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성경의 답변
 
정지홍/크리스찬리뷰
이 글은 지난 9월 9일 좋은씨앗교회 GBS 성경대학에서 정지홍 목사가 발표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 2007년 3월 창립된 시드니성시화운동본부는 매년 3월 둘째 주일 성시화행진을 시드니 시내에서 개최해 오고 있다. 시드니성시화대회는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시민에게”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동성애가 현대 사회에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때론 독감보다 더 강하게, 어느 때는 전염병보다 더 빠르게 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더 이상 세력이 미약한 성소수자(minortity)가 아니다. 그들은 예술과 문화를 넘어 정치 사회 미디어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강자(stronger)이다.
 
시드니에서 매해 열리고 있는 마디그라(Mardi Gras)는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세계 최대의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되었다. 3주간 펼쳐지는 행사에 이벤트가 1백 가지가 넘고, 6km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사람만 해도 1만 명이나 된다.

▲ 강의하는 정지홍 목사     © 크리스찬리뷰

지난해 말 호주는 동성 결혼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62%가 찬성표를 던지고 상·하원에서 가결됨으로써 세계에서 26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되었다.
 
금년 7월에는 호주에서 교세가 가장 큰 호주연합교단(Uniting Church of Australia)이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고 나섰다. 결혼에 대해 명시한 신앙성명서에서 기존의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단어로 대체함으로써 연합교회에서 동성 결혼 예식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만 호주연합교단 목사들이 동성 결혼 주례를 신앙 양심에 따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는 정치·사회·문화를 뛰어넘어 교회까지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한국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매년마다 서울광장에서 퀴어축제가 벌어지고 있고, 동성애 차별이 헌법에 보장된 인권 조항에 위배된다는 소위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교회 내에서도 동성애와 관련된 논의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점차 확대되고 있고, 일부에서는 ‘무지개 예수’를 주장하며 퀴어성서주석(Queer Bible Commentary·QBC)을 번역해 출간하려고 한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사회적으로는 동성애를 반대하거나 동성 결혼을 부정하게 되면 문화적 미개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진리와 함께 바르게 알아야 이 문제들도 대처할 수 있다.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사회과학, 심리학, 의학에서도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반(反) 동성애를 지지하는 연구 결과들도 상당한 진전이 있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성경만을 논거로 해서 논지를 전개하겠다. 그래서 글의 제목도 <동성애와 동성 결호에 대한 성경의 답변>으로 정하였다.
 
1.차별인가 구별인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편의 논리 가운데 하나가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거기에는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으로  노예 해방, 인종 차별 철폐, 장애인 차별금지, 남녀 평등 등을 실현해 왔으며, 같은 맥락에서 동성애자들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어떠한 성적인 차별도 있어서는 안되며 이성 간의 사랑이 존중 받듯이 동성 간의 사랑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노예해방, 인종 차별 및 장애인 차별 철폐, 남녀평등 등은 그런 면에서 전적으로 옳다. 한 개인의 인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마땅이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동성애는 다르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한 사람의 인격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를 인권 존중과 결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동성 결혼이 노예해방이나 인종차별 철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동성결혼)를 주장하는 것은 성적인 ‘구별’을 성적인 ‘차별’로 오해하거나 왜곡해서 벌어진 일이다.
 
나누라
 
동성애 문제는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구별’이다. 하나님은 구별을 위해 ‘나누라’ 하셨고, ‘종류대로’ 지으셨다.
 
빛이 있기 전에 세상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었다(창 1:2). 혼돈은 마구 뒤엉킨 상태를 의미하고, 공허는 텅 비어 있는 것을 뜻하며, 흑암은 말 그대로 암흑천지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먼저 흑암의 세상에 ‘빛이 있으라’(창 1:3)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혼돈의 세상을 질서 있는 세상으로 ‘나누’셨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창 1:4)
  “물과 물로 나뉘라”(창 1:6)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창1:9)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창 1:14)

하나님은 한데 뒤엉켜 있는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물도 하늘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셨다. 하늘 아래의 물은 한 곳으로 모이게 하심으로 뭍이 드러나게 하셨다. 바다와 육지를 나누신 것이다. 또 광명체를 통해 하루 중에 낮과 밤도 나누셨다. 그리고 그 나누어진 것을 보시고 좋다고 하셨다(창 1:18).
 
