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리뷰 창간 28주년 회고와 전망 좌담회
디아스포라를 향한 은혜와 섭리의 기록물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1/2018월호 표지      ©크리스찬리뷰
 
참석자 : 권순형 (발행인)  김명동 (편집인)  송기태 (편집국장) 
사회·정리 : 장경순 (예수마을 대표)
사진 : 윤기룡 (사진부장)
장소 : 김명동 편집인 자택
일시 : 2017년 12월 11일(월) 오후 1시

▲ 창간 28주년 좌담회를 블루마운틴에 있는 본지 편집인 자택에서 가졌다. 왼쪽부터 권순형 발행인, 장경순 대표, 김명동 편집인, 송기태 편집국장. ©크리스찬리뷰  

▲ 권순형 발행인     ©크리스찬리뷰

 
▲ 크리스찬리뷰 창간호 (1990년 1월)     ©크리스찬리뷰
 
성탄절에 리뷰도 태어나다
 
사회자 : 1989년 12월에 <크리스찬 리뷰>(이하 리뷰) 창간호를 발행한지 28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디아스포라 교민들과 함께 울고 웃은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은, 한 세대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오늘은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올 다 걸고 달려온 권순형 발행인과 따뜻한 글로써 교민들을 섬겨 온 김명동, 송기태 목사님을 모시고 그동안의 애환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의 좌담은 지난 날의 회고와 역사, 소감과 감동을 비롯하여, 제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오늘 우리 시대의 급격한 변화의 물결 앞에선 도전과 현황, 그리고 이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대한 리뷰의 대책과 응전을 심도있게 나눠보고, 미래의 리뷰가 안고 있는 과제와 언론의 책임같은 것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권 발행인께서 28년 전, 어떤 동기로 리뷰를 시작하시게 되었습니까?
 
권순형 : 발행 동기는 89년 초에 한국의 <크리스찬타임즈> (발행인 이형자)라는 잡지의 호주 지사장을 6월부터 맡았습니다. 그때 시드니 교계 소식을 취재하여 보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호 선교 100주년 기념 특집을 취재하면서 호주 교민사회를 위해서 기독교 신문이나 잡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호 선교 100주년을 취재하면서 호주 선교사들이 100년 전에 선교 현장인 한국에 대해 글과 사진을 잘 남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호주 한인교계의 역사를 ‘지금부터라도 글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리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동기로 89년 10월 19일 시드니 교계 어른들을 모시고, 창간준비 기도회 및 간담회 가졌습니다. 89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창간호(90년 1월호)를 내자고 하여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힘겹게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 :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창간호를 발행했으니 소감도 남달랐으리라 생각됩니다.
 
권순형 : 소감이나 감격은 전혀 없었고, 드디어 큰 숙제를 하나 겨우 해냈다는 후련한 마음이라 할까요. ‘이렇게라도 나왔으니 다행’이라고 할까요. 이런 마음이 소감이라면 소감이겠지요. 그도 그럴 것이 저도 처음 해보는 작업이었거든요.
 
당시 금성 컴퓨터를 5천 불인가 주고 사서 타이핑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창간호를 준비하는데 컴퓨터가 안 돌아가는 거예요. 구입한 곳에 갖고 갔더니 하드 디스크가 나갔으니 다른 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해요. 그래서 작업 해놓은 것 다 못쓰게 됐습니다. 다시 시작하려니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민 신문에서 일하던 타이핑 잘하는 분을 데려다 다시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는 너무 속상하고 어쩔 줄 몰랐는데, 요즘은 다 자동화되어서, 집에서도 PDF 작업으로 인쇄되는 시절이니 상전벽해를 실감합니다.
 
그때는 3단 편집을 할 때인데, 그만큼 칼로 잘라 대지에 스프레이풀로 붙여서 작업을 하는 겁니다. 컴퓨터 리본을 한참 쓰다 보면 글씨가 회색으로 바뀌어요. 복사를 해서 편집해야 하는데, 프린트해서 원본을 그대로 붙여 인쇄소에 갔더니 글이 회색이라 인쇄가 안된다고 해요. 아찔했습니다. 두어 달 밤샘 작업한 것이 물거품이 될 판이었습니다.
 
인쇄소 측에서 하는 말이 글씨를 살리면 사진이 죽고, 사진을 살리면 글씨가 죽는다는 겁니다. 글을 살리기 위해 사진을 죽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창간호는 글씨는 알아보게 나왔지만 사진이 대부분 시커멓게 인쇄되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창간호 때 있었습니다.
 
참, 여기서 하나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좀 전에 말씀 드린대로, 처음부터 리뷰를 발행하려 했던 것이 아니고,   크리스찬타임즈에서 90년 후반기에 주간신문 발행 계획이 있었는데 호주 현지판을 낼 예정이었습니다.
 
크리스찬타임즈는 한국기독교 백주년 되던 84년도에 당시 민족복음화본부인 신현균 목사 자제분이 발행하던 것이었는데, 88올림픽 이후 횃불재단에서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88년 이후 한국은 민주화운동과 맞물려 노조운동이 격심했던 때 아닙니까?
 
