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음을 품은 시드니주마음교회
노숙자를 섬기는 박용대 목사 부부
 
글|김환기,사진|권순형

▲  크리스찬리뷰 5월호 표지/2018 © 크리스찬리뷰

▲ 시드니주마음교회는 매월 2·4주 토요일 저녁 7시 15분부터 센트럴 역에서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밥퍼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오늘 바보 같은 사람을 만났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육으로는 바보지만, 영으로는 천재이다. 박용대 목사, 백혜원 사모.
 
두 사람은 '시드니주마음교회'를 섬긴다. 새벽기도 중에 주님이 주신 교회 이름이다. 주보 첫 면의 글이다.
 
주님 마음 닮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드니주마음교회',      '그리스도의 심장',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내년 초에 또 이사 가야 한다. 건물 주인이 재건축할 예정이다. 하지만 박 목사 부부는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다. ‘주마음’(Christ's Heart)을 가진 교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시드니주마음교회는 작지만 큰 교회이다.
 
아니 어찌 이런 결혼이!
 
백 사모는 1987년에 호주로 이민 왔다. 언니의 초청으로 영주권을 받고 부모와 남동생과 함께 왔다. 그녀가 대학교 3년 때이다. 막상 와보니 대학을 바로 갈 수가 없어, 한국 가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언니가 살고 있는 아들레이드에서 아들레이드장로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영적 거장인 홍병숙 권사를 만났다.
 
“그분은 말씀과 기도로 무장된 분입니다. 영적 어머니입니다. 저를 신앙으로 이끌어 주셨을 뿐 아니라, 박 목사와 결혼도 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28살이 되었을 때,  권사님은 어느 날 저에게 ‘시드니에 교회를 개척해야 하니까 좋은 사람이 있으니 빨리 결혼해서 데려 오라우.’”
 
백 사모는 홍 권사의 북한 사투리 흉내를 내면서, 아직도 그날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홍 권사는 시드니에 교회를 개척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홍 권사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도착하는 날 박목사를 처음 만났다. 다음날 두 사람은 호주 대사관에 가서 비자신청을 했고, 1주일 후에 결혼했다.
  
"잠깐만 사모님,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너무 황당한 나는 말을 막았다. 박 목사와 사모는 함께 크게 웃었다.

▲ 영적 어머니 홍병숙 권사의 말 한마디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28세의 백혜원 양. 그는 다음날 박용대 목사를 만나 호주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했고, 일 주일 후 논산 삼보예식장에서 결혼했다.(1992. 12.14) ©박용대  

▲ 홍병숙 권사.    

"그렇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솔직히 저는 결혼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날 사모를 처음보고, 다음날 호주 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하고, 1주일 만에 결혼했어요. 당시 저는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사모는 결혼 후 한 달 만에  호주로 갔어요. 저는 남은 공부를 마쳐야만 했죠" 박 목사는 목원대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다시 소속 교단인 순장 장로교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호주로 돌아와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가끔 제가 유부녀인지 처녀인지 혼동될 때가 있었어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요. 어떻게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과 그런 식으로 결혼할 수 있냐고 신기해 하더군요. 그때는 지금보다 믿음이 훨씬 좋았던 것 같아요."
 
아니 어찌 이런 결혼이! 결혼의 배후에는 홍병숙 권사가 있었다. 홍 권사는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1.4 후퇴 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했다. 홍 권사는 믿음으로 살았고, 기도로 자녀를 양육했고, 삶으로 신앙의 본을 보였다. 그녀는 무엇보다 교회 개척에 불같은 열정이 있어, 한국은 물론 아들이 있는 미국 그리고 호주에도 교회를 개척했다.
 
▲ 센트럴 역 노숙인 밥퍼 사역 현장에서 만난 박용대 목사와 백혜원 사모.                        © 크리스찬리뷰
 
홍 권사는 박 목사 부모에게는 바울과 같은 분이고, 백사모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홍 권사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있다고 한다. 홍 권사가 소개했고, 보증했기에 두 사람 모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냥 순종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린 입을 쉽게 다물 수 없었다.
 
신학교에서 '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 다음 날 주제가 '리더십 신뢰의 법칙'이었다. 나는 박 목사 부부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아는 만큼 사는 것이 아니라, 믿는 만큼 사는 것 같습니다. 어제 시드니에서 노숙자 사역을 하는 목사님 부부를 만났습니다. ....."

