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변호사 부부의 돈 쓰는 법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10/29 [17:42]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일하다 보니 직업병증세인지 어깨와 등의 통증이 올 때가 많다.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동네 지압사에게 가서 뭉친 근육을 푼다.
 
십 년 가까운 세월을 알게 된 지압사는 손님들한테서 들은 덕담을 내게 전하기도 한다. 한 번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여기 오시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참 지혜로우신 것 같았어요. 땅이 있었는데 무슨 기념관을 짓는다고 해서 20억 원 보상금이 나왔대요. 대부분 노인들을 보면 돈이 아까워서 벌벌 떨거나 자식들한테 빼앗기는데 이 할머니는 달라요. 돈을 가지고 자식한테 들어가지 않고 따로 집을 얻었어요.
 
그리고 자기를 돌봐 줄 파출부하고 간병인을 고용했어요. 월급을 후하게 주니까 그 사람들이 참 잘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손자들이 올 때마다 정확히 백만 원씩을 주셨죠. 그러니까 아무리 바빠도 손자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죠. 자연히 자식들도 자주 찾아 오구요.
 
한 번은 몸이 아프셨었는데 병원 VIP실을 빌리셨어요. 그 돈을 다 지불하셨죠. 어디 다닐 데가 있으면 콜택시를 불러서 타셨죠. 그리고 주변사람들한테도 돈을 후하게 쓰셨어요. 저한테도 지압하는 분들이 엎드리는 이 침상을 사주셨어요. 그 할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돈이 남았더래요.”
 
대단한 용기를 가진 할머니 같았다. 그 얘기를 듣다 보니까 문득 한쪽이 마비된 다리를 끌며 나이 팔십까지 법정을 드나들던 한 늙은 변호사의 초라한 모습이 떠올랐다. 몸이 불편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도 그는 죽을 때까지 법정에 나왔다.
 
변호사로서의 정상적인 활동이 아니었다. 사무장이 써 준 서면들을 간신히 읽는 정도였다. 늙어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늦게까지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 그 늙은 변호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예상외로 그 늙은 변호사의 통장에는 20억 원 이상의 거액이 예금되어 자식에게 상속됐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갑자기 큰돈이 생긴 아들은 그 돈으로 이태리 명품차 ‘페라리’를 사서 몰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럴 거면 살아서 마지막에 있는 돈으로 주위에 잘 베풀고 본인도 고생하지 말고 잘 쓰지 하는 아쉬움의 소리들이 들렸다.
 
‘늙어가는 법’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소노아야코 여사는 늙어서 인색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돈을 쓰라고 권하고 있다. 사실상 죽을 때 돈이 없어 고민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또 돈이 있다고 해도 정신이 없어지면 재물의 존재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소노 여사는 정말 돈이 떨어지고 나이를 먹어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어느 날 길을 떠나 걸어가다가 죽으라고 했다. 몸이 쇠약해서 눈비를 맞으면 빨리 죽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웃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칠십대 중반의 오 변호사 부부는 성경 속의 삭개오처럼 평생 번 돈의 일부를 보람있게 쓰겠다고 맹세하고 오랫동안 실천하고 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제 막 변호사 자격증을 딴 변호사들 중에서 길거리로 나가 헌신할 자질을 갖춘 청년 변호사를 찾았다. 지망자가 나서면 매월 그들의 생활비를 지원해 주면서 그들이 세상에 나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소리 없이 돕게 했다. 그들 부부가 돈을 쓰는 법이다.
 
자기가 땀 흘려 번 돈은 정말 귀하다. 그 돈의 일부를 빛도 없이 이름 없이 이웃을 위해 내놓는 숨어있는 성자 같은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그렇게 돈을 쓰는 모습이 세상에 전염되어 갔으면 좋겠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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