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벨은 언 땅의 지렁이입니다
유진벨재단 회장 인세반 박사
 
글|주경식,사진|권순형
▲ 유진벨재단의 인세반 회장은 북한 결핵 퇴치사업을 위해 지난 79년 첫 방북 이후 1백여 차례 이상에 걸쳐 북한을 다녀왔다.     ©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제공= 유진벨재단>

유진벨재단 회장 인세반 박사(Dr. Stephen W. Linton)를 만났다.  샤프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구수하게 나오는 전라도 사투리는 금새 사람을 친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1995년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던 북한 주민을 위한 식량지원을 시작한 유진벨재단은 1997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결핵치료 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는 유진벨재단의 설립자이자 회장으로 지금까지 수도 없이 북한을 드나들었던 한국인보다 더 북한과 한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외국인으로 그보다 북한을 더 많이 방문한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을 방문한 회수를 세었지만 -그때 이미 60여 차례- 어느 때부터 방문 회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북한사람을 사랑하고  AIDS보다도 결핵을 더 천형 (天型)으로 여기는 북한 결핵환자들의 천사라 할 수 있다. 외국인으로 어떻게 북한에 대해 한민족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사실 그는 197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대회를 계기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서 ‘또 다른 한국’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걸 계기로 그해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한반도 이념과 교육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 북한의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이 인세반 회장과 치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진벨재단  

학위 후 컬럼비아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소 한국 연구센터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북한과의 접촉을 원하는 많은 기관의 자문위원으로서 평양과의 학술교류를 조직하고 대표단을 인도했다. 그런 와중에 빌리그레이엄 목사의 통역겸 고문으로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김일성 주석도 세 차례나 만나는 등 북한에 대해 이미 전문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 연구소 한국연구센터 부소장으로 지내던 그는 1995년 북한의 한 지인으로부터 요청을 받는다. ‘식량이 부족하니 외부에서 지원을 해 주시면 환영하겠습니다’란 내용이 담긴 북한 보건성의 편지 한 통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해는 북한이 가뭄과 수해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극심한 고통을 당하던 때였다. 북한정부가 해외원조를 기다린다는 걸 알게 된 인 회장은 재미교포의 지원을 기반으로 한 민간대북원조기구를 만들었다. 마침 1995년은 인세반 회장의 외증조부인 유진벨 선교사의 한국 선교사역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했다. 이름은 외증조부 이름을 따서 ‘유진벨 재단’이라고 지었다. 이렇게 미국 유진벨재단이 설립된 것이다.
 
“사실 북한을 돕게 된 특별한 계기랄 것도 없습니다. 한국 순천에서 자라면서 자연히 북한에 대해 관심이 생겼어요. 1979년부터 방문했으니 그때부터 알게 된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습니다. 미국에선 북한 전문가가 적어 다양한 기관에서 많이 찾았죠. 흔치 않은 길을 걷다 보니 북한과 관련된 여러 기회들이 자연스레 생겼고, 이것이 일종의 소명이 된 거죠”
 
처음에는 북한에 식량보내는 것을 주사업으로 시작했지만 1997년 북한 '큰물피해대책위원회'로부터 대북 결핵퇴치 공식 협조 요청을 받았다. 그 후  '유진벨 프로젝트'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소속) 출범으로 북한 내 대북결핵 퇴치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 후원자들의 소정한 후원금으로 마련한 약품을 전달받은 환자들의 단체사진. ©유진벨재단    
 
 결핵과의 질긴 인연
 
가난한 시골동네 순천에서 자란 인 회장은 소년기와 청년기에 결핵을 두 번이나 앓았던 전력이 있다. 그의 부모인 휴 린튼과 로이스 린튼 선교사 부부는 순천지역에 결핵 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웠고, 그의 모친 로이스 린튼은 순천 기독결핵재활원을 설립해서 무려 35년간이나 순천 일대에서 결핵퇴치사업을 해왔다. 
 