횃불재단 역시 신동아 그룹이란 재벌그룹 산하에 있었으니 자연스레     <크리스찬타임즈>에도 노조가 결성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노사 대화에서 임금협상은 무난히 합의를 보았는데, 편집권에서는 서로 양보를 하지 않아 결국 90년 1월 호로 폐간되었고, 크리스찬리뷰는 90년 1월 호로 창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간신문 현지판은 물거품이 되었지요. 이런 아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나요. 사진이나 했지... 글도 안 써보고 말입니다. 그런데 때를 맞춰 김 목사님과 송 목사님이 연결되어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 원래 ‘난산한 아이가 잘 큰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난산을 했으니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잘 발행해 온 것 같습니다. 사실 역사 자료, 특히 문서사료는 기록된 내용만 역사적 사실로 전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런 기록만이 모든 것을 전해주는 기록으로 남아있고, 어떤 사건의 앞뒤 좌우에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지지요. 기록문서가 기초사료가 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방금하신 말씀들은 먼 훗날 사가들이 ‘(호주) 기독교 문서운동사’ 같은 것을 기록할 때 중요한 사료가 될 것 같습니다.         
 
▲ 장경순 대표     ©크리스찬리뷰
 
▲ 송기태 편집국장     © 크리스찬리뷰

 동역의 모델
 
사회자 :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나를 위해 일하는 세 사람보다 나와 함께 일하는 한 사람이 낫다”고 할만큼 동역의 중요성을 역설했는데, 아마 세 분은 시드니에서 동역의 모델이 될 만큼 오랜 기간 같은 뜻을 가지고 함께 일해 오신 것으로 압니다.
 
발행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발행인과 함께 문서사역의 소중한 길을 걸어오신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럼 세 분은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김명동 :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창간 초기에 수필을 써서 발표를 했고, 91년 1월 호부터 본격 참여한 것 같습니다. 1월부터 다섯 꼭지 쓰고  이후 서너 꼭지 정도 쓴 것 같습니다. 
 
권순형 : 제 기억엔 김 목사님이 기고를 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다가 후원회 조직하려고 할 때 거기에 동참하셨고, 글을 잘 쓰시는데 도와 달라 하여 연결되었지요. 
 
송기태 : 97년 연말 쯤 같습니다. 어느 날 권 발행인께서 찾아오셔서 피시마켓으로 데려가시더니 근사하게 식사를 사시더군요. 그때 새우를 많이 까먹은 기억이 나는데, 그날 그러고는 헤어졌습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늘 ‘얻어먹은’ 것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있지 않아 현재 AC의 전신인 당시 써던크로스 컬리지(SCC) 취재를 부탁하셨어요. ‘얻어먹은 빚’ 갚는 마음으로 했지요. 이렇게 권 발행인께서는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고수더군요(웃음).
 
어쨌든 그때 그렇게 연결되어 그 다음 해 연재칼럼을 1년 정도 쓴 것 같습니다. 2000년도부터 점점 부탁하는 양이 많아지면서 한 달에 서너 꼭지씩 취재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턴가는 아예 ‘편집국장’이란 분수에 맞지 않는 감투까지 씌워 도망도 못 가게 하더군요.
  
권순형 : 제가 한국 두란노서원을 방문했을 때, 당시 ‘빛과 소금’ 유종성 기자가 송기태 목사께서 호주로 이민가셨다는 이야기를 해서 찾게 되었지요. 제가 두 분과 지금까지 동역해 오면서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는 나와 뜻을 같이 할 사람이 한둘은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공기를 호흡하는 데는 들창문 하나로도 족하다”고 한 로맹 롤랑이 말이 참 옳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처음 만난 이후 의기투합해 지금까지 변치 않고 달려온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두 분은 책이 나올 때마다 어떤 감흥이 일어납니까?
 
김 : 역사 있는 잡지, 리뷰가 발행될 때마다 꼭 제 작품집 나오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이 했던 것 같고요.
 
송기태 : 저는 제 글을 매달 독자들에게 시집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시집갔으면 시댁에 보탬이 되는 며느리가 되어야 하듯이, 제 글이 어떤 모습으로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제가 호주로 이민 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활자밥’을 먹다가 그 ‘활자를 추수할 마당’를 상실한 것인데, 리뷰는 저에게 그런 마당이 되어준 것이지요. 사실 제가 한국에서 활자밥을 먹을 때보다 지금 글을 더 많이 씁니다.
 
그때는 비중 있는 아티클 한두 개 쓰고, 나머지는 데스크(편집장) 일로 필자들과 기자들의 원고 교열이 굉장한 비중을 차지한 것입니다. 결혼식 때 신부화장과 드레스가 중요하듯, 데스크 일은 모든 글들을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히는 작업입니다. 가장 세련된 화장이 화장을 ‘안한 것처럼 한 것’이라는 말처럼 글쓴이들의 개성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제목잡기, 중간제목과 리드(발문) 뽑기, 리라이팅....이런 것들이 편집의 묘미입니다.
 
요즘은 교수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의 글쓰기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지만, 30년 전만 해도 명성있는 교수들의 글까지도 ‘원고의 민낯’은 경악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로 이메일로 받아 그 교열이 쉬워졌지만, 그 당시는 원고지에 글을 쓰지 않았습니까?
 
