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5)

원광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8/10/30 [14:20]
지난 호에서 잠시 언급만 하고 지나친 아리우스주의(Arianism: 혹은 아리안주의) 이단에 대해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중인”이 거짓 교리를 전하며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4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아리우스는, 성자께서 어느 시점에 성부에 의해 창조되셨고, 따라서 그 시점 이전에는 성자도 성령도 존재하지 않으셨으며, 오직 성부만 존재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성자가 다른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하셨고 또한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훨씬 위대한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성자가 본질상 “성부와 비슷하시다” 혹은 “성부와 유사하시다”라는 것은 인정하였으나, 그가 본질상 “성부와 동일하시다”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시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있습니다(요 1:14; 3:16, 18, 등). ‘독생’(獨生)에서 ‘생’(生)은 “나셨다”는 뜻이니 성부 하나님이 성자를 낳으셨다는 뜻이며, 그렇다면 성부께서 성자를 낳으신(그리하여 성자가 존재하시기 시작한) 시점이 있을 것이며, 따라서 성자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것이 아니라는 식의 추론인 것입니다. 아리우스의 주장의 또 다른 근거는 골 1:15에 나타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이 본문 역시 앞의 본문들과 마찬가지로 성자의 존재가 성부의 존재처럼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들은 아리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 1:15의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에서 “먼저 나신 이”(헬라어로 ‘프로토코스’)는 시간적인 우선순위가 아니라 지위 상의 우선순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보다 지위상 뛰어나신 분”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골 1:15은 장자(長子)가 지니는 권위와 통치의 특권들을 지니셨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NIV 영어 성경은 이 부분을 “the firstborn over all creation”, 즉, “모든 피조물 위의 맏아들”, 혹은 “모든 피조물 위에 (다스리는) 맏아들”로 번역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독생’(헬라어로 ‘모노게네스’)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초기 교회는 성경의 다른 많은 본문들이 그리스도께서 충만하고도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보여주므로 그 ‘독생’이라는 표현이 무슨 뜻이든 간에 창조되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하여 325년의 니케아 신조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시되 지음받지 아니하셨다”(begotten, not made)고 명확히 진술하고 있습니다.
 
히 11:17에서는 이삭을 가리켜 ‘외아들’(헬라어로 ‘모노게네’)이라 칭하는데, 이는 요한복음의 “독생자”와 동일한 단어입니다만, 사실상 이삭은 외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복 형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외아들’이라 부른 것은 그가 이스마엘과는 달리 적자(嫡子)의 고유한 특권을 누린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독생자’도 마찬가지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의 특권을 지니는 분”이시라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이를 지지하며, 이는 영어성경들의 용법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NIV 성경은 ‘독생하신’이라는 표현을 ‘one and only’, 즉, ‘하나이시며 유일하신’으로 번역하며, ESV 성경도 'only'(즉, 유일하신)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는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동일본질(同一本質: 헬라어로, ‘호모우시오스’)이심”을 강조하였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유사본질(類似本質: 헬라어로, ‘호모이우시오스’)이시다”라는 아리우스의 가르침을 배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자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본질이 ‘유사’하신 것이 아니라, 그와 본질이 ‘동일’ 하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이 ‘유사’(호모이)와 ‘동일’(호모)이라는 작은 단어가 이단과 정통신앙의 경계를 지어주는 것입니다. 〠


원광연/크리스찬리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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