리지 않은 분노를 품고 자는 사람은 건강을 잃기가 쉽다. 만성적인 분노는 심장병과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29-32).
 
분노는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인간의 감정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어린 시절에 기본적 욕구가 좌절된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나는 4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을 뻔했던 사람이다. 양자미수사건을 겪으며 나는 자폐증 환자가 되었다. 말이 없어진 나를 보고 형님은 바보, 병신, 숙맥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나는 수없이 분노를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였다. 윗사람에게 화를 내서는 안된다는 부모의 훈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한 후 피해자인 나는 아내에게 가해자가 되었다. 만만한 아내에게 분노를 퍼부었다. 나는 분노 중독자로 살았다. 화를 내고 나면 후련하고 환기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화를 내면 성령이 근심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사관에 사표를 내고 상담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상담학을 공부하며 나를 진단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상처받은 성인 아이(adult child)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용서를 빌게 되었고 쓴 뿌리는 제거되었다. 공포에 떨던 아이들이 “우리 아빠는 수시로 터지는 활화산이었다. 그런데 이제 사화산으로 변했다”고 고백했던 기억이 난다.

분노가 해소된 나는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데 쏟고 있다. 나는 치료받은 분노 중독자이다.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일은 없다. 화가 났다하더라도 대화로 풀고 용서를 구하면 더 친밀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정동섭



안양에 있는 가족관계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종피맹) 총재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한국기독교상담심리치료학회 감독회원이다.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 상담과 가정사역(Ph.D.)을 연구하였으며 18년간 대전 침례신학대학에서 상담과 가정생활을 강의하였으며, 현재 침신대 상담심리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후 TV조선, MBN, 채널 A, CNN, CBS, CTS, 극동방송 등에 출연하여 유병언과 구원파의 실체에 대해 증언하였다. [모험으로 사는 인생],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등 50여 권의 역서와 [자존감 세우기], [부부연합의 축복],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등 15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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