그런 원고들은 한번 교열하고 나면 ‘딸기밭’이라 할 정도로 온통 빨갛게 변했습니다. 일본식 문체에다 맞춤법은 얼마나 많이 틀리는지요. 그 당시 유명한 교수들, 전문인들의 저작물들 상당수는 ‘편집자의 화장술’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일반 필진들은 담당 기자들의 1차 교열을 거쳐 데스크 교열을 거쳐 조판에 들어가고, 나중에 데스크가 ‘최종 OK’(교료)해야 인쇄에 들어갑니다.
 
이 신문, 잡지, 출판, 광고카피 등 소위 인쇄미디어 현장에서 이 ‘편집화장’에 맛들인 사람은 마약처럼 쉽게 중독돼 평생 그 일을 못 떠나는 게 상례입니다. 저자(필자)와 독자를 쉽게 연결시켜주는 ‘지식산업’의 최첨병에 선 특공대라도 되는 양 어줍잖은 자부심도 갖고요.
 
어쨌든 리뷰는 저에게 잃어버렸던 ‘활자의 마력’을 다시 갖게 해주었기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 은퇴후 뉴카슬 멀시 호스피스에서 일하고 있는 민보은 선교사를 찾은 취재진. 왼쪽부터 이상규 교수, 민보은 선교사, 송기태 편집국장, 안동일 목사(2002년 8월)     © 크리스찬리뷰
▲ 김명동 편집인     © 크리스찬리뷰

  의미있는 세월들  
 
사회자 : 한 권의 책, 한 장의 신문이 나오기까지 그렇게 치밀한 화장이 있는 줄 몰랐네요. 뭐 ‘속지말자 화장발, 믿지 말자 조명발’이란 말이 생각나네요(웃음). 그럼 이제까지 해오시면서 가장 인상 깊은 일들은 어떤 것들이있습니까?
 
송기태 : 제가 리뷰 사역에 참여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취재하고, 그 선교사들의 족적을 추적하는 작업을 1년 정도 연재할 때인 2006년도로 기억합니다. 한국에 취재 나갔을 때,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때 권 발행인과 함께 했습니다. 원고를 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지요.
 
취재를 미리했다고 원고를 미리 쓰는 법은 ‘절대로’ 없지요. 항상 마감시간 간당간당해서 쓰기 마련입니다. 그때가 5월인 것 같은데, 교회 부흥회가 있고, 알라스카에 컨퍼런스가 있어 원고도 쓰지 못한 채 떠나야 했습니다. 알라스카 동양선교교회에서 마감 시간에 겨우 맞춰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마감 시간 마음 조리면서 기다리는 권 발행인이 눈에 밟혔지요. 그러나 제가 저널 현장에 발을 디뎌놓은 이래 변치 않는 신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뭐냐 하면 ‘날짜 가면 책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신념도 역시 잡지를 폐간하지 않는 한 깨지지 않을 겁니다.
 
또 하나 취재하면서 인상에 남는 분은 바바라 마틴(민보은) 선교사입니다. 아시는 대로 그분은 처녀 의료 선교사로 부산에 있는 일신기독병원에서 평생을 보내고 정년퇴임하셨지요. 호주로 돌아오신 후 다시 뉴카슬 병원에서 호스피스 사역을 하시는 거예요. 이 분에게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한국을 사랑한 그분의 ‘삶이 눈부시다’는 표현을 해도 전혀 과찬이 아니에요. 그날 취재를 마치면서 ‘왜 결혼하지 않았어요? 기회가 없었던가요?’하니 웃으시면서, ‘한국 사람다운 질문을 하는군요. 결혼 안하겠다는 결정을 한 적은 없었어요. 학생 때도, 서른 살 되던 해에도 기회는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족들과 누리는 즐거움 대신 다른 즐거움으로 채워주셨어요.
 
함께 일한 분들이 가족이었고,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만일 결혼을 했다면 30년 이상 다른 문화, 다른 민족인 한국에서의 충만한 사역은 상상도 못 했겠지요’라고 하셨을 땐 정말 울컥했습니다. 그리고 한국말을 그렇게 잘 하시는 것도 감동이었습니다.
 
김명동 :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서분이 권사님을 취재했습니다. 세 번인가 만나서 취재해서 실었는데, 이걸 일주일 뒤 그 당시 국민일보 이모 기자가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아니 100% 표절이지요, 전혀 취재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자신이 취재를 한 것처럼 중앙 일간지에 실었어요.
 
그런데 그 기사를 한국에 있던 권창식 장로 형님이 보시고 6.25 때 헤어진 어머니를 40년 만에 만난 것입니다. 표절 보도한 것을 보고 말입니다. 그들의 수단과 방법은 안 좋았지만 따뜻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기사 하나하나가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아무도 함부로 예견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호주 한인교회 어떻습니까?’라는 설문조사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 리뷰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이단과의 싸움’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리뷰가 이단의 공격을 막는 파수꾼의 역할을 했지요. 91년도에 탁명환 소장 초청 강연 이후 이단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난리가 났죠. 그때부터 리뷰가 공격받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욕도 많이 먹고요. 심지어 이단을 못살게 구니 ‘리뷰는 심판받을 것’이라는 막말까지도 했어요.
 
또 생각나는 것은 92년도에 극성을 부렸던 다미선교회입니다.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글레이즈빌(Gladesville)에 있던 2층 아지트에 잠입을 했습니다. 이단들을 잘 몰랐으니 머리에 뿔난 사람들인 줄 알고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가보니 20여 명이 앉아 있었는데, 당시 영사 부인이 저를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취재하려고 인터뷰 요청하니 안 한다고 해요.
 
