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역 32년은 도전, 눈물, 기쁨, 풍요로움의 시간

헤브론병원 개원 10주년 기념 특강

강사|민보은(Dr. Barbara Martin), 사진 | 입력 : 2017/11/27 [15:32]
▲ 헤브론병원 개원 10주년 기념식에서 강연하는 민보은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이 글은 캄보디아 헤브론병원 개원 10주년을 맞아 호주 선교사로 한국(부산) 일신기독병원에서32년간 헌신했던 민보은 선교사(Dr. Barbara Martin)가 지난 11월 8일 헤브론병원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지수 목사(본지 영문편집위원)가 번역, 2회로 나누어 연재한다.<편집자주>

서론

헤브론병원(헤브론메디컬센터) 개원 10주년 기념 행사에 초청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초대받은 것은 저에게 커다란 특권입니다. 헤브론병원 사역에 관련된 모든 분께 축하드립니다.
 
특히 2007년에 이 의료 사역을 시작한 4명의 의사들, 김우정 소아과 의사, 이철 마취과 의사, 황대영 소아과 의사, 최정규 치과 의사의 비전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의료 사역을 시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네 분의 의사들은 캄보디아에서의 절실한 필요성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했으며 모든 필요에 대해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훌륭한 병원 세우기, 빈민을 돌보는 병원 세우기, 직원을 돌보고 양육하는 병원 세우기, 독립을 준비하는 병원 세우기 등 중요한 목표들이 성취되었고, 선교 병원의 훌륭한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닥터 김이 초창기부터 여전히 병원장으로 계시는 것이 참 좋습니다.

▲ 부산에 위치한 개원 초기 일신병원     © 크리스찬리뷰

일신병원과 헤브론병원
 
헤브론병원은 여러 가지면에서 1964년부터 1995년까지 부산 일신기독병원에서 의료 선교사로 제가 경험한 많은 것들을 상기시켜 줍니다. 유사점은 많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저는 일신병원이 개원 10 주년을 맞이한 다음 해부터 일신병원에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헤브론병원 (Hebron Medical Center)과 마찬가지로 일신병원은 작게 시작했지만 성장은 헤브론병원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병원은 두 명의 자매 헬렌 맥켄지 의사(Dr. Helen Mackenzie, 한국명 매혜란)와 여동생 캐서린 (Miss Catherine Mackenzie, 한국명 매혜영) 간호사가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그들의 부모님은 선교사였습니다. 두 자매들은 어린 시절 한국에서 의료 사역의 필요성을 보았기 때문에 호주로 귀국한 이후에도 의료 선교사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 가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들의 복귀는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으로 인해 지연되었지만, 결국 그들은 1952년 1월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부산은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난민 도시였지만 맥켄지 자매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원은 제한적이었습니다. 한국 정부, 유엔 기관 및 다른 선교사들의 조언에 의하면, 부산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의료 사역은 출산에 관련된 부분이었고, 이 부분은 두 자매가 전공했던 분야였습니다.
 
특히 세 가지 부분이 가장 필수적인 것들이었는데 그것들은 1) 여성이 아기를 출산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 2) 출산을 돕는 산파들의 간호사 교육 3) 산부인과 여성 의사의 교육이었습니다.
 
일신병원은 헤브론병원과 거의 같은 날 9 월 17일에 문을 열었지만, 헤브론병원보다 훨씬 이전인 1952년에 부산진교회의 유치원 홀에서 15개의 침대와 10개의 유아용 침대를 놓고 병원 문을 열었습니다. 다섯 명의 병원 사역자들이 있었는데, 헬렌 의사와 캐더린 간호사, 간호사 겸 번역가 한 명, 복음 전도자 겸 오피스 매니저 한 명 , 요리사 겸 청소부 한 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주된 사역은 산부인과 및 신생아 보살핌이었습니다. 병원은 곧 환자들로 가득 차 버렸고, 육군 야전 침대는 배려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침대 밑에 놓여져야 했습니다.
 
