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주는 참된 기쁨
쉽게 풀어 쓴 기독교 신학 (6)
 
주경식/크리스찬리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생은 바로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구가하는 행복 가운데 가장 큰 행복은 ‘기쁨’을 맛보았을 때일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기쁨’에는 여러 가지 종류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기쁨은 바로 ‘깨달음’의 기쁨이다.
 
아르키 메데스는 왕의 왕관에 순금 외에 다른 불순물이 들어 있나를 확인해 달라는 히에론왕의 부탁을 받고 고심하던 중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고민이 얼마나 중대했던지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을 때 ‘유레카’(찾았다, 발견했다)를 외치며 벌거벗은 몸으로 뛰쳐 나왔다. 진리를 찾은 기쁨 때문에 창피함도 모른 채 벌거벗고 달려 나온 것이다. 이것은 진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이 얼마나 강렬한 지, 진리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에 대해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일화이다.
 
공자도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의니라’(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했다. 진리를 깨닫는 기쁨은 죽음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라고 설파한다.  이 모두 진리의 중요성과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도서 기자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며 역사를 당신의 경륜 속에서 이루어 가신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 안에 사람을 두시고 또한 사람의 마음속에 시간을 두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들에 안주하지 말고 흘러가는 역사와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들에 대한 갈증과 소망들을 품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데시데리움 아이테르니타티스 (desiderium aeternitatis)>, 즉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속에 진리를 갈구하는 마음, 영원한 질서를 향한 동경을 심어 놓아 그 어떤 것도 인간을 만족시킬 수 없고 오직 진리만이 인간을 채울 수 있고 영원한 것에 끌리게 하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그의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안식하기까지는 결코 안식을 찾을 수 없다”는 고백은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성경은 이러한 진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또한 그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요 17:1-3)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무한한 보화들을 캐낼 때 얻는 기쁨을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사마리아 여인은 그토록 찾았던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했을 때 물 양동이를 버려두고 남편이 다섯이나 두었던 부끄러움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여 물 길러온 것을 극복하고 오히려 마을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요4: 1-42) 
 
어거스틴(Augustine)도 그의 고백록에서 <진리에의 참여의 기쁨>을 다음의 성경구절을 통하여 예시하고 있다.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 3:20)
 
하나님을 아는 지식
 
기독교 도서의 고전(Classic)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20세기 최고 신학자라 꼽히는 제임스 패커(J. I. Packer)가 저술한 ‘Knowing God’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일반지식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보통 지식과는 분명 다르며, 기원에서부터 전적으로 다른 특별한 성격을 가지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식은 머리가 좋거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얻어지는 지식도 아니고 철학적인 사유와 학습을 통하여 얻어지는 지식도 분명 아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이 지식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기독교 교회는 옛부터 신학(Theology 혹은 Divinity)이라 불러온 그 지식 혹은 학문의 체계의 성격을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좇아서 결정하였다. 신학이란 하나님의 계시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이끌어 내는 학(學)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연구하고 사고하며,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그 내용을 묘사하는 것이다.
 
바빙크의 묘사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철저하게 계시에서 시작하며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지식이다.  학문적인 연구와 사색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지성이 열리고 내적인 마음이 움직여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지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사용되어 져야 하는 것이다.
 
제임스 패커 또한 그의 책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인생에서 세워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성경도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생은 바로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런 견지에서 칼빈은 그가 사역해 온 제네바에서 요리문답을 만들었을 때 첫 질문을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무엇인가?”하고 묻고, 바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다”라고 그 질문에 대해 분명하고 확신있게 대답한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Westerminster Catechism) 또한  첫 번째 문답의 질문이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를 평생 토록 즐거워 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다. 〠

주경식|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전 시드니신학대학, 웨슬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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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6 [12:4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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