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종교계 양분시킨 러시아 영화 ‘마틸다’

반대 이유‘거룩한 황제님의 이미지를 더럽히지 마라’

김정언/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10/23 [12:18]
▲ 문제의 영화 '마틸다' 포스터     

러시아에서 10월 26일 정식 개봉하는 영화 '마틸다'를 놓고 러시아 종교계가 양분화되고 있다.
 
이 영화는 마지막 차르였던 니콜라이(니콜라스) 2세가 미혼인 차레비치(황태자) 시절, 황실발레단의 미래 프리마 발레리나감이었던 마틸다 크셰신스카야와의 러브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러시아 연방 문화부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지만, 현재는 문화부가 영화 내용에 현저히 당황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극우파의 호전적 반대
 
영화 개봉에 강력 반대하는 세력은 주로 니콜라이를 성인시하는 정교회 극보수주의 그룹인 '기독교국-신성러시아'(KhGSR). 러시아 정교회는 공산주의 체제인 옛 소비예트 정권이 무너진 뒤인 지난 2000년, 니콜라이를 '순교자'로서, 성인의 한 명으로 추대한 바 있다.
 
니콜라이 2세와 황제 가족 일가는 1917년 10월에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의 결과로 이듬해 적색분자에게 암살됐다. 유명한 '아나스타샤'는 그의 막내공주였다.
 
KhGSR 등 극우분자들은 차르와 가족의 ‘거룩한 이미지’를 지키겠다는 불타는 일념으로 만약 마틸다를 개봉한다면 시네마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 28개 도시에 산재한 영화관을 보유한 러시아 최대 시네마 체인인 시네마파크 & 포물라키노는 관객 안전 보호 차원에서 모든 산하 영화관에서 "상영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알렉산드라 아르타모노바 체인 대변인은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제작진의 알렉산데르 도스트만 프로듀서는 "우려할 필요 없다"며 "어차피 사람들은 영화를 보러 올 것이다"라고 응수. 심지어 독실한 정교인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조차도 "개봉 첫날 감상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문제작의 알렉세이 우치텔 제작감독은 다양한 영화상 수상경력자로, 당초 단순히 8살 때부터의 크셰신스카야 개인의 삶을 그리려고 했다가 흥미를 돋우기 위해 황태자와의 정사를 결부시켜 만들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차르와 크셰신스카야가 나누는 "에로틱한 정사" 신들이 성인의 이미지를 구겨놓고 있다며 분노와 우려를 표해왔다.
 
최근에도 우치텔 감독의 변호사 사무실 바깥에 세워둔 두 대의 차량이 극우분자들의 방화로 불타버렸다. 현장에는 '마틸다를 위해 불타버려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이 영화는 이미 극동의 도시 블라디보스톡에서 삼엄한 경비 속에 상영된 바 있으나 일부 영화관들은 ‘기술적인 문제’ 운운하며 상영을 취소했다.
 
지난 8월 말에는 우치텔의 스튜디오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그의 한 건물에 화염병이 몇 개 던져졌으나 아무 탈은 없었다. 9월 4일엔 예카테린부르그 시에서 괴한이 지프차를 몰고 극장으로 돌입하면서 입구에다 불을 질렀다가 체포됐다.
 
정교회 성인의 한 명인 '성' 알렉산데르 네프스키 기념일인 9월 12일, 십자가 행진에서는 영화와 관련된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등장, 상트페트르부르그 대교구의 '교회와 사회 관계'부에서 비평 성명을 냈다. 아무런 허가도 축복도 받지 않은 단체인 '돈바스 인민 민병대'가 성일 축제에 현수막을 들고 다니며 오히려 민심을 교란했다는 것.
 
알렉산데르 펠린 상트페테르부르그 대교구 대사제는 또 다른 극우단체인 '국가해방운동'의 상트페테르부르그 지부와도 협력하지 말라고 경고. 국가해방운동은 십자가 행진 전 나름의 '곁다리 행진'을 허가해 달라는 요청을 했어도 승인을 받지 못했다.
 
운동권 상트페테르부르그 지부는 확실히 반정교회적이고 거의 신독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다른 단체에서 그들에게 협력하지 말라는 정교회측 경고가 있었다. 말은 '정교회의 순수성으로 회복하자'고 가르치면서 정교회 정신과 일치하지 않고,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적, 법전적 기초를 외려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 정교회측 판단이다.
 