이후 그들은 92년 10월 29일 새벽 2시에 휴거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밤샘하며 그들을 취재할 채비를 갖췄습니다. 밤 10시 쯤 호주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나왔습니다. 여러 목회자들을 포함해 구경꾼들이 대략 1천여 명이 몰려든 것 같았습니다. 새벽 2시가 다가오자 구경꾼들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는데, 조용히 끝났습니다.
 
당시 다미선교회 조창원 전도사는 비자가 28일로 끝나는데 바깥에서 잠깐 인터뷰도 했습니다. 바깥에서 ‘나 좀 휴거 좀 시켜줘’ 하며 농담도 하는데, 분위기는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그때부터 리뷰는 정말 어려움 속에서 이단들과 맞서며 시기와 질투와 모함 속에서 고된 위기를 헤쳐 왔습니다.
 
김명동  : 90년 말에 우리가 탁명환 소장을 초청해서 집회할 때만해도, 시드니 교계는 이단에 대한 경계심이 투철했습니다. 버우드 걸스 하이스쿨 강당이 꽉찰 정도로 모였습니다. 몇 달 전에 경험하셨듯이 이단 집회 땐 아무리 휼륭한 분을 모셔다 집회를 해도 텅텅 빌 정도로 호응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단의 위협이 그때보다 못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때보다 훨씬 교묘하고, 집요하게 이단들은 교회에 침투해 들어오지만 각 교회나 목회자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거의 무관심하고, 심지어 이단 언론 같은 것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 창원공원묘원에 건립한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에 앞서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 그리고 호주 한인교계 인사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 철거 직전 시고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복원된 부산진일신여학교 전경.     © 크리스찬리뷰

리뷰의 영향력,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설립
 
사회자  : 예, 이런 취재낙수나 취재과정에서의 무용담 같은 것은 몇 시간이라도 풀어놓을 수 있겠지요. 마치 남자들 군대이야기처럼 말입니다. 그런 취재 뒷이야기들은 다음 기회에 나누기로 하고, 리뷰가 취재, 보도, 정보 제공 같은 언론 본연의 임무 말고도 한·호 선교 관련이나 각종 문화행사도 적지 않게 펼쳐오면서 크게 기여하지 않았습니까?
 
권순형 :  한·호 선교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고신대학교 교회사 교수인 이상규 목사께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한·호 선교 기록의 첫 관문을 열었습니다.
 
그 이후 2000년 3월, 김 편집인과 함께 그 선교사들이 남긴 자취를 찾아 부산·경남 지역의 선교 현장을 확인하며 사진과 글로 기록으로 남긴 것이 창간 동기에 비추어 볼 때 그 목표의 첫 걸음을 뗀 것입니다.
 
이때 이를 감당할 있도록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을 잊지 못합니다. 소위 ‘몸으로 때우는’ 노력 봉사는 우리들이 얼마든지 하지만 우리들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창신학원 강병도 학원장을 비롯해 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연재한 것들의 일부를 뽑아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열매>를 비롯, 한·호 선교 120주년을 기념해 최초의 호주 선교사 데이비스와 열 번째 엥겔 선교사님의 육필일기를 모아 영한 대역으로 <쥬야 나를 불샹이 넉여 도아주쇼셔> 등의 단행본을 한호교회사 연구의 원자료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은 큰 보람입니다.
 
지금도 본지가 연재한 것을 학자들까지도 비슷하게, 혹은 그대로 베껴서 논문이나 글을 쓸 정도로 자료가치는 충분합니다. 최근에 창간호부터 10부씩 보관용으로 쌓아왔던 것을 신학교를 비롯해 꼭 필요한 연구기관이나 단체에 기증했습니다. 이제까지는 캔버라 국립도서관과 UTC 도서관에서 잘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기태 : 그렇지요, AC 도서관에 제가 직접 전달했는데, 사서가 얼마나 반가워하는지요. 기증자 표식을 붙여 열람실에 잘 보관될 것입니다. 그리고 리뷰의 큰 공적이라 하면 2010년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대회이지요.
 
경남 마산에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이 건립되고, 순직 선교사들의 묘역이 조성된 데에는 리뷰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순직한 호주 선교사들의 개별 기념비는 그 이전에 시드니 한인교회들이 후원하여 창신대 교정에 있던 것을 묘역이 조성되면서 그쪽으로 옮겼지요.
 
그리고 한국에 파송되었던 생존해 계신 호주 선교사들과 직계 가족들은 경남 성시화운동에서 경비를 부담하여 그 옛날 눈물과 기도로 묻어둔 선교지, 혹은 자녀들이 어린 시절 뛰놀던 그 현장, 선조들의 사역 현장에 후손들이 직접 찾은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요.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부산진교회 묘역에 묻힌 맥켄지 선교사의 아들 제임스의 무덤 앞에 맥켄지 선교사의 증손녀되는 조지아 자매가 꽃다발을 바치며 함께 예배 드렸던 것도 잊혀지지 않는 일입니다.
 
권순형 : 무엇보다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이 리뷰 때문에 세워질 수 있어서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자료도 많이 드렸지요. 그곳이 그렇게 되어질 줄 몰랐습니다.
 
