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게 삽시다! 선교하며 삽시다!

모든 질문을 선교로 대답하는 깡통교회 이동휘 목사

글|김환기,사진|권순형 | 입력 : 2018/10/30 [12:07]
▲ 호주시니어선교회 초청 선교집회에서 말씀을 전한 이동휘 목사.     © 크리스찬리뷰

깡통교회 목사로 알려진 전주안디옥교회 이동휘 원로목사가 '호주 시니어 선교회'(SMA) 초청으로 시드니를 찾았다. 시드니는 처음이 아니다. 그가 전주안디옥교회를 은퇴한 해인 2006년에는 시드니주안교회 초청으로 왔고, 2008년에는 시드니성시화운동 강사로도 온 적이 있다. 9월 28-29일 시니어 선교회 집회를 인도한 후, 몇몇 교회의 집회도 인도했다. 10월 4일, 그는 시드니의 모든 일정을 은혜 가운데 마치고 귀국했다.
 
이동휘 목사는 누구인가?
 
이동휘 목사는 모태신앙으로 신앙적 분위기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장로, 할아버지는 영수였다. 1961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의 목회는 세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1961년부터 1983년까지 22년은 4개의 기성교회를, 1983년부터 2006년까지 23년은 깡통교회를, 그리고 2006년부터 현재까지 '바울 선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목사는 1986년 초교파 선교단체인 ‘바울선교회’를 설립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은 세계 94개국에 470여 명의 풀타임 선교사를 파송하는 단체로 성장하였다. 현재 1천여 개의 교회가 지원하고 있고, 1천500명 이상의 개인 후원자도 있다. 한국의 자생적 선교단체가 미약한 시대에, ‘바울 선교회’는 한국선교단체의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했다.

▲ 1937년부터 21년간 중국 선교사로 활동했던 방지일 목사와 함께. 왼쪽부터 김명혁 목사, 방지일 목사, 이동휘 목사, 최복규 목사, 강성일 선교사.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한 웨일즈 '하노버교회'를 섬기는 유재연 목사도 '바울 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이다. 유 목사는 전주신흥고등학교 교목으로 재직할 때에 모로코로 단기 선교 갔다가 부르심을 받고, 선교단체를 찾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바울선교회의 선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였다.
 
1998년 6월에 지원하고,  8월에 사표 내고 한국에서 6개월, 필리핀에서 8개월 훈련을 받고 모로코로 선교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13년간 모로코를 섬기다 5년 전 하노버교회로 선교지를 옮겼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를 배출한 하노버교회를, 한국 선교사가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 일명 ‘깡통교회’로 유명한 전주안디옥교회 입구. 안디옥교회는 지난 1983년 3월 27일 이동휘 목사가 미군들이 사용하던 군산 비행장 격납고의 지붕을 뜯어서 지은 창고 구조물을 600만 원 전세금으로 가건물을 임대, 50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안디옥교회의 역사를 시작했다.©새전북신문    
 
▲    전주안디옥교회 내부  © 새전북신문

지난 6월 유 선교사를 만나 사역의 현장을 목격했다. 20년 동안 담임목사가 없던 하노버교회에 유 선교사가 부임하면서 교회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선데이 크리스찬(sunday christian)이었던 교인들이 이제는 기도회도 갖고 성경공부도 한다.
 
유 목사는 사택이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하다며, 새벽기도를 위하여 가까운 곳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에 한국 선교의 뿌리를 찾는 많은 순례객들이 하노버교회를 찾고 있다.
 
- 깡통교회란 이름은 누가 지은 건가요?

 
“목회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61년입니다. 4교회에서 22년간 목회를 하다가 마지막 담임한 교회에서 3개의 교회 개척을 하고 4번째 교회는 직접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982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석사 1호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선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선교 중심의 교회를 개척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1983년 3월 27일 전주안디옥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수리아 안디옥교회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군산 비행장 격납고의 지붕을 뜯어서 지은 창고를 빌렸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그곳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죠. 개척부터 안디옥교회는 재정의 70% 이상을 선교비로 사용하였습니다. 교회의 모든 초점을 선교에 맞추었습니다. 각 부서는 스스로 자립해야만 했습니다.
 
여름 성경학교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름성경학교 상품이나 음식을 제공하여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아이들이 다른 교회로 가기도 했죠. 겨울 성경학교 때도 여름성경학교와 같이 특별한 상품과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성경학교 마지막 날 글짓기를 하였습니다. 이때 아이의 글 중에서 '깡통교회'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 가운데 새까맣고 길죽한 본당 건물 왼쪽에 한반도 선교관이 보인다. 이곳에 교회 사무실과 중국선교회 예배실이 있다.©새전북신문    

"우리 교회는 깡통의 반을 잘라서 엎어 놓은 것 같은 깡통교회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교회가 정말 좋다. 우리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후로‘전주안디옥교회의 별칭이 '깡통교회'가 되었습니다."
 
- 선교란 무엇입니까?
 
