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으로 복음의 빚을 갚는 사람들

한국여전도회찬양단

글|김환기, 사진|박성현 | 입력 : 2017/11/27 [16:10]
▲ 창단 25주년을 맞은 한국여전도회 찬양단이 제11회 해외연주회를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가졌다. 사진은 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집회 연주회 장면.     © 박성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여전도회전국엽합회' 산하 '한국여전도회찬양단'이 창단 25주년을 맞이하여 제11회 해외 연주회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있었다.
 
1898년 평양 널다리골 교회에서 최초로 조직된 여전도회는, 1928년 교단총회의 허락으로 '여전도회전국연합회'가 창설되었고, 현재는 전국에 70지 연합회, 130만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여전도회 찬양단'은 찬양을 통한 복음선교와 교회 연합운동을 위한 참여, 그리고 여전도회 각종 행사의 음악봉사들을 목적으로 창단되었다. 1992년 11월 1일 제1대 단장으로 김희원 장로, 2005년 제2대 단장 이숙자 장로에 이어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제3대 단장으로 홍기숙 장로가 찬양단을 섬기고 있다.
 
‘한국여전도회찬양단’은 10월 18일 새벽종명성교회, 19일 시드니신학대학교, 22일 시드니 우리교회, 동산교회 등 6박 7일간의 시드니 일정을 마치고 지난 10월 25일(수) 뉴질랜드로 건너가 25일 오클랜드한인교회에서 집회를 끝내고 10월 26일(목) 귀국했다.
 
10월 21일 오전 9시, 찬양단의 숙소인 '파라마타 노보텔'에서 잠시 인터뷰를 했다. 아침 시간이라 호텔 로비는 혼잡하였다. 찬양단을 창단한 김희원 장로, 단장인 홍시숙 장로, 총무인 최현순 권사, 지휘자 이중대 교수, 반주자인 전현숙 씨를 로비 커피숍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주선한 배진태 목사도 동석했다.

- 찬양단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찬양단을 창단한 김희원 장로가 말문을 열었다. 
 

▲ 한국여전도회 찬양단의 열창     © 박성현

"찬양단은 1992년 11월 1일 창단했습니다. 1998년은 여전도회가 시작한지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여전도회 창립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창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여전도회성가단'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  '한국여전도회찬양단'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 성가단과 찬양단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지휘자인 이중대 교수가 말을 이어갔다.
 
" '성가'란 '거룩한 노래'라는 뜻입니다. 타종교에서도 성가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내에서는 '성가보다는 찬양'이란 말이 더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통합 측 교단에서는 '성가' 대신 '찬양'이란 용어로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타교단에서도 그렇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여전도회연합회와 한국여전도회찬양단과의 어떤 관계인가요?
 
다시 김희원 장로가 말을 받았다.
 
"여전도회 연합회에 산하에는 여러 부서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한국여전도회찬양단'입니다. 저는 여전도회연합회 35대 회장을 역임했고, 홍단장은 40대 회장을 역임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찬양단과 연합회는 아주 긴밀한 관계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더구나 홍단장은 '여전도회 작은자복지재단' 이사장입니다.”
 
▲ 연주회를 마친 후 지휘자 이중대 교수에게 배진태 목사(시드니우리교회)가 화환을 전하고 있다.     © 박성현

- '여전도회 작은자복지재단'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죠?
 
찬양단 단장이자, '작은자복지재단' 이사장인 홍기숙 장로가 답했다. 
 
"정말 부족한 제가 2009년부터 지금까지 찬양단 단장으로 섬기고 있고, 2012년부터는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은자운동은 결손가정 아이들을 중심으로 무의탁 노인과 장애인까지, 사회의 약자들을 '작은자'로 지칭하며 장기간의 지원을 통해 자립의 길을 열어주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전도회 탈북민 사역의 중심축이 될 여성종합복지타운의 건립준비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하고 있다. 얼마 전 그녀의 이러한 공로를 인정하여, 영남신학대학교에서는 '명예사회복지학박사'를 수여받았다.
 
- 시드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뭔가요?
 
찬양단 총무인 최현숙 권사가 말문을 열었다. 
 
"내일 모든 공연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향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싶었던 것은 오페라 하우스에서 찬양했던 것입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오페라 하우스에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연주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득 무대에서 찬양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모두 무대에 올라가 찬양했습니다.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반주자도 한 말씀하시겠어요?
 
"찬양단 반주를 한지가 벌써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매년 연주 때마다 찬양단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올해도 준비를 많이 해서 왔는데, 좋은 찬양을 들려주고 연주회가 잘 진행이 되어서 정말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양단과 오랫동안 함께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홍단장이 말을 이었다. 
 
"저희 찬양단은 명예단장의 탁월한 지도력과 지휘자와 반주자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하여 많은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저분들은 정말로 유명한 분입니다. 특별히 반주자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했습니다. 이분들의 아낌없는 헌신을 통해서 우리 찬양단이 세계적이 찬양단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 청중들과 함께 노래하며 지휘하는 이중대 교수.     © 박성현

- 지휘자께서 마무리 해주시죠?
 
"저희들이 올 때 가곡도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운 금강산, 남촌, 보리밭, 아리랑 등을 부릅니다. 관중들도 함께 열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도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에 진 복음의 빚을, 저희들이 조금이나마 찬양으로 갚을 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 내적으로 한국기독교가 조금 위축되어 있지만, 찬양단이 세계선교에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0여 분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찬양단은 창단 25주년이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에 시드니를 방문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고 했다.〠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박성현|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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