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박영주/크리스찬리뷰

▲ 2010년 10월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 행사에 참석한 호주 선교사와 가족, 호주 교계 인사들이 짐의 묘지를 찾았다.     © 크리스찬리뷰

40일 여 일간 배를 타고 부산에 처음 도착한 맥켄지 선교사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선교를 하게 된다. 그리고 5년 후 1915년 부산진교회 3대 담임목사로 청빙받아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동료 호주 선교사 메리 켈리와 재혼하여 슬하에 4녀 1남 두었는데 막내아들은 두 살 때 디프테리아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그리고 막내아들을 부산진교회에 묻었다. 
 
일신병원 세운 매혜영, 매혜란 그리고 민보은
 
첫째 딸 매혜란 (Helen P. Mackenzie 1913-2012), 둘째 딸 매혜영 (Catherine M. Mackenzie ,1915-2005), 셋째 딸 루시, 넷째 딸 쉴라, 막내 아들 짐은 모두 부산에서 태어났고 자라난 곳도 부산이다. 
 
▲ 매견시 선교사의 막내 아들 짐(Jim)은 2살 때 디프테리아로 사망했다. ©크리스찬리뷰DB    

맥켄지 선교사 부부는 부산지역의 나환자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29년간 극진히 보살피고 돌보며 나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매혜란과 매혜영 자매는 부산진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평양외국인학교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호주로 돌아와 의과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의사와 간호사가 되어 1940년-1942년경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의료선교사로 일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먼저 중국으로 건너가서 1945년-1950년 동안 중국 운난성에서 병원을 세워 선교하다가 한국 전쟁 중인 1952년에 고향인 부산에 의료선교사로 돌아왔다.
 
아버지 맥켄지 선교사의 기도 후원으로 부산진교회 유치원을 빌려 병원 선교사역을 시작했는데 그 효시가 오늘날 일신병원이 되었다. ‘일신’이란 날마다 새롭다는 뜻이다. 본래는 ‘일신부인병원’이었는데 후에 ‘일신기독병원’으로 개명되었다. 놀라운 것은 부산 시민들 가운데 약 40만 명 정도가 일신병원에서 출산했다는 것이다. 
 
▲ 1956년 3월 완공된 일신부인병원 본관. ©크리스찬리뷰DB     ©크리스찬리뷰

민보은 선교사가 일신병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4년이었다. 매혜란 원장이 안식년 동안 일신병원에 의사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멜번에 있는 빅토리아 선교부에 알렸다. 당시 퀸 빅토리아 병원 산부인과에서 수련을 받고 있던 바바라 마틴은 그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영국 런던에서 치러야 할 산부인과 전문의 시험과 네팔에서 선교하고 있는 친구의 방문 요청이 기다리고 있었다.

▲ 박영주 집사가 민보은 선교사에게 꽃바구니를 전달하고 기념 촬영했다.©박영주    

▲ 한국 전쟁의 영웅 찰스 그린 중령의 부인 그린 여사는 외동딸 앤시아(Anthea, 왼쪽)와 함께 멜본에서 노후를 지내고 있다.©박영주    

그녀는 영국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시험을 치르고 멜본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국에 갈 의사를 찾지 못하면 본인이 한국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가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선교회에 보냈다. 그 후 그녀가 영국에서 멜본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에 가겠다는 자원하는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바바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15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 계획을 하고 머나먼 한국(부산)으로 향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30세 미혼으로 부산 생활을 15개월 계획했지만 가난과 질병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을 놓고 갈 수가 없어 32년 동안 부산을 떠나지 못했다.

▲ 민보은, 매혜영, 매혜란, 원성희, 문의덕 선교사. 아이들은 서두화 문의덕 선교사 부부의 두 아들.(오른쪽부터) ©크리스찬리뷰DB    

민보은 선교사는 청춘을 부산에 다 바치고 환갑이 넘은 62세에 호주로 돌아왔는데, 그녀는 값진 시간을 오직 대한민국 부산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예수님처럼 값없이 부어준 것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아직도 민보은 선교사의 밝은 미소 속에는 여전히 한국인의 정이 흘러 넘쳐나고 있었다.