옛말에도 '어르신 한 사람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가 증발한다'고 하는데, 사실 선교사들을 만나 보면 한 분 한 분이 박물관이에요. 그분들이 갖고 계신 역사 의식이나 그것을 남긴 기록자료(사진 일기), 수집품, 유품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박물학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간혹 선교사들의 후손 가운데 불신자이거나 그 가치를 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이 수집한 유품들을 하나 둘 전달하면서 거기에 기념관이 세워진 것이 보람되고 자랑스럽습니다.
 
김명동 :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이라면 다들  언더우드, 아펜젤러 정도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분들이 경인 중심으로 활동하셨기 때문에 교회사가들의 기록도 그분들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지요.
 
당시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따라 선교사들의 출신국에 따라 한국 선교 지역도 나눠졌습니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기독교세도 크지 않은 부산·경남지역에서 활동한 호주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사가들에겐 관심 밖이었습니다.
 
마침 고신대 이상규 교수가 호주에서 교회사를 공부하고, 그 연구 결과물을 리뷰를 연재하면서 호주 선교사들의 이름이 비로소 하나 둘씩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호주 선교사들이 1905년에 지은 부산진일신여학교를 가보니 건물도 낡았지만 남에게 팔려던 철거대상 건물이었어요. 이곳은 근대적 여성 교육기관으로 3.1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한데, 이것을 우리 리뷰와 부산일보 기자가 기사화하여 경각심을 준 것도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쳤고, 2003년 5월에는 시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복원되었습니다.
 
▲ 창간 25주년 기념예배에서 캄보디아로 사진선교 떠나는권순형 발행인과 김명동 편집인을 위해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 목사를 비롯한 한인 교계 목회자들이 중보기도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사랑의 빚 갚기
 
사회자 : 최근 캄보디아 헤브론병원을 집중 조명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실 캄보디아는 호주 선교사나 호주 한인교포 출신의 선교사들도 아닌데, 호주에서 간행되는 크리스찬 잡지가 제3세계의 사건을 다루니, 뉴스밸류 면에서 보면 ‘왜 이렇게 깊이 다루지?’ 할 정도로 어쩌면 약간 의외성을 보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뭐  특별한 동기라도 있습니까?
 
김명동 : 우리가 ‘복음의 빚을 졌구나’하고 생각했을 때 헤브론병원을 만났습니다. 우리 시대의 사도행전 29장이 헤브론병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료 선교사들이 ‘생선의 가운데 토막’같은 인생의 황금기를 캄보디아에서 보낸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해외선교, 직접선교, 복음의 진 빚 갚기 등 얼마나 아름다운다운 언어로 칭송을 받아야 할 분들인지요.
 
권순형 : 헤브론병원장 김우정 선교사를 시드니에서 처음 만났을 때, 호주에서 한국으로 파송된 의료 선교사들, 일신기독병원 등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그분을 만나기 전에 오마에서 취재 요청이 있어 정지수 목사가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 전에 점심을 같이 하면서 병원 이야기를 들던 중 큰 감동이 왔습니다. 헤브론병원에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펼쳤던 감동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제가 캄보디아에 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2014년 9월에 처음 만나서 약속했는데 제 마음이 변할까봐 캄보디아 가는 분들이 있으면 헤브론병원에 찾아가 제 마음을 전해 달라고 세 차례나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5년 1월 1일 새해 아침에 바로 티켓팅하고, 2월에 간다고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창간 25주년 기념예배에서 김명동 편집인과 캄보디아 선교 파송기도를 공식적으로 받고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호주에 진 빚을 캄보디아에 갚는다고나 할까요? 
 
김명동 : 김우정 선교사 말씀이 감동인 것이, “의사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것이다. 외국에 나가서 선교하는 것이 당연한데, 하고 있는 일이나 환경에서 머뭇거린다면 다른 사람과 똑같다. 그래서 가자, 머뭇거리지 말고 가자”하여 부인과 함께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 결정이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송기태 : 그밖에도 리뷰가 많은 돈을 모금해서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와 북한에도 보내고, 쓰나미 성금, 터키 지진 성금, 중국 한센병 후원 등 지구촌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수십만 불을 보냈지요. 기독교 대학인 한동대 후원은 미래 기독교 인재를 위한 씨앗으로 생각하며 보낸 것도 의미 깊게 생각합니다.
 
▲ 본지 창간 20주년 기념 이화 발레 앙상블 초청 공연.(2010. 2)     © 크리스찬리뷰

문화사역의 큰 잔치들
 
사회자 : 문화사역도 리뷰에서 적지 않게 개최하여 우리 교민사회에 기여한 것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김명동 : 초기에 시드니기독실업인회와 한국창조과학회 김영길 박사를 초청하여 개최한 창조론 강연회, 한국선명회(월드비전) 회장과 대한적십자가 총재를 지낸 이윤구 박사 초청, ‘밥퍼목사’ 최일도 목사 부부초청, 우주과학자 정재훈 박사 초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초청, 그리고 여러 차례의 이단 연구 전문가 초청집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많큼 많은 강연회를 기졌습니다.
 
