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헤브론메디컬센터, 눈물의 찬양 1
개원 10주년 맞아 비전 선포,“새로운 10년을 시작해야죠”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12/2017월호 표지   © 크리스찬리뷰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 빈민가에 현지인들을 위한 의료봉사 목적으로 설립된 ‘헤브론메디컬센터’(김우정 병원장)가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개원 10주년을 맞이한 헤브론메디컬센터는 11월 8일 기념예배와 함께 특별강연회, 음악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에는 기자와 함께 권순형 발행인, 황기덕 본지 편집자문단장, 부산 일신기독병원에서 32년간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민보은 선교사(Dr. Barbare Martin), 테너 김재우 집사 등 5명이 참석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찾는 헤브론메디컬센터. 줄곧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다. 헤브론메디컬센터는 기자에게 첫사랑 같아서, 처음으로 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 곳이다. 따라서 귀하고 소중한 것을 마지막 순간까지 간직하다 마침내 내놓고 싶은 그런 심정이다.
 
캄보디아는 국민의 96%가 불교신자여서 땅 끝 가운데 하나이다. 캄보디아의 국토 면적은 남한의 1.8배이고 인구는 1천700만의 인구 중 30세 이하가 절반으로 젊은이 비중이 높은 국가이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0.2명으로 한국의 2.0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 마저도 병원 시설 및 설비가 낙후돼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1970년대 폴 포트 독재시절 많은 의사 인력들이 희생된 것도 한 원인이다. 때문에 이들은 개인 약국이나 주술에 의지하는 것이 고작이다.
▲ 헤브론병원은 개원 10주년을 맞아 기념예배, 기념강연회, 음악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갖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로 치료하고 사람을 세워가는 병원’이라는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길을 떠나다

지난 11월 4일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 바로 캄보디아 프놈펜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은 사람을 사랑하게 해준다. 그 길 위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만남들이 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도 이런 만남을 통해 사역을 했으리라. 그 온기가 남아있는 난로와 같은 추억으로 삶을 살아가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기자 역시 취재 여행을 통해 늘 사랑할 준비를 다져 나가고 있다.
 
옷깃도 마음도 저절로 여며졌다. 개원 10주년 축하행사에 참석도 하고 취재도 할 겸  떠나는 길이기는 했지만, 오래 전부터 마음 끌리는 병원이었다. 헤브론메디컬센터, 이 병원은 허다한 병원 중의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여러 생각들이 분출한다. 한 3년 전,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헤브론메디컬센터에 대한 소식이 은은한 향기처럼 번져왔다. 예수 신앙을 토대로 한 한국인 의료선교사들이 연합해 설립한 무료병원이라 했다. 믿음의 토양 속에서 뿌리가 제대로 내려, 우리 모두가 흐뭇해 할 열매가 맺혀주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2015년 4월, 헤브론메디컬센터를 찾았었다.
 
절대 빈곤국가인 캄보디아에서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선교사들의 사역은 실로 기적에 가까웠고 캄보디아의 미래가 서려있었다. 그들은 안정된 직장과 성업 중인 병원을 뒤로하고, 편안함과 미래가 보장된 청사진을 포기하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 생선의 가운데 토막 같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자기의 나라, 부모, 친척, 고향을 떠났다.
 
선교 현장을 취재하면서 많은 선교사들을 만났다. 틈나는 대로 이야기하며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낯선 곳의 낯선 이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하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선교사들의 수고와 아픔이 내 일처럼 다가와서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다. 
 
유명한 목사들이나 교회를 위한 언론 기사는 많이 있어도, 이들을 위한 기사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기자가 할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 개원 10주년 기념식에서 인사하는 김우정 원장과 통역을 맡은 이윤수 선교사(왼쪽)     © 크리스찬리뷰

2007년 9월 현지인들 위해 4명의 의사가 설립
 
‘헤브론메디컬센터’는 10년 전인 지난 2007년 소아과전문의인 김우정 원장(64)과 3명의 한국인 의료선교사가 뜻을 모아 ‘헤브론 선교병원’으로 설립했다. 각기 다른 곳에서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이 힘을 합쳐 결실을 맺은 것은 캄보디아는 물론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사례다.
  
