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운동을 생각하며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05/28 [15:51]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쇼핑을 하려고 차를 세우고 길을 걷고 있을 때 전에 목회하던 교회 여성도들을 만났다.
 
“목사님, 오랜만이예요. 참 반갑네요”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도 하도 오랜만이라 참 반가웠다. 그래서 반갑다는 인사에 나 역시 “Me too”하고 인사에 답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고 보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참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Me too”라는 말은 “동의한다” “나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한 시대가 되었으니 한편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상이 얼마나 성적으로 몰락한 시대가 되었기에 “Me too”라는 단어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까?
 
요즘 “Me too”운동이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존경받던 지도층 인사들이 하루 아침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들어 난 인물 중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자의 군락에 있었던 작가도 있고, 법을 집행하는 고위직 검찰인사도 있고, 연극단이나 영화 제작 등 예술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고위직 정치인들까지 줄줄이 언급되고 있다.
 
심지어 선교지에서 사역하던 신부의 이름도 나오고, 정통교회는 아니지만 이단의 교주들도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모르기는 해도 공개된 사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들이 시간과 함께 묻혀가고 있을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Me Too”에 거론되는 인사들은 대부분의 경우 “갑, 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술 분야에서 제자는 절대적으로 스승에게 복종하고 인정받아야 미래가 열리는 특이한 상황이다 보니 그런 상황을 악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승의 부당한 요구임을 알았지만 스승이며 갑이라는 관계였기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닌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니 한국 역사에서 지난 수백 년 동안 어두운 밤 문화와 음주 문화 속에서 형성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다루었던 어두운 정치와 사업의 세계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국 남성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지금 알려진 것보다 수백 배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의 자기 의사를 표현해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삶이 저물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성(sex)의 문화, 성(性)의 미학(美學)을 노래하는 성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의 저택가에도, 정치에도, 언론에도, 심지어 종교에서도 성의 노골적인 유혹과 광기는 현대인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런 시대 우리 크리스찬은 요셉처럼 유혹의 자리에서 소리치며 도망하여 이 죄를 물리치고,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있는 순결하고 거룩한 터 위에 가정을, 그리고 부부 관계를 아름답게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히 13:4)〠

홍관표|크리스찬리뷰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