지금은 정보 홍수시대라 아무리 좋은 강연이라도 시무룩한 반응을 보이지만 당시에는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초기엔 운경합창단 초청 아프리카 난민 돕기 자선음악회를 통해 25년 전 수익금 전액을 월드비전을 통해 남아프리카 앙고라 난민에게 전달하기도습니다. 그리고 SBS 예술단장 김정택 장로 초청 작은 음악회, 이화발레 앙상블 초청공연도 교민들의 문화적인 안목을 크게 열어 주었지요. 그리고 합창제를 비롯한 몇몇 공연은 오페라하우스에서 멋지게 펼쳤는데 그런 날은 마치 온 교민들의 잔치날처럼 북적였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명동 : 문화사역이라면 우리 권 발행인과 연결지어 사진을 빼놓을 수 없지요. 매달 기막힌 작품들이 종이와 인쇄의 한계로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제 말을 확인하시려면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권 발행인께서 사진작가로서 한국에서 쌓은 경험들을 호주 교민 역사와 교회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계신 셈이지요. 한국에서 대통령들이 호주 국빈 방문했을 때, 90년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모든 대통령을 직접 취재한 언론사는 우리가 유일하지 않은가 합니다.
 
시드니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 APEC 시드니, 카톨릭의 세계청년대회(WYD) 등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들도 권 발행인의 앵글을 피해 가지 못했지요. 그리고 ‘아름다운 한국 동해의 섬’(울릉도, 독도 사진전)을 NSW 국회의사당에서 개최하면서 독도에 대한 호주인들의 편견을 바로 잡는데 일익을 감당한 것도 큰 역할을 하신 것이지요.
 
2013년과 2014년에는 시드니 한국문화원과 경남도 후원으로 ‘한국 근현대 사진전’을 초기 선교사들의 사진과 권 발행인의 사진 작품들로 한국과 호주에서 몇 차례에 걸쳐 전시회가 개최되고 작품집이 발행된 것도 큰 성과이지요.   
 
권순형 : 지나치게 우리의 일들을 자화자찬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얼마동안 ‘기독교 문예작품 및 신앙수기’ 공모전을 하며 신인작가들을 발굴하기도 했는데, 95년도 제1회 시부문 당선자였던 이정민 씨가 현재 주한 호주대사인 제임스최 대사 부인입니다. 그리고 현재 교민 언론을 통해 활발히 문필 활동을 하는 분들 가운데 우리 공모전 출신 작가들이 다수입니다.     
 
위험, 그리고 도전
 
사회자 : 그 정도는 ‘허용된’ 혹은 ‘용서받을 수 있는’ 자화자찬인 것 같습니다(웃음). 리뷰라면 우리는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인터넷에서 쓱 긁어서 붙이지(copy & paste) 않는다’고 할 만큼 취재와 기사의 ‘직접생산’에 목숨(?) 걸고  있어서인지 독창적인 내용, 독보적인 자료성으로, 한 번 보고 던져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두고두고 자료로 활용할만한 내용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위험과 출혈도 만만치 않지요?     
 
김명동 : 베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취재 때 숨은 뒷이야기도 많습니다. 아마 우리만큼 해외취재를 많이 한 교민 언론사는 없을 것입니다. 94년도에 중국 취재를 필두로 일본, 몽골, 뉴질랜드, 캄보디아를 했고, 호주 전 지역 한인교회 순회 취재를 했습니다. 한국도 여러 차례 취재차 다녀왔습니다. 
 
권순형 : 그렇게 뛰면서 취재해서 쓰는, 소위 ‘발글’을 매달 싣지만 우리는 ‘속보성’ ‘폭로성’에 염두를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많이 보게 하는 방법으로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많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단 문제에 대해서는 강한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저희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월간이기 때문에 인터넷 시대에 속보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심층성은 있습니다. 깊이 있게 다루는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100매까지 나오는데, 이 분량은 <월간조선> <신동아> 같은 잡지의 중간 분량 꼭지 정도입니다.
 
<주간조선> <주간동아> <주간 경향> 등 주간 시사잡지는 길어도 40매 분량입니다. 사이즈는 주간 시사잡지와 비슷하나 저희가 훨씬 깊이 있게 다룹니다.
 
97년 4월 호부터 본문 속에 영문판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쉽지 않더군요. 중간에 결국 한글판 체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두 가지를 하는 것은 두 독자층을 다 잡는 게 아니라 둘 다 놓칠 정도로 힘든 것입니다.
 
이런 월간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글을 읽지 않는 세대, 모발폰에 익숙한 ‘엄지세대’들에게 어떻게 읽히도록 접근하느냐는 저희의 큰 숙제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안 읽어요. 저희만 그런 게 아니고, 종이 신문, 잡지 자체가 세대를 향한 미디어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저희가 발행 연륜으로 보면 가장 오래된, 최장수 잡지입니다. ‘젊은 세대’에 읽히는 친근한 잡지를 위해 표지를 컬러로 바꾸고, 본문도 부분적으로 컬러로 바꾸었습니다. 2018년부터는 풀 칼라로 발행됩니다.
 
그러나 색깔만 갖고는 인쇄효과가 완전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종이질도 따라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그에 걸맞는 디자인 인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닙니다.
 
오래 전에 탁명환 소장께서 ‘10년 이상 해야 자립할거요’라고 하셨는데, 30년이 돼가도 자립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자립이라는 게 광고가 따라줘야 하는데, 판매나 후원 없이 광고로만 하려니 만만치 않습니다. 리뷰를 새롭고 창조적인 감각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넘겨주려고 하는데도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송기태 : 권 발행인의 철학 가운데 하나가 ‘문제가 진행 중일 때는 다루지 않는다. 결론에 이르기 전엔 다루지 않는다’는 현재 우리가 처한 입장에서는 최선이 아닌가 합니다. 
 