“1960년대 순천 일대에 홍수가 나고, 집 잃은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왔어요. 그들 중 결핵에 걸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당시 광주기독병원엔 결핵환자들이 많았어요. 순천에서 광주로 가려면 비포장 길을 한참 가야 하니 순천에도 진료소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세운 겁니다.” 
▲ 모든 등록 환자들은 후원자의 이름이 적힌 본인의 약상자를 전달받게 된다. ©유진벨재단    

이쯤되면 그는 결핵과는 이미 질긴 인연이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1997년 시작된 북한 결핵퇴치사업은 1960년 모친이 세운 ‘순천기독결핵재활원’소속으로 ‘유진벨프로젝트’가 출발했으니 대를 이어, 한국 땅을 넘어 북한 결핵퇴치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십 년 동안 북한 의료기관 70곳에서 일반 결핵환자들에게 결핵약과 진단장비 등을 제공하므로 약 25만 명의 일반 결핵 환자들이 유진벨을 통해 치료 혜택을 받았다.
 
▲ ① 의료진들이 유진벨 대표단이 가져온 약품을 차에서 내리고 있다. ② 북녘의 의료진들은 헌신적으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 전문가들이다. ③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이 18개월간의 치료를 마치고 졸업(퇴원)하며 축하 목걸이를 받았다. ④ 진엑스퍼트(GeneXpert) 검사를 위해 환자들로부터 받은 객담 샘플을 준비하고 있다. ©유진벨재단  

그러나 2007년부터 북한내 최초로 결핵약에 내성이 생겨 일반 결핵약으로 결핵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핵약에 내성이 생기면 아무리 약을 투여해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
 
이런 환자들은 ‘수퍼 결핵 박테리아’에 전염되었기 때문에 일반 결핵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 북한 보건당국에서는 이런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다제내성결핵약은 일반 결핵 약값에 비해 100배 이상 비쌀 뿐만 아니라 더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치료에 성공할 확률도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일반 결핵환자의 완치율이 95%에 달한다면 다제내성결핵환자의 세계 완치율은 45% 밖에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을 그냥 방치만 할 수도 없는 현실은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을 제때에 치료하지 않는다면 감염자수는 점차 늘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결핵퇴치는 더 어려워지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까지 북한에는 다제내성결핵 치료프로그램이 없었다. 이는 곧 일반 결핵약으로 치료가 안되는 환자들은 가족들에게까지 이 무서운 결핵을 전염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사실 다제내성결핵치료를 인세반 회장에게 요청한 것은 북한 보건관리인들이 아니라 결핵치료센터에서 온 몸을 던져 헌신하고 있던 현지 의료인들이었다. 그래서 유진벨은 일반 결핵약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을 위해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해 다제내성결핵 치료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다제내성결핵은 일반 결핵에 비해 치료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울 뿐 아니라 100배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약제 부작용관리를 위한 지속적인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2008년 19명에서 시작한 다제내성 결핵 수혜자는 2015년에만 이미 1천5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평균 다제내성결핵 치료프로그램을 통한 한 명의 환자의 치료비용은 504만 원 정도가 들어가며 보통 18개월 내외의 치료기간이 소요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일반 결핵약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안되는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형편이지만 북한에서 다제내성결핵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대규모 프로그램은 유진벨이 유일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 다. 
 
이 때문에 유진벨재단은 2007년부터는 일반 결핵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을 위한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간 경색국면에도 결핵약은 간다
 
2007년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남북 간 경색 시절에도 어떻게 북한에 약을 보내고 결핵퇴치사업을 해왔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연평해전, 천안함사태, 핵실험 등 정치적으로 혼란한 때에도 유진벨재단은 사랑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남북 간의 관계는 파라독스입니다.  휴전선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분단체제입니다. 월남전이 한창 치열할 때도 가족 간의 소식들을 주고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70년 동안 전화나 편지들을 통해 이산가족들의 소식들을 알 수 있었습니까? 전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가장 철저한 불신체제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반면에 그러한 강력한 장벽에도 불구하고 땅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환자들은 18개월 동안 결핵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 한 명을 북한보건성에 등록하려면 18개월 분량의 약을 갖다놓고 해야합니다.
 