우연히 캄보디아로 단기의료봉사를 간 김우정 원장은  캄보디아 의료실정을 보고 그곳에서 의사로서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착해 의료 봉사활동을 해왔다. 당시 캄보디아의 의료시설은 매우 낙후돼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그는 2004년 프놈펜 시내 한 클리닉 의사로 지내며 현지 의료선교의 틀을 짰다. 그리고 2007년 캄보디아선교사회 등의 도움으로 초교파연합 의료선교에 나섰다. 프놈펜공항서 1km 떨어진 곳의 연못 땅을 메운 작은 병원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무료병원’ 입소문은 금방 퍼졌다. 방송으로 병원을 알린 일도, 간판을 붙인 일도 없었다. 전국에서 모인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새벽 2시부터 환자들이 몰려왔다.  햇빛 피할 곳도 없는 습지에 사람들은 쪼그려 앉아 마냥 순서를 기다렸다.
 
새벽 5시경 번호표를 나눠줬다. 김 원장은 진료하며 그들을 위해 예배를 드렸고 같이 기도했다. 그러다가 2010년 9월, 대지 2천 평, 총 건평 1천332평의 3층 건물을 신축해 진료를 시작했다. 더욱 놀랍게도, 이들 중 이 정도 크기의 병원을 운영해 봤거나, 건축해 본 경험을 가진 이가 한 명도 없었다.
 
18억 원의 건축비용도 한국교회와 미국 및 캐나다 한인교회들로부터 모금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국 조금도 빚을 지지 않고 완공했다. 
 
▲ 헤브론병원 원장 김우정 선교사(소아과 전문의)     © 크리스찬리뷰

2014년 8월 심장센터 개설
 
2014년 8월에는 심장센터를 개설해 지금까지 총 1백 명이 넘는 심장병 환자들이 이곳에서 수술을 받아 새 생명을 얻었다. 헤브론메디컬센터의 주선으로 한국으로 보내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돌아와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심장병 환자는 130여 명. 캄보디아는 전체 인구 중 20세 미만 연령층이 50%일 정도로 젊은 층이 많다.
 
아이들 수도 많은 편이다. 아이들 중 선천성 심장 기형 아동들이 200명 중 1명 정도 되는데 캄보디아 현지 의료 수준에서는 심장 수술을 할 능력이 못된다. 그러니까 심장센터 건립은 그동안 비싼 병원비에 의료기술 수준마저 열악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심장수술은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상황에서 이루어져 그 의미가 남달랐다.
 
선천적인 기형 장애로 진료와 치료는 고사하고, 약봉지조차 받지 못한 채, 평생을 심장질환으로 고통받았던 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었다.
 
지난 6월에는 2박 3일 동안 병원 숙소동에서 제1회 심장캠프가 열렸다. 선천성 심장기형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으나 너무나 집이 가난하여 도무지 미래의 꿈을 꿀 수 없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연령의 아이들 16명이 초청되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같이 먹고 씻고 놀고 자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중에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웃음 짓는 엄마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수심이 다 날아간 것 같았다.
 
아이들은 가슴에 커다란 수술자국이 있고, 병원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어 병원에 오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병원을 두려움 없이 활보하고 다녔다. 만나는 선생님들께는 발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쭙리업쑤어 록꾸르”(선생님, 안녕하세요)를 외쳐 인사를 했다.
 
그동안 심장수술을 받게 하여 건강이 회복되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 후 아이들 집을 방문하면서 삶의 모습이 전혀 개선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건강해지고 나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미래를 꿈꾸게 할 부모나 가족이 없이 방치된 상태였다.
 
그 모습이 수술 후 케어 애프터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것이다. 큰 수술을 받은 아이들이고 10세 이전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공급하는 일과 학령기 아이들이 학교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헤브론메디컬센터는 현재 12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자비량 선교사로 의사, 약사, 간호사가 30명 정도이고 현지인 직원이 90명 정도이다. 3개의 수술실과 중환자실 그리고 40여 병상을 갖춰 연간 5만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수술환자 역시 백내장 수술을 받은 120명을 포함해 연간 1천여 명에 이른다.
 
또한 현지인 의료인을 세우기 위하여 간호대학과 레지던트 수련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사람을 길러 세우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캄보디아에서는 2개의 의대 졸업생들이 매년 1천500명씩 배출되고 있지만 적절한 실습과 병원훈련을 받을 수가 없는 환경이다. 헤브론메디컬센터는 차세대 의료인양성을 위해 2014년부터 3년 과정 수련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5월, 세 명의 전공의가 수료했고, 현재 10여 명의 전공의가 수련을 받고 있다.  

