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어린이 수술하러 평양에 갔어요!

김수경 | 입력 : 2018/10/30 [12:45]
▲ 수술을 마친 마지막 날 캄보디아 의사, 북한 의사, 수술받은 아이들과 보호자가 두리 의료팀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두라인터네셔널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수술 준비실에서 대기 중인 아이들을 돌보았다. 석 달 지난 아이의 기저귀도 갈아주기도 하고,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때 아이를 안아 주기도 했다. 바늘을 꽂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대견한지!
 
아이들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불안해 하고 걱정하는 엄마들에게는 안심시켜주며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장래 꿈도 들을 수 있었다. 축구선수, 가수, 교사, 과학자 아이들은 다양한 꿈을 지니고 있었다. 수술 받은 후 씩씩하게 살아갈 이 아이들의 미래가 더욱 더 기대되었다.
 
사리원병원을 다녀오다
 
다음 날, 캄보디아 마취의사 한 명을 포함, 행정팀과 함께 황해북도 사리원에 있는 소아병원으로 출발했다. 본래는 평양이 아닌 사리원 소아병원에서 모든 수술이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취과 기계 결함으로 수술 장소가 지금의 옥류병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향후에 있을 수술을 위해 소아병원 수술실을 점검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수술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평양을 조금 벗어나자 시골 풍경이 보인다. 논에는 모내기를 하고 들에는 밭농사를 하는 농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은 소 등 위의 밭갈이 기구, 원두막과 허수아비, 큰 글씨체로 쓰여진 선전문구 간판, 그리고 농사 도구를 자전거에 잔뜩 싣고 일하러 가는 인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황금색으로 햇볕에 그을린 피부처럼 올 한 해 농사에 풍년이 있기를 소원해 본다.
 
사리원 시내에 접어 들었고 기찻길을 건너 자그마한 소아병원에 도착했다. 우리를 기다리던 인민복 차림의 지역 관계자들과 소아병원장, 그리고 소박한 모습의 의사 선생님들이 계셨다. 이들의 안내로 소아병원을 돌아보며 이곳에서 수술이 불가했던 이유를 듣고 나서 어떻게 하면 소아 병원이 원활히 운영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빠져들었다.
 
수술실, 회복실, 전기시설 시스템, 마취기계, 소독기, 약품마련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보였다. 수술실 창가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마취약 병 몇 개를 보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응급으로 수술을 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의사들의 심정이 느껴졌다.
 
우리는 곧 바로 소아병원과 가까운 황해북도 인민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백내장 환자의 수술을 계획하기 위해서였다. 인민병원의 규모는 상당히 컸고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비교적 많았다. 백내장 수술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들과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황해북도 내 백내장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간단한 수술이지만 시기를 놓치면 맹인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인민병원뿐만 아니라 장애자련맹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술이다.
 
이 병원에서는 시골지역의 병원에 의료팀을 보내어 백내장 수술을 진행하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두라인터내셔널과 협력하여 수술할 방안을 마련해 보자며 회의를 마쳤다.
 
병원 바로 옆에는 두라인터내셔널의 지원으로 건설한 온실이 있어 잠시 들르기로 했다. 그 온실은 농작물과 축사를 겸용해서 지은 곳인데, 담당자 말로는 지난 겨울 오리 50마리를 길러서 사리원에 있는 장애인 가정과 애육원에 보냈다고 한다. 지금은 병아리와 돼지가 길러지고 있었다.
 
반면 농작물 중 배추가 제법 커서 수확할 수 있을 정도였고, 그 밖에도 옥수수와 고추, 오이가 있었다. 갑작스런 방문에 오래 있지 못하고 다음 9월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오후 2시에 수술에 합류하기 위해 점심식사 할 겨를도 없이 버스에 올라 옥류병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본 평화를 기원하는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다. 양쪽에서 한복을 입은 두 여인이 서로 손잡고 있었는데 한쪽은 남한 여성 다른 한쪽은 북한 여성이었다. 서로 힘을 합쳐서 통일을 기원한다는 의미 있는 설명을 들었다.
 