그러나 가격도 비싸고, 약 보관 문제도 그렇고 해서 6개월치만 갖다놓고 등록합니다. 만약 6개월 먹고 약이 안오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6개월 후면 또 약이 오겠지 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민심은 유진벨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남한 민심을 믿습니다. 약을 보내는 것은 남한 동포와 해외 동포들의 후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북정치야 어떻든 약은 올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는 있습니다. 땅 속에서는 시냇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진벨은 북한주민들에게 남한관계에 있어 신뢰의 상징입니다.”
 
사실 정치 이야기는 민감한 사항이기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하지만 결핵약은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6개월 후에는 반드시 날짜에 맞추어 북한에 결핵약과 장비들을 보내야 하는데 반출 승인이 지연되거나 나지 않아 지금도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북한지원에 많은 도움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호주로 오기 전에도 북한에 보낼 약품과 장비들의 반출 승인이 지연되어 담당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고 토로했다. 
 
“이해가 안가요. 인도주의차원에서 하는 일인데 정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왜 순리되로 되지 않는지… 그래서 이 일은 정치하고 벽을 쌓고 일해야 합니다. ”
 
다행인 것은 ‘민간 주도의 인도주의’ 차원의 사업이기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막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에 따라서 유진벨의 북한결핵퇴치사업을 하나의 정치적 변수로 이용하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금지되는 물품은 없었지만 반출 승인을 제대로 안해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특히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우리는 약을 한 번 보내놓으면 필수적으로 6개월 후에는 또 보내야 해요. 왜냐하면 이 환자들이 18개월 치료가 필요한데 약이 비싸서 우리는 요양소에 한 6개월치만 맡겨놓아요. 그러면 반드시 6개월 후에는 다시 보내야 하는데 그 기간을 못 맞추면 큰 어려움이 생기죠.
 
▲ 인세반 회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인도적 지원이 어려워졌지만 최근 북미회담으로 북한 제재의 벽이 무너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통일부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나쁘다’ ‘좀 천천히 하죠’ ‘이번 달은 힘들지만 다음 달은 분위기가 좋아져 잘 될 겁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반출 승인이 지연되면 치료사업에 큰 지장이 생기는 거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 땅 속으로 시냇물이 흐르듯이’ 결핵약은 어김없이 북한으로 배달되었다. 사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도적 지원이 보다 어려워졌고 결핵 치료와 관련된 물자 구매도 복잡하게 됨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이 북한제재를 강조해왔지만 이번 6.12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북한제재의 벽이 허물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통일 비용
 
이제 남북한의 기류가 좋아지면 왕래도 잦아질 것이고 개성공단 같은 공업단지들을 통해 교류들도 왕성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남북이 왕래하게 되면  공기로 전염되는 결핵은 쉽게 퍼져나갈 수 있다. 중국 동북(東北) 쪽에 결핵이 많고 북한의 결핵도 그 곳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북한만 결핵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OECD 국가 중 한국이 결핵 1위 국가라는 사실에 놀랐다. 인 회장은 북한 결핵이 남한에 전염되는 것보다 남한 결핵이 북한에 전염되는 것을 더 걱정한다.
 
“한국에는 2차약에 내성이 생긴 사람들이 많아요,  한국도 결핵이 많습니다. OECD국가 중 한국이 결핵국가 1위입니다. 저는 남한사람이 북한 가서 결핵 걸리는 것도 두렵지만, 북한 주민이 남한 사람에게 결핵 걸리는 게 더 무섭습니다. 남한 결핵 환자가 북한에 가서 병을 옮기면 우리가 치료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남북한이 한 배 타고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 대부분의 환자들은 다제내성결핵 약을 복용하면서 많은 부작용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유진벨재단      

남한의 결핵환자들은 여러 가지 약으로 이미 내성이 많이 생긴 결핵균이기 때문에 북한으로 전염되면 치료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제 결핵은 글로벌한 국경없는 질병이다.
 
