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홀로 계시며, 전적으로 그가 뜻하시는 대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완전한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主權者)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의 뜻에 복종하여 일어나는 것이요,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일도 -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일조차도 - 그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악된 인간을 구원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변함없이 드러납니다. 죄악된 인류 가운데서 구원받을 자들을 하나님이 만세 전에 그의 영원하신 뜻대로 택정하시고, 때가 되어 아무런 공로나 대가(代價)가 없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야말로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처럼 명확한 성경의 가르침이 희미해지고, 그 대신 다른 그릇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서 득세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습니다만, 인간 자신이 구원에 기여하고 협력하는 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이 스스로 굴러가도록 만드신 후에 구체적인 세상사에 멀리 떠나계시며, 인간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없으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런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지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자연의 법칙을 통해 모든 조건을 구비해놓으셨으니, 사람은 그 법칙에 순응하여 세상을 합리적으로 운용할 뿐이요, 거기에 구원의 의미가 있다는 식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리켜 ‘이신론’(理神論), 혹은 ‘자연신론’(deism)이라 부릅니다. 이와 유사한 가르침으로 더 흔한 것은,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거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식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이 어떻게든 자기의 구원에 스스로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하나님과 사람의 합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100%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 거기에 조금이라도(5%든, 10%든 간에) 사람의 공로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구원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릴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도 자기의 구원에 대해 공헌한 바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처럼 죄악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가르침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현대 교회에 속한 많은 이들이 이런 사상을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오늘날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5세기경 펠라기우스(Pelagius: 360-418)라는 수도사가 가르친 사상입니다. 그는 베드로전서 1:16을 근거로, 하나님이 거룩하라고 명령하셨다면 이는 곧, 사람에게 스스로 거룩해질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추론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사람이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으며 따라서 사람이 최선을 다해 그 능력을 발휘하여 거룩을 향하여 정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이런 사상은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the council of Carthage)에서 공식적으로 이단(異端)으로 정죄받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조를 가리켜 “펠라기우스주의”, 혹은 “펠라기안주의” (Pelagianism)라 부릅니다만, 위에서 언급한 오늘날 흔히 교회 안에서 유행하는 사상은 펠라기안주의의 아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구원과 관련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은혜의 역사하심을 명확히 진술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시 3:8).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7)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 2:9).〠 원광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주의영광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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