언론의 기능 가운데 하나가 ‘감시 기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진흙탕 속의 개싸움’에 흙탕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지요. 전문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폭로성 기사를 다루는 한국의 일부 매체와 같은 방향으로 가면 분명 가독성도 있고, 그런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치부를 보며 즐기는 소위 ‘중증 사회관음증’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로 아까운 지면을 채운다는 것은 사회적인 낭비지요.
 
물론 ‘감시적 차원’ ‘영적 브레이크’로 기독 언론의 역할은 필요하지만 그 경계가 애매합니다. 그런 기사로 나쁘게 나가는 사람, 치부를 가진 사람들이 고친다기보다는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발과 고소로 소모전을 벌일 때가 많지요. 
 
그러나 교계 안팎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초를 기록하는 사가의 정신으로 ‘정리된 사건’을 재정리해 두어야 할 필요는 후세대를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리뷰 편집의 큰 방향은 아름답고 따뜻한 기사, 성도들에게 도전과 힐링이 되는 기사. 새로운 헌신과 결단을 독려하는 기사, 하나님이 우리 디아스포라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마음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김명동 : 급속도로 변화되는 시대에 ‘종이 잡지’라, 어쩌면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는 것 같기도 하지요. 아직은 경제적으로 힘들게 발행되고, 어쩌면 그것이 숙명인지 모르지만 결국은 교회에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가 큰 문제입니다. 전자매체에 밀려 종이매체는 점점 밀려날 것이지만 유지는 될 것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한장 한 장 보다 보면 빠져 드는 매력이 있거든요. 이전엔 ‘기독교 참고서’ ‘기독교 백과사전’ 같던 잡지가 굉장히 제한적이었는데, 정보홍수 시대에 키워드만 입력하면 모든 것이 뜨는 시대 아닙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임’이 틀립니다. 리뷰는 정확성, 진실성으로 단순한 ‘월간 잡지’를 떠나 ‘진짜 참고서, 백과사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데에 조금만 성도들과 교회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권순형 : 모발폰으로 다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앱(아이탭)에 올리면 모발폰으로 보니, 이런 면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홈페이지와 아이탭이 다음 세대를 위한 변화의 진행입니다. 
 
소망과 소감
 
사회자 : 이제까지 롱런해왔는데 앞으로는 더 잘되겠지요.항상 역사는 이런 고민 속에서 발전하고, 이런 도전 속에서 기도하게 되지요. 좌담을 마치면서 한마디씩 소감이나 소망을 말씀해 주시렵니까?
 
권순형 : 하루 빨리 후계자가 나타나 2-3년 같이 하다가 잘 넘겨주는 길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젠 70세를 향해 가고 있는데... 그리고 지난 28년 동안 도와주신 한인교회들, 취재에 적극 후원해 주신 분들, 무엇보다 매 달 광고로 후원해 주고 계신 광고주들, 아무런 조건 없이 헌신적으로 도와 주고 계신 필진들, 디자인으로 참여해 주고 계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명동 : 한 분이 빠졌네요. 무엇보다 권 발행인 사모가 대단하십니다. 교정부터 재정, 리셉션 일까지 모든 일을 다 하십니다. 또한 두 따님의 역할도 오늘의 리뷰가 있기까지 큰 버팀목이었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리뷰가 나오면 ‘교회 하나 개척했구나, 이제까지 내가 337개의 교회를 개척했구나!’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힘을 합쳐 다시 새로운 사명감으로 29주년을 향해서 달려야지요.
 
주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주셨는데,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준비해야 할 것은 준비해야 하지만 사명감을 더 갈고 닦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노스 쇼어 병원 대기실에서 모녀인 것 같은데, 엄마가 가방에서 리뷰를 꺼내 딸에게 주면서 ‘이것 좀 읽어’ 하더군요, 이런 분이 한두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리뷰는 한인사회와 궤를 같이 하며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달려온 저희의 흔적을 모아두는 분들도 많더군요. 역사를 간직한다는 말이지요. 처음 시작할 땐 30대로, 한 달에 다섯 꼭지도 소화할 만큼 왕성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 퍽 아쉽습니다. 
 
송기태 : 저는 30년 전 일반 언론사에 공채로 처음 발을 디딜 때부터 ‘글자 한 자 한 자 마다, 문장 한 줄 한줄 마다’가 제 신조였습니다. 그 한 자 한 자에, 그 한 줄 한 줄에 그리스도의 흔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던 소박한 저의 소망이었습니다. 물론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때가 훨씬 많았고, 부족하고 허물투성뿐이지요.
 