특히 가난한 동남,북 아시아 지역에선 아직도 결핵은 조용히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 회장의 말대로 결핵은 남북한이 한 배 타고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일반 결핵환자들은 1차 결핵치료약을 6~8개월간 꾸준히 복용하면 완치된다. 완치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값싼 약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좀 나아진 것 같으면, 꾸준히 복용하지 않거나, 약을 서로 나눠 먹음으로써 약이 부족하게 되어 끊게 되면 결핵균은 내성이 생기게 된다.
 
“중국 동북지역에 결핵이 많아요, 북한의 결핵도 그쪽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많아요. 그런데 결핵에 걸리면 중국 약값이 싸니까 중국약을 많이 먹습니다. 그거라도 꾸준히 먹으면 되는데 좀 나아진 것 같으면 끊어버리거나, 약을 서로 나눠 먹어 부족하니까 안먹게 되어 내성이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내성이 생기게 되면 복잡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환자 관리가 기본입니다. 환자가 약을 중간에 끊게 되면 이약저약 쓰다가 내성만 키우게 됩니다. 그러다 다제내성결핵환자가 되면 비용도 100배나 더 들게 되고 치료기간도 18개월에서 3년 정도 걸립니다. 이런 결핵환자를 빨리 발견해서 치료하는 것이 향후 의료비를 줄이는 길이에요.”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장기적으로 통일비용으로 내다보고 국가차원에서 지원해야 할 사업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통일이 된다면 남북한 전 주민이 건강한 것이 국가 경쟁력일 뿐 아니라 곧 국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직송과 면세
 
분명 통일이 되면, 북한 결핵문제가 중요한 국민 건강이슈로 등장할 수 있다. 만약 다제내성결핵환자가 늘어난다면 국가적으로 큰 재정적 손실이 될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재정적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여러 가지 행정적 편의와 관세 혜택은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결핵약과 장비들을 북한에 보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재들이 너무 많다.
 
현재 안타깝게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에 보내는 NGO 약품과 물품들은 모두 중국을 거쳐 들어가게 되어 있다. 또한 다제내성결핵약은 한국에서 출시되는 것도 있지만 해외에서 주문해서 가지고 들어오는 종류들도 많이 있다.
 
이 약들은 한국에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한국에서 분류되어 북한에 들어가는 약들임에도 불구하고 8%의 관세들을 부과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한국에 판매하기 위해 들어오는 약이 아니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을 돕기위해 들어오는 약임에도 불구하고 8%의 관세를 부과할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때부터 북한으로 직접 직송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거쳐 들어가게 됨으로써 이중적 물류비와 관세를 부과함으로 발생하는 손실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호주에 오면서 공항 면세점을 돌아봤어요, 술, 담배, 화장품들이 다 면세되고 있는데 왜 인도주의 차원에서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해 들여오는 약품에 관세를 부과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그것도 한국에 판매할 목적으로 들여오는 것도 아니고 다만 한국에서 분류해서 북한에 바로 들어가는 약품인데 여기에 관세를 부과해요.

▲ 환자들을 교육시키는 인세반 회장. 환자 교육은 유진벨 치료 프로그램의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유진벨재단      

그리고 직송시절이 빨리 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보내는 결핵약과 장비 등 지원시설들이 노무현 정부때까지는 배로 북한에 직송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부터는 직송할 수가 없고 중국을 거쳐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렇게 중국을 거치는 바람에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여러 가지 힘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얼마나 낭비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직송이 첫째구요, 그리고 둘째는 인도주의적인 예외 즉 면제, 면세가 되어야 합니다.”
 
불과 2년 전에 발행된 유진벨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후원자들에게 부탁하는 가장 긴급한 기도 제목이 한반도에 대한 남북당국 관계자들과 미국의 정치적 합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유진벨이 북녘 다제 내성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정부의 승인을 얻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5.26남북정상회담, 6.12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쳐짐에 따라 남북한의 기류뿐만 아니라 국제정세 또한 평화무드로 흐르고 있다. 감사하게도 이제 외부적인 걸림돌들과 제재들은 점점 좋아져 가고 있다.
 
