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박영주/크리스찬리뷰
▲ 민보은 선교사(오른쪽) 안내로 멜본에 있는 맥켄지 선교사의 묘를 찾아가 헌화한 박영주 집사(오른쪽)와 국제농아선교회 이사장 네빌 뮤어 목사. ©박영주    

크리스찬리뷰 6월 호에 ‘한국농아선교방문기’가 소개된 이후 감사와 감동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부산 일신기독병원(이하 일신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몇 권의 책을 받았었다.  맥켄지가(家)의 딸들, 민보은 선교사 자서전 그리고 호주 매 씨 가족의 한국 소풍 이야기들이었다. 너무 궁금해서 시드니로 돌아와 짧은 시간에 다 읽어보았다.
 
지금까지 한국에 파송되었던 호주 선교사 126명들의 사역이 살아 숨 쉬는 선교 활동들이 나에게 더 감화 감동을 주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주로 빅토리아주 장로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로, 이제는 고인이 되어 잠들어 있는 묘지라도 찾아 참배하고 또한 살아 있는 선교사들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만나보고 싶어 잠을 이루지 못한 나의 마음은 이미 멜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가끔 멜본을 방문할 때마다 국제농아인선교회(DMI)국제본부의 도움을 받는다. 2013년부터 DMI 홍보대사로 위촉을 받아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부족한 나를 불러 작은 자들을 향한 선교를 맡겨 주셨다. 내가 원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계획했고 언제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를 잡아 주실 것을 믿기에 두렵지 않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스승과 제자의 만남

▲ 글렌 웨이버리에 위치한 농아인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나쉬교회에서 찬양하는 박영주 집사. ©박영주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하고 6월 15일에 멜본을 방문했다. 주일예배를 멜본 글렌 웨이버리(Glen Waverley)에 위치한 모나쉬교회(농아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일반 성도들과 농아인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 시간에 네빌뮤어 선교사의 소개와 함께 특송으로 수어찬양을 했다.
 
 ‘To believe’ 찬양의 가사내용은, “세계의 전쟁과 테러로 버려진 아이들의 빈곤과 배고픔에 치유와 함께 평화의 날이 오는 것을 믿는다”는 내용을 수어 찬양으로 표현해 낸 노래이다. 이 노래가 온 교회에 울려 퍼지고 진진한 수어 표현이 온 교인들의 마음까지 전달되면서 감동의 은혜가 넘쳐났고 많은 성도들이 엄지 척과 아멘으로 화답해 주었다.
 
예배를 마치고 교제하는 가운데 한 농아 성도의 간증을 들었다. 네빌 뮤어 선교사가 고교 시절 어느 시골마을에 전도를 나가 활동하는데 5살 가량의 어린이가 말없이 외롭게 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는 농아 어린이였다. 그 아이는 청년 시절 네빌 뮤어 선교사를 잘 따랐고 그 후 농아학교에 입학하여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가 한 교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 모나쉬교회에서 제자를 만난 네빌 뮤어 목사(왼쪽) . 뮤어 목사가 고교 시절 시골 마을로 전도나가 5살 된 농아 아이를 만났는데 그는 청년 시절에 뮤어 목사를 다시 만나 예수를 영접했다. ©박영주    

국제농아선교회 이사장인 네빌 뮤어 선교사는 한 가지 중보기도 제목을 내어 놓았다. 지금 내전 중에 있는 시리아 다마스커 지역에 있는 농아교회에 자동차(밴) 한 대를 마련해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예배 전에 온 교인들이 중보기도를 해 주었다. 예배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퀸즈랜드 브리즈번에 있는 후원자로부터 문자를 받았는데 시리아의 농아교회에 밴을 후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기도의 응답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져 예배에 참석한 많은 성도들이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며 함께 기뻐했다. 하나님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사람을 통해 역사하심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민보은 선교사와의 만남
 
지난 4월 일신병원을 방문할 때 받은 맥켄지가(家)의 딸들 (매혜란·매혜영 선교사를 기리며) 책을 읽고 그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그녀들이 잠들고 있는 묘지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크리스챤리뷰사에 연락해 맥켄지 가족 묘지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자료보다는 민보은 선교사를 소개하고 그녀를 직접 만나라며 민 선교사의 연락처를 받았다. 나는 바로 멜본에 있는 민보은 선교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멜본에 가면 맥켄지 선교사의 묘지에 안내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했는데 바로 반가운 답장이 왔다. 언제든지 멜본에 오면 기꺼이 동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민보은 선교사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기 전에 자서전 ‘Steps on a Journey’(인생 여정의 발걸음)를 읽어 보았다. 
 
