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일생의 삶
 
강승찬/크리스찬리뷰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큰 고통이나 죽음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겨우 살아났을 때 우리는 ‘구사일생(九死一生)’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미국에서 한인 목회를 하는 한 목회자가 자신의 생일이 9월 4일이라서 자신은 구사일생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살았을 때 성수대교 붕괴 현장에 자신이 있었고, 삼풍 백화점이 무너진 그날에 바로 그 백화점 옆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대구 지하철 사고가 났을 때에는 사고 지점을 30분 전에 지나쳤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구사일생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러나 척박한 이민 목회 현장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목회하다가 ‘구사일생’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목회 현장에서 ‘구사일생’이란 죽음의 위기를 여러 번 넘기고 살았을 때 하는 말이 아니라, 목회자인 내가 아홉 번 죽어야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겨우 살릴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다. 밀알이 땅에 심겨지면 겉에 있는 껍질이 썩고 속에 있는 생명의 눈이 싹을 틔워 자라게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희생하여 죽으심으로 희생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으셨다.

신앙생활은 내가 주인 된 삶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시작된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육신의 몸으로 태어나지만 또 한 번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경험을 하며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사역의 현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내가 죽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혹시, 내가 살겠다고 동료 신앙인을 죽음의 길로 몰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심지어 목회자가 되어서도 내가 죽기보다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해 험담하고 원수로 삼는 현장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신앙의 고통만 되물림될 뿐이다.

결국 우리는 썩어 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죽어야 한다. 내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하고, 내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하며, 내 야망을 내려 놓아야 한다.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해야 하고 윗사람은 존경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동료에 대해서는 먼저 헌신하기로 결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초심을 잃은 리더의 타락을 목격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처음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격하기도 하고 사명자로 부름받음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있었을 것이다.

사역의 현장에서 맡겨진 일을 해나갈 때에 뜨거운 열정과 선명한 사명감으로 사역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그 은혜를 내려 놓고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영향력과 유익에 눈이 멀기 시작하면서부터 타락의 길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구사일생의 삶을 살기로 각오해야 한다. 구사일생의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줄 안다. 사역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길 줄 안다. 그리고 참된 가치를 추구하며 살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내가 아홉 번 죽어야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다는 원리를 마음에 새기고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매일 죽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가 죽을 때 풍성한 영혼구원의 열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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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30 [12:05]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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