그날 수업은 박 목사 부부와 홍 권사 이야기로 충분했다.

▲ 가정예배로 시작한 시드니주마음교회 창립예배 (2013) ©박용대    

▲ 버우드 에벤에셀 선교회 사무실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다 (2014. 4) ©박용대    

▲ Chiwick Community Hall에서 예배 드리던 시절 (2014. 7) ©박용대    

▲ 현재 예배 장소인 Enfield로 이전했을 당시 이전감사예배 (2014. 10.4) ©박용대     
 
- 어떻게 노숙인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박 목사는 1994년 12월 골드코스트에서 이민 목회를 시작했다. 1997년 사역지를 바꾸어 2002년까지 담임목사로 시드니호천장로교회를 섬기다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후, 2007년부터 협동목사로 호천교회를 다시 섬겼다. 그는 2013년에 '시드니주마음교회’를 개척했다. 예배 장소가 없어서 6번이나 이사를 하다 지금의 자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1천 달러를 달라고 했어요. 너무 부담스러워 공간을 나누어서 쓰겠다고 했지요. 지금은 매주 6백 불을 내고 있어요. 정말 감사한 것은 나눈 공간에 새들어 올 사람이 없어 우리가 무료로 쓰고 있어요"
 
"처음에는 교회 이름도 없이 개척했어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빌립보서 2장 5절의 말씀을 주셨어요. 주님의 마음을 품은, 주마음교회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 교회 이름이 사역과 너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노숙자 사역을 시작했나요?
 
"교회 개척 때부터 저는 작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제 목회 철학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입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노숙인 사역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3년 전 처음 노숙인 사역을 ‘울루물루’에서 시작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70-80명의 노숙인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울루물루에 노숙인들이 많다는 소문이 나자 여러 자선 단체가 물량공세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노숙인들은 우리 음식보다 다른 단체에서 주는 음식을 좋아했고, 우리는 장소도 구석진 곳으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센트럴 역에 자리가 나서 그곳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센트럴 스테이션에는 매일 저녁 여러 한인교회들이 노숙자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토요일에 봉사단체가 없어서 저희들이 가게 되었습니다. 격주로 나갑니다. 우리가 안 나가는 날은 다른 단체에서 나옵니다."

- 울루물루 사역과 센트럴 역 사역의 차이점이 있습니까?

"울루물루 노숙인들은 상주하는 사람들이고, 센트럴 역은 80% 정도 바뀝니다. 울루물루는 다양한 이유로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약에 취해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사람들이 회개해서 새롭게 된다는 것은 백 명 중에 한 사람 있을까 말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노숙자 사역에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되겠죠.

▲ 해가 저물무렵 센트럴 역 인근에 노숙인을 위한 밥상공동체가 차려지면 노숙인들이 몰려들어 허기진 한 끼를 채운다. 이곳은 노숙인들뿐만 아니라 주머니가 얄팍한 배낭여행자들도 즐겨 찾고 있다. 배식을 위해 테이블을 설치하고 있는 가운데 노숙인들은 이미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알고 있던 노숙자들이 더 이상 그곳에 나오지 않을 때입니다. 중국계 월남인 노숙자가 있었습니다. 63년생으로 형도 자살하고, 자신도 도박과 마약에 빠져 폐인이 된 사람입니다. 사기결혼까지 당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했던 사람입니다. 매주 만나면서 친구로 가깝게 지내다 보니 친구와 함께 우리 교회에도 왔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걱정돼서 다른 친구에게 물어 보았더니, 일을 하고 있어 바빠서 나오지 못나고 하더군요.
 
정말 드문 경우지만 이때가 가장 보람됩니다.‘상담의 완성은 상담자가 필요 없을 때이고, 노숙인 사역의 완성은 노숙인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너무 배가 고파서 쉬는 시간에 남은 음식을 봉사자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멀리서 보고 있던 노숙인이 가까이 와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는 음식을 너희도 먹는 것을 보니 너희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노숙인들 중에는 나누어 주는 음식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 돕는 손길은 있나요?

"처음에는 100% 저희 교회 힘으로 시작했어요. 작은 교회에서 렌트비 내기도 힘든데 한 주에 $400 정도 노숙인 사역으로 지출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마디 불평도 없이 기쁨으로 동참하는 우리 교회 집사님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역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돕는 손길도 생겼습니다.
 