새로운 건물에 대한 필요성이 시급해졌고, 1956년에 75개의 침대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병원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964년에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병원은 환자들로 넘쳐나 복도에 군용 야전 침대가 가득 찼었습니다.
 
소규모 클리닉으로 시작한 헤브론병원은, 일신병원과는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더 큰 병원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헤브론병원이 선교사들 사이에서 알려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단기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헤브론병원이 점차 성장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가 지나면서 헤브론병원은 더 커질 것입니다.
 
일신병원은 수 년에 걸쳐 더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지금은 320개의 침대를 수용하는 규모로 성장했으며, 부산 북부 교외에 분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 현재의 일신병원.     © 크리스찬리뷰

일신병원에 가게 된 계기
 
헬렌 맥켄지 의사가 일시적으로 휴가를 간 1964년에 저는 임시로 일신병원에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훈련된 한국 의사가 한 명뿐이었는데, 그 의사가 인턴들을 감독하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진료를 하기에는 너무 벅찼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 훈련을 마쳤을 때 저는 일 년 동안 한국에서 의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15살 때부터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고 제가 가야 할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15개월 동안 한국에 가서 사역하는 것이 다른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기 위한 최종 준비 단계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한국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에 머물기로 결정한 다음에도 얼마 동안에는 여러 가지가 의심스러웠습니다. 왜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한국으로 부르시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나는 모든 사역이 너무나 즐거워서 머물고 싶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한국에서 머문 여러 해 동안

 
저는 한국에 가기 전에 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지만, 한국은 정말 멋진 곳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사역한 32년은 도전, 눈물, 기쁨, 풍요로움의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 강연하는 민보은 선교사 (Dr. Barbara Martin)     © 크리스찬리뷰

도전 과제
 
저에게 다가온 즉각적인 도전은 의료적인 도전과 언어였습니다. 처음에는 장기간 머물 계획이 없기 때문에 언어 학습을 우선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의료적인 문제는 즉각적으로 제가 다가왔습니다.
 


▲ 1950년대 초 일신병원 입원실     © 크리스찬리뷰

의료 문제
 
저는 의학적인 전문적인 훈련을 마쳤지만, 일신병원에서 저는 의료 훈련 중에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과 호주에서는 보기 드문 임신 합병증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이것은 주로 출산 전 관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보낸 첫 번째 주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산모 한 명이 큰 고통 속에 병원을 찾아 왔을 때 제가 홀로 진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산모는 출산을 앞두고 큰 진통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이미 자궁 안에서 죽었습니다.
 
자궁이 파열되면서 산모 역시 거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위급한 환자를 처음 접했지만, 고맙게도 그 산모는 수술을 받고 살아 남았습니다.
 
출산 전 관리를 통해 예방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임신 합병증들 중 하나는 경련을 일으키는 자간증(경기)입니다.  이것은 산모가 고혈압으로 인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고, 이럴 경우, 산모와 태아가 모두 죽을 수 있습니다. 제가 훈련을 받는 동안 이러한 합병증은 단 한 번 보았는데, 일신병원에서 사역한 처음 몇 년 동안 매 년 이 합병증에 걸린 1백여 명의 환자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태반에 출혈이 생겨 병원을 찾은 산모가 있었는데, 아기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아 왔습니다. 이런 증세로 산모까지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국에서 사역하던 기간 동안 일어난 놀라운 일들 중 하나는 산모 사망률, 아기 엄마 사망률, 주산기 사망률, 출산 전 또는 출생 후 7일 이내의 유아 사망률이 크게 변한 것입니다.
 