▲ 헤브론병원은 지난 6월 11일 심장수술 받은 아이들을 초청하여 2박 3일 일정으로 심장캠프를 가졌다. 헤브론병원은 케어 애프터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수술받은 어린이들의 건강과 학업을 돌보아 줄 예정이다.     © 크리스찬리뷰

2016년 5월 간호대학 독립건물 준공
 
‘헤브론메디컬센터’는 개원 이후 7년까지 환자 전원 무료로 진료와 치료를 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고 직원도 많아지고 설비도 늘어나면서 운영비용이 증가해 현재는 10명 중 7명은 무료로 3명 정도는 유료로 진료를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재정 자립이 돼야 병원을 현지인에게 이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프놈펜까지는 6시간이 소요됐다. 밤 10시 30분경에 도착한 프놈펜공항은 지난번 들렸을 때와 비하면 산뜻한 느낌을 준다. 입국수속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광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데 예전처럼 불안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이런 신뢰감은 어디서 오는지 기자도 알 수 없었다. 세관원 또한 위압적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고 그러나 엄격했다.
 
공항에는 병원 행정실에서 일하는 김경우 선교사(64)가 마중 나와 있었다. 눈빛이 예리하고 붙임성이 있는 인상이었다. 차를 타고 우리는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거리엔 간간이 비가 뿌렸다. 기자는 빨려 들어가듯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시내 도로는 여전히 좁지만 2차선으로 반듯하게 포장됐고, 곳곳에 새 빌딩이 올라간다.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아 활력이 넘치고 자유스러워 보인다. 놀라운 사실은, 외국인 여행객이 캄보디아 화폐로 환전할 필요 없이 시내 어디에서든 달러를 자유롭게 쓴다는 점이다. 캄보디아는 이른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미국 달러를 자국 영토처럼 쓰는 경제정책)을 실행에 옮긴 대표적 국가다.
 
골목골목을 지나 드디어 헤브론메디컬센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제야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긴 시간 여행으로 침잠하던 마음이 갑자기 두근거리고 흥분이 번진다. 김경우 선교사는 우리 일행을 간호대학 기숙사로 안내했다.
 
연건평 1천100평 5층의 간호대학 건물은 지난 5월 준공하여 입주했다.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고 현재 64명의 현지인 학생들이 수업 중에 있다. 특히 올해 첫 졸업생 29명을 배출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졸업생 29명 중 1명만이 크리스찬이었는데 졸업을 앞둔 시점, 12명이 세례를 받았다. 
 
▲ 캄보디아 의사 3명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수료식을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수
 
12시에 잠이 들었는데 새벽같이 일어났다. 소형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정문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환자들은 밖이 아닌 신축건물 대기실 안에서 때 묻은 거적 담요를 깔고 덮고 누워 있었다. 병원 측의 배려로 전날 밤 11시면 신축건물 대기실을 열어 놓는다고 했다.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헤브론메디컬센터는 개원 10주년을 기념해 환자들을 위한 대기실을 신축했다. 현지인 교회로도 사용하고 있는 이곳에서 하루 밤을 꼬박 새운 환자 가족이 언뜻 헤아려 보아도 100여 명은 족히 되어보였다. 그야말로 헤브론병원은 이 일대의 생명줄이었다.
 
새벽 5시경이 되자 번호표를 나눠줬다. 번호표를 받은 환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 먹었다. 아침식사다. 미리 음식을 챙겨온 사람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불을 지펴 먹을 것을 만드는 사람도 꽤 보였다. 아침식사를 마치자 마당을 쓰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아, 그들은 병원 주위를 깨끗이 치우고 있었다.
 
아이들과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자 모두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달라는 절박하고도 조용한 외침일 것이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다가와 손을 내밀며 악수를 건넸다. 옥구슬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도 몸이 불편한 할머니도 웃으며 손을 건네며 ‘안녕’ 인사를 했다.
 
세상에! 캄보디아에서 현지인으로부터 한국말을 듣는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감동이 몰려왔다. 아! 이것이 김우정 원장이 캄보디아에 뿌려놓은 사랑의 씨앗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보았다.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아!” 하고 또 소리를 질렀다. 김 원장이 꿈꾸었던 것이 바로 이거였구나!  
 
▲ 간호대학 전경     © 크리스찬리뷰

김우정 선교사는 캄보디아를 처음 찾아갔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청진기도 없는 시골병원이 허다했어요. 아이들이 아프면 그냥 운명에 맡기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 캄보디아 의료선교만 다녀오면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생각하고 뭐하고 하면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아 ‘일단 가자’였어요. 처음에는 아내가 동의를 못했죠.
 