안타까운 사연들
 
6월 7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수술 가능한 아이들이 6명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감기 및 폐렴 증상, 혹은 혈소판 수치 미달 등의 이유로 일 주일의 치료기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수술을 받기엔 무리였다. 이번에는 수술할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아이들 부모가 눈물로 수술해 주면 안되냐고 하소연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이번에 받지 않으면 또 언제 받습니까?”
 
영영 기약할 수 없는 듯 슬픔에 잠긴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애써 다음에 또 수술 받으면 된다고 다독였지만 말로는 충분할리 없었다. 아이들이 마취에서 회복되지 않으면 더 위험하니 다음에 건강할 때 수술하자고 설득하는 나조차 기약할 수 없음이 너무 마음 아팠다.
 
치료하고픈 어미의 마음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얼마나 힘든 기회가 그녀 앞에 찾아 왔는데 고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부모의 마음…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엄마를 보는 세 살 아이도 글썽였다. 아이 눈에도 엄마가 걱정되어 보였던 것이다.
 
한 아이는 더 안타까웠다. 수술 받지 못한 것을 아는 것일까? 웃던 아기가 웃지 않고 눈물이 글썽거려 보였다. 엄마 없이 애육원에서 자라는 것도 힘들 건데 또 언제 수술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정말 마음이 착찹했다.
 
마지막 날, 모두의 기쁨을 위해
 
마지막 날이 성큼 다가왔다. 수술 후 아이들의 회복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오전 수술을 마무리했다. 두 명의 토순 수술과 구개 파열 수술이 차례대로 진행되었고, 동시에 우리가 떠날 시간도 가까워졌다.
 
모든 수술이 끝나고 장애자련맹 김문철 위원장, 옥류병원 부원장과 마취과장, 우리 팀 모두가 마지막 담소를 잠시 나누며 옥류병원에서 한 주에 이렇게 많은 토순 수술은 한 새로운 역사의 기록을 감사하며 이번 경험을 회고했다. 그리고 모두 서로에게 감사의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회진 겸 인사, 사진촬영의 시간이다. 잠시 후 아이들과 보호자, 병실 간호사와 수술실 팀 모두가 수술장 앞 라운지에 모였다. 모두가 병원 정문에 모여 단체 기념촬영을 하는데 얼굴에 환한 미소와 기쁨이 가득했다.

▲ :두라인터내셔널이 건설한 사리원 온실 (황해북도 인민병원 옆) ©두라인터네셔널

아이들과 부모들이 의사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달하는 모습도 보이고, 한 주간 수술장에서 친해진 간호사와 의사의 농담도 들린다. 라운지가 시끌벅적해서인지 병원이 흡사 잔칫집 같았다. 수술을 받은 아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함께 기뻐할 부모, 조부모, 형제들, 이외에도 학교의 친구들 등이 떠올라 더욱 기뻤다.
 
그런데 수술을 받지 못한 한 아이의 엄마가 언제 또 방문하는지 물었다. 약속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이들에게 다시 기회를 더 주시라고 말이다.
 
장애련맹 사무원에게 이번 수술을 놓친 아이들의 연락처를 받아 다음 기회의 최우선 순위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엄마에게도 장애자련맹의 연락처를 주어서 서로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평양산원을 마주하고 있는 옥류아동병원에서의 첫 토순 수술 한 주간 동안 34명의 아이들과 부모에게 미소를 담은 사진촬영을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을 기도했다. 모두가 힘쓰고 노력해서 선물로 준 아이들의 미소를 생각하며 두라인터내셔널과 조선장애자련맹이 계속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두라 인터내셔널’이란 이름의 의미

‘두라’는 백두산과 한라산의 줄임말로 남과 북이 반 세기 넘어 한 세기 가깝도록 분단된 슬픔과 가족들이 헤어져 만날 수 없는 아픔에서 벗어나 평화와 화해, 통일을 소망하며 지어진 이름이다.

김수경/임산부 초음파(Ultrasound) 스페셜리스트(Sonographer), 영국  St George's Hospital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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