▲ 일신기독병원에서 회진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민보은 선교사(왼쪽 2번째). ©크리스찬리뷰DB    

오웬 그린 여사와의 만남
 
오웬 그린 여사의 남편 챨리는 1950년 한국 전쟁 때 호주군 기갑부대 장교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전사했다. 호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의 유해는 부산UN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오웬 그린 여사는 3살 된 외동딸과 함께 68년 동안 굳건히 살아왔다. 그동안 한국에 있는 남편 묘지를 두 번 방문했다.
 
2년 전 제2박물관 개관식에 초청을 받았지만 몸이 불편하여 참석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마음을 알고 한국을 방문하면 꼭 부산을 방문하여 새로 개관된 박물관과 주변 환경을 촬영하여 주기로 약속했었다.
 
나는 약속대로 부산에서 촬영한 영상물을 전해 주려고 그녀와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시드니를 떠나고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외동딸이 살고 있는 멜본에서 보내려고 이사를 한 것이었다. 어차피 내가 멜본을 방문할 일이 있으니 오웬 여사에게 만나자는 이메일을 보냈다. 오웬 여사는 멜본 아이반호(Ivanhoe)지역의 정부에서 지원하는 실버타운에 있으니 꼭 만나자는 답장이 왔다.
 
나는 민보은 선교사와 함께 맥켄지 선교사 가족 묘지를 참배 한 후 일행들과 함께 바로 오웬 그린 여사를 만나러 아이반호 실버타운으로 갔다.
 
▲ 아이반호 실버타운에서 노후를 지내고 있는 오웬 그린 여사를 방문한 민보은 선교사, 박영주 집사, 오웬 그린 여사, 딸 앤시아, 네빌 뮤어 선교사(오른쪽부터). ©박영주    

1층 로비 카페에서 오웬그린 여사를 만났다. 오늘 한국과 인연을 맺은 호주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한국에서 청각장인 선교사로 40년 가까이 사역해온 네빌 뮤어 선교사와 오세황 선교사가, 32년 동안 부산일신기독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병원 선교사역을 했던 민보은 선교사와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남편의 목숨을 바친 오웬 그린 여사와 그의 딸, 우리는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기꺼이 점심식사 접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간단한 점심과 교제를 나누면서 나의 아들이 오웬 여사의 자서전을 읽고 감동받아 쓴 편지를 즉석에서 네빌뮤어 선교사을 통해 읽었다. 그녀는 기쁨의 눈물이 눈가에 고여 있었다. 나는 준비한 꽃바구니를 선물하면서 따뜻한 허그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름다운 만남의 시간들
 
우리는 교제하는 가운데 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김치, 불고기, 잡채 등... 다음 기회에 오세황선교사가 그들이 그리워하는 한식을 대접하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네빌뮤어 선교사의 고향이 이곳 아이반호라는 것을 알고 그가 어렸을 때  다녔던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그리고 부모와 함께 살았던 집까지 돌아보았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 오웬 그린 여사에게 꽃바구니를 전한 박영주 집사 ©박영주    

나는 이번 멜본 방문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것에 감사했다. 특히 맥켄지 선교사 가족들과 민보은 선교사, 그리고 부산일신기독병원에서 사역한 126명의 호주 선교사들의 희생적인 섬김을 통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에 대해 마음속 깊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드렸다.
 
끝으로 호주 매 씨 가족의 한국 소풍 이야기 책자 마지막 페이지의 내용으로 글을 마감한다.
 
“우리는 매 씨 가족의 한국 소풍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님 십자가의 사랑과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놀라운 부흥 발전과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열릴 것을 확신한다.”〠

박영주|DMI 홍보대사,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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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7 [17:47]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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