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시급한 명령입니다
침신대 선교학 교수 이현모 박사 (하)
 
글|송기태,사진|권순형
▲ 죠이선교회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 받은 대전 침신대(선교학) 이현모 교수.     © 크리스찬리뷰

2천 년 초반부터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선교사를 내보내는 나라가 되었다. 2천 년 들어 연평균 1천~1천500명 정도 선교사 숫자가 늘어났다. 그런데 이 선교사 증가가 작년에 멈추었다고 한다.
 
“한국 선교사 통계는 KWAM(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서 매년 12월말 부로 발표합니다. 2016년 말에 충격적인 보고였습니다. 15년에 비해 선교사 수가 한 명도 늘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27,500명 숫자에서 똑같은 숫자가 나왔습니다. 너무 똑같은 숫자라  오류가 있는 것 같아 재검해보니 딱 한 명 늘었습니다. 일 년 동안, 2017년 통계가 곧 나올 것 같은데 줄었을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선교사 대세가 멈춘 것은 사실입니다.
 
선교사 파송 1등인 미국은 전체 파송 선교사 숫자가 8만명 정도이고, 2등인 한국은 27,500명, 3등인 영국은 1만 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5,6년 전 고든 콘넬에서 낸 통계로는 한국이 ‘2등에서 6등으로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 통계는 별로 믿지 않습니다. 2등~5등 국가는 브라질,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이라고 했어요. 이런 나라에서 그 많은 선교사가 나갔다고 하는데, 사실 이 나라들은 가톨릭 국가입니다. 가톨릭은 모든 사제가 선교사입니다. 고든 콘넬이 선교사의 정의를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불붙는 선교
 
그는 한국 선교사가 멈춘 몇 가지 원인을 진단했다.
 
“한국 사회 개신교에서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나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중요한 원인입니다. 특히 2007년 말,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 이후 한국 사회가 개신교의 선교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사이버 테러라 할 만큼 개신교와 개신교 선교에 대해 공격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대형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비리와 법적인 문제들이 부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한국교회가 줄어들진 않지만 성장은 멈추고, 선교비도 멈추었습니다. 대형 교회 사건들이 터지자 개신교가 사회에서 거침돌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신뢰도 떨어졌습니다. 
 
또 다른 원인은, 많은 교회들이 선교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같습니다. 2000년도 초반까지만 해도 선교에 대한 신선함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숫자적인 증가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이뤄지지 않아 선교사들에 대한 실망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20년 전에만 교인들이 선교지에 가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선교지에 갔다는 사실만 해도 그 헌신을 믿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좁아져 한국인이 넘쳐나지 않는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 소식은 한두 사람만 거치면 다 들어옵니다. 들려오는 소리가 은혜로운 소리보다 문제 있는 소리 돈 문제, 이성문제를 비롯하여, 교포들이 볼 때 사역을 하는지 비즈니스 하는지 구별이 안될 정도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민들은 선교사들을 ‘애 키우러 나온 사람 같다’는 소리를 할 정도입니다. 웬만한 목회자들이 선교지들을 많이 돌아보면서 선교사들의 삶이 열정이 식고, 게을러진 것을 보고 피로감을 느끼는 데서, 한국교회 내적 외적 원인으로 선교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 하나는 선교학자로서 볼 때, ‘선교사들의 전성시대’가 끝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선교사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 가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프리카가 기독교 대륙입니다. 48%가 기독교 국가이지요. 사하라 이남으로 치면 63%가 크리스천입니다. 아프리카에 교회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외국 선교사에 대한 필요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남미도 놀라운 개신교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학교와 개신교회가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점차 선교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아시아 전체가 기독교 비율이 9%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자국 교회와 자국 신학교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 북한을 제외하고는 자국 교회 신학교가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선교사들의 필요가 옛날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단순한 교회 개척이나 낮은 단계의 제자훈련 정도의 선교사 훈련은 절실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선교사의 필요가 줄어들었지요. 좋은 일이긴 하지만 선교사 보내는 나라 입장에서는 선교정책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선교정책을 바꾼다는 건 이제는 소수 정예를 보내어 고급의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것으로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이 변화를 못따라가면 불필요한 선교사들이 남아돌 것입니다. 이 변화를 빨리 따라가야 할 나라가 한국인데, 이 변화에 대한 대처가 늦은 것 같습니다.”
 
