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의 성지순례(5)

김환기 사관의 성지학술연구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4/30 [11:28]
‘파묵칼레’에서 ‘에베소’까지는 약 3시간 30분이 걸렸다. 에베소에 도착할 때는 이미 어둠이 깔렸다. 다행히 인근 민박집 주인들이 나와 집을 소개하는 것이다. 에베소는 관광지역이라서 대부분의 민박집이 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머문 집도 5층 빌딩인데 한층만 주인이 쓰고 나머지 4개 층은 민박을 치고 있었다.  
 
▲ 에베소 인근의 민박집들은 대부분 기업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김환기    

배낭을 풀고 옷을 정돈하고, 빨래 거리를 찾는데 있어야 할 중요한 물건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여권, 비자카드, 직불카드, 운전면허증 등을 스캔하여 저장한 ‘메모리 스틱’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이다. 여권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모든 정보를 스캔하여 배낭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갑자기 머리가 곤두서는 것이다.

`누가 훔쳐간 것일까? 아니면 어디다 놓고 내린 것일까?  아니야, 배낭  깊숙이 감쳐 둔 것이 사라진 것을 보면 분명 누가 뒤진 거야! 그러면 누가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각은 ‘파묵칼레’로 향했다. 여행사에서 ‘밧모섬’과 ‘소아시아 7개 교회’를 방문하는 가격을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직원이 여기 저기 알아 본 후 제시한 가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쌌다. 비싸다고 하니, 신경질을 부리며 화를 낸 사람이 있었다.  `혹시 그 놈이 내 배낭을 뒤진 것은 아닐까?'    

저녁밥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른다. ‘직불카드(Debit Card)’는 저축된 돈이 없으면 그만이지만, 내

‘비자카드(Visa Card)’는 ‘골드’이다. `집에 연락해서 카드를 정지시킬까?  그러면 돈은 어떻게 빼서 쓰지?  아냐 카드 뒷면은 스캔을 하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야!  요즘은 생년월일과 카드번호만 알면 된다고 하던데!'  생각이 깊어질수록 가슴이 더 답답해 졌다.  대책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 에베소 일정에 충실하고, 차후에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에베소 (Ephesus)

▲ 에베소©김환기     

에베소는 로마시대 소아시아 수도로서 로마 6대 도시 중 하나이며 소아시아의 서해안, ‘코레소스 산맥’과 지중해 사이의 ‘카이스테르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에베소는 로마 당시 동양과 서양을 잇는 상업, 종교, 문화의 중심지였다. 특히 정치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어 ‘아시아 최대의 도시’라는 명예를 누렸던 곳이다.

당시 에베소에는 약 25만 명이 살았다. 25만 명이란 근거는 에베소에는 2만 5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있다. 도시에는 원형극장 관객의 10배 정도의 인구가 상주하였다고 한다. 항구도시로 번성하던 에베소는 토사 유입으로 서서히 항구가 매몰되어 도시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다. 또한 산과 갯벌이 공존한 지형 탓으로 말라리아 전염병이 자주 발병해 인구감소를 촉진했다. 더욱이 지진도 자주 일어났다. 

로마시대 최고로 번성한 도시였던 에베소는 그렇게 서서히 사라져 갔다. 에베소는 기독교인에게도 아주 중요한 도시이다. 바울은 그의 2차와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를 방문하여 교회를 세웠다. 3차 전도여행 때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가까이 머물면서 목회했다. 여기서 바울은 ‘두란노 서원’을 통해 제자들을 양육했다. 바울이 개척하고 1년 6개월(행 18:11) 동안 목회한 ‘고린도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목회자의 입장에서 직면한 문제들에 답변한 ‘고린도전서’를 쓴 곳이기도 하다. 

 
요한 교회 (The Church of St. John)


▲ 요한교회 ©김환기     

요한은 거의 100세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의 소원대로 에베소에 묻혔다. 기독교가 3,4세기에 널리 전파되자 그의 무덤 위에 목조지붕으로 된 ‘바실리카 양식’(basilica style)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 교회가 5세기에 심한 지진으로 붕괴되었을 때 그 위에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는 오늘날에 볼 수 있는 붕괴된 6개 돔의 ‘요한 교회’를 건설했다.  ‘요한 교회’를 건설할 때 그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세계 7대 불가사이’(The Seven Wonders) 중의 하나인 ‘아데미 신전’의 기둥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언덕 위에 위치한 ‘요한 교회’에서 아래쪽에, 두 개의 기둥만 남은 초라한 ‘아데미 신전’을 볼 수 있었다. 교회 중간에 ‘요한의 무덤(The Tomb of St. John)’이라 쓴 비문이 있다. 비문 아래 요한의 시신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성지를 방문하며 느끼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은 대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아데미 신전 (The Temple of Artemis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에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다. 그리스인의 구전에 의하면, “지금까지 태양이 운행하는 중에 ‘아데미(Artemis) 신전’보다 더 훌륭한 것을 보지 못했노라”고 하는 격찬의 말이 있다. ‘아데미 신전’은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더 컸다고 한다. 에베소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숭배했던 ‘아데미 여신’은 가슴에 유방이 24개가 달린 ‘풍요의 여신’이다.

사도행전 19장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사람에게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행 19:26)라며 우상숭배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우상 제조업자들이 주동하여 온 성에 소요를 일으킨다. 이 사건으로 바울은 3년 간 목회를 하던 에베소를 떠나게 된다. 나는 '에베소 박물관'에서 본 ‘아데미상’보다 더 큰 신상을 ‘아테네 박물관’에서 보았다. 박물관의 안내 글에는 ‘아데미(Artemis) 신’은 처녀로서 ‘아이들과 출생을 도와주는 여신’이라고 쓰여 있었다.     

 
성모 마리아의 집 (The House of St. Mary)
 
▲ 성모 마리아의 집 ©김환기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죽기 전 요한을 가르치며 말씀하시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다시 마리아를 가르쳐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라' ”하셨다.(요한복음 19:26-27)  그리하여 요한은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오게 되며, 에베소 3차 종교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요한이 성모 마리아께 산 위에 집 한 채를 지어드렸다고 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의 장소가 잊히고 폐허가 되었다.  

1878년 ‘캐더린’(Catherine)이라고 하는 독일 수녀가 꿈 속에서 계시를 받은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펴냈는데 이 책 속에 마리아의 집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수녀는 자기가 태어난 고장을 한 번도 떠난 일이 없었으므로 1891년 나사렛의 신부가 탐사반을 조직하여 오늘날의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발견하게 되는데, 집터 모양은 캐더린이 계시 받아 기록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윗글은 마리아의 집 앞에 있는 ‘한글 입간판’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3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잃어버린 ‘메모리스틱’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 내일은 ‘폴리캅’이 목회한 ‘서머나 교회’를 방문하고, 모래는 터키를 떠나 그리스 영토인 ‘밧모섬’을 가야하는데…    

 

김환기/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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