우리 선교사님들의 퍼센트를 보면 일반 선교사들은 많은데 의료 선교사가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에 비하면 너무 적다. 왜 그렇겠느냐. 나 같은 열정을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주셨을 거다. 그런데 그때 순종을 하지 못하면 그 열정은 식고 만다. 당신이 나를 말리면 나 역시 또 한 사람의 그런 사람이 될 텐데 그러면 되겠느냐며 아내에게 강하게 얘기를 했죠.”
 
눈자위가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세상에, 아무도 울지 않는데 혼자 우는 그 짓 같이 멋쩍은 일은 없을 것이다. 대체 눈물이란 무엇인지, 아마도 영혼과 육체가 통하는 통로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마음이 슬플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육체의 한 현상이 그것이니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토록 감정을 복받치게 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김 원장의 삶이 너무도 감동적인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가 먹어서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모두 아니었다.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 헤브론병원은 개원 10주년을 맞아 환자들이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기실을 신축하고 밤 11시부터 병원문을 개방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우정 원장과의 대면
 
2016년 시드니의료선교대회에서 만난 후 1년 2개월 만의 재회.
 
열대바람이 사람을 쉽사리 늙게 만든다더니 그가 꼭 그 모양이다. 그의 앞머리에 숭덩숭덩 틈이 보였고, 어깨도 예전보다 한 뼘쯤 주저앉은 느낌이다. 그러나 악수를 나누는 오른손이 사뭇 기운찼다. 사실 김 원장은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다.
 
“아직은 강건합니다.”
 
기자의 속내를 들여다 본 무언의 시위 같기도 했다. 그는 시절에 따라 우로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리라, 돌이켜 생각한다. 지금의 자리 역시 세월의 풍상을 두루 겪어 모난 부분이 깎인 후에야 허락하신 사역이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의욕과 혈기만으로 감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캄보디아 선교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캄보디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고 해서 선교현장의 고단함이 특별히 줄어들 리 있겠는가. 사모 박정희 선교사와 함께 오로지 자신들의 것을 쏟기만 했을 뿐 선교사 후원금 한 푼 챙긴 적이 없다. 행여 자신들의 후원금이 들어오면 역시 병원으로 입금시켜 후원금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
 
김 원장은 예나 지금이나 캄보디아 현지인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 복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었든 반대의 경우든, 그들은 참으로 복 받은 이들임이 틀림없다.
 
김 원장은 “캄보디아에서 첫 개원예배를 드릴 때 150여 명의 선교사들이 참석했다”며 “당시 내세울 것도, 보잘 것도 없는 1차 진료를 위주로 하는 구멍가게 같은 병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잘 될까,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연 5만여 명의 캄보디아인들을 진료하는 의료시설로 성장했으며 입원과 수술을 하는 2차 진료까지 하는 병원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을 맞는 소감을 묻자 “이 10년의 긴 시간 동안 좋은 협력자로 함께 수고하신 여러 선교사님들의 땀과 헌신이 헤브론의 기초 위에 부어졌다”며 “많은 동역자 선교사님들의 눈물의 기도와 사랑이 열매를 맺은 결과”라고 말했다.
 
10년이면 긴 세월이지 않느냐,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지켜준 힘은 무엇이었느냐고 기자가 물었다. 그는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인도하심입니다. 감사할 뿐이죠.”
 
▲ 헤브론병원 개원 10주년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테너 김재우 집사, 기타리스트 함춘호 교수 등이 함께 한 음악회, 기념예배, 기념식, 바바라 마틴 호주 선교사 초청 특별강연회, 헤브론병원 24시 사진 전시회 등이 진행되었다.             © 크리스찬리뷰

말해 놓고,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제아무리 가파르게 흘러간 세월일지라도 마음에 새겨진 일들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부부 간에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 생각합니다. 부부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같이 나누어지고, 위로 받고 격려 받는 장이 되어야 하겠지요.”
 
김 원장은 이렇게 겸손한 영혼이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고 사리분별에도 누구보다도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난  듯, 함부로 입에 올려 판단하지 않으면서도 불의에는 엄격한 사람이라는 게 주위의 평이다.
 