우리는 1967년에서 1971년 사이에 진료 자료들을 조사했는데, 그 기간 동안 78명의 산모 사망자가 생겼습니다. 한 달에 거의 두 명의 산모가 죽었고, 출산율은 610/100,00이었습니다. 그러나 1991년에서 1995년까지는 출산한 5만 1,200명의 산모 중에서는 2명의 사망자만 있었으며, 출산율은 3.9/100,000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산전 관리의 증가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1960 년대에 일신병원을 찾은 여성 중 33%만이 산전 진찰을 받았지만, 1990년대에는 80%가 산전 진찰을 받았습니다. 물론 산모의 합병증 관리가 개선되었지만, 간단한 산전 관리가 그러한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또 다른 도전은 미숙아를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2~3개의 기본적인 배양기만 가지고 있었는데, 배양기가 사용 중이면 일반 유아용 침대에서 다른 미숙아들을 돌봐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1970년대 초까지 소아과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산부인과 직원들과 레지던트들이 아기들을 돌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일신은 미숙아의 생존율이 다른 병원보다 더 높아서, 다른 병원에서 태어난 미숙아들이 일신병원으로 오기도 했습니다.
 
신생아 사망률은 1967-1971년도에 35.6/1000이었고, 1991-1995년도에는 10.3/1000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결과를 보았을 때 우리는 많이 고무되었습니다. 이는 특별한 소아 보호 돌봄(Specialist Pediatric Care)을 통한 개선된 치료법 때문이지만, 임산부의 건강 증진 및 산전 관리로 인한 비정상적인 문제를 조기에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결과를 보여 주더라도 통계는 약간 지루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태반이 나오지 않는 환자가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낳기 전 날 쌍둥이가 배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아기를 낳았는데 태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아기는 입원하기 몇 시간 전에 태어났지만 태반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녀를 검사했을 때 우리는 아직 한 명의 아기가 임산부 배 속에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기는 몇 시간 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 태반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3일 동안 3 명의 아기를 낳았습니다 - 모두들! 그것은 긴 노동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느 날을 생일로 정하고 축하했는지 모릅니다.
 
또 다른 출생 이야기는 네 쌍둥이 이야기입니다. 1980년에 한 젊은 어머니는 중독증으로 입원했으며 복부 크기 때문에 움직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네 쌍둥이 임신이 진단되었고 제왕 절개수술을 36주째에 했습니다. 수술실은 꽤 복잡했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했고, 간호사 팀은 태어난 아기를 돌보았는데, 12명의 간호사들이 돌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아기들이 잘 자랐습니다. 병원 직원들은 계속해서 네 쌍둥이 가족을 도왔습니다. 직원들은 세탁기를 구입해 주었고, 또한 가족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2년 전에 두 명의 딸들이 결혼을 했고, 한 명은 아이를 낳았습니다.
 
저는 또 다른 이야기, 좋은 이야기, 슬픈 이야기, 한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보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종종 살아남은 많은 아기들이 다른 병원에서 태어났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저희는 이 모든 것이 병원 직원들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많은 기도로 인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현재의 헤브론병원 입원실     © 크리스찬리뷰

언어 도전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의료 사역의 도전일 뿐만 아니라 언어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부산에 도착했을 때 장기간 머무를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언어 학교에 가지 않고 몇 가지 필요한 기본적인 단어만 배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한지 약 18개월 후 언어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저는 정말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말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 <다음 호 계속>

▲ 일신병원 조산 간호사 12기 수료 기념. 앞줄 오른쪽 2번째가 설립자 겸 원장 헬렌 맥켄지 의사, 바바라 마틴 의사, 케서린 맥켄지 간호사.     ©크리스찬리뷰
 
민보은 (Dr. Barbara Martin)

·1933. 10.30: 호주 멜본 출생 ·1957. 12.: 멜본의과대학 졸업·1964. 1.~1995 .12.: 한국 부산 의료 선교사(1977년까지 호주장로교선교회, 이후부터 호주연합교회) 일신기독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로 32년간 재직 ·1965. 3.: 한국 의사 면허증 취득 · 1965. 7.: 한국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증 취득 ·1996. 1,~2004. 2.: 호주 뉴카슬 Mater Hospital 완화치료 전문의·2004.6.~2012. 9.: 호주 멜본 Nothern Hospital 완화치료 전문의.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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