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러 성경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서술하는 방식 또한 흥미롭습니다. 이 두 가지 가르침이 서로 다른 문맥 속에서 따로따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문맥 속에서 함께 서술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적어도 성경 속에서는, 함께 나아가는 주제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아무리 사람이 조화시킬 수 없다 해도, 아무리 사람의 눈에 이율배반처럼 보여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이 분명하며, 또한 그 말씀이 이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가르치고 있는 이상, 성도로서는 이 두 가지를 다 함께 인정하는 자세를 갖는 일부터 명확히 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5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이 좌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통하여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15-16절에서는 "그를 믿는 자"라야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동원하여 하는 행위입니다. 요한복음 3장의 문맥 속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인간의 자유 의지의 행위에 대한 가르침이 함께 녹아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37절에서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참조. 44, 45절). 그런데 40절에서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고(참조. 47절), 또한 48-58절에서는 예수님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묘사하시면서, 그 떡을 ‘먹는’ 자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전자의 말씀에서는 예수께 나아와 구원을 얻는 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데, 후자의 말씀에서는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는 것이 사람의 ‘믿는’ 일과 ‘먹는’ 일에 달려 있는 것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인간의 자유 선택에 대한 가르침이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로마서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9:11-16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가르침이 강력하게 제시됩니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사람이 아직 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역사가 있음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대해 감히 사람이 불평할 수가 없음을 천명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4절). 이러한 선택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대권이라는 것입니다(15-16절). 이는 너무도 명확한 가르침이어서 도무지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10장으로 넘어가면, 사람의 믿음이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9-10절). 이처럼 성경은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찰스 스펄젼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는 서로 아주 친밀한 친구들인데, 구태여 둘 사이를 서로 조화시키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광연|크리스찬리뷰 편집위원, 주의영광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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