또 다른 단체인 4040s(소로크 소로코프 SS)는 '마틸다'를 반대하면서도 RPTsMP를 옹호하는 쪽. 이들은 KhGSR 쪽을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마틸다 반대 입장에서는 서로 공통된 일대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특히 최근 연이어 발생한 극렬분자들의 과격 행동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 실제의 마틸다 크셰신스카야     © WC

어정쩡한’ 정교회의 입장
 
정교회 교회사회관계국의 바크탕 킵싯제 공보관은 "여러 언론들이 영화 마틸다 배급을 계기로 교회와 문화부 사이에 상당한 불일치점이 있는 양 보도를 하는데 근거 없고 당치 않다."고 강변. 하루 전날에는 알렉산데르 시치코프 관계국 부국장이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부장관을 질타하기도 했다. 
 
"내 생각엔 마틸다를 둘러싼 전체 상황은 메딘스키의 정치적 실책이다."는 그는 "미리 내다보고 이런 시국이 발생하지 않게 했어야 할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힐난했다.
 
앞서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대주교는 '마틸다'의 상영을 금지하자는 "준법 정교회 교인"들 5만 5천 명의 서명록을 접수했다. 그는 "이들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현재까지 마틸다 제작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는지 여부를 밝히질 않고 있는 문화부를 마냥 질타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킵싯제 대변인은 "우리는 '마틸다'를 두고 견해가 양극화돼가는 현상을 우려한다."며 "이젠 상호 비난을 멈추고 대화를 개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후 황실 가족의 추억에 대한 조건 없는 존경심을 호소한다."면서 특히 짐승 같은 비정한 인간들(볼쉐비키 공산당을 가리킴)에게 잔인하게 숨져간 황실 자녀들이 애처롭다고 덧붙였다.
 
역사 속의 진짜 마틸다

 
참고로, 영화 '마틸다'가 그린 니콜라스 2세는 결혼 전 청년 시절 폴란드 계열의 러시아 발레리나 크셰신스카야가 춤을 추다가 문득 그녀의 한쪽 젖가슴이 노출되는 광경을 보고 혹하여 사랑에 빠지게 돼 약 3년간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 그녀를 포기하고, 독일 황실의 헤세-다름슈타트의 알릭스 공주(훗날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와 결혼하게 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이 황후가 악명 높은 정교회 사제,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기도' 도움을 받은 그녀이기도 하다.
 
역사에 따르면, 니콜라이는 1890년 그녀의 졸업시즌, 당시 수도인 상트페테르부그르의 황실 전속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린 크셰신스카야의 졸업 공연에 차르 알렉산데르 3세 및 황실 가족의 일원으로 참석해 발레극 '말괄량이 아가씨' 도중 '파드되'(남녀가 나란히 함께하는 듀엣 댄스) 부분에서 그녀의 춤을 보다가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인 알렉산데르 황제는 공연 후 만찬 때 그녀를 불러 "우리 발레의 영광과 별빛이 돼 달라."고 치하 겸 주문을 했다.
 
당시 크셰신스카야의 나이는 17세였다. 그녀의 상관으로서 황실도 감히 어쩌지 못하던 절대적 존재였던 마리우스 페티파 안무감독은 어린 그녀에게 그런 직함이 걸맞지 않다며 이리저리 통제하려 했으나 결국 훗날에 마틸다는 황실의 입김으로 쟁취하고야 말았다. 페티파는 자기 일기 속에서 그런 그녀를 경멸하면서 "메스꺼운 돼지새끼"로 호칭하기도 했다.
 
마틸다는 그 후 여러 사람과의 잇따른 스캔들로 뭇사람의 입에 회자된다. 로마노프 왕가의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그의 사촌인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과 정사를 벌인 끝에 아들 블라디미르(애칭 보바, 훗날의 로마놉스키 크라신스키 왕자)를 낳았는데 아버지가 누군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스위스에서 갓 돌아와 공산혁명 지지 청중 앞에 연설할 때 연단은 바로 마틸다의 저택 발코니였다. 마틸다는 그 후 프랑스 파리로 옮겨가 1921년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과 결혼한 뒤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다.
 
1929년엔 자신의 발레 스쿨을 개설해 마르고 폰테인 등 기라성 같은 발레 후배들을 길러냈다. 64살 때는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로열 발레단과 함께 최후공연을 하기도 했다.
 
1960년엔 자서전을 펴냈고, 100세 생일을 8월 앞두고 파리에서 숨져, 그곳 생트 주네비에브 드보와 러시안 공동묘원에 묻혔다.
 
▲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와 가족     © WC

과연 마틸다가 성공적으로 개봉될지 어쩔지 아직은 작용할 변수가 많다.
 
정교회는 천주교나 다름 없이 차르 니콜라이 1세 같은 존재를 '성인'으로 시성해 받들지만, 성경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 성경은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 곧 모든 성도를 성인으로 칭한다. 단순히 황제 가족이라고 해서 순교자와 성인으로 떠받든다는 것은 그들 나름의 전통에는 어떨지 몰라도, 참 교회와 성경에 대한 모독이다.〠

김정언|교회와신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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