▲ 모든 업무를 마친 후 의료진들의 판단 하에 환자들을 등록한다. ©유진벨재단     

유진벨은 하나님께서 교민교회를 사용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
 
문제는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의 끊임없는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북한을 드나들며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라 자기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헌신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찾고 있다. 그것도 한 번 갔다오고 끝날 사람들이 아니라 일 년에 두 차례씩 유진벨 일정에 맞춰서 지속적으로 북한을 방문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아요. 일단은 한국말 잘해야 하죠, 그리고 자주 가야 하죠, 한두 번 가서는 그리 도움이 안되고 거의 사명감으로 가야 하고 그리고 본인이 편한 시간에 갈 수 없고 유진벨 일정에 따라 맞춰야 하고, 적어도 일 년에 봄, 가을에 한 달 반 정도는 시간을 비워야 하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그거 맞추기 쉽지 않죠. 더구나 자비로 갔다 와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주로 한국에 살고 있는 카톨릭 외국인 신부들이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또 한국 여권은 안돼요. 외국인 여권만 돼요.”
 
안타깝게도 한국 여권을 소지한 한국인들은 공식적으로 북한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외국 여권 소지자들만 자원봉사자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미국여권은 특별여권을 만들어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호주여권은 바로 비자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호주여권 소지자들이 미국여권 소지자들보다 훨씬 자유롭게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호주 여권이 미국여권보다 훨씬 편해요, 특별비자 만들지 않고도 바로 북한비자 받을 수 있어요. 호주 여권 가지면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인 회장은 후원단체와 후원자 모집을 위해 여러 차례 호주를 방문했다. 이번에도 시드니 몇 곳의 교회들을 방문하며 집회를 갖고 유진벨을 소개하고 유진벨 후원자들을 모집했다. 특별히 인 회장은 교민교회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래서 바쁜 일정 중에도 경비를 들여가며 교민교회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이다.
 
“저는 교민교회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특별히 유진벨을 통해서 교민교회들에게 무슨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유진벨은 하나님께서 교민교회를 사용하기 위해서 설치한 기관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민교회를 활용하실지...
 
저는 나름대로 혼자 꿈을 꿉니다. 교민 후원자들이 약을 사주시면 저는 가서 계속 환자 치료하고 교민교회는 환자들의 약을 사주시고 계속 지원해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사업에 교민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여러 가지 플러스 알파의 일들이 교회에 생길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당나귀로 표현한다. 유진벨은 심부름하는 단체이고 자신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진벨이 지원하는 북한 의료박스에는 유진벨재단이라는 글자가 없다. 오히려 큼지막하게 후원자 이름을 기입한다. 그리고 그는 후원자들이 정성스럽게 후원한 돈들이 헛되게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NGO 단체들이 모금을 위해서 지나친 광고와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광고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스승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제자 만들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 일을 빚진 자의 심정으로 하면 쉽습니다. 영웅 심정으로하면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고생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이웃을 돌보면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가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희생없이는 아무 것도 안되거든요.”
 
스승 되고, 영웅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섬기면 쉽고, 그리스도인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희생’이라고 하는 그의 말에 진정성이 묻어난다. 그는 이것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북한을 40년 동안 오가면서 절벽에 맞닥뜨린  생명들에게 얼마나 희망과 용기를 주었겠는가?
 
수많은 남북관계의 부침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차질도 없이 결핵약을 지원해온 유진벨재단과 인세반 회장, 그의 말대로 유진벨은 언 땅 속의 시냇물이 되어 남과 북을 연결해온 민간지원의 신뢰의 끈이었다.
 
유진벨을 통한 민간교류들이 더욱  활발해짐으로써  남북통일의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북한 자료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유진벨재단에 있으며, 무단복제,
 도용, 외부 유출 등의 경우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객원기자,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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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6 [16:2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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