디아스포라와 선교
 
선교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디아스포라 한인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선교의 패러다임에도 변화를 요구되는 이 시점에 디아스포라의 역할을 되짚어보는 것도 적지않은 의미가 있으리라.
 
“한국의 디아스포라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한국 주민등록증 갖고 있는 사람은 5천만입니다. 이중에 해외 체류자가 8백만입니다. ‘해외 체류자’ 정의는 3개월 이상을 해외에 체류한 사람을 말하는데, 800~850만 명이 해외 체류자입니다. 6명 중에 1명이 해외 체류합니다. 두 가정에서 한 명은 누군가 외국에 가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흔한 일입니다.
 
어떤 통계에는 이 숫자가 1천300만까지 늘어난다고 예상합니다. 한국 사람이 주로 많이 가는 곳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아닙니다. 이런 나라들은 이민이 거의 끝난 나라라고 봅니다. 지금은 이민을 개발도상국으로 가는데, 정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가서 그냥 눌러 앉습니다. 국력이 있으니 어중간한 나라는 눌러앉기가 쉽습니다.
 
중국에 조선족 빼고 100만입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사업체나 직장 통해 가든, 적당히 회사 하나 차려 눌러앉는 것은 쉽습니다. 중국의 화교는 우리와 게임이 안됩니다.

▲ 몰링칼리지 부총장 그라함 힐 박사(Dr. Graham Hill)와 이현모 교수.     © 크리스찬리뷰

중국은 20명에 한 명이 외국 체류인데, 한국은 6명에 한명입니다. 그러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디아스포라 한국인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외국에 나가있는 기독교인의 비율이 유난히 높습니다. 통계상 가장 높은 곳은 미국입니다. 실제 신앙생활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30%가 기독교인이라고 통계상으로 나옵니다. 한국은 개신교만 18%(이단 포함), 가톨릭 포함해서 30%로 봅니다. 2017년에 불교 신자보다 기독교가 많아졌습니다.
 
외국 나오는 디아스포라의 신앙비율이 높은 것은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아시아 쪽이 8-10%입니다. 왜냐하면 이민교회 숫자가 아직 미국보다 적고, 이민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일 주일에 하나씩 한국교회가 생긴다 할 정도입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오시는 분들은 떳떳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나라에선 떳떳하게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제가 외국에 다니면서 추정해 볼 때, 크리스찬이 150-2백만 명은 될 것으로 봅니다. 굉장히 좋은 선교자원입니다. 150만 중에 신앙에 열심 있는 분이, 셋 중에 하나만 쳐도 50만 명입니다. 굉장한 숫자지요, 50만 명이 일 주일에 두세 시간만 선교에 헌신해 줘도 열 명이 합치면 풀타임 선교사 한 사람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분들이 유리한 것은 언어구사 능력, 합법적인 신분으로 체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교사가 필요한 나라는 대부분 합법적인 선교비자로 못들어갑니다. 신분이 떳떳한 사람, 언어, 문화, 재정, 외국인 접촉이 용이한, 50만 명 중 5만 명의 선교사 자원이 전 세계에 깔려있는 셈입니다. 한국이 지난 40년 동안 애써서 보낸 선교사 27,000명 아닙니까?
 
▲ 열강하는 이현모 교수     © 크리스찬리뷰

디아스포라는 선교사의 개념과 자원이 역량이 2배로 늘어날 역량과 잠재력이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면에서, 30년 전에는 한인교회와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앙숙이었습니다. 한인 교회들이 지금은 선교사 사명을 느끼고 있는 것도 좋은 현상입니다. 앞으로 선교전략에서 디아스포라 한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클 것입니다.“
 
성장통을 앓는 교민들
 
특히 우리가 사는 호주에 대한 진단도 진지했다. 
 
“호주는 참 독특한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성장통을 경험하는 나라입니다. 오랫동안 백호주의 고집하다가 베트남 난민부터 백인 아닌 사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 이제 한 세대입니다. 지금의 호주인들은 사실은 백인이 아닌 다민족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세대들입니다.
 
성장통 기간 동안엔 당연히 아픕니다, 머리로는 다민족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마음과 손이 그렇게 변하지 않은 혼동 가운데 있는 나라입니다.
 