한국의 공영방송 KBS가 성탄특집으로 헤브론메디컬센터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김우정 원장이 앞에 나서기를 꺼려해 설득하는데 담당 피디가 진땀을 뺐다고 하지 않은가. 시드니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서 잠시 만난 KBS 담당 강지원 피디는 촬영을 하는 동안 자꾸만 눈물이 고여서 몰래 훔쳐야 했다고 실토했다.
 
자기를 비우고 굴복시키며 철저히 낮아져서 종이 되는 속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주님을 닮아 종이 되려는 이들을 통해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런 낮아짐의 풍경은 보기 힘들다. 하늘은 그것을 슬퍼하시는 것이다.
 
기자는 그 성찰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안타까울 때는 언제인가 물었다.
 
▲ 헤브론병원 1층에 상설전시중인 ‘헤브론병원 24시’     © 크리스찬리뷰

“수술을 한 후 환자 심방을 갈 때가 있습니다. 수술을 받아서 몸은 호전되고 회복됐는데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병이 있는데다 워낙 가난한 나라가 아닙니까. 아이들이 수술 받고 건강하게 회복이 됐는데도 지금까지 해왔던 익숙한 생활에 그대로 방치된 상황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수술 후 후속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로 연결하고 뒷받침까지 해주는 것도 고민 중입니다.”
 
▲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구령에 맞춰 ‘모이, 삐, 바이(1,2,3)를 힘차게 외치며 병원 마당을 걷는 아이들.                       © 크리스찬리뷰

애프터 케어(심방일지)
 
심장에 선천성 복합기형을 갖고 고생하던 환우들이 질병을 해결하고 난 후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병원 측은 궁금하여 수년 전에 수술을 받은 아이들과 최근에 수술을 받은 사람을 몇 집 찾아가 조사했다.
 
“11살인 ‘티어라’는 2012년 한국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돌아와 건강해졌고 이듬해 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성실한 아이다. 그러나 아빠가 없는 ‘티어라’는 엄마와 시골 외갓집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도 공부를 강요한 일도 없었지만 맑고 총명한 아이 ‘티어라’는 초등학교를 아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올 가을에 중학교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혼자 일하는 엄마는 두 자녀가 학교에 갈 때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이들의 학업을 중단하려고 한다. 올 가을 진학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2017년 8월)
 
“‘티어라’는 전북은행의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왔다. 프놈펜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고 오빠와 함께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생 센터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엄마는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늘 아프고 공장 일로 밤에 늦게 퇴근하여 두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센터에서 생활을 시작한 일 주일 후 티어라를 방문했는데 얼마나 즐겁게 적응하며 생활을 하고 있는지 친구도 많이 생겼고 영어공부도 시작했다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며 자랑한다.”(2017년 10월)
 
“12살인 쓰레이삣은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았을 때 심한 합병증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던 아이였다. 많은 이들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이 아이를 살리셨다. 수술 후 건강이 회복되어서 학교에 입학을 했다.
 
2년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아직까지 글씨를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상태다. 학교 교장 선생님과 상의한 후, 방과 후 선생님을 세워서 쓰레이삣을 지도하고 있는데 여러 달이 지났지만 이름만 간신히 쓰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빠는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이고 일도 하지 않지만 엄마는 봉제공장에 나가서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다.”(2016년 9월)
 
“오늘은 아이의 얼굴이 어둡다. 그 예쁜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다. 학습평가를 하러 집에 찾아온 것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힘든 심장수술을 받고 위험한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쓰레이삣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의 기도를 받으며 살아났다.
 
이 생명을 귀히 여긴 어느 분이 한 칸뿐인 누추한 방에 장마 때마다 물이 넘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방 앞 쪽에 높이를 높여주고 방안에도 타일을 붙여주셨다. 학교에도 교실에 타일 시공을 해주고 화장실과 몇 가지 시설을 갖추어 주셨다. 학교 교장선생님 딸이 개인지도를 통해 글자를 가르치고 있는데 학습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보여서 안타깝다.
 
오늘도 1년 이상 받은 수업으로 이름과 자음을 쓰는 것만 보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쓰레이삣이 두 자리 숫자계산을 척척 해냈다는 것이다.”(2017년 10월 20일)
 
“22살의 라몬의 부모는 4형제를 낳고 이혼하였고 엄마는 현재 재혼한 상태이다. 아빠는 재정적인 능력이 전혀 없고 2살 위의 누나가 네 형제의 엄마가 되어주었다. 누나는 라몬이 심장수술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러 병원을 찾아 다녔다.
 