크리스찬리뷰의 기사와 광고를 보고 시드니순복음교회 유효석 권사, 변영도 장로, 시드니온누리교회 황옥숙 권사, 엠마오 대학 학생, 홍성옥 집사 등 많은 분들이 비정규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친척도 가끔 도와주고 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하늘의 만나처럼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그 누군가를 통해서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와 외부 도움이 반반 정도됩니다."

▲ 구세군한인교회 안필립 부교(왼쪽 2번째)는 83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일 년 전부터 노숙자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백 사모는 정규적으로 도와주는 분도 있다며, 구세군한인교회의 '안필립 부교'를 언급했다. 안필립 부교는 1년 전 크리스찬리뷰를 보고 노숙자 사역에 동참했다.
 
"안 부교님은 오실 때마다 적은 돈이지만 기부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안 부교님이 구세군 정복을 입고 오셔서 노숙인들은 우리가 구세군에서 나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집사님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뭐 누가하면 어떻습니까. 우리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니 다 마찬가지이지요"
 
안필립 부교는 83세의 노인이다. 정부공무원(?)으로 정부연금을 받으며 정부주택에서 살고 있다. 연금 외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다. 그는 자비로 전도지를 만들어 전도를 하고 있다. 우연히 노숙자 사역을 알게 되어 합류하게 되었다. 올해 초 구세군한인교회에서 부교로 임명을 받고, 어디를 가든지 구세군 군복을 입고 다닌다.
 
그는 새벽기도회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기도로 하루를 열고, 전도로 하루를 보내고,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이다.

▲ 거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노숙인.     ©크리스찬리뷰
 
노숙자 사역의 현장 센트럴 역
 
3월의 마지막 날, 어둠이 대지를 덮기 시작하면서 센트럴 역 근처로 노숙인 한두 사람씩 모이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센트럴 역에는 노숙인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단체가 있다. 대부분 한인 교회들이다.
 
음식은 호주 정부의 민감한 사안이라 교회 차원이라기보다는, 교인 차원에서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숙자 사역의 대부와 같은 인물이 있다. 시드니새순교회를 다니는 인정상 집사이다. 박 목사도 인 집사를 통하여 노숙자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 정성을 다해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손길들.     ©크리스찬리뷰
 
▲ 노숙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박 목사는 1남 2녀를 두고 있다. 오늘도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왔다. 교회에는 청년이 세 명 있다. 봉사하는 날이면 일부러 청년부 모임을 시내에서 갖고 봉사에 참여한다. 음식을 나누면서 일부는 전도를 한다. 오늘은 원주민 선교를 하는 고경숙 선교사도 함께 했다. 원주민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 노숙인 사역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박 목사는 노숙자의 상황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시드니 시내 마틴 플레이스와 벨모어 공원의 노숙인 임시 거주 시설이 철거되었으며, 노숙인들이 센트럴 역으로 몰려 왔습니다.”
 
"일반사람들이 노숙인을 무서워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입니다. 노숙인들은 특별히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청년들을 무서워합니다. 얼마 전에도 자다가 구타당한 노숙인이 있습니다. 밤에는 개별행동을 하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근처로 노숙인들이 모여듭니다."
 
봉사가 끝날 무렵, 중동계 청년 4명이 우리 옆에 서서 하얀 비닐 봉지 속에서 목도리, 가방, 옷 등을 꺼내서 노숙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가 새 상품이었다. 누굴까?

▲ 프랑스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시드니를 방문한 무슬림들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 노숙자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 나누어 주었다.     © 크리스찬리뷰

▲ 무슬림들이 시드니주마음교회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크리스찬리뷰

"저희들은 무슬림이예요. 어제 여기서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우리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Facebook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하루 만에 500불 정도 모였어요.  오늘 K-Mart에 가서 노숙자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서 나누어 드리는 거예요." 키 큰 여자 청년이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시드니에 사는 청년이 아닌 것 같았다. 
 
"어디서 왔나요?"
 
"저는 프랑스 파리에서 왔어요."
 
그녀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시드니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곳에 얼마나 있을 건가요?"
 
"잘 모르겠어요. 한 달 혹 두 달 상황에 따라 달라요."
 
대화 중 입가에는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파리와 시드니의 차이점이 뭔가요?”
 
"집값이 너무 비싸요. 물가도 비싸고요. 하지만 좋은 곳인 것 같아요. 파리도 아름다워요. 언제 한번 오세요."
 
"이곳에 또 올 건가요?"
 
