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크립토나이트 깨기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04/23 [17:24]
슈퍼맨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슈퍼맨의 고향에서 가져왔다고 하는 가상의 방사성 물질 ‘크립토나이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슈퍼맨처럼 크립토나이트가 존재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공동체에도 공동체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영적 크립토나이트가 존재한다.

영적 크립토나이트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것은 우리 개인의 신앙을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경은 ‘견고한 진’(고후10:3-4)이라고 부른다. 견고한 진의 문제는 누구나 쉽게 알아 볼 수 없고,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건강하던 사람이 암 판정을 받게 되면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듯이, 영적 크립토나이트를 만나면 누구나 두려움과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활기찬 그리스도인이 무기력하게 살도록 만들어 버린다.

영적 크립토나이트, 즉 견고한 진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을 상실하게 만든다. 자기욕심과 탐욕에 빠지게 만든다. 항상 불순종과  불평의 삶을 살면서도 주일예배를 드리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이 공동체에 많아지면 외형적 성장은 있겠지만 그 공동체는 세상에 대해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영적 크립토나이트를 깨지 못하여 무기력해진 그리스도인의 문제점은 혼자 무기력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까지 무기력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전쟁의 패배라는 결과를 갖게 하듯이, 무기력한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공동체의 활력을 빼앗아가 버릴 수 있다.

그러면 그리스인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영적 크립토나이트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예배에 존재하는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 어떤 대상’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 발생된다. 우리는 예배 드릴 때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교회 건물을 더 중요히 여긴다거나, 하나님보다 찬양이나 예배의식을 더 사모하며 사랑하거나, 하나님보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나 청중을 더 좋아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창세기 22:5을 보면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올라간 이유는 하나님께 찬양드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흘 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독자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라는 지시’에 대한 ‘순종’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예배의 본질이 찬양이 아니라 순종임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영적 크립토나이트를 깨는 방법은 공동체와 함께 죄와 싸우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이고, 사랑의 공동체이고, 사명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고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침묵은 죄에 대해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엘리야처럼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를 속이는 크립토나이크 같은 은밀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적 크립토나이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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