‘민보은’은 한국 이름이다. 대부분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면 한국 이름을 받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한국식으로 이름을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예명을 짓는다.
 
민보은 선교사의 본명은 바바라 마틴(Barbara H Martin)이다. 민 선교사가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주어진 성은 ‘마’씨였다. 하지만 동료 선교사인 릴리안 마태(Lillian Mathews) 한국 성이 ‘마’였기 때문에 다른 성으로 바꿔야 했다. ‘마’대신 ‘민’으로 바꾸었다. 민 씨는 조선의 마지막 황후 민비의 성을 땄고 보은 (Bo Eun)은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네빌뮤어 선교사, 오세황 선교사와 동행하여 민보은 선교사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그녀는 캠버웰(Camberwell)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반호(Ivanhoe)에서 만나 함께 묘지공원에 가기로 했다. 우리가 먼저 약속장소인 아이반호에서 기다려 민보은 선교사를 만났다.
 
붉은 장미색 긴 점퍼를 입고 다가오는 그녀는 약간 다리를 절며 다가와 반갑게 허그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준비한 꽃바구니를 선물했다. 그리고 바로 네빌뮤어 선교사의 자동차를 타고 멜본 코버그 (Coburg)에 위치한 Fawkner Crematorium Memorial Park으로 갔다.
 
공원 묘지에 도착하니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고 추모에 나섰다. 민보은 선교사는 자주 왕래했는지 맥켄지 선교사의 묘지를 정확히 한 번에 찾아서 나에게 맥켄지 선교사 부부 묘지와 네 자매 묘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맥켄지 선교사 묘지 방문

 
먼저 아버지 제임스 맥켄지 선교사(Rev. James Noble Mackenzie, 1865-1956, 한국명 : 매견시)와 어머니 메리 맥켄지가 나란히 잠들고 있었다. 제임스 노블 맥켄지 묘비에는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Friends of Korean Lepers)라고  써있다.
  
민보은 선교사께서 맥켄지 선교사가 일생 동안 행했던 사역에 대해 설명하면 네빌 뮤어 선교사는 나에게 호주 수어로 통역해 주었다.


▲ 제임스 노블 맥켄지 선교사(왼쪽)와 부인 메리 묘비. ©박영주    

그리고 인근에는 매혜란 선교사 묘도 보였다. 묘비에는 ‘경외하는 의사요, 교육자요, 여성 건강의 대모를 기리며’(Inspiring Surgeon, Educator & Champion of Women’s Health),  그리고 그 옆 매혜영 선교사 묘비에는 ‘한국의 간호사, 조산사의 개척자요, 교육자를 기리며’(Pioneer Educator of Korean Nurse-Midwive)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 멜본 코버그 공원묘지에 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한 헬렌(매혜란)과 케서린(매혜영) 자매가 나란히 잠들고 있다. 이곳에는 맥켄지 선교사 부모와 함께 셋째 딸 루시 부부, 넷째 딸 실라 부부도 함께 안장되어 있다. ©박영주      

제임스 맥켄지 선교사는 1865년 스코틀랜드의 로스(Ross)주 유(Ewe)섬에서 출생한 후 1881년 글라스고우 (Glasgow)대학과 트리니티(Trinity) 대학을 졸업, 1894년 1월 그가 다니던 글라스고우 대학 채플에서 해외선교사역을 하는 존 패튼의 설교를 듣고 선교사로 지원했다. 당시 콩고의 선교사역을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던 마가렛 켈리와 1894년 6월 영국에서 결혼했다.


▲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로 불리는 제임스 노블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선교사 가족사진. (1931. 부산) 앞줄 오른쪽에서 시계방향으로 매견시 선교사, 실라(4녀), 부인 메리 켈리, 헬렌(장녀), 캐서린(차녀), 루시(삼녀). ©크리스찬리뷰    

그 후 9월, 호주로 이주하여 1894년 멜본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1894년 11월 조선으로 가기 전에 뉴헤브리디즈(바누아투)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내전이 한창이던 그곳에서 원주민들에게 의료와 교육선교 사역을 하는 가운데 1908년 12월 흑사병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1909년 1월 호주 돌아와서 잠시 안식하다가 주님 앞에서 “한 번 더 주여! 나를 고난과 헌신의 길로 이끌어 주옵소서! 주여 한 번 더”라고 기도하면서 호주 선교회의 일원으로 1910년 조선땅 부산으로 향했다.〠 <다음 호 계속>

박영주|DMI 홍보대사,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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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9 [16:37]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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