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하는 자와 성령
 
김경민/크리스찬리뷰
본문에 충실한 설교가 되기 위하여

본문에 충실하게 설교하지 않으면, 목사는 설교를 듣고 있는 성도들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자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라고 여길 수도 없다. 지난 호에서는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하기 위해서 설교자가 가지고 있어야할 첫 번째 조건으로 성경의 능력에 대한 분명한 확신 (성경의 말씀 자체가 성도들을 교훈하며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하는 능력이 있다는 확신-디모데후서 3:16-17)에 대하여 설명드렸다.
 
이 첫 번째 조건은 믿음의 성숙을 도모하는데 있어서 성경에 충실하기보다는 성경 이외의 것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점점 더 두드러지는 현대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이다. 이번 호에서는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하기 위하여 설교자에게 필요한 두 번째 조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설교자의 확신
 
설교자가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하기 위해 필요한 두 번째 전제조건은 성령께서 성경의 본문을 통해 일하신다는 확신이다. 더 나아가서,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일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이다.
 
즉,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의 말씀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잠시 예수께서 누가복음에서 가장 처음으로 설교하셨던 장면을 설명하는 누가복음 4:17-18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하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예수께서 이사야 61:1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하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예수께서는 성령의 사역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셨는지가 이 구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사역과 복음 선포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 속에 바다를 잔잔케 하고, 귀신들을 물러가게 하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능력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성령께서 그 말씀 속에 계셨고, 그 말씀을 통하여 일하셨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역의 패턴은 열두 사도들의 사역과 바울 사도의 사역에서도 확인된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의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전서 1:4-6)
 
복음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을 때, 성령께서 그 가운데 함께 하셨다는 바울 사도의 증언을 주목하자. 이것이 성경이 일괄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성령의 일하시는 모습이다. 그분께서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져 일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설교하는 모든 사람들은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령의 능력이 드러나는 열매를 맺으려면 성경의 본문이 신실하게 선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교회에서 “말씀, 그리고 성령” 이라는 문구가 교회 앞부분에 적혀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문구에 대하여 담임 목사님과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였지만, 혹시 그 의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 염려가 되었던 적이 있다.
 
“우리 교회는 말씀을 중요시 여기지만, 거기에 더하여 성령의 사역도 귀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의도된 의미라면 그것은 분명 예수께서 의도하지  않으신, 말씀과 성령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민|세인트 앤드류스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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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9 [15:4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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