“선교에 대한 많은 학문적인 접근과 정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의합니다. ‘선교란? 구원 받은 자가 구원의 예수님을 구원받지 못하는 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선교사입니다. 사도행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고전 12:3)
 
성령 받았으면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고, 증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 '선교사'입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성결해 집니다. 교회에 문제가 많은 것은 선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교적 교회를 넘어 선교사 교회(missionary church)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적 교회는 누군가를 파송하는데 중심을 두지만, 선교사 교회는 모두가 선교사임을 깨닫고 자신이 나가는 교회입니다.

▲ 바울선교회가 4년에 한 차례씩 개최하는 ‘선교 전주대회’가 2015년 7월 6일부터 9일까지 50여 해외 선교사가 참가한 가운데 김제 만경수련원에서 열렸다.©바울선교회  

언젠가 미국에서 우리 교회를 방문한 손님이 있었습니다. 교회 재정의 70% 이상을 선교비로 지출하는 것에 놀라지 않더군요. 대신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바울선교회가 주최한 제15회 전체 선교사 수련회와 제8회 MK수련회에 참석한 선교사 가족들. .©바울선교회    

‘물질만 70% 선교하면 무엇 합니까? 사람을 70%로 보내야죠.’ 그때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사람을 보냅시다’라고 외쳤습니다. 아마 제 자녀도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이 딸 둘, 아들 둘을 주셨습니다. 큰 딸은 아프카니스탄, 둘째 딸은 인도네시아, 셋째는 사이프러스, 넷째는 둘째 필리핀 선교사입니다. 큰 딸 내외는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 바울 선교회를 세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전주안디옥교회는 개척하고 3년 후에 바울선교회를 세웠습니다. 개교회 중심으로 선교하면 사적이 생각이 생길 것 같고, 선교회도 성장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송된 선교사도 개교회보다는 선교단체가 파송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선교 단체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선교에 관심 있는 개척교회 목사님들 몇 명이 모였는데 선교회가 성장하면서 선교 단체의 독립성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의 자생적인 선교 단체가 거의 없던 때입니다. 다행히 제가 선교학을 공부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80년도에 영국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선교사의 ‘사역수명’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니, 훈련 받은 선교사는 25년, 훈련 받지 않은 선교사는 5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선교회는 처음부터 한국에서 6개월, 필리핀에서 8개월의 훈련을 받게 하였습니다. 당시 선교사를 교육하고 파송하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저는 ‘교육 없이, 파송 없다’는 원칙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 어떻게 필리핀에 선교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나요?
 
“바울선교회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는 필수입니다. 저희가 필리핀 제1호 선교사가 WAC에서 선교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분을 통하여 필리핀에 선교학교를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국내 6개월, 필리핀 8개월의 훈련과정을 정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브라질에도 선교학교가 있습니다.

▲ 『불편하게 삽시다, 선교하며 삽시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이동휘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1996년에 브라질 쌍파울로에 남부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올해 2월에도 갔었고, 11월에도 또 가보아야 합니다. 영어권뿐 아니라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선교하기 위해서입니다.”
 
- 선교사 선발 기준이 있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감입니다. 처음에는 영어와 성경을 시험 보았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확신을 알기 위한 것이고, 영어는 현지인을 선교하다보니 필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추락의 여러 가지 증상 중 하나는 선교사 지원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선교사가 2년 전에 0%입니다. 젊은이들이 헌신하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바울선교회에는 많이 보내 주십니다. 바울선교사의 핵심가치인 7가지 정신이 있습니다. 1. 절대 구원 2. 절대 소명 3. 절대 기도 4. 절대감사 5. 절대 복종 6. 절대 헌신 7. 절대 사랑입니다.
 
선교사는 외국에 가야만 선교사라고 생각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선교사도 8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해외 선교사 2. 자녀 선교사 3. 기도 선교사 4. 물질 선교사 5. 직장 선교사 6. 가족 선교사 7. 문화 선교사 8. 길거리 선교사입니다.”
 
9월 28일 저녁 시니어 선교회 집회 때, 은혜 받은 말씀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목사는 설교 중에 교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교회는 왜 오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은혜 받기 위해서 옵니다."
 
"물론 은혜 받기 위해서도 옵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는 은퇴 후에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후임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아무 연고도 없는 수원으로 이사했다. 주일에 마땅히 갈 교회가 없어 집 근처 작은 교회를 찾았다.
 
"성도는 10여 명, 장로가 찬양을 인도하고, 전도사가 설교하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전도사의 설교가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예배에 은혜가 없었습니다.

▲ 쳐치 포인트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후 선상에서 포즈를 취한 이동휘 목사 부부.     © 크리스찬리뷰

그때 저는 ‘예배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나는 받으려고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할렐루야'를 외치며 찬양했고 아멘, 아멘하며 최선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설교 잘 할 것을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설교 잘 하는 목사보다 못하는 목사가 더 많습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래 전 나는 본다이에 있는 '임마누엘 회당'에서 예배드린 적이 있다. 예배가 시작되자 랍비가 나왔다. 그는 회중을 향하지 않고 토라를 향하여 한동안 기도한 후,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때 생각했다. 예배 인도자가 먼저 예배자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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