하나님이 나누신 목적은 ‘구별’을 위해서다. 빛과 어둠을 구별하시고,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을 구별하시고, 바다와 육지를, 낮과 밤을 구별하신 것이다. 혼돈의 세상이 이렇게 나눔을 통한 구별로 인해 비로소 질서 있는 세상이 되었다. 
 
▲ 매년 3월 첫째 주 토요일에 개최되고 있는 시드니 마디그라 행진.     © 크리스찬리뷰

종류대로
 
하나님은 공허한 세상에 만물을 지으심으로 충만하게 채워가신다. 그런데 중요한 원칙이 있다. “종류대로”다.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2)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5)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는 대원칙은 “종류대로”다. 물고기도 “종류대로”, 새들도 “종류대로”, 짐승도, 가축도, 기는 것도 모두 “종류대로” 지으셨다. 종류대로 지으신 목적도 ‘구별’을 위함이다. 혼돈(chaos)의 세상이 질서(cosmos)의 세상이 되려면 만물의 구별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종류대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누라”하신 것이다.
 
▲ 시드니 시내 피트스트리트에 있는 호주연합교회가 <평등결혼>이란 배너를 내걸교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나님은 만물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복을 주셨다(창 1:20, 22). 즉, 모든 생물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이를 위해 하나님이 만물에게 복을 주셨다.
 
그러면 만물이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전제가 무엇인가? 바로 암수의 구별이다. 남녀의 구별이다. 생육과 번성은 암수의 생식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생육과 번성을 위해 이미 암수를 구별하여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도 이같은 원칙은 동일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7-28).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로 ‘구별’하여 창조하셨다.
 
사람의 종류는 ‘사람’ 한 종류였고, 그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만 또는 여자만 즉, 동성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 즉, 이성으로 지으셨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복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도 복을 주셨는데,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이었다. 이미 상기한 대로 생육과 번성의 복은 남자와 여자가 전제되어야만 받을 수가 있다.
 
그리고 땅에 충만해지는 것은 생명의 계승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생명을 주셨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도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생육과 번성을 통해서 땅에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당대의 죽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생육과 번성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해지고 또 이어져가는 것이다. 이것이 온 땅에 충만해지는 것이고, 이를 위해 하나님이 만물을 암수로, 남녀로 ‘구별’하여 지으신 이유다.
 
따라서 동생애를 반대한다고 해서 성차별 운운하면 너무 성급한 시도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로 구별하셨지(distinguish) 차별하신(discriminate) 것이 아니다. 모든 차별은 인간의 교만과 죄에서 비롯된 것일 뿐, 신성한 창조의 원리는 구별이다. 생육과 번성과 충만의 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구별하신 것이다.
 
2.성적 취향인가 죄인가?
 
동성애자들의 주장 가운데 하나가 ‘모든 사람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유로운 성적 취향을 따라 결정할 자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반동성애를 말하면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취향을 말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죄라고 하시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죄를 짓지 말하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죄를 지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죄에 종노릇 하지 말고 거룩하게 살라고 주신 자유다. 그런데 그 자유를 가지고 죄를 짓는다면 그 자유는 더 이상 참된 자유가 아니다.
 
문제는 동성애가, 동성의 성적 취향(gay and lesbian)이 과연 죄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답을 하고 있을까?
 
소돔의 죄
 
창세기의 기사는 소돔 사람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3) 소돔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모든 것이 풍요로웠지만(창 13:10), 그 소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사악하고 큰 죄인이었다.
 
그 죄악의 부르짖음과 무게가 심히 무거워 하나님이 내려와 살피시고는 결국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다”(창 19:25).
 