아직 호주는 이민 초기로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지내놓고 보면 이민 1세대가 사람들에게 특별한 세대로 기억됩니다. 1세대들이 하던 일, 생각, 사고, 모든 게 지내놓고 보면, 마치 미지의 길을 갈 때 처음 간 발자국을 따라가면 길이 되듯이, 이민 1세대들의 길이 나침반과 같고, 가치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후반, 저는 미국 텍사스에서 5년 이민 목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였습니다. 지금 미국 교포들은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1세대들의 공로입니다. 그분들이 신앙을 지켰고, 자손도 잘 키우셨습니다.
 
호주가 지금 그 시대 같습니다, 호주 이민 생활은 미국에서 오래 이민 생활한 분들의 방법을 배우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 이민 가는 것이 특권이지만 70년대는 불법으로 무작정 가서 눌러앉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밑바닥 생활하다가 이제 자리 잡고 안정되면서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 받은지 40년 정도 된 것입니다.
 
호주도 1세대는 혼란 가운데, 1.5, 2세들이 자리 잡을 때 호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커질 것입니다. 다민족 사회에서 성장한 자녀들이 선교사로 나갈 수 있다면 굉장한 자원입니다. 
 
이민 1세대도 선교에서 좋은 자원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20년 전 미 남침례교에서 1천 명의 한인들을 선교지에 보낸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이 1.5세나 2세들을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선교사들은 1세대에서 나왔고, 그들이 사역을 제일 잘했습니다.
 
한참 그렇게 하다 한국인들의 비율이 너무 늘어나니 미국에서 견제한 부분도 있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교회들이 상당히 미국 1세대들입니다. 실제로 1.5세나 2세대보다 선교지에서 적응력은 1세대들이 훨씬 유리합니다. 이들이 큰 선교자원임은 틀림없습니다.“
 
한국교회 선교붐이 일어났을 때, 1세대 선교학자로서 이론적인 배경을 도입하고 제공한 그의 학문여정은 침례교 선교역사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교회 선교학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사역적인 면에서 저 스스로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2천 년 교회역사 가운데 지금 기독교가 가장 큰 자유와 가장 큰 부흥을 경험하는 시대입니다. 혼자 가끔 ‘내가 이 세상에 이런 시대에 태어난 것, 이런 시기에 예수님 믿게 된 것, 전임사역자가 된 것, 특히 선교 일을 하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2천 년 교회역사에 가장 행복을 누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울은 사명으로 뭉친 사람으로 그 인생이 한 번도 평안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이 기독교는 최고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시대입니다.”
 
사역의 행운아
 
선교학이란 학문의 틀을 마련한 지금이야 이런 회고를 할 수 있지만, 25년 선교학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땐 강의 디자인부터 창안해야 할 정도로 한국 신학계는 열악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서울 큰 신학교 교수요목(수업계획서)를 구해다 공부하고, 강의노트도 빌려서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독특한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신학생들 사이에 선교학 강의를 듣고 나면 ‘선교학은 뭔지 모르지만 선교는 안하겠다’는 간증(?)이었습니다.
 
강의노트를 보니 이해되었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선교학 강의가 없었습니다. 선교학 개념만 한 학기 내내 공부해요. 성서 속에 나타난 선교의 개념 등이 주종을 이루더군요. 처음 선교학을 디자인할 때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이와는 정반대로, ‘선교학 강의를 듣고 나면 선교가 뭔지 이해는 다 못하지만 선교하러 가겠습니다’하는 반응이 나오는 쪽으로, 선교의 한 부분을 감당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오도록 강의했으면 좋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션 퍼스펙티브’ 선교를 4섹션으로 나누어 공부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선교의 성경적 기초, 선교역사, 문화적 관점, 선교의 전략적 관점으로 나눴습니다. 이전에 선교학은 실천신학의 한 파트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방법론에 집중했습니다.
 
또 선교학은 역사신학의 한 파트였던 적도 있고, 한때는 조직신학의 한 파트였던 적도 있습니다. 조직신학과 현대신학을 다 아우르는 신학조류로 선교학을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독립된 한 영역으로, 전체 신학을 아우르는 독립된 영역이 되었습니다.
 