"모금을 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모금이 되는대로 다시 오려고 해요. 다음 주 정도에 올 수 있기를 바래요."
 
떠나기 전에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메일을 주시면 찍은 사진을 보내 주지요."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이메일을 적어 주었다. 집에 돌아와 즉시 사진을 보냈다. 얼마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사진 보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는 다시 봉사하러 갈 겁니다. 혹시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Shaima Lourimi"

▲ 밥퍼 사역을 마친 후 노숙인들과 함께 감사 기도하는 봉사자들.     © 크리스찬리뷰

'노숙인'과 홈리스는 다른가?
 
'홈리스'(Homeless)는 '노숙인'(路宿人)이다. 정해진 주거 없이 주로 공원, 거리, 역, 버려진 건물 등을 거처로 삼아 잠을 자며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IMF 이전에는 길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의 공식적 용어는 ‘부랑인’이었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실직상태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노숙자'라고 했다가, 이제는 '노숙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아직도 '노숙인'에 대한 정의는 합의되지 않아, 사람이나 국가에 따라서 그 범위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호주 구세군의 통계에 의하면 '홈리스'는 10만 명이 훨씬 넘는다. 호주 인구를 2천5백만으로 보면, 최소한 250명 중 1 사람은 '홈리스'이다. 한편 2016년 한국 통계청에 의하면 '노숙인'이 1만 1,340명이라고 발표했다. 통계만 보면 한국 '노숙인'은 호주 '홈리스'의 1/10 수준이다. 호주 인구는 한국의 반 정도 뿐이 되지 않고, 복지제도도 훨씬 잘되어 있는데 '노숙인'이 한국보다 10배가 많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왜 그런가? '노숙인'의 정의가 한국과 호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연합(UN)은 "홈리스(Homeless)는 ‘집이 없는 사람과 옥외나 단기보호시설 또는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집이 있으나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과 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호주는 UN의 기준에 근거하여 '홈리스'라고 정의했다. 한국은 2003년 7월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서 노숙인 및 부랑인 보호가 명시되었고(제34조 제4항), 보건복지부령 제307조로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시설설치 운영규칙"이 공포되었다.
 
이 규칙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써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노숙인'이라 했다. 한국에서는 노숙인 대우(?) 받기도 쉽지가 않다.
 
특별한 비전이 있나요?
 
저의 철학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관심이 많은 사역은 '호주 원주민과 노숙인 사역'입니다. 교회 재정이 여유롭지 못해 활동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원주민 사역도 조금씩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원주민 촌에 갔었는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노숙인 사역을 하는 많은 분들이 있는데, 저희에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작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이기에 열심히 할 예정입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모가 한마디 거든다.

▲ 밥퍼 사역을 마친 후 짐을 싣고 있는 봉사자들. 이날 시드니 시내 에서는 마디그라 행진이 열리고 있었다.(2018. 3.3)     © 크리스찬리뷰

"당신 꿈이 있다고 했잖아요. 목사님은 '푸드 트럭'(Food Truck)을 구입해서 직접 노숙인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싶다고 했어요. 추운 겨울에 가끔 노숙인들이 식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서 무척 안쓰러워했거든요. 지난번에는 노숙인들이 매일 비슷한 음식을 먹다 보니 조금 질렸나 봐요. 저희들에게 치킨이나 소고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준비해서 드렸어요. 기본적인 것은 교회에서 준비하고 나머지는 저의 집까지 포함해서 4가정이 돌아가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사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사님들과 함께 즐겁게 사역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주위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그분들의 손길은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으로 큰 힘이 됩니다. 다시 한 번 노숙자 사역에 함께 하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축복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박 목사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듯이 여러 손길을 통하여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이런 좋은 일(노숙인 사역)을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집사님 중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이 가시니까 무조건 따라 가는 겁니다. 만약 목사님이 안 가시면 저희도 안 갔을 겁니다”
 
목사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 줄 동역자가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믿고 자신 있게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역에 신조가 있다면 군대 지휘관들이 외치는 “공격 앞으로”가 아니고 “나를 따르라”는 자세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저를 이처럼 신뢰해 주셔서 저도 감사하면서 작지만 자신있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겸손과 진심이 묻어 있었다. '주마음'으로 작지만 큰 교회인 '주마음교회'를 섬기는 박 목사를 만나고,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약 2:18)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행함으로 구원 받은 것을 증명할 필요는 있다.〠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8/04/23 [10:3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