문제는 ‘소돔(및 고모라) 사람들이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된 죄가 무엇이었는가?’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견해는 그들이 동성애의 죄를 지었다고 본다. 물론 노소를 막론하고 롯의 집으로 몰려온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을 방문한 두 천사를 끌어내어 동성 성관계를 시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
 
이 구절을 전통적으로 동성애를 행하는 죄로 해석한 이유는 “상관하리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야다’(yada)의 뜻이 ‘알다’(know)라는 뜻과 함께 ‘성관계를 갖다’(sex)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후자의 뜻으로 해석한 경우다. 그래서 NIV는 “we can have sex with them”으로 번역을 했고, Orthodox Jewish Bible도 “we may know them carnally(육체적으로)”로 옮겼다. 여기에서 소돔의 지명을 딴 ‘sodomy’(남색)와 ‘sodomite’(남색하는 자)가 파생되었다. ‘남색’은 그 뜻이 ‘남자들끼리의 성관계’를 뜻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해석인데 반해 퀴어신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소돔 사람들이 롯에 대해 적대적 의도를 가지고 롯의 집에 들어온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은 죄를 지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열거하는 성경이 예레미야, 에스겔이다.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렘 23:14)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겔 16:49)
 
예레미야는 소돔의 죄를 ‘간음, 거짓, 악을 행하는 것’으로 기록을 했고, 에스겔은 ‘교만, 풍족하면서도 가난한 자를 돕지 않은 것’으로 서술했다. 이 목록들에는 동성애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 두 성경에 기록된 죄의 목록이 겹치지 않는다. 이것은 소돔의 죄악들이 그만큼 다양했음을 의미하고 따라서 소돔의 죄악 중에 동성애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 대한민국 최초의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 9월 서울에서 시작되었다. ©국민일보    
 
그리고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가 언급한 소돔의 죄는 사실 이스라엘(예루살렘)의 죄악을 빗대어 설명한 것이기에 소돔이 심판 받은 죄가 동성애가 아니라고 단정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소돔 사람들이 “상관”하겠다고 한 뒤에 이어지는 롯의 제안 즉, 천사를 대신 해서 두 딸을 이끌어 내어 눈에 좋을 대로 행하라는 것을 보면 그들의 죄가 성적인 죄라는 것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창 19:8).
 
그리고 소돔의 멸망한 후에 롯과 그의 두 딸이 동굴 안에서 벌였던 근친상간도 소돔의 성적인 죄와 무관하지 않다(창 19:33-35). 그들의 후손인 모압의 여인들과 이스라엘 자손이 행음의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도 소돔에 물들어 있던 성적인 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민 25:1).
 
더욱이 신약성경 유다서 소돔의 죄가 동성애였음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개역) “다른 색”(개정 개역은 “다른 육체”로 번역)이 이성 간의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 즉, 동성 간의 음행을 뜻한다. 그리고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불같은 형벌을 받았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것처럼 소돔이 행한 죄가 한 가지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초래한 죄는 남색, 다른 색, 동성 간의 성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레위기의 성결법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 시드니 마디그라에 참가한 동성애자들이 환호하며 행진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이 구절들은 레위기의 성결법에 속한 것으로 거룩한 백성이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 레위기의 성결법에는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 우상을  숭배하는, 세상의 악을 행하는 것, 다양한 성적인 죄들을 금하고 있다. 이들 죄악들은 가나안에서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던 것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따르지 않도록 성결법을 주신 것이다.
 
그 중에 위의 두 구절은 특별히 남자들 간의 동성 성관계를 금하고 있다. 하나님은 동성애(동성 성관계)를 “가증한 일”이라 하시고 “반드시 죽이라”고 하신다. 이처럼 동성애 행위는 죽음으로써 심판을 받아야 할 만큼 큰 죄였고 당시에 그 관행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바울 서신의 교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딤전 1:9-10)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당시 헬라-로마 사회에 만연해 있던 동성애의 음욕을 지적했다. 바울은 동성 성관계가 사람들의 “부끄러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쓴 것이며 “부끄러운 일”이고 “그릇”된 것임을 분명히했다.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죄의 목록 가운데 “탐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를 포함시켰다.
 
“탐색하는 자”(malakoi)는 동성 성관계에서 수동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남색하는 자”(arsenokoitai)는 동성애 성관계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쪽을 나타내는 단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동성애와 관련된 성적인 죄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만큼의 대죄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디모데전서에서는 인신매매 살인과 더불어  부모를 죽이는 최악의 패륜과 동일 선상에 “남색하는 자”를 나열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대로 성경이 증언하는 바, 동성애(동성 성관계)는 성적인 취향이 아닌 죄의 문제이며, 인권의 문제가 아닌 진리의 문제다.〠 <계속>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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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7 [17:54]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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