수강 후 정말 선교에 동참할 마음이 생겼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 과목이 의미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선교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선교학을 외국에 가서, 교회 개척하고, 복음 전하고, 사람들 훈련시키면 되지 않느냐? 목양하는 거나 선교에서 하는 거나 그게 그거 아니냐? 단지 언어만 다른 것이, 언어만 배우면 선교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느냐?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반적인 훈련에 언어만 끼우면 되느냐? 혼동이냐? 자기가 속한 나라에서의 목회와 선교지에서 선교하는 것과 다른  것인가? 자기의 목회사역의 경험과 기술이 선교지에서 그대로 사용되지만 완전히 별개는 아니지만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똑같다고 생각하고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다. 선교지에서의 사역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치 농사짓는 것이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가서 지으면 약간 다르지만 동남아나 아프리카 남미에 가면 기후, 토양, 종자,일꾼들의 일하는 문화 등이 다르니 전혀 다른 방법으로 지어야 하는 것과 선교는 거의 동일합니다.”
 
그 ‘다름의 발견’을 위해 분투하고, 그것을 알리기 위해 달려온지 4반 세기. 그는 이사야 말씀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21)는 말씀을 늘 암송하며, 찬송은 ‘나의 영원하신 기업’(431장)을 즐겨 부르며, 존 파이퍼, 존 맥아더의 책들을 좋아하는 영성 깊은 선교학자이다. 무엇보다 가정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고 실천하고 있는 그는 결혼에 얽힌 삽화같은 이야기도 해주었다.

▲ 이현모 교수는 몰링칼리지에서 개최한 ‘현대 선교’ 한국어 신학 강좌를 마친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죠이선교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외국 선교사들이 영어 가르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날도 연희동 선교사 컴파운드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날짜를 잘못 받았는지 여학생들만 있었습니다. 나이가 꽤드신 선교사님이 조용히 나중에 여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셨어요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될지 이야기 해봐라’했는데, 대학에 막 입학한 여학생이 냉큼 ‘이 담에 커서 현모양처가 되겠습니다’라고 해요.”
 
순간 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이름(현모)을 부르는 소리로 들렸다. ‘현모(의)양처가 되겠습니다’라는 고백처럼 들린 것이다. 그날 그 고백(?)처럼 7년 뒤 정확이 ‘현모의 양처’가 되었다.
 
“아내는 이화여대 78학번인데, 죠이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특수교육 공부하고 장애인학교 교사를 했지요. 결혼하고 일 년 후 아들 하나 낳고 미국으로 유학갔습니다. 아내는 기독교 교육학과 사회복지를 공부했구요.  아내가 고마운 것은 애가 있는데, 둘이 같이 공부하는 것은 시간도 재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박사과정 공부를 포기할 정도로 가정을 섬겼습니다.
 
한국에서 시간 강사로 20년 동안 일하고, 20년 되는 해 스스로 은퇴 선언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지금은 침례교훈련센터에서 훈련 받는 분들의 상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
 
선교학자로서 그가 경험한 ‘신앙’은 굉장히 어려운 단어라고 했다.
 
“신앙이란 한마디로 실체에 대한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단순히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믿는 신앙의 대상이 진짜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는 믿는다는 것보다 우리가 믿는 대상이 진짜냐가 더 중요합니다. 단순히 믿는다는 정의보다 실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경험은 철학에서 신뢰하지 않습니다. 믿는다는 것보다 역사적인 실체냐를 고민합니다. 계속 우리의 신앙이 진짜임을 변증할 수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진리싸움입니다.”
 
선교학자로서, 이민교회 목회 경험자로서, 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솔직한 소회를 이야기했다. 
 
“호주, 뉴질랜드의 목회가 어렵다는 소식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극복하기 제일 좋은 방법은 서로 협력하고 네트워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경쟁은 배웠지만 협력과 네트워킹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살다보면 당연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통해, 어느 새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사람들의 인정, 사람들로부터 받는 평가가 되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평가와 신뢰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도 하나님의 평가보다 사람들의 평가에서 목회의 성공과 실패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인간의 평가에서 아픔을 느낍니다.
 
스무 명 목회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500명을 목회하니 힘든 것입니다. 동기 목사가 성공하면 자신은 실패했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이지요,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의 평가’보다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정신으로’ 네트워킹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함께 넘어가는 비결이 아닌가 합니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알파크루시스대 원격교육학부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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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28 [09:5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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