라몬은 복잡한 심장기형으로 수술이 매우 복잡했으나, 헤브론병원에서 1, 2차 수술을 받은 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교에 다니지 못하다가 20살이 지나 학교에 복학하였는데 공부를 아주 잘하는 기대되는 학생이다.”(2016년 7월)
 
▲ 심장수술 후 폐에 물이 차는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쓰레이삣은 헤브론병원 의료진들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때부터 퇴원하여 학교 입학 과정을 시리즈로 엮었다.     © 크리스찬리뷰

후원은 세상을 바꾸는 힘
 
“아주 먼 깡촌에서 헤브론병원에 찾아온 엄마가 있다. 이제 26살인 엄마는 얼마 전 오토바이 사고로 남편을 잃어버리고 하나 뿐인 아들 싼 나라(4살)의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 헤브론병원에 왔다. 차가 들어갈 수도 없는 산 속에서 큰 길로 내려와 프놈펜으로 가는 차를 타고 7시간 이상 왔다. 할 일거리가 없는 깊은 산 속에서 살아야 할 만큼 의지할 곳이 없다.
 
그러나 아이는 혼자 있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서 엄마가 혈액은행을 다녀오는 긴 시간 동안 울지도 않고 침대에서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고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세상과 단절된 산 속으로 엄마를 따라 되돌아 가야하는 싼 나라도 다른 아기들처럼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17년 9월)
 
“생후 3년 3개월이 된 쓰레이리스는 지난 5월에 헤브론병원에 온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팀에게 심장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에 9.5kg이었던 체중이 지금은 12.5kg이다.
 
끊임없이 자주 먹고 모든 사람에게 인사도 잘한다. 아주 예쁜 미소도 짓고 춤도 보여준다. 이제는 마음대로 잘 뛰어다닌다. 그러나 아빠가 건축자재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얼마 전에 사고를 당했다.
 
오른 쪽 발가락이 절반 정도 절단되어 현재 일을 못하고 있다. 식구는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많다.”(2017년 9월)
 
“춘 완리읏은 현재 12살이다. 술을 좋아하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던 아빠는 심장병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자 집을 나가서 지금까지 방황하는 생활을 한다.
 
생후 1개월부터 심장병 증세를 보인 완리읏은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위해 많은 대기시간을 보내고, 올해 헤브론병원을 찾아와서 이번 9월에 수술을 받았다. 치아관리가 되지 않아 모든 치아가 거의 썩어있어서  치과치료를 2달 동안 마치고 나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엄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  집으로 들어온 후 외할아버지는 더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고 할머니는 걱정을 한다.”(2017년 9월)
 
“11살인 싸론은 개심술(심장을 여는 수술)을 하지 않고, 심장 조영술로 시술을 받고 건강해진 아이다. 아빠는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밖에 또 다른 가정을 만들어 살면서 집에는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않고 있다.
 
엄마는 공장을 다니면서 네 아이를 돌보는데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다. 싸른은 현재 4학년이지만 아직도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시술 후 건강이 좋아졌고, 여러 가지 테스트에 총명하게 반응을 보여서 지도를 통해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2017년 7월)
 
김 원장은 “캄보디아 어린이들을 한 사람의 건강한 사회인이 되도록 도와주고 싶다”며 “학교뿐 아니라 지역으로 돌아가면 교회가 없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원 10주년을 맞아 ‘비전선포식’을 갖고 헤브론메디컬센터의 체계를 더 잡아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환자 가족  © 크리스찬리뷰

한경직 기념상 수상
 
김우정 원장의 삶과 사역이 알려지면서 경기고 동창회(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JTBC 회장)는 김 원장을 ‘2016 자랑스런 경기인상’ 수상자로 선정, 지난 1월 12일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시상했다.
 
그리고 동안 이승휴 사상 선양회(이사장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 비서관)는 김 원장에게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 지난해 10월 3일 삼척 죽서루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상패와 상금을 수여했다.
 
뿐만 아니라 (재)슈페리어재단과 (사)한경직 목사 기념사업회는 헤브론메디컬센터를 ‘2017년 제4회 한경직 목사 기념상 단체수상자로 선정해 상패와 상금을 수여했다. 슈페리어재단은 한경직 목사의 삶을 기념하며 선교와 봉사의 이념으로 설립한 선교 재단법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비판하지만 지금도 이곳 캄보디아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못 이겨 인생을 바쳐 봉사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그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도 신앙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기자를 이곳으로 부르신 것도 그 이유라 믿는다. 〠 (계속)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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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7 [14:31]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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