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하는 자와 성경
 
김경민/크리스찬리뷰
본문에 충실한 설교가 되기 위하여...

설교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설교자가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해야 한다고 지난 호에서 설명을 했다.
 
설교를 위하여 배정된 시간이 자동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는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이 되기 위하여는 타협할 수 없는 몇가지 기본적인 원칙들이 분명히 있다.
 
지난 호에서는 그 첫 번째 원칙으로, 설교는 ‘본문에 충실한’ 설교이어야 함에 대하여 다루어 보았다. 설교를 하는 자의 경험이나 생각, 주장에 근거하지 않고, 성경의 본문에 근거한 내용이 아니면 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설교를 하는 사람의 견해를 청중과 나누는 시간일 뿐, 그것을 통해서 사람을 회심하게 하고 회개토록 하는 하나님의 살아움직이는 말씀이 전달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설교하는 자가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하기 위하여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성경에 대한 설교자의 믿음

 
너무 당연하고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설교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경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우리들을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확신이다 (디모데후서 3:16-17). 이 확신이 없으면 본문에만 충실한 설교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외람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설교하는 자는 설교에 온갖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으면 교우들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받아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염려 속에 빠져있다.
 
설교를 듣는 이들도 성경에만 매달리는 설교자의 설교 내용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성경 이외에 보다 자극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듯하다. 그래서 성경이 낭독되고 본문의 내용이 설명되며, 그 말씀을 심각하게 고민해보려는 노력보다는 간증이나 찬양, 혹은 연극이나 기타 멀티미디어의 힘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물론, 간증이나 찬양 그리고 기타 여러 순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이미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우리의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경고하지 않았던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2-4)
 
설교를 하는 사람이나 설교를 듣는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려는 성향이 우리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숙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이들의 가르침과 허탄한 이야기에 더 귀가 솔깃해지는 성향이 우리 속에 다분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에 대하여 성경 자체가 말씀하고 있는 다음의 사실을 더욱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2-13)
 
설교하는 사람이 이 사실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없으면 성경본문에만 충실한 설교를 고집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된다. 〠

김경민|세인트 앤드류스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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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6 [11:5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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