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

원광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7/11/27 [15:40]
성경은 터럭만큼의 빈틈도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철저하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점을 주장하다 보면 인간의 인격성이나 도덕적 책임, 혹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무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깎아내리고 부정하며, 어떻게 해서든 인간의 자유 의지와 도덕적인 책임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고자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주관하심을 가르칩니다. 예컨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없애고자 노예로 팔아버린 일은 그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른 것이었고, 따라서 그 일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제 아래 일어난 것임을 성경이 천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악한 행위를 선용하셔서 그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신 것입니다(창 45:5-8).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미워하게 하셨고(시 105:24-25),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내어주지 않도록 하셨습니다(출 4:21).
 
뿐만 아니라 죄악된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사 6:9-10). 또한 가룟 유다와 헤롯과 빌라도를 움직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신 것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셨습니다(행 2:23; 4:28).
 
성경은 이처럼 두 가지를 동시에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자시므로 그의 뜻과 결정이 없이는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처지에서 의사 결정을 하며 따라서 그가 범한 죄악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보기에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y)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선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자시라는 사실을 생각의 전제와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에, 무엇보다 먼저 성경이 근본적으로 가르치는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성경강해자인 아더 핑크(Arthur Pink: 1886-1952)의 다음과 같은 말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사람과 그의 세계에서부터 출발하여 거꾸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 함께 출발하여 사람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 오늘날의 세상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거꾸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려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과 전혀 관계가 없으신 것 같아 보일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하여 세상에까지 내려가면, 오늘날의 문제에 대해 빛이 비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죄를 향하여 진노를 불같이 발하십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니 그를 대적하는 반역자들에게 그의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성실하시니 그의 말씀의 지엄한 경고들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니 아무도 그를 저항할 수가 없고, 그의 역사하심을 뒤집는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전지하시니 그 어떠한 문제도 그를 짓누를 수가 없고, 제아무리 힘든 난제도 그의 지혜를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지극히 강조할 말씀이 있습니다.
 
곧, 믿음이 발휘되면, 오로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복된 진리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 진리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믿음의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이성에만 의지하는 신학과는 전혀 다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습니다(히 11:27).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함으로써 갖가지 실망스런 일들과 인생의 쓰라린 것들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당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어떠한 처지나 상황에 있더라도 - 누추한 오두막집에 거하든, 캄캄한 지하 감옥에 갇히든, 혹은 장작더미 위에서 순교자의 처지가 되든 - 시편 기자와 더불어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감각적인 느낌에 근거한 언어가 아닙니다. 바로 믿음에 근거한 언어입니다.”〠

원광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주의영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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