그렇지만 그런 소망과 꿈이 오늘까지 리뷰와 다른 몇몇 언론사와의 끈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간디가 ‘가슴 깊은 곳의 순수한 소망은 언제나 이루어진다’ 했는데, 제가 가슴 깊이 품은 나름 순수한 이 소망도 언젠가는 이루질 것으로 믿습니다. 그 꿈과 소망을 이루는데 리뷰가 좋은 터전이 되어주는데 참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권순형 : 할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제한된 시간과 지면으로 인해 아쉬움이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 창간 25주년 특집좌담회와 리뷰 25년 연표(크리스찬리뷰 지나 온 길 1989-2015)를 홈페이지(christianreview.com.au)에서 참조하시고 좌담회 끝부분에 게재할 2015-2017  연표를 참조하시면 크리스찬리뷰 역사를 한 눈에 보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한 번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회자 : 예, 참 오랜 시간 마음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새해부터는 날마다 더 좋아지는 리뷰, 버리지 않고 모아두고 싶은 리뷰를 만드는데 더욱 힘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크리스찬리뷰 연표 (2015~2017)









<2015년>
1월 1일: 창간 25주년 맞아 편집자문단 출범.
            편집자문단 | 단장 황기덕 목사 
 (NSW) 황기덕 목사 (동산교회), (ACT) 김완일 목사 (캔버라한인교회), (QLD) 홍요셉 목사 (브리즈번순복음교회), (VIC) 엄정길 목사 (멜본한인중앙교회), (SA) 문광식 목사 (아들레이드장로교회), (WA) 김선일 목사 (퍼스임마누엘교회), (TAS) 박승민 목사 (론세스톤사랑교회), (NT) 황선희 목사 (다윈다솜장로교회)


<2016년>
1월 8일: 캄보디아 선교 후원 음악회 및 영상사진전 개최
‘헤브론병원 24시’ 다큐멘터리 사진전을 후원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사진전은 한국 전국 순회 전시와 함께 호주를 비롯한 해외 순회 전시가 1년여 이상에 걸쳐 진행될 예정.  
 
음악회는 헤브론병원장 김우정 선교사와의 토크쇼가 진행되었으며,  2부 음악회는 클라리넷 독주(박찬승, 호주 해군 군악대), 피아노 트리오(바이올린 김연희, 첼로 김태수), Good Friends Ladies Choir(대표 소프라노 김선영 사모)의 합창, 테너 김재우 집사의 독창 등으로 진행. 
 
2월 1일-8일: 헤브론병원 비전 트립 실시 (총 8명= 권순형, 장경순, 신이정, 이경숙, 이옥란, 정성택, 박용진, 김영봉)
                                
6월 4일-12일: 메이제인 초청 호주 순회 콘서트
 <아들레이드> 아들레이드장로교회 창립 30주년 기념
 ·일시: 2016년 6월 4일(토) 오후 6:30
 ·장소: Clayton Wesley Uniting  Church     
 <시드니> 열린문교회 창립 20주년 기념
 ·일시: 2016년 6월 8일(수) 오전 11:00 (1부 토크쇼) 오후 7:30 (2부 찬양 콘서트)
 ·장소: 열린문교회(28 Smirh St. Chatswood)
 - 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 : 6월 9일(목) 오후 7시
 - 시드니순복음교회 <금요철야> : 6월 10일(금) 오후 10:15
 <브리즈번>
 ·일시: 2016년 6월 11일(토) 오후 7시
 ·장소: 브리즈번순복음교회(2642 Logan Rd. Eight Mile Plains)
 <골드코스트>
 ·일시: 2016년 6월 12일(주일) 오후 7시
 ·장소: 골드코스트순복음교회


<2017년>
 
2월 8일-4월 7일: '하트 투 하트' 사진전 (부제: 헤브론병원 24시) *'헤브론 병원 24시' 도록과 단행본 출간
 ·장소: 호주시드니한국문화원
 
3월 12일-3월 20일: 헤브론 병원 24시' 사진전
  ·장소: 한전아트센터갤러리 (서울)
<한국-호주 순회전>
△3월 27일~4월 1일: 분당 서울대병원
△4월 3일~8일: 부산 고신 복음병원
△4월 8일~9일: 멜본호산나교회(*호주)
△4월 15일~17일: 시드니 열린문교회(*호주)
△4월 15일~19일: 부산 백양로교회
△4월 21일~23일: 부산 수영로교회
△4월 24일~27일: 안동병원
△4월 28일~30일: 안동동부교회
△4월 28일~30일: 브리즈번순복음교회(*호주)
△5월 11일~16일: 부산 동래중앙교회
△5월 21일~28일: 시드니새생명교회 (*호주) 
△5월 22일~ 26일: 이화여자대학교
△5월 29일~6월 3일: 한동대학교
△6월 5일~6월 9일: 가톨릭의과대학교  
△6월 10일~16일: 일산동안교회          
△6월 19일~23일: 전북은행
△6월 24일~28일: 상도교회
△7월 15일~19일: 충무교회
△7월 15일~16일: 뉴카슬순복음교회(*호주)
△7월 22일~26일: 대구제일교회
△8월 13일: 부천참된교회
△9월 4일~8일: 충남대학교병원
△9월 11일~15일: 예수대학교
△9월 16일~21일: 전주중부교회
△9월 22일~26일: 대구계명대학교 동산병원
△10월 14일: SCM College (*호주)
△11월 4일~7일: 강남대학교
△11월 8일~현재: 캄보디아 헤브론병원 상설전시
*2015년 2월~2017년 12월: 캄보디아 사진선교 11회 실시 (5월-헤브론병원에 스튜디오 개설하고 환자들에게 무료 촬영 봉사)
9월  일: 크리스찬리뷰-호텔 아로파 MOU체결

<2018년>
1월 1일: 통권 337호 발행


▲ 2018년 1월 호 표지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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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27 [10:5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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