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제주도를 가다
 
글|김환기,사진|권순형
▲ 세계에서 26번째 큰 섬인 타스마니아는 호주에서도 청정지역으로 불린다. 사진은 크레이들 마운틴과 도브 호수.     © 크리스찬리뷰

가능성을 탐험하는 도시, 타스마니아

한국에 '제주도'가 있다면, 호주에는 '타스마니아'(Tasmania)가 있다. 호주 남쪽 끝에 위치한 '타스마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의 하나이다. 호주의 가장 작은 주이지만 자연과 역사가 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지역적인 고립성으로 인해 다른 주에 비하여 상업화가 덜 이루어졌고, 독특하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2℃ 내외에 연교차가 10℃ 정도로 연교차가 온대 지방 치곤 많이 적으며, 비도 1년 내내 고르게 오는 해양성기후를 띈다.
 
2018년 3월 현재, 인구는 약 52만 명이 살고 있다. 수도인 '호바트'(Hobart)에 22만 명, 둘째 도시인 '론세스톤'(Launceston)에 9만 명, 나머지 지역에 21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주요 산업은 관광업, 농업, 수산업, 목축업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 사과의 산지로도 유명하며, 섬의 모양도 사과와 비슷하여 '사과의 섬'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타스마니아 역사(History of Tasmania)
 
'타스마니아'(Tasmania)는 1642년 11월 24일 네덜란드 탐험가 '타스만'(Tasman)이 발견했다. 1772년에는 '마르크-조셉 마리온 두 프레스네'(Marc-Joseph Marion du Fresne)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가 상륙했고, 1777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Captain James Cook) 이곳에 왔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유럽인 뱃사람들이 상륙하면서 지형상의 특징들의 명칭에 다채로운 정렬을 추가한다.
 
영국은 1788년 1월 26일 호주를 유형지로 개발하고, 타스마니아의 소유를 주장하는 프랑스를 견제할 목적으로, 1803년 NSW주에서 죄수들을 보내어 '타스마니아'를 유형지(Penal Colony)로 개발하였다. 처음에는 NSW주의 일부였으나, 1825년 'Van Diemns' Land'란 이름으로 분리된 후, 1854년 자치주로 독립을 하고, 1856년 1월 1일 발견자인 '타스만'(Tasman)을 기념하여 '타스마니아'로 섬의 이름을 바꾸었다.
 
▲ 호바트에서 차로 90분 거리인 포트 아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죄수 유배지이다. 1830년도 영국에서 죄수들이 넘어와 1877년까지 47년간 감옥으로 사용된 곳이다.     © 크리스찬리뷰

1901년 1월 1월 호주 연방정부의 6개 주의 하나로 등록했다. 당시 호주연방정부는 Queensland, NSW(New South Wales), Victoria, Tasmania, SA(South Australia), and WA (Western Australia) 6개 주로 구성되었다.
 
1901년 연방이 출범하면서 호주의 양대 도시인 시드니와 멜본은 연방 수도 자리를 놓고 충돌했다. 1911년 1월 1일 도시 간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캔버라'(Canberra)를 수도로 정하고, NSW에서 분리하여 ACT(Australian Capital Territory)를 만들었다. 같은 해에 NT(Northern Territory)도 SA에서 분리되었다.
 
검은 전쟁 (Black War)
 
'검은 전쟁'(Black War)이란 1820s~1832년에 영국 정착민과 호주 원주민 사이에서 있었던 전쟁이다. 호주 원주민은 멜라네시아의 항해자들이다. 피부가 검기 때문에 백인들은 '원주민과 전쟁'을 '검은 전쟁'(Black War)이라고 불렀다. 정착민이 일방적으로 원주민을 살해했지만, 아직까지 역사학자들 사이에 논쟁의 여지는 남아있다.
 
그들은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여자들을 납치하여 강간하고, 살인까지 자행했다. 당시 정착민들의 인구 비율은 남자 6명에 여자 1명이고, 죄수들은 남자 16명에 여자 1명이었다.
 
역사학자 "니콜라스 클러맨트(Nicholas Clements)는 원주민 여성을 향한 '왕성한 식욕'(voracious appetite)이 가장 문제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분개한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심화되자, 부주지사인(Lieutenant Governor) '조지 아서'(George Arthur)는 3백여 명의 군대를 보내어, 1828년 11월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는 1830년 'Black Line'이란 작전명으로 정착민들을 소집하여 원주민들을 말살시키려 했다. 이때 대부분의 원주민은 살해되고 3백여 명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1832년 '검은 전쟁'이 끝나고, 원주민들은 '프린더스'(Flinders) 섬으로 보내졌다.
 
자연의 보물섬 (The Treasure Island of Nature)
 
사람들은 '타스마니아'를 '자연의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호주는 각 주마다 주의 특징을 살려 ‘자동차 번호판’에 간단한 문구를 적는다.
 
NSW는 '첫 번째 주'(The First State), Queensland는'햇볕의 주'(Sunshine State), Victoria는 '머물 곳'(The Place to be), NT는 '호주의 오지'(Outback Australia) 등이다. 타스마니아는 '가능성을 탐험하라'(Explore the possibilities)이다. '보물섬'에 걸맞은 문구이다.


▲ 1823년에 건설된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리치몬드(Richmond Bridge).     © 크리스찬리뷰

타스마니아는 신선한 공기, 맑은 물, 울창한 산림, 아름다운 호수 그리고 에메랄드 빛의 남태평양 바다로 둘러싸인 보물섬이다. 한국에서 시드니를 찾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기가 깨끗하고, 하늘이 맑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타스마니아에는 시드니와 또 다른 공기와 하늘이 있다. 특별히 어둠을 뚫고 바다 저편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여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공간의 착각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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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29 [17:4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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